“건물이 들어설 때 얼마나 편안하고 안정감 주는냐가 중요”
“건물이 들어설 때 얼마나 편안하고 안정감 주는냐가 중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1.03.1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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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17> 건축가 고이권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비앤케이건축사사무소 고이권 소장이다. 제주시 출신으로 원도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탑동 몽돌에 대한 기억도 있다. 그가 고른 제주의 땅은 바다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접점이다. 수평선이 될 수도 있고, 지평선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꼈다는데 지평선보다는 수평선에 더 끌린다. 그가 소개한 책은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건축을 생각하다>이다.

 

 

# 수평선 – 제주의 숨은 아름다움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창가로 향한다. 바다를 본다. 하얗구나. 하얀 이를 드러내는 그 날은 거친 바람을 말하는 바다이다. 하얀 이를 드러내던 바다가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그건 간만에 누리는 제주바다의 이색적인 평온함이다. 바다를 매일 보는 일은 몸이 알아서 하는 작동이다. 누가 내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몸은 창가로 향하고, 눈은 바다를 응시하게 되어 있다. 내가 토종 제주사람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바다가 좋아서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바다는 일상의 친구이다.

제주바다는 어떤 때는 낭만적이지만 어떤 때는 세상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원천이다. 사진은 우도에서 성산포로 들어가는 도항선에서 바라본 해넘이 모습. 미디어제주
제주바다는 어떤 때는 낭만적이지만 어떤 때는 세상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원천이다. 사진은 우도에서 성산포로 들어가는 도항선에서 바라본 해넘이 모습. 미디어제주

제주바다는 보는 방향에 따라,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특징이라면 아주 긴 수평선을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좀 억지를 부리자면 그 수평선은 태평양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보는 바다가 가장 큰 대양의 한 줄기도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부풀어 오른다.

제주바다는 두 시인을 생각하게 만든다. 제주 출신 고(故) 문충성 시인과 제주시인은 아니지만 제주에 무한한 애정을 지닌 이생진 시인이다. 문충성 시인은 시집 <제주바다>를 1978년에, 이생진 시인은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같은 해에 내놓았다. 사람들에겐 <제주바다>보다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낯익다. 이유를 따지자면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더 많이 낭송된 때문일테다.

시인들은 저마다의 감성으로 제주바다를 해석한다. 문충성은 진짜 제주인의 삶을 녹여내 말한다. 이생진은 이방인의 낭만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
누이야, 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가서 5월 보리 이랑
일렁이는 바다를 보라
. 텀벙텀벙
너와 나의 알몸뚱이 유년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라
, 겨울 날
초가 지붕을 넘어 하늬바람 속 까옥까옥
까마귀 등을 타고 제주의
겨울을 빚는 파도 소리를 보라
.
파도 소리가 열어 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누이야.

(문충성의 시 제주바다 1’ 중 일부)

바다와 씨름하며 살던 제주 사람들의 삶은 문충성 시인의 ‘제주바다’에 담뿍 담겨 있다. 거친 바다는 삶의 터전이면서 괴로움도 삭이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건 제주 사람만이 안다. 그와 달리 이생진의 제주바다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낭만적이다. 하얀 이를 드러내는 제주바다가 문충성 시인의 공간이라면, 잔잔한 음색의 푸른 바다는 이생진 시인이 그리는 제주바다이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바다를 본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이생진의 시 바다를 본다전문)

시인 이생진의 제주바다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그 바다는 너무 가까워서 누구나 본다. 급기야는 바다가 뭍에 있는 모든 것을 본다. 그만큼 제주바다는 넓으니까.

긴 수평선을 지닌 제주바다.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은 다르다 했다. 그렇더라도 그때 바라보는 바다는 자연 그대로일 때를 말한다. 바다와 땅, 바다와 하늘.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없을 때 그 수평선은 더 가치를 지닌다고 속삭인다.

 

 

[대담] 건축가 고이권을 만나다

 

표지가 빨갛다. 눈을 자극한다. 빨간색에 자극받은 눈은 뇌까지 움직이게 만든다. 결국은 빨간 표지에 손을 댄다. 스위스 출신 건축가 페터 춤토르(영어식 발음으로 피터 줌터로 많이 부르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페터 춤토르로 쓰겠다.)가 쓴 <건축을 생각하다>를 집었다. 건축가 고이권은 그런 느낌을 주게 만든다. 그와의 대화는 비앤케이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됐다.

 

책부터 이야기해보자. 페터 춤토르의 책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스스로도 아직까지는 어떤 건축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학생 때는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에 끌렸다. 그는 기하학 형태를 건축으로 표현했고, 깔끔하고 세련됐다. 그래서 리처드 마이어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결국은 형태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내 건축 성향도 그렇게 되더라.

그러다 건축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페터 춤토르를 알게 됐다. 춤토르는 프리츠커상도 받았는데, 그는 스위스에서 지역적 건축을 했다.

 

춤토르가 쓴 책을 보면 아름다운 것이란 형태를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담겨 있는 생명이라고 한다.

그가 말한 건축의 본질이 어렵긴 하다. 춤토로는 건축의 본질과 공간의 분위기를 많이 말한다. 책에서 나온 내용도 본인의 건축철학이나 미학을 이야기할 때 항상 본질을 말한다. 형태보다는 건축 내부적인 부분에 대한 걸 고민을 하고 싶다. 또한 그렇게 해야 하고.

 

유럽은 미국과 느낌이 다르다. 미국은 도시가 확장되는 그런 이미지가 그려지고, 유럽은 도시라고 하지만 옛것과 잘 조화되고, 자연과도 잘 맞는다. 그게 잘 녹아든 게 춤토르의 작품이 아닐까. 그는 팽창되는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춤토르가 태어난 스위스는 자연과 밀접한 곳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도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의 사상을 제주에 도입한다면 우리 제주와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춤토르는 경관의 소멸을 일컫는 도시 스프롤현상을 경계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를 바라본다면, 제주경관은 어떤 중요성이 있을까.

제주 경관은 공기와 같다. 공기는 소중하지만 일상에서는 중요하게 느끼지 않을 때가 많다. 제주에만 살다 보니 제주의 경관과 자연이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외국이나 육지부에 있는 자연을 보고 나면 그때야 달라진다. 제주도가 훨씬 아름답다는 걸. 알게 모르게 내 눈과 머릿속에는 평소에 늘 보았던 제주 자연이 아름답다는 걸 인지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제주를 떠나 있던 분들은 제주가 너무 바뀌었다고 늘 말한다. 그들은 옛날에 있던 것들이 없어지고, 자연이 아닌 인공물로 채워지는 현상을 보면서 제주 경관을 심각하게 바라보곤 한다.

이제 나도 나이가 조금 들고 철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이제야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존에 있던 것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지, 그걸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안정감을 추구하길 원하는 비앤케이건축사사무소 고이권 소장. 미디어제주
안정감을 추구하길 원하는 비앤케이건축사사무소 고이권 소장. 미디어제주

말이 나왔으니 제주의 땅도 이야기를 해보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지점이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2016년도에 우도에서 워크숍을 가진 일이 있다. 해질 때였다. 서녘에서 해가 떨어지면서 수평선에 걸리는 그 모습, 제주 해안가에 있는 땅끝과 물이 만나는 선과 수평선이 보이는 풍광. 제주의 그런 자연을 보면서 황홀함에 빠진다. 너무 좋았다. 최근엔 제주시 삼양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해수욕장 동쪽에서 해질녘에 그 느낌을 또 받았다.

어릴 때는 시에따이’(시내에 사는 아이를 발음대로 쓰면 이렇게 들린다.)였다. 자연을 잘 모르고 자랐다. 그럼에도 탑동에 가면 갯것의 느낌이 났던 곳이다. 거긴 바다가 있고 수평선이 보였다.

 

제주도는 해안에서 한라산까지 북쪽은 완만하게 올라가고 남쪽은 다르다. 동쪽은 오름군락지고 서쪽은 평원이다. 토질도 각각 다르다. 제주에 있는 건축가들은 동서남북 건축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할지, 건축가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지역에 건물이 들어섰을 때 얼마나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합리적으로 풀어낸다. 건축작업을 할 때 항상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을 한다.

 

합리적이라는 건 경제적 문제와도 결부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프로젝트별로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땅을 많이 이해하려 한다. 그 땅에 가장 합리적이고 안정감 있는 매스나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건축주가 잘못 판단하면 그 땅에 어느 정도의 건축이 들어가면 적합한지를 설명해준다. 예산을 고려해서 건축주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설명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에 좀 더 보완을 한다면 지금부터 나 자신을 숙성시켜야한다. 건축의 본질에 대해서, 땅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안정감 있는 작업을 한다면 땅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건축이 되지 않을까 본다.

 

제주도 전체로 봤을 때 작업하기 쉬운 곳도 있고, 어려운 곳도 있을테다.

최근 주택 설계를 시작하는 게 있는데 제주시 해안동이다. 처음엔 지적도만 놓고 사무실에서 미팅을 했다. 건축주에게 남향을 얘기했더니 얼굴이 싸늘해지더라. 건축주는 굳이 남향이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제주시는 오션뷰는 북쪽으로 열려 있고, 남쪽으로 경사가 되어 있어 남쪽뷰가 좋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때가 난감하다. 채광을 위해서 남쪽을 열어주는 건물을 지어야겠지만 뷰는 북쪽으로 열리기에, 두 개를 만족시키는 합리적 방법이 뭔지 늘 고민이다.

 

그래서 제주시권 건축이 힘들다.

한쪽 매스만 남북을 보도록 배치하려 하고 있는데 제주시에서 그런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벌어진다. 오히려 서귀포를 가면 남향에다 바다뷰에서 편하다.

그게 제주 지형의 특이성이다. 그런 불합리하고 어려운 조건일 때 설계는 더 재밌다. 고민을 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해안동은 그나마 괜찮은데, 국제대 인근 첨단단지 쪽에 왜 아파트 단지를 만들었을까. 고지대에 지어도 문제는 없겠으나, 제주의 삶과 과연 맞을까. 굳이 높은 데까지 개발을 해야 하나. 중산간 이상 개발을 하는 게 과연 좋을까.

주택은 건축법이나 건축계획을 보면 가장 먼저 나온다. 주택 다음에 나오는 게 근린생활시설이고, 그 다음은 사무소 용도 등이다. 주거는 어떻게 보면 건축의 기본이며, 도시의 기본이다. 그런 주거단지를 고지대에 만들어두면 주거를 도와주는 근린생활시설이나 상업군이 가야 하고, 거기에 상업군이나 거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시설 등 공공시설이 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고지대에 도시가 만들어진다.

원도심 등이 공동화 현상으로 사람들이 빠져나오곤 하는데 그런 곳에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현상까지 고민을 한다면 주거가 위로 올라갈 게 아니라 지금은 밑으로 내려오거나 수평으로 펼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제주는 바람이 세지만, 특히 더 센 지역이 있다. 그런 지역에서 건축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의식적이진 않는데, 벽을 세우는 디자인을 하곤 한다. 직접 치는 바람을 막는 수단이면서 시선을 차단하고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가벽을 세워서 건축 요소로 활용하곤 한다. 최근 바닷가 근처에 설계한 게 있는데 고민은 역시 바람이다. 바람과 함께 묻어오는 짠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을 먼저 한다. 철자재를 많이 노출시키지 않는 방법과 매스를 너무 크지 않고 작게 분절해서 활용하는 방법, 가벽 등을 만들어 직접 치는 바람을 막는 구상을 하고 있다.

 

얼마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제주에 설계된 집이 나오더라. 제주출신 건축가 작품은 아니었고, 바닷가 쪽 난간을 철제로 했더라. 역시 육지 건축가여서 그렇구나라는 느낌이 오더라. 그런 면에서는 지역건축가가 필요한데 지역건축가가 이해하는 풍토와 육지 건축가가 이해하는 풍토가 다르다. 왜 지역건축가가 중요한가.

우선 기후에 대한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 페터 춤토르는 스위스의 발스온천장을 설계하면서 그 동네에서 나는 규석을 켜켜이 쌓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에서 나는 재료에 대한 이해 역시 중요하다. 제주석은 철분기가 약간 있어서 바다 지역에 적극적으로 써야 되는지에 대한 걱정도 있다. 제주석은 물을 머금으면 습한 게 남아 있어서 볕을 받지 않는 곳은 이끼도 낀다. 그러면 제주의 것으로 쓸 재료는 무엇일까. 그걸 좀 더 고민해본다.

제주 풍토를 이해한다는 건 바람과 기후를 이해하는 것이다. 습한 환경을 이해하고, 짠물을 방어하기 위한 외부의 재료, 제주적인 재료이면서 관리가 용이한 게 뭐가 있을지 고민을 한다. 그런 고민은 제주에 있는 건축가들은 늘 하고 있다. 제주지역 건축가들은 그에 따른 결과물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만일 건축주가 제주 출신이 아니면서 바다뷰만 좋아하고 철제난간만 고집한다면 어떻게 설득을 할텐가.

지금까지 건축주를 만날 땐 합리적인 제안을 해왔다. 처음엔 의견을 다 받는다. 주택은 워낙 개인 취향이 강하기에 처음부터 안된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집에 가서 건축주의 생각을 A2 한 장이든 두 장에 써보라고 한다.

처음엔 힘들다고 했다가 서너 장을 보내주는 분도 있다. 평생 살 가족들이랑 좋은 꿈을 꾸며 살 건축주들은 대화를 하면 잘 들어준다. 자주 만나서 진솔하게 얘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사례도 보여주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서 설명도 한다. 그러지 않고 집을 만들어서 파는 이들에겐 그런 얘기가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제주 출신 건축주와 제주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건축주들의 차이점이 있을까.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건 없다. 제주 분들 중엔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꿈을 지닌 이들이 많다. 아파트를 살 값을 모아서 주택을 짓는다는 애틋함이 있다. 육지분들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뭔가 이득을 원하는 분도 있다. 육지분 가운데 단독주택을 평생 꿈으로 지닌 분들을 만났다면 비교를 해서 대답을 해줄텐데, 그런 사례는 없다.

 

지금 사는 주택은 16년이 됐다. 살다 보니 집을 쓰는 방법을 알게 되더라. 주택도 자기 삶처럼 16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건축주의 입장에서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되는데, 혹시 그런 이야기도 건축주에게 해주나.

처음 건축을 할 때는 욕심을 냈다. 잡지에 나올 것도 상상하면서, 그러다 보니 건축주보다 건축가가 더 욕심을 부리곤 했다. 최근엔 이걸 수정했다. 건축주가 평생 한 번 짓는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해를 한다. 최대한 많은 얘기를 듣는다. 주택의 장단점을 설명해서 선택하게 한다.

 

사무소 뒤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요즘 제주도엔 공동주택이 많이 지어진다. 읍면에도 공동주택이 많은데, 그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읍면에 들어서는 아파트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인구가 있을텐데, 읍면에 사는 사람들이 거기에 다 살까?

 

읍면에 세워진 아파트는 분양이 다 안되더라. 그것도 그렇지만 읍면의 스카이라인과도 배격된다.

아파트는 덩어리를 지녔다. 계단실을 기준으로 2호조합 4호조합 이렇게 말하는데, 4호조합만 해도 건물길이만 50m나 된다. 읍면 스케일과는 맞지 않는다. 판상형으로 된 아파트가 막아서고 아무리 통경축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건물들이 들어서면 100m나 되는 장벽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읍면의 평평한 지역인 경우엔 커다란 장벽으로 풍광이 막힌다. 제주시권이야 큰 건물이 많지만, 읍면은 대부분 자연녹지나 관리지역에 짓는 것이어서 땅 하나에 큰 장벽을 치면 도시가 단절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막을 방법은 없을까. 지구단위계획을 읍면별로 짜든지.

제주도 전체를 지구단위로 하는 용역이 끝났는데, 어떻게 보면 거시적인 부분을 다뤘다. 장기적으로는 개발할 곳과 개발하지 않을 곳을 적절히 분배한다면 굳이 읍면에 가서 짓지는 않지 않을까.

 

서부지역은 평야나 마찬가지인데 거기에 덩어리를 세운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오름 옆에 하나 세워도 그렇고.

성곽 쌓듯이 장벽을 만드는 것이어서 장기적으로는 제주도 전체적으로 지구단위에 대한 성격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개발할 곳과 개발하지 않을 곳, 보호할 곳과 그러지 않을 곳에 대한 구분이 이뤄지리라 본다.

 

건축가라면 지역성을 생각한다. 지역성은 무엇일까. 또한 제주에 맞는 지역성은 뭘까.

어렵다. 지역성은 선배들도 얘기를 해왔다. 술자리에서도 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지역성에 대해 공상과 망상을 해본다.

선배들이 말한 지역성은 보편적인 지역성이다. 이젠 건축가들의 세대가 더 넓어졌다.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필요하다.

제주의 지역성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으나 너무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면서도 안정적인, 이런 것들이 지형에 잘 앉혔을 때 지역성 있는 건물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땅이 지닌 스케일에 맞는 위치에 있는 것. 그게 제주만의 지역성으로 볼 수 있다.

 

사무실 뒤에 보이는 아파트들이야 육지에 가져다 놓아도 상관없는 건축물인데, 서울에 있는 건물을 가져와서 제주에 얹을 수 없는 건축물, 그렇게 돼야 지역성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구마 겐고가 르 꼬르뷔지에를 비판하면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구현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은 건축을 해야 지역에 맞다고 본다.

페터 춤토르도 그렇다. 그는 어떤 공간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어떤 느낌을 줄 것인지, 건물이 그 지형에 밀착됐을 때 분위기가 어떤지를 고민하더라. 제주에서는 땅에 대한 이해를 잘하고 그에 적합하게 만드는 일이 지역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본다.

 

고이권 소장이 말하는 안정감, 편안함, 그런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 페터 춤토르가 아름답다고 말한 건 형태를 보고 아름답다고 한 건 아니잖은가.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편안하고, 좋고, 아름답네, 이렇게 느끼면 그 자체가 지역성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역성을 논할 때는 편안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제주의 지역성을 고민할 정도의 건축적 베이스와 경험이 필요하고,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뭔가 농익는 게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한 작품이 서울에 어울리지 못하고, 뉴욕과 파리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제주에 어울린다? 그게 지역성이 아닐까.

한동안 랜드스케이프를 많이 이야기했다. 건물이 지형에 묻혀야 어울리는 건 아니다. 매스가 안정감 있게 앉아 있는 모습, 그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하는 게 필요하겠다.

 

건축가 역할은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은 사회에서 건축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결국은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건축가 역량 강화 얘기도 많은데, 사회에서 대우를 받도록 해야 한다.

건축가만큼 사회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사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집단이 있을까. 우리 스스로도 사회에 대한 고민과 참여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에서도 그렇게 노력하는 건축가를 좋은 눈으로 봐주고, 노력하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라면 건축가들은 사회를 향해 더 좋은 활동을 하게 된다.

 

건축가는 고급 직업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이건 누구 작품, 이건 누구 작품이라는 말이 쉽게 나와야 하는데, 사회구조가 그렇지 못하다.

건축가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건축사라는 직업적인 라이센스를 정확하게 호칭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 설계사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보면 하는 일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게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건축가는 설계라는 기능 업무만 수행하는 건 아니다. 건축이라는 학문은 종합적인 일이다. 건축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좀 더 좋아지길 바라며, 우리 역시 잘 해야 한다.

 

대중들은 스타 건축가 몇몇만 안다. 거꾸로 의사들의 이름은 잘 모른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선생님으로 존경을 해준다. 건축가도 특출한 사람 몇 명만 대단한 분이라고 할 게 아니라 의서처럼 직업군에 있는 건축가라면, ‘건축가라고 말하는 순간, “건축가 선생님으로 불리면 좋겠다. 우린 너무 개발 위주 정책을 하면서 설계를 하는 건축가에 대한 이미지가 낮게 책정된 게 아닐까.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인식을 바꾸기 위한 홍보와 노력도 있어야 한다. 대중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지고,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분위기에서 건축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스터디도 하면 좋겠다. 그런 기회가 많아지면 인식도 달라질테다.

 

<건축을 생각하다>, 페터 춤토르 지음

 

알프스의 깊고 깊은 산속.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목욕탕이 있다. 스위스 발스에 있는 온천장이다. 발스는 스위스에서 알아주는 휴양지였으나 거대한 리조트가 있는 지역은 붐비고, 작은 마을엔 찬바람만 불었다. 그렇게 발스온천장은 부도를 맞았으나 지역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를 만났고, 느릿느릿 한땀 한땀 돌을 올리며 설계 10년 만에 세계적인 건축물로 환생한다. 물론 페터 춤토르에겐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주어진다.

페터가 쓴 <건축을 생각하다>는 그가 말하는 건축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우리가 건축물을 짓는다고 해보자. 어떻게 할까. 건물의 이미지를 우선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페터는 그게 아니다. 발스온천장이 그렇듯, 페터는 건물이 들어설 땅의 위치와 건물이 들어서야 하는 목적을 떠올린다. 그러곤 산이나 바위나 물 등의 자연소재가 제기하는 의문에 자문을 하곤 한다. 페터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기를 수도 없이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주 놀라운 구조와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가 말한 걸 잠깐 옮겨본다.

“내가 생각한 건물이 장소와 기능에 정확히 부합한다면 굳이 예술적 장식을 첨가하지 않더라도 건물 자체가 힘을 가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름다움의 핵심은 물질의 농축성이다.”

그의 말은 자연에서 만나는 구체적인 물질을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그는 시간과 땅, 하늘 등을 건축을 만드는 기본 요소로 바라본다. 건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은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라’며 재촉하는 건축물의 외관이 아니다. 페터는 “건축의 실체는 형태, 볼륨, 공간이 구체화된 몸이다”고 하면서도 그 실체에 의미와 감각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바닷가에 들어서는 건축물도 있고, 들판에 우뚝 서는 건축물도 있다. 빌딩 숲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트는 건축물도 있다. 이들의 장소는 모두 다르다. 그러기에 건축은 장소성이 중요하다. 건축물과 장소는 어떤 관계여야 할까. 페터 춤토르는 건축물이 장소의 일부이며, 그 장소 자체라고 한다. 어떤 건축물을 보는 순간 장소를 넘어서는 뭔가를 느낀다는 뜻일테다. 때문에 페터는 현대적인 트렌드와 세련된 외관만을 제시하는 건축은 그 장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대지의 중력을 붙잡지 못한다고 설파했다.

다시 한번 페터 춤토르가 말하는 아름다움을 책을 통해 들여다보자. 음악은 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게 아름다움이 된다. 건축도 다를 건 없다. 누누이 책에서 강조하지만 페터는 외관으로 아름다움이 발현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책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외관이 정말로 아름다운지는 형태 자체로 판단하기 어렵다.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이 속한 감정의 깊이는 형태로 촉발되지 않고, 그 형태에서 나온 생명력에 의해 촉발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인간은 누구나 학습되지 않은 원형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그건 인간에 내재된 본연의 아름다움이다. 특히 진한 추억의 장소는 자신의 내면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걸 잘 끄집어내면 건축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 페터는 그걸 꺼내며 건축물에서 아름다움을 불러낸다.

제주도라는 땅. 페터가 제주를 둘러봤다면 어땠을까. 그런 면에서 페터가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경관 이야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경관은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거기에다 하늘, 냄새, 빛, 색, 형태 등 어린 시절의 경관이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갈 때 페터는 집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의 경관은 곧 자연이다.

페터는 ‘도시’와 ‘경관’의 차이점을 쉽게 구분한다. 도시는 흥분을 시키면서도 긴장과 위압감을 준다. 반면 경관은 자유와 평안을 준다. 도시에서 시간은 압축적이지만, 경관에서 시간은 거대하다.

페터가 바라보는 경관은 주로 자연에서 나온다. 그 때문인지 페터는 경관의 상실을 힘들어한다. 도시가 점점 확산되는 ‘도시 스프롤현상’을 향해 페터는 “경관의 소멸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페터가 말하는 책의 한 문장을 소개한다.

“새로운 고저(高低), 새로운 좌우(左右), 새로운 전후(前後)를 만드는 새로운 장소를 만들고 싶다면 경관에 대한 이해가 내 안에서 솟아나야 한다. 이로써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한다. 종종 성공적인 결합이 일어난다. 구조와 경관이 혼합하고 함께 자라며 독창적인 장소를 만든다. 이런 장소는 집처럼 편안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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