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살아서 숨을 쉬는 세포막같은 공간을”
“어린이에게 살아서 숨을 쉬는 세포막같은 공간을”
  • 김형훈
  • 승인 2021.02.10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놀이와 공간] <2> 사이공간

네덜란드 건축가 반 아이크 ‘사이공간’을 창출
쓸모없던 공간에 어린이들이 뛰놀 놀이터 구축
“순간으로 사라지지 않을 ‘영구적’ 공간마련을”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 1918~1999)가 시적으로 표현한 다음의 글을 보자.

도시에 대한 생각은 우리 자신과의 응대
도시와의 대면은 어린이의 재발견
어린이가 도시를 재발견하면
도시도 어린이를 재발견하지
-우리를 포함해서
눈을 봐
!
하늘의 기적적인 속임수-순식간의 보정
단번에 어린이는 도시의 영주가 된다네
그러나 꿈쩍 않는 차량에서 눈을 모으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지
인간인 어린이에게 눈보다 더 영구적인 뭔가를 건네자
-아마도 덜 풍부하겠지만
또 다른 기적

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뿐이다. 눈은 세상을 덮고, 차량 위에도 내린다. 아이들은 그 눈을 모아서 눈싸움을 즐기거나, 눈사람도 만든다. 날이 풀리면 어떻게 될까. 놀이는 사라진다. ‘하늘의 기적적 속임수’로 만들어낸 눈 놀이는 시간제한을 두기 마련이다.

때문에 아이크는 어린이들에게 ‘더 영구적인’ 뭔가를 주자고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영구적인 놀이는 하늘에서 눈이 내려서 온 세상을 덮는 기적처럼, 또 다른 기적을 주기 마련이라고 시적인 글에서 밝히고 있다.

도시는 사람을 담는다. 자그마한 집에도, 커다란 빌딩에도 사람을 담는다. 아쉽게도 우리는 도시에 스스로를 가둘 뿐, 도시를 제대로 보질 못한다.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도시의 삶에 들어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있는 도시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그럴 때 도시의 문제가 드러나고, 자신이 살아갈 도시를 다시 그리게 된다.

도시를 제대로 보고 읽으면 아이크 말대로 어린이들이 읽히고, 우리는 어린이를 통해 도시를 다시 볼 수 있다. 아이크가 말한 ‘또 다른 기적’을 위해 우리 어른들은 뭘 해야 할까. 우린 이쯤에서 아이크가 했던 걸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이크를 읽으면 어린이를 위한 ‘또 다른 기적’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수많은 놀이터를 계획하고, 선물했다. 아이크의 놀이터는 사회학자, 예술과 건축의 이론가들, 심리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1947년부터 1978년까지 암스테르담에 만들어진 놀이터는 무려 734개라고 한다. 현재는 17곳만 남아있지만, 아이크가 계획한 프로젝트는 도시와 건축에 대한 이해는 물론, 놀이터와 어린이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근원이 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보에첼라르스트라트에 있는 반 아이크의 놀이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보에첼라르스트라트에 있는 반 아이크의 놀이터. ⓒ프론티어 인 사이콜로지
위 놀이터는 지금도 잘 남아 있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공간이 혼합돼 있다. 구글캡쳐
위 놀이터는 지금도 잘 남아 있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공간이 혼합돼 있다. ⓒ구글캡쳐

아이크의 프로젝트는 ‘전쟁 후’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아이크는 암스테르담 공공사업부 마을계획과의 건축가로 임명된다. 마을 곳곳은 전쟁의 상흔이 그래도 남아있는 상태였고, 삶의 회복이 중요했다. 어찌 보면 그는 대규모 재건을 통한 도시의 활력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아이크의 놀이터를 연구해 온 건축 이론가인 리앙 르페브레는 아이크의 놀이터에 ‘공동체’와 ‘대화’라는 건축혁신적인 ‘사이공간’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사이공간’은 건물과 건물의 사이에 있는, 혹은 쓸모가 없다고 방치되거나 버려진 그런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아이크는 그런 공간에 놀이터를 기획하고, 실현했다.

때문에 아이크의 프로젝트를 ‘인간적 건축’이라고 부른다. 그의 인간적 건축은 대화를 육성하는 장소를 만들고, 아이들이 참여하는 공동체 생활을 자극했다.

아이크의 놀이터 특징은 닫혀 있지 않고, 호흡을 하는 공간이다. 그가 구축한 놀이터는 ‘안전’을 이유로 도로와 격리되지 않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는 맞지 않을 수는 있다. 어른들이 보이엔 ‘안전’보다 ‘위험’이 도사린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공간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간과 건축이라는 측면이 놀이와 마주할 때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아이크를 통해 볼 수 있어서다.

턱은 있지만 철제 울타리는 없는 놀이터(지금은 철제 울타리를 두른 곳이 많다). 어린이들은 차량이 통행하는 곳과 자신들이 노는 곳을 구분하는 법을 배운다. 어른들의 벤치도 어린이들의 놀 공간과 구분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놀면서도 어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터득한다. 도시를 연구하는 리처드 세넷은 아이크가 창출한 그런 공간을 ‘경계역적 주변부’라고 표현했다. 다소 어려운 표현이지만, 그 표현은 벽을 두지 않으면서도 공간을 구분하고, 공간끼리 호흡을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이크의 공간은 죽은 공간이 아니다. 죽어 있던 공간을 살려내고, 공간과 공간이 숨쉬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역시 울타리에 갇혀 호흡을 하지 못하록 하지 말고, 다양한 상상을 하도록 해주는 게 우선이다. 어쩌면 그런 공간은 살아서 숨을 쉬는 ‘세포막’과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