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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근·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제주 근·현대 주거건축의 공간사 시론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2.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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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11월호] SPECIAL SERIES
김석윤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제17대 회장

프롤로그

우리의 전통문화는 19세기 개항의 시대 이후 격동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강요된 근대는 애초 속국화를 위한 과격한 문화 말살 시도였고, 해방공간의 혼란과 민족상잔의 전쟁과 이후 한동안은 미국의 원조문화, 양키즘에 무한 노출이 불가피하였다. 이어서 혼미한 정치상황 속에 피폐한 경제 재건과 자립을 위하여 추진되었던 개발 일변도의 국가시책과 군벌 무력정치가 몰아세우던 시대를 넘어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한 세기 동안 우리 문화의 정체성은 위축되고 함몰될 위기에 노출되어왔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된 근대는 전통과의 결별구조로 되어있었다. 더구나 유형문화의 주축을 점하고 있는 건축분야에서 우리들이 경험하였던 근대는 전혀 다른 형태와 생소한 생산기술을 통해서 성립하고 있다. 이마저도 우리 민족의 자의적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제된 타율이었고 점령자들의 식민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우리 문화의 고유성은 미개한 것으로 치부되어 배척하고 결별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였다.

이 한 세기에 걸친 정체성 소멸의 위기에서 초래된 무규범 상태의 지속 현상은 좀체 회복의 기운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무규범 상태는 문화적 목표와 사회적 구조 사이에 유효한 규범을 마련하지 못한 혼란을 보이는 상황, 정신문화와 물질문화가 괴리된 현상으로 원어 Anomie를 이르는 말이다. 근대시기 이후 한국건축은 이 무규범 상태에 있다고 본다.

문화의 고유성은 그 형성이나 회복이란 참으로 장구한 시간의 축적과 지적탐구의 성과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엄밀함을 깨달아야 한다. 문화의 형성 과정에는 추월현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의 정체성과 창의성의 가치가 귀중함은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다.

문화는 스스로 생성, 소멸의 과정으로 진행하기도 하지만 주로 교류와 간섭하는 방법으로, 또는 이종과 혼융하고 새로움을 선망하거나 변이를 돌발시키거나 하는 다변 의지의 생태적 현상이 그 본질이다. 문화의 전통성이 강한 경우에, 또한 교류와 혼합과정에서 과도하게 일방적일 때 문화와 문화간의 충돌과 갈등은 격렬해지기 마련이다.

제주도는 어느 곳에 못지않은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시켜 온 지역으로서 특히, 제주의 전통 주거건축 문화의 경우 농짙은 전통성을 지니고 있는 사실에서 충돌과 갈등에서 격렬성이 예견되는 현장이다. 이는 지역건축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과제의 당위성이 강조되는 사유이지만 그 절차와 방법에서 성찰이 있어야 하겠다.

1970년대 경제성장을 이루고 나서 주체문화 자각의 시대, 다른 표현으로 정체성 추구의 기회를 맞았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지배적 규범의 부재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소멸했거나 망각하여 버린 전통에서 문화 유전 인자를 추출하는 일은 의지의 문제이지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다. 문화 전통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라 하였다. “전통은 고수하거나 복원하는 것에 만족할 일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통은 해석의 단계보다 미래 가치 창출에 중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전통 주거에 자생적 근대성이 존재하였음을 증거하려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좀 더 명료하게 하려면 문화의 속성 이해와 자존의 욕구를 전제로 자생적 근대성의 흔적을 찾아내어 그 의미를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정체성을 생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이제까지 건축 역사 연구는 풍토와 인문적 배경과 건축의 형식과 구조, 재료, 공법과의 인과를 살피는 공부였지만, 이에서 나아가 건축의 공간조직과 시대와의 관계망을 살피는 것이 현대건축 이론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인 것이다. 이미 한세기 전 건축의 주제는 형태에서 떠나 공간으로 옮겨져 있다. 이제까지 제주도 주거건축에 대한 연구의 성과인 양식론을 넘어 공간의 화해(和諧)에서 규범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전제에서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순서를 정했다.

제주도 전통 주거건축에 내재해 있는 자생적 근대성을 탐색하여 역사 단절의 시각을 의문하는 것을 첫 주제로 한다.

일제 강점기에 서구 근대의 유입과정에서 수용과 갈등 현상을 사례 조사하여 시대성을 발견한다.

1950년대 이후 우리의 근·현대 주거건축을 10년 단위로 나누어 당해 단위마다에서 공간구성에 적용된 동질성을 발견해 내려한다.

이 글의 궁극목표는 제주도 주거건축사에 통시성을 완결하고 공간론을 생산해 내는 것이나, 초기 단계이므로 시론(試論)이라 제목하여 수정, 보완, 검증의 절차를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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