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평리 마을 - 마을을 기록한다는 것
온평리 마을 - 마을을 기록한다는 것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1.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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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11월호] COMMITTEE
이창규 에이루트건축사사무소

온평리 마을조사를 하게 된 인연

2017년 1월 중순쯤 김정일 건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온평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제2공항이 생기면 마을이 많이 사라지고 변형될 수 있으니 마을을 조사해 기록으로 남겼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2017년 당시 개인적인 일들과 회사 프로젝트 등으로 마을조사를 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 이야기하고 마을조사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거절하면서도 누군가는 사라져가는 제주 마을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마을을 잘 기록할 수 있는 건축사가 있기를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건축사 선배들은 돌아가면서 한 번씩은 마을조사를 했기 때문에 이번 온평리 마을은 이

창규 소장이 이 일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 부탁이기도 하였지만, 사라져가는 제주 마을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렵지만 진행하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온평리 마을을 2년에 걸쳐 조사하게 되었고 ‘제주의 마을 공간 조사 보고서_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가 나오게 되었다.

2년 동안 마을조사를 기록하였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제2공항 이슈에 따른 마을 분위기) 때문에 기록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던 시점에 이번 건축사회 연구위원들과 같이 답사를 하게 되었다. 기록하지 못해 아쉬움을 달래고 그 이후에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온평리 마을을 같이 걷고,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변화하고 있는 온평리 마을

제주의 마을은 경제, 문화, 개발방식, 이주민 (문화) 등 급박한 발전 속도에 밀려 원형의 모습이 변형되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 제주의 건축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올래가 새로운 도로 체계와 주차장, 합필 개발 등으로 인해 파괴되고, 마을 구성원과 생활양식의 변화로 마을의 거점공간(퐁낭)들은 그 역할을 예전만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근·현대를 지나며 새로운 주거 양식이 들어옴에 따라 제주 가옥의 공간 구성 또한 급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온평리의 경우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로 선정되어 개별 가옥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급속히 변형될 위기에 처해 있다.

온평리 마을 풍경.
온평리 마을 풍경.

 

제주 마을을 조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들

마을의 현재 모습을 기록하여 온평리 마을의 고유한 풍경과 생활문화, 그리고 삶의 정서와 공간의 분위기를 기록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오랜 시간 삶이 축적된 마을과 건물을 둘러보며 제주의 근원적 공간 의식을 파악할 수 있고 둘째,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시와 공간의 다양한 문제들의 해법을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구할 수 있으며 셋째, 제주민의 삶의 의식을 담은 제주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섬세하게 실측하여 객관적인 기록으로 잘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조사를 진행하며 특히 골목도와 배치도를 자세히 그리자는 생각으로 주변 돌담과 올래의 형태, 수목 등을 세심히 그려 집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공간감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단면도 또한 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의 마당 크기를 실측하고, 집과 마당의 레벨 관계, 그리고 창고의 목구조 부재 구성과 사이즈 등을 자세히 작성하였고, 입면도는 정교하게 작업하여 동네에서 그 집이 갖는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이는 실재하는 공간을 정확히 기록하여 제주 민가를 연구하는 기초자료로 사용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평리 마을 구성 및 올래 특징

온평리는 해발고도 약 200m 이하로 해안선을 따라 3km 정도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해발고도가 낮고 평탄한 지형으로 농사가 잘되는 곳이다. 약 40%가 농업에, 약 46%가 어업에 종사하며 농업과 어업 모두 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곳은 문화자원도 풍부하다. 혼인지를 비롯해 해안에는 원형이 많아 남아 있는 환해장성이 있고, 말등포연대 등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마을은 상동, 중동, 하동, 서동, 동동으로 나뉘어 있다. 각 마을의 중심 길에는 퐁낭이 자리하여 지금도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마을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상동은 너른 밭들과 주거지가 구분되어 구성되어 있다면, 동동과 하동은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에 가옥들이 듬성하게 구성되어 있다. 중동과 서동은 온평리에서 주택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마을의 중심가에 집과 과수원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으며 가장 활발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다.

온평리는 대개 단층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공건물과 신축되는 건물 중에 간혹 2층 이상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오래된 자연 취락지구로 주택이 주를 이루며 다음으로 감귤창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주도로 주변과 해안가에는 상점들과 숙박업소가 자리하고 있으며, 주민을 위한 편의 시설은 주로 중동 부근에 몰려 있고 해녀들이 기금을 모아 설립한 온평초등학교가 마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개별 가옥은 안거리, 밖거리, 창고의 구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밖거리를 개조하여 임대를 주거나, 창고를 자동차나 경운기를 보관하는 차고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깊은 올래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고, 안뒤 공간이나 우영밭을 집의 앞·뒤로 두어 풍요롭게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가옥들은 다른 마을보다 집 땅의 면적이 크고, 진입 올래가 긴 편이다. 땅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주변에 우영 밭들이 다양하게 있다. 집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안거리, 밖거리, 쇠막으로 배치되었다. 여러 마을과 다른 특징은 쇠막의 규모가 큰 편이다. 온평리 쇠막 크기는 보통 소 2~3 마리를 키울 수 공간으로 만들어졌다.(예전에 소 한 마리 가격이 밭 150평 정도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땅과 집의 크기 통해 마을의 경제력을 대략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온평리 마을 가옥들의 공간 구성도 농업과 어업 등 생산 활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 돌집 원형부터 근, 현대건축을 같이 볼 수 있는 곳

온평리에서는 제주 돌집의 원형부터 현재 지어지는 빌라까지 시간을 통과한 다양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세 채의 집에서 생활양식과 생산 활동의 종류가 변해가며 실내화하여 증축된 화장실 겸 장독대와 트랙터가 세워진 쇠막, 평지붕집의 과도기로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덧대어 만들어진 눈썹지붕과 확보된 평지붕 위로 올라간 빨랫대와 운동기구들, 기술이 발달하고 생각이 달라지며 나타난 2층의 벽돌집과 근생건물들, 경제성에 집중한 빌라들까지, 마을의 집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하나의 재밌는 가설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기존 제주 돌집이 기존 지형에 순응해 바람을 피하며 건물을 배치하고 마을과 조화를 이루며 지었다면, 새로 지어지는 집들은 기존 지형을 단순하게 파악하고 그저 기단을 높여 마을을 고려하지 않은 채 풍경을 독점하며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마다 가치관과 삶의 방식, 문화가 다르고, 그에 따라 집이 지어지는 방식과 마을을 이루는 풍경 등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좋은 풍경을 독점하려는 노력만큼 내 건물도 주변에 좋은 풍경으로 남겠다는 태도를 지닌다면 우리의 마을 풍경은 또 어떻게 바뀌어질까? 작은 결심과 의지로 제주의 마을이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마을을 기록한다는 것

동료 건축사들과 만나면 옛 제주 마을의 정취와 풍경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이야기한다. 마을마다 지구단위 계획을 세워 제주 마을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건축사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마을의 풍경을 지키기 위한 제안들은 건축사들마다 견해 차이가 큰 편이다. 이번 답사 후 연구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다양한 의견과 제안들이 나왔다.

제주 마을의 원형을 지키기 위해 층수와 합필의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유재산을 억압할 수 없으니 규제보다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의견, 대지 안 주차보다 인근 주차장 제도를 활용하여 올래길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 공공이 개입하면 오히려 더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으니 자생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자는 의견들도 있었다.

상충되는 것들도 있지만 모두 좋은 의견들이었다. 그중에서 한 연구위원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제도나 규제를 논하기 전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마을을 조사하여 그 데이터를 축적하는 게 먼저라는 것, 그래야 제주만의 건축물, 마을 만들기, 도시계획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마을 조사가 중요하고 그로부터 우리만의 해법이 생긴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힘을 얻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주 마을과 제주건축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누구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책임을 가지고 기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마을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실측하고, 사진을 남기는 것은 굉장한 노력과 긴 시간, 그리고 비용을 요구한다. 사명감과 책임감, 연구에 대한 호기심 없이 하기에는 고생스러운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기 어렵지만 누군가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제주 건축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연구 비용을 책정하고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특히 비용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건축사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로 인해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연구 환경과 조건에서 진정성 있는 조사연구 보고서가 나올 수 있다. 다양한 제주건축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선배 건축사들의 마을을 대하는 태도와 연구의 과정이 후배 건축사들에게 이어졌으면 하고, 제주건축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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