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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아일랜드 돌담 견학
영국과 아일랜드 돌담 견학
  • 미디어제주
  • 승인 2021.01.0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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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9월호] 이슈
조환진 돌빛나예술학교 교장

2014년 제주 MBC는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오래된 미래, 제주밭담’을 방영하였다. 방송의 내용 중에는 돌담과 관련해 가장 선진화된 정책을 시행 중인 영국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영국돌담협회에서 진행하는 돌담 쌓기 수업 장면이 있었다. 영국에서 돌담 쌓는 일은 안정적인 직업이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교육을 받으러 온다는 돌담협회 관계자의 말과 함께 돌담 수업에 참여한 영국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재 제주도의 현실은 영국과는 너무 다르다. 현역에서 일하는 석공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제주의 젊은이들은 석공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돌담 작업 현장에 나가면 “어떻게 젊은 사람들이 힘든 돌담 일을 배웠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오랜 세월 삶 속에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돌담 쌓기 기술은 과거 대부분의 제주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다 보니 이제는 일부 전문직업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주 돌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돌담 쌓는 기술을 대중화하며 더 나아가 제주 돌담 보전을 위해 나는 2015년부터 ‘돌빛나예술학교’를 시작하였다.

2015년 첫 수업은 한림읍 주민자치 특성화 프로그램, 두 번째는 서귀포 예술섬대학에서 진행하였다. 이후 제주연구원 소속 밭담사업단의 밭담아카데미와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수업, 도시재생센터 관련 프로그램 등과 연결되어 진행해 오고 있다. 돌담학교를 진행하면서 아쉬운 것은 MBC 다큐멘터리에 보았던 영국의 모습과 제주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주말마다 진행하는 돌담수업 수강생 모집을 위해 제주도내 대학마다 홍보 현수막을 설치하고, 정부지원 사업이라 전액 무상 교육이라고 강조했지만 단 한 명의 대학생도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 신청자 대부분은 퇴임을 앞두고 귀농을 준비하거나 귀농인, 그리고 제주 돌문화에 관심이 많은 타 지역 이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2017년 당시, 영국은 돌담협회 설립 49주년으로 일찍부터 돌담보전을 위한 체계적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틈틈이 영국돌담협회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직접 영국으로 가서 돌담 수업도 참여해 보고 돌담보전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협회운영과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석공이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2017년 어느 날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께 앞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에 돌담 공부하러 가보려고 한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외국에 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왕복 항공료를 지원해 줄 테니 올해 안에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 선생님의 후원으로 본격적인 영국견학 준비를 시작하자 돌빛나예술학교 수료 동문들도 많은 도움과 응원을 해줬다. 마침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해외배낭여행 참가자 공모를 통해 선발된 제주지역 청년 4명과 함께 해외 돌담견학을 같이 가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돌담협회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방문 일정과 돌담수업 신청을 조율하였다. 2017년 8월, 영국 히드로공항에 도착하여 차를 렌트하고 돌담수업 장소 근처 숙소에서 1박을 하였다. 우리의 일정과 맞는 곳은 맨체스터 지역에 있는 펜닌지부에서 진행하는 수업으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진행하며 숙소와 식사, 작업복 및 안전화, 비옷, 장갑 등은 본인이 준비해야 했다. 수업료는 1인당 7만 원 정도였다.

아침 일찍 동네 마트에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9시 Higher Slack Brook 자연보호 지역 내에 위치한 Watergrove 저수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펜닌지부 회원들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Ramsden Rd를 따라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여 수업 장소에 도착했다. 제주도의 오름과 비슷한 형태의 낮은 언덕들이 있는 넓은 목장으로 양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한 줄로 축조된 긴 돌담과 군데군데 무너진 돌담들이 보이고 긴 돌담 옆에 더위와 비를 피할 수 있는 돔 모양의 작은 텐트가 쳐져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넓은 목장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햇빛이 나기를 수시로 반복하는 날씨였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준비물 중에 왜 비옷이 필수로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선 간이 텐트 안에서 이 지역 대표 선생님이 10여분 정도 이론 교육을 진행했다. 내용은 이 지역 암질의 특성과 형성과정, 그리고 돌담 축조 방식 및 안전교육이었다. 이론수업 후 바로 실기 수업으로 들어갔는데 옆에 쌓은 긴 돌담과 같은 형태의 겹담을 쌓는 수업이었다. 이 지역은 석회암 지대로 돌들이 납작납작한 모양으로 쪼개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외담 쌓기보다는 벽돌 쌓듯이 양쪽에서 층층이 쌓는 겹담에 적합한 돌들이었다.

돌담 선생님이 직접 시범을 보이셨다. 우선 기존에 있던 돌들을 정리하고 돌담 쌓을 자리 양쪽 끝에 나무로 만든 틀을 세운 후 실을 띄우고 20cm 정도의 일정한 깊이로 길게 땅을 판 후 큰 돌을 골라 기초 돌을 놓았다. 그 다음 양쪽으로 한층 한층 쌓아 올라가는데 벽돌쌓기처럼 옆의 돌과 수평을 유지하며 쌓아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의 돌이었지만 제주의 겹담 쌓기와 기본 축조 방식은 같았다. 돌의 형태만 다를 뿐이었다. 제주의 돌담과 다른 점이라면 맨 윗부분 마무리를 할 때 큰 돌 중에서 크기가 비슷한 돌을 골라 촘촘히 세워서 맨 윗부분을 견고하게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잠시 쉬는 시간에 제주도도 홍보할 겸 준비해간 제주연구원에서 발간한 제주 밭담 사진집을 보여주었다. 많은 돌담 사진들 중에서 별도봉 밑 곤을동 유채꽃과 돌담 사진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릴 뿐 별다른 관심을 크게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의 밭담 사진을 보여주면 신기해하면서 제주도에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말할 것으로 기대했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나도 우물 안 개구리같이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전 세계에 제주도처럼 돌담이 많은 곳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채꽃 하면 제주도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중국에 갔을 때 몇 시간을 차로 달려도 유채밭이 끝이 안 나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틀간의 수업을 마치고 돌담 선생님께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충격적인 말은, 30년째 이 지역에서 돌담 수업을 진행 중인데 봉사활동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들이 지불한 수업료는 전액 돌담협회 운영비로 사용된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 구글 지도로 보면 이 돌담을 볼 수 있다고 하시면서 오래 보전될 거라고 했다.

다음날 영국 Cumbria 주 Crooklands 마을 Lanefarm에 위치한 영국 돌담협회 사무실로 향했다. 젖소를 키우는 듯 보이는 넓은 목장 내에 조그마한 돌집에 영국 돌담협회 간판이 걸려있었다. 좁은 사무실 안에는 여성 사무국장 혼자 사무를 보고 있었는데 우리를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14년째 사무국장을 하고 있으며 협회 임원들 중 유일하게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은 돌담 수업을 받으러 온 적이 있었는데 한국인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글로 싸인 해주면 사무실에 보관하겠다고 해서 ‘제주돌담협회’라고 써주었다. 사무실 밖 넓은 잔디밭에는 길이 10미터 정도로 쌓은 돌담들이 한 줄로 연속하여 10여개 정도 있었는데, 영국 각 지역의 전통적인 돌담형태를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영국의 각 지역 회원들이 돌을 운반하여 축조한 것으로 영국의 지역별 전통 돌담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영국 돌담협회의 정회원 수는 1,000여 명으로 그 중 돌담 전문 기술자는 200여 명이고 나머지는 돌담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과 돌담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재정운영은 회원들의 회비와 기부금, 자체 복권발행 및 여러 가지 문화상품(책, 달력, 엽서, DVD, 기념품 등)을 제작 판매, 돌담 수업료 등으로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돌담교육을 활발하게 진행하며 돌담쌓기대회 및 돌담축제와 돌담보전에 대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단다.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오래된 돌담의 복원사업들이 많이 있으며 이런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돌담 기술을 배우고 시험을 통해 자격을 획득하고 있었다. 초급, 중급, 고급의 단계별 자격시험이 있으며 각 단계별 자격 취득에 따라 쌓을 수 있는 돌담이 정해져 있다. 초급과정에 합격하면 초급 난이도의 돌담을 보수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고급과정까지 합격하면 모든 난이도의 돌담 보수에 참여할 수 있다.

다음 목적지인 아일랜드로 가기 위해 더블린행 비행기를 탔다. 아일랜드협회와 사전에 이메일을 통해 방문 일정을 조율했지만 막상 아일랜드에 도착하자 바빠서 만날 시간 여유가 없으니 이니시어 라는 섬에 사는 석공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더블린에서 차를 렌트하고 몇 시간을 달려 반대편에 있는 골웨이라는 지역으로 갔다. 골웨이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었다. 바닷가 근처에는 둥글둥글한 모양의 돌로 돌담사이 구멍이 숭숭 나있는 외담들이 멀리까지 겹겹이 쌓여있고 돌담 안에는 당나귀로 보이는 동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돌의 색만 검정색이면 제주의 바닷가로 착각할 정도로 돌담 경관이 제주와 비슷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란제도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작은 이니시어라는 섬에 석공이 살고 있다고 했다. 내일 아침 이니시어행 배를 예매하고 근처에서 1박을 했다.

다음날 아침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 나가보니 성산에서 우도를 오가는 도항선보다 조금 큰 규모의 배 2척이 있었다. 골웨이에서는 아란제도를 하루 2회 왕복하며 다른 지역에서도 아란제도로 오고 가는 배가 있다고 했다. 아침에 배로 들어와서 섬을 둘러보고 오후 배로 나가거나 숙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란제도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적지인 이니시어는 아란제도 중에 가장 작은 크기의 섬으로 제주도의 우도 보다 조금 작고 상주인구는 260명 정도라고 했다. 아란제도에 대해 좀 더 이해하려면 1934년 로버트 조셉 플라어티의 ‘아란사람(The man of Ara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참고 바란다. 다큐멘터리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비판도 있지만 과거 아란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섬 주민들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자전거 대여와 말 마차를 이용한 섬 투어 그리고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니시어 석공도 자전거 대여와 민박을 하고 있었다. 부두에서 걸어서 자전거 대여점에 도착하자 백발의 긴 머리 스타일의 60대 정도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석공이 맞아 주었다. 트랙터 뒷부분에 우리 일행을 태우고 5분여를 가자 석공이 운영하는 민트색의 ‘인어공주’라는 민박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첫날은 날씨가 좋아서 관광객이 많았기 때문에 석공은 자전거 대여하느라 바빠서 우리끼리 섬을 둘러보러 나갔다.

섬 전체가 밝은 회색을 띠는 석회암 지대로 현무암 빌레 위에 살짝 흙이 덮인 제주도와 비슷했다. 돌로 되어 있는 울담과 밭담 그리고 오래된 돌집과 돌로 지어진 성당, 돌로 꾸며진 무덤 등. 이곳에 남아있는 오래된 가옥들은 제주도의 초가집과 비슷한데, 벽체가 더 높고 지붕의 경사도 훨씬 컸다. 최근에 지어진 창고로 보이는 돌집들도 눈에 띄는데 아마도 돌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아직도 돌집을 짓는 것 같았다.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곳곳에 돌조각 작품이 보였다. 골웨이시 주최로 매년 이 섬에서 돌축제를 개최하는데, 그때 기념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해안선 둘레 8km의 이니시어 섬 안에 돌담의 길이는 1,000km가 넘는다고 한다. 그것도 돌담의 원형이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어 놀랐다. 대형 호텔이나 식당은 보이지 않으며 자연 환경과 너무 잘 어울리게 건축되어 있는 집들뿐이었다. 아주 오래전 우리 제주도의 마라도나 우도의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섬 전체가 살아있는 돌문화공원이자 돌박물관이라는 느낌이었다.

관광객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돌담길을 둘러본다. 밭담 마다 똑같은 형태의 돌담이 아니다. 밭주인의 개성이 들어있는데, 같은 모양의 돌을 가지고 눕혀서 쌓은 담, 돌을 세워서 쌓은 담, 눕히고 세우고를 섞어서 쌓은 담, 높은 담, 낮은 담, 넓은 담, 좁은 담, 밭마다 개성이 있어서 보는데 지루함이 없었다. 제주도의 밭담처럼 밭의 대문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입구에 돌을 쌓았다 허물었다 하는 돌담 대문도 보였다.

이튿날에 비가 내렸다. 한가해진 석공 아저씨는 자신의 밭에 직접 쌓은 돌담을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트랙터에 태우고 안내해 주었다. 우리와 같은 민박집에 묵고 있는 스위스에서 여행 온 여성도 같이 동행했다. 몇 해 전 이 섬에서 며칠간 휴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무 좋아서 이번에는 한 달 동안 휴가를 내고 이 섬 안에서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섬에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양도 키우고 감자 농사도 지었는데 지금은 섬 주민들이 떠나버려 밭 안에는 가끔 소나 말들이 몇 마리씩 있을 뿐 농작물 심은 밭은 드물었다.

이 섬의 특산물로는 섬에서 생산되는 양털을 이용해서 만든 아란스웨터가 유명하다고 한다. 원래는 일복으로 입던 옷인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패션이 되었다고 한다.

석공 아저씨의 밭 한쪽에는 유독 높은 담이 보이는데 양들이 추운 비바람을 피해서 의지하는 장소라고 했다. 밭과 밭의 경계는 돌담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돌담 너머 다른 사람 소유의 밭을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돌담을 사이에 두고 돌담 너머 다른 사람의 밭은 온통 암반인데 돌담 이쪽 자신의 밭은 푸른 초지가 무성한 이유를 아는지 물었다. 신기하게도 돌담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온통 암반인데 이쪽은 푸른 초장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밭 가운데 녹슨 트레일러를 가리키며 저 트레일러를 바닷가로 끌고 가서 삽으로 바다 모래를 700삽 뜨면 가득 차는데 300번을 운반해다가 밭에 깔았다고 했다. 암반지대 위에 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암반의 높은 부분을 망치나 큰 돌로 내리쳐서 깨고 최대한 평평하게 만든 다음 깨진 돌 파편을 이용해서 석회암이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암반과 암반 사이 틈새 구멍을 촘촘히 메꾼다. 그 다음 바다 모래를 깔고 마지막으로 모래 위에 바다 해초를 뜯어다가 덮어 주면 밭이 된다고 했다. 아저씨 밭 중에 아직 밭으로 완성하지 못한 곳도 보여주었는데 지금도 틈틈이 돌을 깨서 큰 돌은 돌담을 쌓고 잔돌로는 바닥의 틈새를 막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포클레인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섬 안에는 포클레인이 한 대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섬에서 돌담을 쌓을 수 있는 석공도 자기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석공의 민박집에는 과거 돌밭을 일구며 살아온 삶의 모습들이 담겨있는 사진 액자들이 있었다. 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돌담들, 경작지와 방목지를 구분하기 위한 돌담과 경계를 표시하고 바람을 막는 용도의 돌담들까지 돌담 쌓는 기술이 단절되어가는 현실까지도 제주도와 너무나 비슷했다. 하지만 돌담의 원형이 너무나 잘 남아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이니시어 섬에 더 머물면서 돌담도 연구하고 돌담 쌓는 기술도 배우도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니시어를 출발했다.

돌담은 세계의 여기저기에 많이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만의 특징과 가치는 무엇인가? 제주의 돌담을 보전하고 제주만의 전통적 방식의 돌담쌓기 기술을 정리하고 전수해 나갈 것인가? 과거 석공들의 삶을 조명하고 명맥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영국이 세계적으로 돌담 관련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민간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정책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도 한때 석공들이 거의 사라져 버린 시기가 있었다. 돌 관련 일거리가 없으면 석공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어 있다. 현재는 집의 울타리를 돌로 쌓는 일이 석공들의 주된 일거리이나 울담을 돌로 쌓는 것은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기에 경기가 나빠지거나 유행이 바뀌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들이다. 제주의 젊은이들이 석공에 매력을 느끼며 안정적인 직업으로 생각하고 도전하기에는 아직 현실이 불안하다. 석공이란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려면 석공들 스스로가 자부심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정부 차원의 안정적인 일거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돌담은 일부에 한정되어 있다. 제주의 대표 경관인 밭담과 산담, 울담, 돌집, 원담 등 일상 속의 돌담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많은 일거리를 창출해야 한다.

많은 나라들은 돌담을 건축의 일부만이 아니라 독립적인 예술의 한 분야로 인식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의 현실은 돌담이 너무나도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다. 작품성 있는 돌담을 쌓고 싶어도 그런 기회가 드물고 저렴한 공사비용에 맞게 쌓아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예술적인 실력을 통해 작품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보다 적은 일거리로 인해 업체간의 시공비를 낮추기 위한 경쟁이 심한 것이 현실이다.

오래된 돌담에는 과거 제주 사람들의 삶과 철학이 들어 있다. 돈을 많이 들여 틈새 없이 매끈하게 쌓아서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게 아닌, 돌 한 덩이 한 덩이에 들어있는 조상들의 지혜와 철학을 새겨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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