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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화가의 집
그림 속 화가의 집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12.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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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8월호] 이슈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집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농촌, 도시, 해안, 산촌 등 장소에 따라서 형태가 달라지고,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아파트 등 편리한 공동주택이 생겨났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전원주택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늘어났다. 집은 마치 유기체처럼 진화한다. 새로운 공법, 가치관, 소유 개념, 사회 변동, 기술 발전, 국가 정책 등에 따라서 집의 형태와 크기가 달라지면서 집의 기능 또한 다양하게 확대되었다.

현대생활에서 집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호를 반영하지만 계급·계층의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표지가 되기도 한다. 서로가 “어디 사느냐?”고 묻는 것은 장소적 정체성을 말하고, “어떤 집에 사느냐?”는 질문은 암묵적으로 계층적인 구별을 하는 담론으로도 작동한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사회경제적으로 자기의 배경을 표현하는 은연중의 상징처럼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편리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기를 원한다. 환경이 좋은 곳에 살기 편하게 지어진 집을 꿈꾸는 것이다. 어쩌면 집은 인간에게 하나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집안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이 전개되고, 가족의 다양한 삶의 생로병사가 스펙트럼이 되어 일상으로 확대되는 장소가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랫말처럼 집에 대한 유토피아를 꿈꾼다. 마찬가지로 화가들도 자기의 작품 속에서 집을 짓는다. 우리는 화가가 어떤 집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그 화가의 예술세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제주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변시지, 양창보, 이왈종, 강요배 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집을 통해 그들의 예술관을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변시지의 바람이 사는 집

변시지의 초가에는 바람이 산다. 변시지는 세간에서 ‘폭풍의 화가’로 일컬어진다. 말 그대로 제주를 변시지는 휘몰아치는 폭풍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제주는 계절풍의 길목으로 여름 장마철을 전후하여 우기(雨期)와 함께 태풍이 여러 번 찾아온다. 겨울 또한 빠르게 바다를 달려온 매서운 북서풍이 섬 바다와 하늘을 점령한다. 변시지는 예술의 표현 소재로 바람을 화면에 등장시켰다. “가장 제주도다운 것이 무엇일까?”라고 늘 고민에 빠져 있던 변시지는 바로 섬의 자연에서 바람을 택한 것이다. “가장 풍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변시지의 예술관은 이렇게 바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육지에서 제주로 들어와서 생활하다 보면 변시지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변시지 작품의 소재가 환경에 얼마나 잘 조응하고 있는지 그 분위기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해안가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초가, 태풍이 몰아치면 불안하게 휘어진 수평선으로 떠난 배를 향해 울부짖는 한 마리의 조랑말, 파편처럼 온통 어지럽게 휘날리는 바람의 시각적 표현은 비와 바람이 섞여 그 속도감을 더한다. 그래도 집은 아랑곳없이 서 있다.

섬의 초가 / 변시지 작.
섬의 초가 / 변시지 작.

제주도에서 태풍의 시기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변시지 작품의 매력을 알 수 있다. 태풍이 오면 하늘과 땅과 바다의 구분도 없이 천지가 카오스처럼 보인다. 집을 보자, 초가는 제주의 2칸 혹은 3칸 초가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오막살이 형태다. 이런 집은 아마도 1970년대까지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초가의 모습을 닮았을 것이다.

그러나 변시지의 그림처럼 해안가 위태로운 장소에 저렇게 존재하던 초가는 제주에 없었다. 해안가에 집이 있었다 해도 돌담을 처마까지 바짝 둘러 해풍을 막았던 것이다. 사실상 작품에선 작가의 상상력이 발동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과장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생략하면서도 다시 변형시키기도 한다. 이 방식들은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작가의 예술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봐도 변시지의 초가는 매우 과장되고 극적 상황을 연출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변시지 작품을 보고 제주도를 매우 잘 표현했다고 평가한다. 상상이 사실을 능가한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상 우리는 실제 풍경도 아니고 생각만으로 만들어 낸 작품을 보고 더욱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로니컬한 경우와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제주 어느 곳, 그 어디에도 없는 풍경과 집의 존재를 정말 존재하는 것으로 실감하게 된다.

여기서 마음으로 믿는 것의 영적인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따라서 변시지의 초가는 비록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제주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된 것이다. 마치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형상처럼.

 

양창보의 은자(隱者)의 집

양창보는 한국화가다. 양창보 그림에는 여느 집보다도 더 깊은 산중에 있다.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한적하다. 별천지와 같은 장소, 그곳의 산은 한라산 어느 지맥인데 울창한 숲에 초가 몇 채가 숨은 듯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산방산 아래 작은 마을이라도 마치 도인들이 사는 집, 혹은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의 집처럼 고요하다. 이런 분위기는 양창보의 미학이 노장사상에 근거하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노자학은 풍우란에 의하면 “영욕(榮辱)이나 허실(虛實) 따위의 분별에 주목하여, 단단하면 깨지고, 예리하면 꺾임을 인식하여 깨지지 않고 꺾이지 않는 술(術)에 주목했다.”고 한다. 장자학은 “사생(死生)을 도외시하고 시종(始終)을 무시한다. 노장을 합친 사상은 한나라 때 성립되었는데 그들이 논한 도(道)와 덕(德)의 관념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란 만물의 본래적인 모습이고, 모든 원리의 총체이다. 그러므로 원리란 사물을 구성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도란 만물생성의 원리인 것이다. 만물은 각각의 사물이므로 사물마다 각각의 원리가 존재하여 서로가 침범할 수 없다. 그러나 도는 변화하는 것이므로 영구불변하는 사물은 존재할 수 없다.

노자는 도에서 있음과 없음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천지만물은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긴다고 한 것이다.

장자는 이 유와 무가 서로 교통하고 융합하여 만물을 탄생시킨다고 했다.

인생에서 무불위(無不爲), 즉 ‘작위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고’, 무불치(無不治), 다스리지 않지만 오히려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 결국 모든 일에 그칠 줄 알게 되면 위태로움이 없게 된다. 노자의 생각대로 ‘도(道)’를 추구하는 것은 끊임없이 떨쳐내는 것이며, 지식이나 욕망을 떨쳐내 무위(無爲)에 이르도록 한다면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노자의 역설에 따르면 문명이 극에 달하면 마치 야만과 같게 된다. 따라서 자연에 기초한 문명이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문명임을 일깨워주는 것이 노장사상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산방산 풍경 / 양창보 작.
산방산 풍경 / 양창보 작.

양창보의 그림에는 자연 그대로의 사상이 엿보인다. 나무의 속성은 우거지는 것이고, 그러다 지나치면 부러져 스스로 균 형을 찾는다.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속임 없이 사는 것, 있는 그대로 살아가면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맡기는 삶의 자세가 그의 작품에는 녹아있다. 양창보의 집은 은자의 집이다. 문명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연인이 사는 집이다. 그러기에 온갖 발달한 문명의 이기(利己)가 그의 집에는 보이지 않는다. 불빛이 없으면 달빛에 의지하고, 그 빛이 너무 밝은가 싶으면 구름이 달을 가린다. 추우면 따뜻해지고, 극히 어두우면 새벽이 와서 다시 밝아진다. 세상의 이치는 자연 현상에 모두 들어있다.

생과 사, 시작과 끝이 공존하지만 하나의 원 속에 있기 때문에 생 속에 사가 있고, 시작 속에 끝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프다고 슬퍼하지 말아야 하고 행복하다고 무한히 행복해할 수도 없다. 양창보의 작품은 문명인에게 무위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이 있다. 양창보 작품 또한 실경에 바탕을 두었지만 이 세상에 저와 같은 풍경은 없다. 이것은 순전히 작가 자신이 상상해 낸 이상적 자연 풍경인 것이다. 양창보는 작가의 세계관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양창보의 초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꿈꾸는 그 만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왈종의 왈가왈부 부부의 집

이왈종의 집은 세속의 집이다. 세속의 집은 일상생활의 온갖 잡음이 새어 나오는 활력 있는 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듯한 일상 그대로의 집이다. 일상의 집에서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흘러나온다. 이왈종 그림에서 아름다움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일상을 떠난 예술, 인간 세계를 등진 예술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한다. 물론 미학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꼭 대중적인 것만이 예술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험적이라고 말하는 다양한 예술적 행위들 가운데 대중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개념적 탐색의 표현들도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중도 / 이왈종 작.
생활 속의 중도 / 이왈종 작.

이왈종의 집은 시멘트가 등장하던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전후의 개량형 돌집이다. 그의 집은 투시도법을 적용하여 살림집의 내부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텔레비전 효과와 같은 게시기능이 있다. 보이는 가정의 단면, 이를테면 부부 싸움하는 장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등은 화면 속의 재미를 더한다. 이왈종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독립적인 가정을 보여주는 데, 집 안에서 마당까지 실내외에서 전개되는 광경을 샅샅이 보여준다. 마당에는 개들의 일상이, 수돗가에는 물놀이하는 새들의 행동이, 꽃은 피고 지고 나무에는 지저귀는 새의 무리들로 인해 마치 하늘의 이상향인 서천꽃밭을 보는 듯하다. 이왈종의 집은 때로는 사는 것이 복잡다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속에는 극락이 존재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왈종은 ‘희비극은 우리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원효사상을 집이라는 도상을 통해 작품에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왈종의 집은 중도(中道) 사상의 집적체로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편향적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최상의 결정은 오로지 인간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매우 변화무쌍하여 자주 변하기 때문에 그것의 균형과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 중용(中庸)의 도가 필요한 것이다.

 

강요배의 공동체의 집

강요배의 집은 마을에 모여 있는 집이다. 마을은 제주 공동체를 대표하는 향촌이다. 여지없이 등장하는 폭낭(팽나무)은 마을 공동체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를 대변한다. 땡볕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 주고, 한가한 농한기에는 소일하며 여론을 교환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 짐을 지고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피로를 풀게 해주며, 폭낭이 자랄수록 그 마을의 랜드마크가 돼 해당마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폭낭은 수종(樹種) 자체가 돌밭에서도 잘 자라고 바람에도 잘 견뎌 제주에 걸맞는 마을 풍향수가 된 것이다. 돌, 바람이 많은 땅에서 자라난 폭낭은 그 생김새가 독특해서 ‘나무가 돌처럼, 돌이 나무처럼’ 보여 신비감이 배가된다.

그러나 제주에도 빠르게 변화의 바람이 불어 농촌은 도시화의 개발에 시달리고 있다. 관광을 목적으로 도시의 환경이론인 도시재생 이론의 획일적이고 상투적인 개발로 인해 제주의 마을 구조와 함께 공동체도 점차 무너지고 있다. 누대(累代)를 지나온 바다, 목장, 산전, 밭 등이 모두 팔려나가거나 개발되면서 제주 특유의 자연과 지형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농촌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주거지가 되어가고 있다.

귀덕리 팽나무 / 양창보 작.
귀덕리 팽나무 / 양창보 작.

강요배가 그린 마을의 폭낭은 바로 제주 4·3민중항쟁사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이기도 하다. 폭낭은 단순한 나무라기보다 제주도 자체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기호와 같은 것이다. 그 기호는 역사적 의미체계, 신화적인 의미체계, 마을 수호신적 의미체계인 것이다. 역사의 의미체계는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또 신화적 의미체계는 제주인의 삶과 죽음의 영적 교감의 상징으로, 그리고 마을 수호신적 의미체계로는 그것이 건강하게 지켜지게 되면 그 마을의 활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폭낭은 마을 중앙 길이 교차되는 지점에 서 있다. 마을을 오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폭낭을 거쳐 가야 하는 곳에 있다. 그러니까 폭낭이 있는 곳이 마을 중심이 되는 것이고 고향에 돌아오는 사람이 멀리서 그 폭낭을 보게 되면 그 마을의 구조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되고 자기의 집이 어느 방향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강요배의 집은 오랜 세월 제주 공동체가 지향했던 저항정신의 산물이다. 과거 상·장례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은 하나의 조직이며, 마을은 골로 나누어져 규모에 따라 여러 골을 운용하여 일을 치르기도 하였다.

 

집은 물질성과 정신세계를 아우르는 총체

처음 인간이 살았던 집은 동굴이었다. 점차 나무를 이용하여 집을 지었고, 지금은 첨단 과학 기술로 고층 빌딩을 짓는다.

어디에서건 어떤 재료를 이용하여 어떤 높이, 어떤 지형에도 집을 짓는다. 문명의 힘이 나아가는 것에 거침이 없다. 그러나 집의 목적이 처음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자연 환경의 변화로 사람을 보호해 주는 매우 소박한 기능에서 출발한 것이다. 집의 효율성이란 따스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것이 최우선이었는데, 거기에 기능적인 요소와 실용적인 요소, 미적인 요소가 더 가미되었다.

집은 가족끼리 살면서, 혹은 사회를 이루며 서로가 협력하여 편리하게 생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낸 결실이다. 집의 재료는 시대마다 다르지만 다양한 물질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단지 그 물질의 집합체만으로 집을 설명할 수가 없다. 비록 물질로 만들어진 집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집은 사람들의 시대적 관념과 철학을 통해 사람들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따라서 집은 물질과 정신이 교감하는 집적체이다.

지금까지 네 명의 화가들의 각각의 작품 속의 집을 통하여 예술가는 어떻게 집을 관념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각각 화가마다 집을 바라보는 의미나 미학적인 차이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작가의 예술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네 명 작가의 집은 모두 거대 자연의 일부로서 그려졌다. 변시지와 양창보의 집은 제주 전통 초가로서 옛 제주인의 삶의 정신이 깃든 집이다. 이왈종과 강요배의 집은 슬레이트 지붕의 개량된 집으로 인간 세상과 맞닿아 있다. 변시지는 제주인의 고난극복 정신을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집을 통해 보여주었고, 양창보는 자연과 더불어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인간의 마음을 한적한 집으로 담아냈다. 강요배는 마을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집을 지었고, 이왈종은 집안의 상황을 보여줘 내가 사는 집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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