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옹포의 일제강점기 공장 건물
옹포의 일제강점기 공장 건물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12.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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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7월호] COMMITTEE
배한선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건축사사무소 지안

어김없이 글 쓸 차례가 되었습니다. 수년간 제주도의 마을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고성환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예상대로 여러 곳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지형이 항아리 같아 ‘옹포(瓮浦)’라는 곳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공장건물들이 점차 헐리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조금 급해졌습니다.

 

옹포

현재 옹포는 한림읍 옹포리에 있습니다. 1935년 이전에는 구우면(舊右面), 그 이전에는 우면(右面, 현 한림읍, 한경면, 애월읍)에 있었습니다. 좌면(左面)은 현재 구좌읍과 조천읍입니다. 북쪽을 위로 하는 일반적인 지도에 익숙한 지금으로서는 좌우 명칭이 뒤바뀐 듯 보입니다. 서귀포가 지도 위쪽에 표시된 제주도 옛 지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궁궐에 있는 국왕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좌면과 우면의 지역명도 이런 기준에 따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옹포와 제조공장

그렇다면 옹포가 성산포, 서귀포와 함께 제주도에서 큰 항구로 자리 잡고 공장건물들이 들어선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옹포리 노인회장인 홍연천씨 말에 의하면 옹포천이 주변의 포구에 비해 수질이 좋았다고 합니다. 제조업에는 물이 많이 쓰여 수질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옹포는 1912년 해안마을을 잇는 우회도로가 개설되고 1923년에 우체국, 1925년에 근대식 병원도 세워지고 제조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제주북서부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당시 옹포에는 감태공장, 통조림공장, 단추공장, 전분공장 등 제조공장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한 공장에 호기심을 가지고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감태공장... 요오드공장, 옥도정기, 해녀

감태공장은 옹포리 386에 1942년 우에무라 제약회사가 만들었는데 당시 ‘요드공장’이라고 불렸습니다.

해녀들이 채취한 감태를 너럭바위나 백사장에 널어 말립니다. 말린 감태를 태워서 재로 만들어 공장으로 가져갑니다. 공장에서 요오드를 추출해서 옥도정기를 만듭니다. 옥도정기는 당시 상비약으로 손틀 때, 벌레에 쏘였을 때, 심지어 여드름, 무좀, 풍치에도 효과가 있다고 홍보합니다. 옥도정기공장 얘기하던 중 현군출 부회장이 이게 수은이 함유되어서 이제는 판매 중지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도 발랐는데 언제부터 판매금지였나? 다행히 요즘 판매되는 일명 ‘빨간약’ 은 포비돈요오드로 옥도정기와 다르다고 합니다.

감태의 칼륨은 화약의 원료입니다. 러일전쟁 이후 질산칼륨을 수입할 수 없게 되자 일본은 요오드칼륨으로 질산칼륨을 대체하고 제주도에서 감태를 확보합니다. 당시 일본 국방성이 필요로 하는 요오드칼륨은 1년에 6∼7만 파운드인데, 그 중 제주도에서 1만 파운드를 확보했습니다.(타카하시 노보루,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 1998)

이전에 제주도 사람들은 떠밀려온 감태를 거름으로 이용하고 일부러 채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태가 산업재료로 되자 그 수요가 급증합니다. 징용된 남자들 대신 제주도 해녀들은 감태를 채취하기 위해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 중국까지 진출합니다. 이때부터 ‘감태물에’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덕택에 ... 감태 시세가 점점 상승해 반출액이 십수만 원을 웃돌았다... 거지는 아주 자취를 감췄다. 1917년, ... 감태 시세가 더욱 상승, 점점 호경기를 보게 되었다.”(전라남도 제주도청, 미개의 보고 제주도, 1924)라고 합니다. 감태 제조산업의 확장으로 당시 해녀들은 ‘바깥물질’까지 하면서 목돈을 모아 땅을 사고 집을 개량하고 혼례비 등 큰 돈이 필요한 일에 썼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제주도의 가정경제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커진 듯 합니다.

또한 감태공장 터에 있는 표석을 보면 “... 공장부지 2,240평과 공장 건물 72평, 또 제1창고 24평, 제2창고 22평, 주택 36평의 일부를 수선하여 관리실과 교실로 이용하였다. 이듬해 현 한림공고 부지로 옮겨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고 합니다.

당시 만해도 4동의 건물이 있었던 듯한데 현재는 3동이 남아 있습니다. 한 동은 목재트러스 지붕의 1층 건물로 창고로 쓰이고 있지만 감태공장이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한 동은 장마루바닥, 일본식 목재문, 대나무로 외를 짜서 만든 전통식 흙벽 등을 볼 수 있으나 훼손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나머지 한 동은 지붕이 주저앉아 슬레이트 지붕을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많은 공장이지만 기록만으로 감태공장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추공장, 통조림공장, 철공소

옹포리 326-2에 있었던 단추공장은 현재 입구는 쓰레기로 꽉 차있어 들어갈 엄두가 안 나고 지붕도 내려앉아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개인소유로 몇 년 전까지 거주하였으나 지붕이 무너지면서 이사하였고 이후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주소를 가지고 일부러 찾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공장 건물이라고 주변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그랬을까? 해방직후 제주도에 관한 기사입니다. ‘... 도내의 건물이 일률적으로 토옥을 면치 못하고 자연석과 변변치 못한 치목으로서 원시적 주택을 연상케 하리만치 ... 각종의 산업기관이도민의 소유가 없는 등 ... 생계를 지나가는 원시생활에서 해탈되지 못한 감이 농후하다.’(동아일보, 1946년 12월 19일)

당시 공장건물의 모습은 지금 느낌과는 자못 달랐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웬 단추공장일까요? 단추공장 옆에 통조림공장이 있었습니다. 어패류의 속은 통조림으로 만들고 그 껍데기로 단추를 만들었습니다. 금속단추의 대용품으로서 이 조개단추는 품질이 양호하여 전국 생산품의 4할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조선신문, 1938년 12월 3일) 또한 이 공장은 당시 조선내의 유일한 공장으로 단추공장 옆 마당에는 조개, 소라, 전복 등 패조류 껍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통조림공장은 어디에 있을까요? 현재 한림오션캐슬 아파트 자리가 통조림공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1928년 지어진 통조림공장은 4,800여 평의 부지에 공장건물 386평, 창고와 사택 512평으로 당시 대단히 큰 규모였습니다. 제빙공장을 따로 두고 어패류뿐 아니라 쇠고기, 청어, 완두콩 등을 통조림으로 만들었는데 1926년 말 제주도내 통조림 공장 12곳 중에서 옹포 공장이 제주 총생산량의 1/4을 차지했고, 특히 제주도내에서 유일하게 발동기로 가동되었던 공장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옹포의 통조림공장에 대해 많은 기록이 있고 이 공장에 대해 얘기할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은 그 터만 확인할 뿐입니다.

전분공장으로 이동 중 선박전문 철공소에 들렀는데 얼마 전 화재로 서까래와 삼나무 마감벽은 까맣게 그을렸고 양철지붕은 내려앉았습니다. 당시 조선소로 선박 프로펠러(스크류) 제작은 조선 최고였다지만 지금은 ‘1927 도창업 1호 수원철공소 스크류전문’이라는 간판으로 이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전분공장, 직물공장

옹포(한림로 564)에 있는 전분공장은 해방 후 1951년 건립되었습니다. 반건조된 칩모양으로 생산된 전분은 40kg으로 포장되어 전국으로 판매되어 주로 당면 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제주도의 전분공장이 크게 늘어 당시 제주도 도세의 1/3을 부담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당시 건조장은 현재 리모델링 후 카페(앤트러사이트 한림점)로 영업중입니다. 건축주의 말에 의하면 건물 외벽은 원래 하부는 돌, 상부는 나무였는데, 제주도 풍토에 맞게 전면 돌(현무암)으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박공의 나무판재가 그 흔적입니다. 건조장 외벽의 출입문 흔적도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매된 고구마를 씻는 개천 모양의 수로와 여러 세척장들의 당시 모습이 보존되어 있으며 원통형 세척장의 담쟁이넝쿨벽은 연인들의 포토존으로 인기입니다. 카페 내부의 목재트러스, 운반 도르레,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영국제 증기터빈 원동기 등으로 당시 공장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옹포에서 공장건물을 카페로 사용하는 다른 건물이 있습니다. 당시 직물공장이었는데 잠시 주거용으로 사람들이 살았다가 현재 카페 ‘유주’로 영업중입니다.

 

답사를 마치고

오래된 건물을 대하면 당시로 거스르면서 시간여행을 하게 됩니다. 문헌기록으로도 알 수 있지만 건물이 있어 공간을 체험한다면 이 시간여행은 좀 더 풍부하게 됩니다. 굳이 답사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일 겁니다.

일제강점기에 옹포는 제주도 경제에 지대한 부분을 담당했고 그 중심에 제조공장이 있었습니다. 시간여행 목적지로 흥미로운 곳입니다. 도착해보니 흔적도 없는 것도 있고, 훼손된 채 방치된 건물도 있고, 리모델링 후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회원들의 토론장이 열렸습니다. ‘옹포에 왜 공장건물이 많은지 설명이 필요하다.’ ‘배경 설명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건물들이다.’ ‘건물의 공간과 형태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 ‘제주건축연구회의 답사 목적 중 알려지지 않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있지 않은가?’ ‘옛 건물이라고 다 보존해야 하는가? 그 가치여부를 따져야 한다.’ ‘일제강점기 건물을 우리 것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연속선상에 있다.’ ‘일제강점기 건물의 가치부여는 자칫 암울했던 시대상을 미화할 수도 있다.’ ‘건축사들 개인이 실측해서 기록할 수 있는가?’ ‘전분공장은 건물과 기계를 보존하고 건축주의 설명도 실감나서 건물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관광지인 제주도에 이런 공장건물로 스토리텔링하면 좋을 것이다.’ 등등.

옹포의 공장건물을 방문하면서 회원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나눈 의견들입니다. 직접 답사한다면 이러한 의견에 좀 더 충분히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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