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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가파도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 김형훈
  • 승인 2020.12.15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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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6월호] COMMITTEE
김병수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빌딩워크샵 건축사사무소

답사의 이유

가파도 답사를 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생각해보니 가파도 프로젝트를 처음 알게 된 때가 생각났습니다. 너무 가보고 싶었지만, 서울에서 일하던 때라 가파도는 멀게만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어느덧 가파도는 옆 동네 섬이 되었고 건축연구위원회에서 다음 답사지를 가파도로 정했을 때 내심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청보리밭을 볼 수 있다는 생각보다 보고 싶은 건물을 드디어 볼 수 있겠다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이식

가파도는 전통적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된 산업이었습니다. 한때 천 명이 넘던 인구는 2000년대에 170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매년 4월 청보리 축제가 되면 6만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지만 정작 가파도 주민들은 수많은 관광객의 방문이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고, 쓰레기, 소음, 보리밭 훼손 등의 문제로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제주도와 현대카드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한 아름다운 섬 만들기-가파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해산물과 청보리 등 특산물을 이용한 제품개발 및 포장디자인, 산책로 개발, 방문자의 편의를 위한 매표소와 스낵바, 빈집을 이용한 숙박시설, 마을강당 만들기와 함께 가파도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는 예술인들이 거주하며 작업할 수 있는 가파도 문화예술 창작공간이 오랜 기간에 걸쳐 들어서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의 의도는 섬의 난개발을 막고 관광객에 의한 수익을 마을 주민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가파도에 예술을 더하는 것입니다.

 

가파도 프로젝트

배가 가파도의 상동으로 접근하면 낮고 가로로 긴 가파도 터미널이 보입니다. 묵직한 콘크리트의 매스감을 잘 살린 터미널은 제주도 본섬 방향의 시야를 열어놓기 위해 구조를 조형적으로 잘 풀어낸 수작으로 방문객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가파도 터미널
가파도 터미널

내부는 매표소, 가파도 특산품을 파는 가게, 카페, 공용 화장실로 되어있습니다. 묵직하고 시원한 외부 매스에 비해 내부는 목재 루버 천장을 사용하여 밝고 세련된 느낌입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남자 화장실의 변기 칸에 있는 창으로 도로를 향해 낮고 큰 창이 나 있는데, 돌담이 시야를 차단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들도 시간을 내서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을강당, 스낵바, 숙박시설은 기존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쓰고 있습니다. 주변의 기존 건물과 잘 어울리는 색감, 형태를 가지면서도 깔끔하고 잘 다듬어진 느낌을 내는 것은 분명 건축가의 능력이라고 보입니다.

가파도를 서쪽으로 돌아서 빈 집터를 둘러보며 하동에 도착하니 저 멀리 해안과 연결된 언덕에 그 상징적인 탑이 보입니다. 멀리서는 탑과 그 하부의 구조물만 보였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선큰들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지하에 꽤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메인 프로그램이 있는 지하는 여러 개의 마당과 실들이 얽혀 있어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특히 내려가서 오른쪽에 보이는 정원은 서 있는 위치보다 낮은 레벨로 밝은 마사토가 기분 좋게 깔려 있습니다.

오래된 버려진 호텔의 지하구조물이 주는 폐허의 느낌과 마사토로 마감된 정원, 새로 만들어진 금속 캐노피와 창들은 건축가의 정성이 구석구석 닿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공간의 구성이 특이한데 보리밭과 연결된 테라스, 예술가의 숙소, 중정, 예술가의 작업실, 마사토로 마감된 정원이 하나의 세트로 총 다섯 개가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숙소와 작업실을 연결하는 중정은 하나의 큰 정원이지만 각각의 프 라이버시를 위해 루버 슬라이딩 도어로 나누어져 있고 작업실을 지나 연결되는 마사토의 정원은 공용의 공간이 됩니다.

이런 내외부의 연결이 어떤 이는 “한국 전통 공간구조처럼 느껴진다” 하고 다른 이는 “루버와 식재가 없는 정원이 일본식 느낌이 난다” 같은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공용공간을 거쳐 다시 1층의 옥외마당과 전망대를 올라봅니다. 전망대는 시각적 상징성에 비해 적은 수의 인원만 올라갈 수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높은 건물이 없는 가파도에서 섬 전체의 풍광과 멀리 산방산, 한라산에 이르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가파도에서 돌아온 후, 잠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건물들이 보고만 있어도 즐거울 만큼 좋은 프로젝트라는 것은 모두들 공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열한 명의 취향이 다 다른 만큼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과연 전망대가 가파도의 풍경에 어울리는가? 였습니다. 그 전망대는 조형적인 면이나 가파도라는 물리적 환경에 비추어 보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형태적으로 과하지 않다는 점, 전체 건물이 가파도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지하에 있다는 점 등의 이유 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더 연장하여 만일 제2, 제3의 전망대가 들어선다면 어떨까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가파도의 크기에서 전망대는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두 번째는 세련되게 다듬은 건물을 보며 과연 이런 세련됨은 ‘가파도’라는 섬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입니다.

그 세련됨 자체가 나쁜 것이라 보기는 어렵겠지만, 제주다운 건축의 한가지 특징으로 꼽을만한 요소가 그 질박함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가파도 프로젝트가 좋은 건물들을 만들어냈기에 조금 더 제주다운 특징들을 살릴 수 있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깐 변명을 하자면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 프로그램 등은 가파도의 지형과 문화를 충분히 존중한 듯이 보입니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연결된 이야기로, 제주도의 물리적 환경에 비추어 보았을 때 녹이 슬어가는 금속과 비바람에 노출된 나무 같은 디테일들은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건축가의 의지와는 다르게 건축에 대한 순수한 생각은 건축주의 취향, 자금, 시공 능력 등에 의해 언제나 변해갑니다. 초기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건물임을 상정하고 정했는지, 건축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사비의 문제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파도 프로젝트의 건물들을 보면 그래도 건축가가 마지막까지 그 ‘세련됨’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바람

좋은 건물은 그 주변에 선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저는 가파도 프로젝트의 건물이 그 ‘좋은 건물’ 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관된 디자인 언어로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조사부터 기획, 설계, 감리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한명의 건축가가 진행했다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파도 프로젝트처럼 건축의 가능성과 힘을 이해하고 사회 곳곳에 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가파도 프로젝트가 지속 가능하려면 민간 건축에 적용할 수 있는 쉽고 상세한 가파도 건축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고민의 결과물로 좋은 건물들이 가파도에 지어졌으니 그 선한 영향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가파도 어딘가에 들어서던 원색의 샌드위치 패널 건물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지나쳤는데, 다녀온 이후에도 못내 마음에 남습니다.

 

P.S. 가파도 주민과 방문객 모두를 위해 가파도 배편의 시간을 조절하여 최소 체류 시간을 3~4시간으로 늘릴 수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방문객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가파도를 즐길 수 있으며, 이는 곧 가파도에서의 소비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건축쟁이도 시간에 쫓기다 못해 두 번 다녀오는 일 없이 느긋이 즐길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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