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이후,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이후,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12.10 20:1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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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를 둘러싼 주민 증언 채록

* 좁은 제주 지역사회 특성을 고려하고, 일부 주민 요청을 반영해 발언인 '익명'으로 기사를 게재합니다.
* 해당 기사는 마을 및 인근 거주 시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서술되었습니다. 기사와 다른 사실을 알거나, 관련 제보 등 문의가 있다면 <미디어제주>로 연락 바랍니다.

12월 9일, 시추공사를 위해 준비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 현장 모습.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나비효과’라는 말, 그야말로 오늘날 제주와 딱 맞는 말이다.

나비효과란, 작은 변화가 언젠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을 야기할 수 있다는 기상학 이론에서 출발했다.

제주도 그렇다. 숲을 베고, 하천을 메우고, 도로를 만든다. 도로 주변으로 건물이 들어선다. 제주의 고즈넉한 정취는 사라지고,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휘황찬란한 도시에 가까워진다. 쓰레기 배출량이 는다. 하수처리시설이 부족해진다. 지하수가 오염된다. 

이는 모두 지금 이 땅,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당장의 도로 공사가 미래 제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우려하는 시민의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하다.

“사람들 인식에는 이미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가 않아요. 제 생각에, 이 공사는 전초전일 뿐입니다. 이 공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강정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게 되겠죠. 강정을 중심으로 군사도시가 들어서고, 새로 생길 도로를 주변으로 건물이 마구 들어설 테니까요.” / 시민 A씨(70대, 여성)

강정에 거주하는 A씨는 수년 전부터 마을 주변의 도로공사 현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공사가 시작된 뒤, 마을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유독, 올해 더 컸다.

“지금껏 마을에 이렇게까지 홍수가 났던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더라고요. 도순천을 관통하는 도로공사가 시작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거죠.” / A씨

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진입 및 우회도로 예정지. 붉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도로 예정지다.

A씨가 말하는 ‘도순천을 관통하는 도로공사’란, 강정마을 일대의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를 뜻한다.

해군기지 진입도로는 현재 제주특별자치도가 추진 중인 도로개설 사업이다. 당초 시행 주체는 국방부(해군)였는데, 2016년 제주도가 사업 인계를 받게 된다.

사업의 진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업 예정지 및 인근에 보존가치가 뛰어난 천연기념물과 문화재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사업지구의 ‘문화재 현상변경’을 ‘부결’하는 결정을 거듭 내렸고, 사업은 장시간 지지부진하게 된다.

하지만 제주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도로 노선을 일부 수정하고, 계속해서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변경 요청을 하며 결국 사업 승인을 따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도 환경부의 '조건부동의'를 얻었다.

강정마을에 거주하며, 오랜 시간 공사를 지켜봐왔다는 A씨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해군기지 진입도로’의 현재 정식 명칭은 ‘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진입도로’다. 단, 기사에서는 편의를 위해 ‘해군기지 진입도로’라고 칭하겠다.

현재 논란이 진행 중인 해군기지 진입도로는 강정동 3306번지부터 강정동 2828-2번지까지. 해군기지 앞 광장형로터리에서부터 도순천을 지나, 일주도로까지 이어지는 대로다. 폭은 약 25.5m, 총 길이는 2.273km에 달하며, 왕복 4차로가 계획되어 있다.

“올해(2020년) 가을, 비가 많이 오던 때. 마을에 홍수가 났어요. 강정천이 범람한 건데요. 지금껏 이렇게 크게 홍수가 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물이 넘쳐서 싹 쓸어버렸어요. 그러면서 물길이 변한 것 같아요.”

A씨는 2020년 가을, 제주에 비가 아주 많이 오던 날을 기억한다. 해군기지 진입도로가 지나는 도순천 하류이자 강정1교 상류에 위치한 강정천이 범람한 날이다.

“마을 사람들이 부르기를, 강정천의 ‘진소’, ‘흙소’라 부르는 곳이 있어요. 진소는 깊은 물을 뜻하고, 흙소는 흙이 있는 물을 의미하는데. 고사리도 나고, 쑥도 나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에요. 폭우로 강정천이 범람할 때가 있더라도, 물길이 웬만해선 터지지 않는 곳이거든요. 비가 오면 수위가 올라가더라도 금세 가라앉아 일정 수위를 유지했고요. 그런데 싹 쓸렸어요. 홍수가 나서요.”

하천 범람으로 모래가 쌓인 귤밭. 관리하지 않아 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그는 이번 홍수가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올해 물이 넘친 이곳은 효돈동의 쇠소깍처럼 늘 깊은 못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제주 지형의 특성상 범람이 어려운 곳이라는 거다.

주변에 용천샘이 다수 분포해 있는 이곳은 비가와도 물이 현무암을 따라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웬만한 강수량은 버티는 곳이었다고.

“인근에서 평생을 사신 80대 할망이 말하길, 이번 물난리로 주변 밭이 모래로 다 덮여버렸다고 해요. 농사를 못 짓게 됐다고요. 원래 그렇게 큰물이 나와도, 밭까지는 물이 안 왔는데. 왜 도로공사가 시작된 시점에, 하필 홍수가 난 걸까요. 관계가 있지 않을런지 궁금해요.”

물난리로 쓸려온 모래가 하천 인근을 뒤덮고 있다.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과정에서 제주도는 하천(도순천)에 석축(돌담)을 쌓았다. 공사 과정에서 하천의 양 옆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석축 쌓기 작업을 진행한 것인데, 공교롭게도 하천에 변화가 생긴 시점에 폭우가 내렸다. 그리고 물난리가 났다.

“또 한 분은 8000평 규모 농사를 짓는 70대 어르신인데, 강정교 부근에 항상 쌓여있던 부엽토*가 싹 사라졌다고 하십니다. 이 부엽토는 동네 사람들이 퇴비로 사용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고 해요. 트럭으로 몇 대가 실어 나를 정도였다고요. 그런데 사라졌대요. 갑자기 부엽토가 어디로 갔느냐며, 놀라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부엽토: 나뭇잎이나 나무뿌리, 작은 가지 등이 장시간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만들어진 흙. 수분과 양분이 많아 식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양질의 흙이다.

비가 그친 뒤에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물이 싹 말랐어요. 그러면서 원앙의 개체 수도 상당히 줄어든 상황입니다. 강정교 위쪽은 예로부터 천연기념물인 원앙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물이 있고, 원앙이 좋아하는 구실잣밤나무열매 등 과실수가 많기 때문인데, 과거에는 수백 마리 원앙 떼를 쉽게 볼 수 있던 반면. 지금은 공사가 시행 중인 오전 8시경부터 오후 3~4시경 사이에는 원앙이 거의 없어요. 공사가 끝나고 잠잠해지면 좀 보이기 시작해요.” / 서귀포 시민 B씨(40대, 남성)

12월 9일 제2강정교 하류에서 발견한 원앙 무리.
12월 9일 제2강정교 하류에서 발견한 원앙 무리.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B씨에 따르면, 2020년 12월 9일 기준 강정천의 ‘진소’는 메마른 상황이다. 한 어르신은 “평생 있던 물이 어디 갔냐”면서 걱정을 금치 못했단다.

그러면서 그는 물난리 뒤, 물이 사라진 진소 등 도로 예정지 인근 하천의 풍경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했다. 강정에 농지가 유달리 많았던 이유도 늘 하천에 흐르는 ‘물’ 덕이었는데, 이대로는 강정의 정취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면서.

“강정천의 강정정수장에서 깔따구유충이 나와서 한차례 논란이 됐잖아요. 이 또한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행정에서는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다고 하는데요. 벌레는 고인 물에 알을 낳지, 폭우로 세차게 흐르는 물에 알을 낳지 않잖아요. 강정천이 범람할 정도로 그렇게 센물이면, 유충이 모두 쓸려가지 않을까요? 당국에서 보다 자세히 조사 중이라고 하니 정확한 원인은 기다려야봐야 알겠지만요.” / B씨

공사가 진행 중인 제2강정교 옆에 붙어있는 안내판.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이에 수도법에 의거, 취사나 수영 등을 할 수 없다. 

서귀포시 수돗물에서 깔따구유충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 18일. 이후 주민들의 신고가 이어졌고, 26일까지 8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깔따구유충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결과를 내놨다. 용천수를 수원으로 쓰는 정수장에 집중호우로 범람한 강정천의 물이 흘러들었고, 그 과정에서 강정천 주변에 서식하던 유충이 유입됐다는 것이다.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현장 한편에 '상수원보호구역' 표지판이 부러져 나뒹굴고 있다.

“전형적인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 답변이죠. 실제 강정천의 범람이 깔따구유충 발생의 원인이라고 한다면요.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와 유례없는 물난리 사태. 그 시기가 일치하는 것을 보아 조사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A씨와 B씨, 그리고 이들과 함께 만난 또다른 시민 둘도 입을 모아 의견을 같이했다. 깔따구유충 사건의 근원은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한편, 지난 12월 9일 공사 현장에서 만난 도 관계자는 공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천연기념물, 문화재 등 훼손 문제가 제기된 바에 대해 모두 해결이 된 것이냐 물으니 관계자는 "문제가 없으니 (공사를 진행)한 거겠죠"라고 말했다.

또 관계자는 제기되는 여러 환경 관련 논란 해결을 위해 "환경청에도 서류를 보내고, 받고 했다"면서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재 시점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시민 증언과 관계자 말이 각각 사실인지. 증언 내용이 단순히 동일한 시기에 발생한 우연의 결과는 아니었을지. 의문을 품은 채, 기사는 계속 이어진다.

교량 공사에 사용될 파이프관. 오른쪽 아래 떨어진 천원짜리 지폐를 보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한편, 12월 10일 서귀포시 제2강정교 인근에서는 교량을 놓기 위한 기초작업, 시추공사가 시작됐다. 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도순천을 지나는 교량을 위해 80여개 구멍이 뚫릴 예정이다. 각 구멍의 지름은 약 40cm 가량이다.

이날 공사 현장에는 해군기지 진입도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해군기지 진입도로 예정지 걷기 행사 등을 통해 난개발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엄문희 씨는 “원앙이 날아들고, 서귀포 시민들의 상수원인 하천에 구멍 80개를 뚫는다는 소식에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느냐”라며 행정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12월 10일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현장에서 피켓을 든 시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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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천 2020-12-11 08:24:18
해군, 제주도, 건설업자, 강정마을회장들은 제주도 파괴의 공범들이다!

원앙칭구 2020-12-10 22:20:17
소설쓰냐..기자면 기자답게 사실관계 먼저 취재하고 논리있게써야지 확성기도 아니고 ..팩트체크먼저 하라고 선배들이 코치 안해줘서 모르는건지.. 일기는 집에가서 혼자만보게 써.. 호도하지말고

프레드릭 2020-12-10 20:23:15
놈들의 저항에 아랑곳하지 말고 조속히 진입도로를 완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