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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고(考)-기능과 구조 그리고 정신세계
올레고(考)-기능과 구조 그리고 정신세계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12.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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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6월호] 이슈
김유정 미술평론가

생존 투쟁의 산물로서의 공동체

제주 마을이 제주답게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위성도시로 변하고 있다. 그것도 대도시 주변 도시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다도, 산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라면 필연이지만, 지난 세월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마을의 역사가 그야말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땅은 사람의 몸으로 생각하면 지문(指紋)과 같아 시간의 지층을 남긴다. 사람이 살아온 자취는 자신의 공동체에 고스란히 배는데 그것들이 우리의 문화가 되는 셈이다. 문화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우리 것’이라는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고향이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리얼리티가 모아진 집단적 기억인 것이다.

제줏말에 본향(本鄕)이라는 말이 있다. 상당히 아름다운 말이면서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될 말이다. 본향이란 단지 자신의 태생을 알리는 고향을 넘어서는 말이기에 제주의 아이덴티티로 작용하고 있다. 본향이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회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동체 세계관을 만들어준 삶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성원들 간 서로 희로애락 속에서 호흡하면서 여러 혈연(血緣)과 지연(地緣) 공동체 속의 의례를 통해서 동일한 이념으로 뭉쳐진 장소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을은 본향의 문화 이미지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과 그것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만들어온 삶의 투쟁의 결과였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삶과 마을을 지켜온 것이 바로 본향의식(本鄕意識)에 바탕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형성된 평등적 가치관은 오랜 시간 같은 공동체가 준비하고 노력했던 의례의 결과이기도 한데 이는 마을이 하나의 생존권역이자 사랑과 저항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조상이 살아온 시간, 서로의 정신세계를 아우르는 공감각(共感覺)의 삶의 시간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제주 정신의 모체가 된다.

우리는 소위 전통 마을을 함부로 ‘자신의 지문(指紋)과 같은 문화로 축적된 사회적 인문(人紋)’을 숙고한 계획없이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땅이 사유재산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한계 때문에 (재)개발을 쉽게 알고 가치관 또한 자본을 신격화하는 관념들이 지배하게 된 것은 여전히 우려하고 재고해야 할 세계관이다.

 

올레란 무엇인가

제주어 사전의 정의를 따르면, 올레란 “거릿길 쪽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드나드는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을길이 주 도로라면 올레는 제각각 집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올레는 짧든 길든 하나의 표시처럼 남기게 된다. 제주는 가르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

‘ᄀᆞᆸ가름’이란 사리(事理)를 분별하여 한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사물간 사리가 분명해야 하는 이 ᄀᆞᆸ이 있다.

없는 사람은 염치없고 분별심도 없는 사람이 된다. 신(神)과 신(神)도, 신과 사람도, 사람과 사람도, 사람과 귀신도, 귀신과 귀신 간에도 이 ᄀᆞᆸ은 작용하는 것이다. 이 ᄀᆞᆸ가름은 공간적으로 보면, 경계, 혹은 영역으로 나타난다. 신간, 개인간, 집안 간 경계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시각적으로는 그것은 그믓으로 나타난다. 부모(父母), 부자(父子), 부부(夫婦), 형제(兄弟) 간에도 그믓을 그어 소유권을 분명하게 한다. ‘그믓’은 선(線)을 말하는데, 즉 영역을 표시하는 경계선(境界線)이다. 보이지 않는 그믓도 매우 중요하다. 마을 바당밭에도 마을간 그믓이 있고 함지박의 밥에도 보이지 않는 그믓을 그어 밥을 보면서 먹는다. 암묵적으로 그믓을 지키기 때문에 그믓의 위반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올레는 마을 길에서 마당으로 들어가는 골목이다. 그 골목의 모양은 대개 휘어졌다. 물론 직선의 올레도 간혹 보이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자동차를 세우려는 목적이 없을 때는 대개 마소를 이용한 우마차가 겨우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올레 주인이 아니고서는 우마차 운행이 쉽지 않다. 올레의 기능에는 바람을 완화시키는 기능, 마소를 관리하기 위한 기능, 집안으로 오는 사람을 미리 알아보는 기능, 긴 올레로 도둑을 방지하는 기능, 비리는(부정타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기능 등 민간에서는 매우 다양한 말들을 제시하고 있다.

올레를 구분하면, ‘ᄀᆞ튼(같은) 올레’와 ‘ᄐᆞᆫ(다른) 올레’가 있다. ᄀᆞ튼 올레는 올렛가지라고 하여 그 올레에 사는 몇 집을 이르는 말이고. 대개 부모, 자식 세대가 ᄀᆞ튼 올레였으나 역사과정에서 ᄀᆞ튼 올렛집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ᄀᆞ튼 올렛가지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이웃인 것이다. ᄀᆞ튼 올레 사람들은 서로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해 주는 역할도 맡고, 불, 마소, 돼지를 살피거나 아이들만 있을 경우 상황에 따라 집을 봐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서로간 해당 집안의 동향을 잘 알게 된다. 그리고 ᄐᆞᆫ올레는 자신이 사는 골목과는 다른 곳이므로 ᄀᆞ튼 올레와는 다른 관계를 맺으며 주로 일이 있을 때마다 찾는 방문자 역할을 한다. 사실 올레 단위로 보면 ᄀᆞ튼 올레에 사는 구성원은 모두 ᄀᆞ튼 올레지만 ᄀᆞ튼 올레에 살지 않는 타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ᄐᆞᆫ 올레에 살고 있는 것이다. ᄀᆞ튼 올레에 사는 이웃은 ᄐᆞᆫ 올레에 사는 이웃보다 남다르다. 하나의 골목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웃간 친밀도가 더 높다.

올레의 구조를 보면 마을 길에서 올레로 진입하는 올레목이 있고, 올레를 표시하는 올레ᄐᆞᆨ 이 있고 올레가 끝나는 지점이 곧 마당 진입의 시작이기 때문에 마당ᄐᆞᆨ 이 있는 것이다. 올렛가지의 집에도 이 경계 ᄐᆞᆨ이 있다. 올레 ᄐᆞᆨ의 표시는 반 팔 크기의 길게 다듬은 돌을 땅에 심는데 발에 걸리지 않도록 약간 도드라질 정도이다. 올레 ᄐᆞᆨ은 공동의 영역을, 마당 ᄐᆞᆨ은 개인의 영역으로 가르는 표시가 된다. 이 ᄐᆞᆨ은 문지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혼식이나 상장례식인 경우 사람들은 올레 입구에서부터 걸어서 들어와야 하고 마당에서 그들을 맞아야 한다.

돌담의 영역의 근본적인 결론은 바로 가름에 있다. 기르는 짐승을 가두는 것도 이 가름이고 이웃 간 소유권 경계도 이 ᄀᆞᆸ가름인데 돌담으로 이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웃 간 돌담을 트는 것은 가름의 일시적인 해제이지만 그 속에는 암묵적으로 서로 큰일(大事, 혼사, 상장제례)같은 일이 생겼을 때 필요에 따라 넘나들어야 할 때를 대비하는 상호 부조적인 행동인 것이다. 올레의 돌담 높이는 북풍, 북서풍, 해풍(海風) 지대를 제외하고는 100~150cm 정도 사이를 오간다. 어른 가슴 높이가 돼야 집안에서 바라봐서 누가 집안으로 오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높이다. 또한 올렛담을 높게 쌓지 않는 것은 북서향의 바람을 막기 위해서 높은 것과 달리, 남향의 돌담은 햇볕이 잘 들게 하기 위한 배려 때문이기도 하다. 정주석은 각자 자기의 올레에 설치하는데 말을 위한 살채기의 역할이다. 원래는 살채기였으나 바람 많은 풍토 때문에 정낭이라고 하는 긴 통나무를 1개에서 5개까지 걸었다. 그러므로 정낭의 3개론은 커뮤니케이션 논리를 만들기 위한 수학적 통신이론의 왜곡이었던 것이다.

정낭은 옛날 마당의 말을 못 나가게 하는 장치였기 때문에 기르는 말의 크기에 따라 정주석의 높이가 결정되고, 사람이 있을 때는 정낭 모두를 내리지만 사람이 없을 때는 정낭 모두를 걸어둔다. 이 정낭은 목축을 하는 나라라면 대체로 이런 유사한 장치가 있다. 사람의 상상력이 지역과 공간을 넘어 유사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다.

올레의 모양은 마소를 키우던 집의 기능성을 염두에 둔 형태이다. 옛날 올레가 대개 직선이 없고 둥그스름한 곡선의 형태에다 폭이 좁은 이유는 마소를 집안에서 키우다 둔쉐를 할 때 거리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직선은 마소가 급히 나감으로써 다른 올레에서 나오는 마소들과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막고자 하는 장치인 것이다. 둔쉐란 말과 소가 있는 집에서 한 사람씩 순번을 정해 마을 공동목장에 가서 하루 동안 마소를 돌보는 것을 말한다. 대개 20마리 이상이 되며, 해당 당번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마소를 잘 먹이고 마을로 오는데 마소들이 자기의 올레를 알아서 들어간다. 둔쉐를 못하는 사람은 약정된 곡식으로 지급한다. 말목장의 효용성은 풀어둔 말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동하게 하며, 들고 나는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는가에 달렸다. 말을 관리하게 만든 것이 살채기를 이용한 원장(圓牆)과 사장(蛇牆)이라는 장치다. 원장은 둥그런 광장과 같아서 마당에 해당하고, 사장(蛇牆)은 구부러져 올레와 같은 기능을 하다. 몰아 넣었던 말을 다시 선별하거나 이동할 때 긴 통로를 만들어 말을 관리하게 한 장치다.

올레는 목장 중심으로 살았던 유목민들의 습속에서 유래한 것이고 유교가 전파되면서 신분체계가 생겨나 이문간(대문)·지애집(기와집)과 같은 정주형(定住型) 권위를 세웠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올레가 주는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 한 사회 공동체에서도 평등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개인의 민주적 관계를 지키기 위한 공적 영역내의 사적 영역의 독자성을 돋보이게 해준다.

또한 올레는 과거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기능성과 더불어 이웃 간의 선린적(善隣的)인 협력의 정신을 담고 있어서 오늘날 사적 이익으로 해체되는 차가운 현대의 인간성을 돌아보게 하는 상징적 건축개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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