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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빼바지와 술배
몸빼바지와 술배
  • 홍기확
  • 승인 2020.12.08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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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31>

운전을 하다 직장 선배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코끼리인지 하마인지 무늬를 식별할 수는 없었지만, 밭에서 입는 전형적인 몸빼바지를 입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지적인 이미지가 한순간에 깨지는 순간이었고, 아는 척을 하려다 그만둔 순간이었기도 했다. 이런 극적이고 동시적인 순식간이 또 있을까?

몸빼바지와 스마트한 직장인.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릴 순 없을까?

배가 점점 나오고 있다. 근육량은 줄어들고 있다. 성격은 소심해지고 있다. 성인에서 중년이 되고 있다. 40살이 넘으면 한 해 한 해가 다르다는 선배 지구인들의 말이 자주 떠오른다.

그렇다. 나는 진행형인 아저씨다.

아내에게 구박을 받는 횟수가 늘어났다. 아내는 점점 강해지고 나는 급속히 약해진다. 아이가 자라면서 나는 아저씨가 되었고, 직장에서는 직위에 맞게 꼰대,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비록 꼰대의 초입이지만 내가 가진 지위와 나이라는 질량(質量)은, 어쩔 수 없이 가진 게 미천한 새로운 세대에게는 보이지 않는 위협, 혹은 적(敵)이다.

그렇다. 나는 세대차를 느끼는 진행형 아저씨다.

어릴 적. 내 소설의 주인공은 부모였다. 엄마, 아빠라는 소설의 주인공을 탐구하며, 배워나갔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나도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나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제 아이는 아내만큼 자라있고, 나는 ‘아저씨’라는 가보지 않은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버지의 불쑥 나온 술배가 익숙해질 때쯤 독립을 했고, 어머니의 몸빼바지가 그럭저럭 슬퍼 보이지 않을 때쯤 아이를 낳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이에게 나라는 소설의 주인공 자리를 물려줄 시간일까? 화려한 주인공보다는 감초 같은 조연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내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쉼표는 가끔 있지만, 마침표는 마지막에 하나밖에 없는 소설이라서 그렇다. 게다가 주인공도 독특하다. 발해 문자를 세계 최초로 해독하기 위해,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머신러닝(기계학습), 암호학 공부를 하는 무려 ‘배 나온 아저씨’다. 어쨌든 내 소설은 재미도 있고, 쉽게 끝나지도 않을(?) 예정이다.

통계를 공부하며 부족한 수학 지식을 보충하고자 그 유명한 《수학의 정석》을 펼친 모습을 보고 동료 직원이 묻는다.

“뭐 그렇게 쉬지 않고 공부하세요? 이번엔 프로그래밍? 정말 공부가 재미있어요?”

나는 대답이 아니라 대꾸했다. 습관적인 답변이다.

“저는 이렇게 살지 않는 것이 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는 술배를 가진 꼰대 초입의 전형적인 아저씨이나,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보다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전형적인 소설의 주인공이다.

흠.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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