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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내마을을 거닐며
고내마을을 거닐며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12.0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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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5월호] 건축사회 연구위원회
강명숙 제주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건축사사무소 시오

제주건축연구위원회에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현대건축물 탐방에 이어 제주의 마을산책 첫 번째 고내마을을 탐방하였다.

탐방 시작점인 고내포구에 속속 건축위원회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양성필 위원장이 고내포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고내포구는 고내마을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제주포구들처럼 자연지형물인 ‘코지’와 ‘여’를 방파제로 삼아 만들어졌다. 지금은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던 갯바위들은 없어지고 콘크리트 방파제를 만들었지만 안쪽에 옛 모습을 간직한 접안시설이 남아 있어 과거의 풍경을 전해준다. 그리고 고내팔경 중 하나인 ‘곡탄유어(曲灘遊漁)’는 고내포구를 표현한 시율로 마을 서쪽 해안선이 구부려져 자연스레 만을 이루는데, 이곳을 고분여라 하고 연해어류가 풍부하여 예로부터 고기들이 노니는 이름난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고내포구에 얽힌 ‘배진하르방’ 설화도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씨 하르방이 관에서 배를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을 과하게 부과하자 배를 지고 관덕정에 가서 배로 세금을 내고자 하니 관에서 하르방의 정성에 감탄하여 배를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을 탕감해 주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세금에 대한 부담이 바다를 업으로 삼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 배진 하르방의 설화로 이어 내려오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고내포구 어귀 오른쪽 언덕 한켠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고씨하르방을 기리는 배진 하르방당이 있다. 배진 하르방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좁고 가파라 회원들이 한사람씩 올라가 빼꼼히 보고 내려왔다. 고내포구와 마을을 가로지르는 해안도로 남쪽에는 본향당(마을의당)도 자리잡고 있다. 돌담으로 둘러싸여 나지막이 기와지붕이 보일 정도로 규모는 작다. 고내포구는 고내마을 생업의 중심지이자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당들이 배치되어 있어 마을의 공간적, 심리적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내포구에서 발길을 마을 쪽으로 돌려 골목골목을 찬찬히 누볐다. 고내봉 쪽으로 향하여 가다보면 언덕빼기에 위치한 집을 가기 위한 좁디좁은 올레길이 시선을 끈다. 낮은 파란 지붕집, 세월의 때를 묵은 벽과 정교히 쌓인 돌담으로 형성된 길은 주택으로 들어가는 전이공간으로써 이 길을 걷고 집으로 들어가는 이의 여유로움이 상상이 되었다.

좀더 발길을 이끌다 보면 마을 한가운데 아직 집이 들어서 있지 않고 밭으로 쓰이고 있는 땅이 있다. 이곳은 고내마을의 작은 광장처럼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작은 바램이지만 이 공터에 건물이 들어섬보다는 지금의 모습처럼 열린 공간으로 남아 고내마을의 공공의 장소로 쓰이면 어떨까? 기존 취락지에 건폐율, 용적률에 충실한 집으로 들어서 기 전에 마을의 마스터플랜을 계획하여 공적인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 공터를 지나 다소 가파른 골목길로 향했다.

고내봉이 보이는 방향으로 1970년대 중반에 지어진 근대 건물로 보이는 ‘고내이층집’ 간판을 단 정겨운 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형의 레벨 차이를 이용하여 주택대문 역할과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계단의 역할까지 겸한 다용도 출입구의 건축적 장치가 눈길을 이끈다.

좀 더 올라가다 보면 고내리 복지회관을 지나 도로보다 낮은 돌담집을 스치게 된다. 그 돌담집은 주도로에서 올레로 들어가 도로 반대편에 앞마당이 형성되어 있고 도로쪽에는 민가 후면에 배치한다는 우영팟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로에서 보면 그 집의 부엌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독대며 잘 심어놓은 대파까지. 예전에는 이렇게 사는 모습들이 드러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을까? 잠시 그집을 내려다보면서 내려다보는 미안함과 함께 지금쯤 키우는 송키는 무얼까 스윽 지나가며 관찰하게 된다.

고내봉 쪽으로 발길을 계속 이어가다 서쪽으로 난 골목길로 가다보면 리모델링된 돌집을 보게 된다. 독채펜션을 하기 위해 개조한 돌집이다. 기존의 돌집을 개조하고 그옆에 백색스타코마감의 주택을 증축하고 수영장까지 마련된 펜션이다. 고내에는 기존의 돌집을 개조, 펜션이나 조그마한 소품점, 음식점으로 탈바꿈하여 마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으려고 노력하는 집들이 많다. 옛것을 취하면서 오늘의 것을 담으려는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고내마을 뿐만 아니라 제주의 작은 마을들이 차츰 그리 변모해 나가는 것은 고무될만한 일이다.

구석구석 회원들과 다니다 보니 평상시에 못 보던 마을의 작은 디테일들도 인지되었다. 마을 사거리에 위치해 돌담에 벽보판으로 쓰였을 법한 돌담의 형상, 무심코 버려진 이름모를 집의 굴뚝, 슬레이트 지붕 위로 솟은 솟대, 집과 어우러진 팽나무 등.

제주 여느 마을이 그렇겠지만 고내마을을 돌아다녀 보면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된 폐가가 많다. 오래된 안거리 밖거리 형태의 민가들. 어느 한 폐가의 무성한 잡초를 헤치고 올레를 따라 가면 집에 이르게 되는데, 입구에 그 집을 파수하듯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 출입을 막고 있었다. 사람 떠난 오랜 세월동안 그 집을 지키고 있는 나무가 기특할 뿐이다.

버려진 폐가 중 이문간이 있는 집이 있었는데 이집은 탐방 이후 양성필 위원장이 직접 실측을 하였다. 실측한 도면을 이 글에 실어본다. 이 집은 오소록허니 도로보다 낮은 이문간으로 향하는 주택의 입구를 따라 자연스레 집으로 들어오면 양옆으로 안거리 밖거리 주택이 있다. 안거리 평면을 유심히 보면 정지와 족은구들 그리고 안뒤가 작은마루로 연결되어 살림공간의 연속성을 볼 수 있다. 마루에서 정지의 접근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작은 마루를 거쳐 들어갈 수 있어 마루와 독립적 동선을 확보하고 있으며, 정지에서 작은 마루를 거쳐 안뒤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영팟에서 송키를 수확하고 정지에서 음식을 마련하고 정지 옆 족은 구들에서 식자재를 건조하거나 저장하고 작은 마루를 거쳐 다른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않는 안뒤에 장독대를 마련하여 이집의 살림을 꾸렸을 법한 살림살이가 연상이 된다.

고내봉 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고내마을을 거쳐 다시 고내포구로 향했다. 고내마을을 거닐다보면 유난히 팽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보통 팽나무는 마을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있어 마을사람들의 쉼터, 만남의 장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고내마을은 집안에 팽나무가 있어 낮은 집을 웅장하게 보이는 시각적 역할도 하고 때론 집의 입구에 심어져 있어 손님들을 불러들이는 손짓을 하는양 서있는 팽나무들도 만날 수 있다. 팽나무와 낮은 집, 참으로 정겨운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제주의 어촌마을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그 스토리를 궁금해 하는 이들의 발길을 이끄는 관광의 요소가 되고 있다. 스토리를 정교하게 마을에 입히는 작업이 마을의 지속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한 노력들을 고내마을에서도 속속 찾아볼 수 있었다. 버려진 폐가도 많지만 이러한 폐가나 이용되지 않는 건축물을 발견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은 작업. 이발소를 개조해 만든 조그마한 음식점. 민가를 개조해서 직접 소품들을 디자인하고 생산해내고 그 제작물을 판매하는 소품점. 돌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제주바다와 어울리게 디자인하는 건축물 등.(게중에는 마을의 풍경과 정서를 고려하지 못한 건축물들도 보게 되지만)

이러한 건축적 요소들이 고내마을을 풍부하게 만들고 마을의 풍경을 지속성있게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본다. 지속성있는 고내마을 풍경을 위해 필자도 관심을 갖고 그러한 노력에 동참하고자 한다. 이번 고내마을 산책을 제안한 것도 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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