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6 17:57 (화)
“지금을 살고 있는 게 행복이라는 걸 아시나요”
“지금을 살고 있는 게 행복이라는 걸 아시나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12.01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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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은섭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죽음이 내 앞에 다가온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살려달라고 할까, 아니면 죽음 앞에 고분고분 사실을 받아들일까.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야, 후자를 생각하기 어렵다. 죽음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죽음. 삶과는 분명 대척점에 있다. 하지만 갑작스레, 사람들에겐 뜻하지 않게 ‘죽음’이라는 단어가 서서히 삶의 곁에 밀려오곤 한다. 암환자 선언은 바로 죽음을 눈앞에 맞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이다.

도서평론가 김은섭씨는 예고없이 대장암 3기 판정을 받는다. 2017년 11월이다.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그런 통보를 받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거짓말처럼, 암환자가 되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암환자. 정말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김은섭씨는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암환자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자 했다. 얼마 전에 나온 그의 책은 <김은섭의 암중모책-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펴낸곳 나무발전소)는 제목을 달았다.

“지하철 안은 하나도 덥지 않은데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혼미하고 울렁거림이 계속되었다.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세 정거장씩 내렸다 탔다를 반복했다. 집까지 한 시간 남짓 걸릴 지하철이 부산에서 서울 가는 무궁화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지하철이 달리는 동안 천근짜리 무쇠덩어리를 양어깨에 짊어진 것 같은 중력감이 다리로 전해졌다. 나는 결국 버티고 서 있기가 힘들어 기둥에 기대어 ‘후욱~ 후욱~’ 버티듯 숨을 뱉어내며 어디든 앉을 곳을 찾았다.”

듣기만 했던 암환자들의 항암치료가 이처럼 힘든 건 그의 책을 보고서 알았다. 항암치료 과정은 혹시 몸에 있을지도 모를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또 다른 독약을 집어넣는 일이다. 항암치료는 제 몸에 있으면서 증식해야 할 세포마저 죽이는 일이기에 그 고통은 암환자만 안다. 그야말로 죽을만큼 힘든 과정이다.

그럼에도 김은섭씨는 스스로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위해 손에서 놓지 않은 건 책이었다. 아울러 그는 손가락이 저리는 고통 속에서도 기록을 남기려 글을 썼다.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에 담긴 책은 보통 책이 아니다. 저자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고르고 읽은 책이어서 더 그렇다. 모두 18권의 책이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에 담겨 있다.

저자가 책을 읽으며 감명을 받았다는 기타노 다케시. 영화감독이면서 배우이다. 감독으로서 영화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재일동포 영화감독인 최영일의 영화 ‘피와뼈’에 제주 출신 김평일의 역할을 맡아 잔인함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배우이기도 하다.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을 넘나든다. 그가 쓴 병상일기 <죽기 위해 사는 법>은 살아있음의 가치를 말한다.

김은섭씨는 다케시의 생각에 반했다고 한다. 아픔이나 슬픔, 괴로움은 온전히 자신이 가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 그걸 이겨내고 살아갈 때야 비로소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 배웠다고 한다.

“오늘의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의 내가 제대로 사는 법이 아닐까. 나는 다케시를 통해 ‘나답게 죽기 위해 나답게 사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인간은 복잡하다. 생각도 많다. 덜 생각하며 살 수는 없을까.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는 개를 바라보면 다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광고인 박웅현은 “나는 매일을 개처럼 살아요.”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개처럼 산다니?

개같은 삶이 아니라, 개가 사는 패턴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웅현의 ‘개처럼’은 질 낮은 삶을 말하고 있지 않다. 개는 오늘이 첫날이고, 마지막 날처럼 산다. 매일 반복되는 삶이어도 개의 하루가 행복한 건 ‘그 순간’에 집중하며 살기 때문이다. 저자 김은섭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꺼내들었다. 쿤데라는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고 소설에서 표현했다. 개의 시간은 원형이어서 행복하고, 인간의 시간은 직선형이어서 후회를 반복하고 불행해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책은 암선고 이후 함암종료까지의 과정을 싣고 있다. 책은 고통의 순간도 담고 있지만 저자는 결국 ‘행복’을 이야기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오늘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눈뜨며 맞는 매일의 오늘은 ‘덤으로 얻은 선물 같은 하루’라고 설파한다. 책의 마지막 문단을 들여다볼까. 그 문단은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다가 문득 처음 항암치료를 하던 날이 생각났다. 6개월 전만 해도 항암제에 취해 택시조차 탈 수 없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갔는데, 지금은 병원에서 약도 받지 않고 내가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새삼 기뻤다.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불행한 것이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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