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소소한 즐거움 찾기
소소한 즐거움 찾기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11.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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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4월호] 에세이
김경영 에이디엠건축사사무소
김경영

제주의 삶을 시작하면서 집을 구할 때 조건은 한라산이 보이는 곳이면 좋겠다는 막연한 설레임으로 시작했다. 꽤 긴 기다림 끝에 커다란 창으로 멀리 한라산 능선과 오름을 배경으로 작은 공원, 아파트들 사이로 경사지붕의 나지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정겨운 제주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침마다 창을 통해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한라산의 풍광을 감상하며 따스한 햇살을 누리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건축사들은 창을 디자인할 때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창이라는 프레임을 통하여 바깥세상을 조망하고 정보를 얻거나 햇살이 주는 행복감으로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 덕분에 이곳저곳 다니다가 우연히 창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멋진 풍광을 만나거나 주변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잔잔한 감동으로 기억된다.

도시의 건축물과 많은 인파 사이를 거닐 때 호기심을 가지면 흥미로운 스트리트퍼니처를 만날 수 있다. 이것들은 먼 여정을 오가는 피곤함 중에도 활기를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가 된다. 국화가 튤립이라는 터키 안탈리아공원의 예쁜 조형물은 자세히 보니 튤립을 형상화한 의자로 반을 펼쳐 앉을 수 있는 재미난 구조였다. 세비아대성당 광장에서 본 벤치는 멋스러움을 한껏 품은 자태로 묵직하게 자리 잡고 주변을 관망하고 도시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 있는 휴식처로 훌륭했다.

‘서리풀컵’은 주스컵과 티컵을 형상화하고 상쾌함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분리수거가 가능해 실용적이며 보기 좋았다.

그늘막은 겨울에는 ‘서리풀트리’로 연출해서 사용하지 않을 때의 모습까지도 생각한 세심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들 사이 스트리트퍼니처는 도심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이지만 작고 소소한 재미난 공간으로써 도시의 쾌적성과 함께 첫 인상과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이태원의 골목에서 발견한 계단 틈새에 피어난 잡초에게 조그만 화분을 그려준 작가의 따스함이 구석진 곳이지만 밝은 기운으로 가득해 보였다. 대단하고 크고 멋지지 않아도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작지만 소소한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작은 것 하나를 오래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신제주로터리 담팔수길은 겨울에도 늘 푸르름으로 우아한 우산모양이 언제 봐도 감탄스럽다. 그림동화에서 본듯한 둥굴둥굴 수형에 퐁낭이라는 제주어가 예쁜 정실마을 팽나무길도 참 인상적이다. 일부러 돌아서라도 그 길을 찾게 되는 도심속 훌륭한 제주 풍경이다. 산천단 곰솔의 웅장함과 기개에 놀라웠고 거칠고 깊게 패인 회색빛의 나무껍질은 비바람에 맞서 살아온 두꺼운 흔적과 상처로 와닿았다. 좋은 기운이 가득한 곳이라며 적극 추천해 주신 화가 분이 곰솔나무 껍질의 문양과 색감, 질감까지 그림에 오롯이 담아내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숲속에서 초록빛이 주는 안정감과 나무 특유의 향기가 주는 싱그러움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한다. 나무뿌리들과 화산석이 엉겨 붙어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켜내는 숲도 경이롭지만 그늘진 돌틈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자라는 이끼며 콩짜개덩굴, 마삭줄기 등 작지만 소중한 생명들의 조화는 자연의 섭리와 저마다의 소중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감에 숙연해 지기도 한다. 자연의 질서를 간직한 숲은 배움의 장소이자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끌림의 장소중 하나다.

현장에 가야하거나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가는 일이 생기면 전날부터 살짝 즐거워진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제주에 내려오기 전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이 되곤한다. 그나마 현장 가는 길 주변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제주에서의 생활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면 구불구불 해안가 따라 소박한 어촌풍경을 만나기도 하고 제주풍광과 잘 어우러진 미술관이나 조망 가득 품은 건축물들, 재미난 이름의 오름과 원시림의 깊은 숲과 곶자왈 등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곳이 너무나 많다. 조금 천천히, 찬찬히 들여다 보면 제주는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찾기에 더할나위 없이 충분히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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