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도 되고, 건축도 접하는 공유 공간을 꿈꾼다
미술관도 되고, 건축도 접하는 공유 공간을 꿈꾼다
  • 김형훈
  • 승인 2020.11.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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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11> 건축가 박현모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아뜰리에 11(일일)’의 박현모 대표이다. 무척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공공건축가로서 고향을 고향답게 유지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래서인지 그가 좋아하는 공간은 그의 고향인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이다. 소개한 책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 <, 건축가 안도 다다오>이다.

 

# 용수리 – 마을의 원형을 생각하게 만든다

마을은 변한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사람의 ‘듦’에 따라 마을은 변한다. ‘적정’이라는 단어는 애매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마을의 모습은 달라진다. 수년간 제주의 모습이 그랬다. 연간 1만명을 넘는 이들이 들어오는데, 어찌 변하지 않고 버티겠는가. 대신 ‘나감’도 있다. 제주도는 핫한 지역이 되면서 ‘나감’보다는 ‘듦’이 압도적이다. 제주를 벗어나서 그들의 고향으로 유턴하는 현상도 있다곤 하는데, 그래도 아직은 ‘듦’이라는 단어가 제주를 말한다.

‘듦’으로 변하는 마을을 많이 만난다. 듦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 늘 있는 것이지만, 그게 과하면 탈이 난다. 듦이 적정을 벗어나면 마을은 다른 옷을 입게 된다. 카프카의 <변신>만큼이나 이질적으로 변하는 곳도 생긴다. 갈옷만 입던 이들에게 양복을 입히면 멋지게 보이겠지만, 갑작스런 변신은 마을의 정체를 잃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용수리는 조용하게 변하고 있다. 기자의 눈에는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여느 다른 마을과 다르다.

용수리의 한적한 마을 모습. 미디어제주
용수리의 한적한 마을 모습. ⓒ미디어제주

용수리. 그 이름은 절부암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절부암을 찾아간 오랜 기억은 20년도 넘었다. 절부암이 용수리의 다른 이름인 이유는 있다. 거기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절부암 이야기를 해야겠다. 절부암은 강사철에 시집간 절부(節婦) 고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귀도에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하자, 고씨는 목을 매 죽었는데 사흘 후에 남편의 시신이 그 아래 떠올랐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후 제를 지내왔다. 절부암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며, 제를 지내기 위해 마을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졌다. 절부제를 지낸 고문서를 보면 제를 지속적으로 이어 가기 위해 용수리 사람들이 돈을 내놓았던 기록들이 있다. 덕분에 절부제는 일제강점기 때도 끊이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공동체는 ‘함께’여야 한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가 바로 공동체의 대표적 단어이다. 공동체의 지속 여부는 개발과도 연관이 있다. 개발을 통해 공동체가 한단계 좋아지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각종 개발 가운데 ‘도로’의 역할은 무척 크다. 도로는 사람들이 이동을 하는데 필수적 인프라이면서, 성장이 부르는 또 다른 단면도 묘사된다. 자칫 마을이 동강날 때도 있다.

용수리는 아니었다. 제주도를 한바퀴 빙 둘러서 만든 일주도로는 용수리를 통과하지 않는다. 용수리 마을사람들이 반대를 했다고 한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 때 경부선 철도를 놓는다고 했을 때 반대를 하던 마을도 있다. 용수리는 그런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개발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개발지역에 들어가면 토지를 수용당해야 한다. 예전엔 그냥 수용이었겠나, 강제 수용되곤 했다. 살던 곳을 빼앗기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용수리 주민들은 ‘빼앗긴 뒤의 마을’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덕분이랄까. 용수리는 안락하다. 마을 전체가 온화한 분위기를 지녔다. 걸어다니던 시절. 용수리 사람들은 일주도로까지 먼 길을 걸어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젠 자동차가 있어서 쉽게 오간다. 개발의 가치는 당장 알려주지 않는다. 수년 후에, 혹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개발 이후의 참모습을 확인 가능하다. 용수리가 그렇다.

 

[대담] 건축가 박현모를 만나다

 

제주에서 최근 가장 잘 나가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건축에 들어선 길은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중학교에서 고교로 진학하는 과정이 그랬다. 건축이 뭔지를 모르고 들어간 곳이며, 지금도 건축을 해석하느라 바쁘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그에겐 상이 따라다닌다. 대한민국신진건축사대상(2014)을 받고, 한국건축문화대상(2019), 아시아건축상협의회 건축상(2019)도 받는다. 덧붙여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본상(2020)도 받았다.

그는 노력한다. 건축을 더 알아야 한다는 욕망으로 자신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랑 학부 생활도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울러 세상을 둘러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그는 창작할 수 있는 힘을 숱한 답사로 배우고 있다.

 

건축사 자격 취득 이후에 학부를 다시 다닌 걸로 아는데, 그런 경우가 쉽지 않다. 대단하다.

사무소를 오픈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다가 이론적 배경을 보강하기 위해서였다.

 

활동도 무척 활발하게 하고, 신진건축사 대상을 받은 이후 좋은 소식이 많던데.

건축사 면허 준비를 할 때 제주도엔 관련 학원이 없었다. 서울에서 6개월 정도 시험공부를 준비했고, 시간이 남다 보니 서울 건축도 접하고, 책을 읽을 환경도 마련됐다. 기존에 배웠던 기술적 측면 외의 것을 알게 됐다. 그게 쌓이면서 좋은 건축주를 만나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고, 공모전도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고향이 용수리인데, 땅 얘기를 해보자. 오랜만에 용수리를 가봤는데, 눈에 잘 띄던 폐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그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서였는지.

용수리는 그래도 한경면 끝단이어서 개발이 덜 되었다. 용수리는 특이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바다에 인접해 있고, 바다엔 차귀도와 와도가 있고, 당산봉도 자리잡고 있다. 또한 제주도에서 논농사를 하는 지역이었다. 저수지도 있고, 평야도 있다. 제주도의 많은 걸 지리적으로 다룰 특성이 있는 지역이다. 역사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절부암이 있다. 매년 314일 제를 지낸다. 김대건 신부가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최근 공공건축가 활동을 하면서 서부 지역을 맡게 되었다. 용수리의 유휴공간을 발굴하면서 몰랐던 것도 찾아냈다. 기후제를 지내던 단이 있었고, 이 땅의 기를 눌러서 용수라는 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물과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공공건축가로서 물을 활용해서, 물의 이야기를 반영해서 공공성 지도를 엮는 사업으로 진행중이다.

 

그는 도시의 변화만큼이나 건물의 공간도 변화하리라 믿는다. 때문에 사무실 아뜰리에 11이 설계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꿈을 지니고 있다. 미디어제주
그는 도시의 변화만큼이나 건물의 공간도 변화하리라 믿는다. 때문에 사무실 아뜰리에 11이 설계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꿈을 지니고 있다. ⓒ미디어제주

용수리는 제주도내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옛 모습이 지켜지고 차량통행도 덜하다. 물론 개인적인 기억에 남아 있는 용수리는 변했지만.

용수리가 그나마 보존됐던 건 마을 어르신들의 역할이 컸다. 마을 어르신들은 큰 길이 들어오는 걸 경계했다. 일주도로가 여길 들어오질 않는다. 그래서 어릴 때 타 지역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버스 정류장까지 20~30분 걸어야 했다. 어르신들이 마을 안쪽으로 일주도로가 들어오는 걸 반대했고, 때문에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결론적으로 마을 원형은 지키게 됐다.

 

르 꼬르뷔지에를 좋아하나.(사무실 곳곳에 르 꼬르뷔지에 흔적이 있다. 꼬르뷔지에 모듈러는 바닥의 표식이 되어 있다.)

책을 통해 근대건축 거장을 만나고, 일본 건축가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근대건축 거장 4명에 대한 순례를 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건물을 보면서 공간을 체득하곤 한다.

 

찬디가르도 가 보았나. (사무실엔 인도 찬디가르에 있는 꼬르뷔지에의 오픈 핸드모형이 있다.)

2011년이었다. 사실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접하기 힘든 인도를 갔다오면서 거장들의 작품을 보러 다닌다. 작년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을 보고, 위스콘신에 있는 건축물도 만났다.

 

방글라데시도 갔다 오지 않았나.(그의 사무실인 아뜰리에 11’은 숱한 상을 받게 해줬다.)

함께 해외를 다니는 친구가 있다. 인도도 함께 갔다. 인도에 있는 르 꼬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의 건축물을 둘러보면서 루이스 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다. 2015년엔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을 보러 갔다. 다행히 공무원이 국회 회의 참관을 하도록 해줬다.

작년엔 아시아건축상을 받으면서 다카에 있는 건축물을 방문했고, 일본이나 베트남 건축가들이랑 둘러보며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루이스 칸이랑 꼬르뷔지에는 느낌이 다를텐데.

사무실 계획안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답사를 가게 됐다. 뉴욕을 통해서 보스턴으로 가는 길목에 루이스 칸의 작품인 엑서터 아카데미 도서관, 예일대에 갔을 때 그가 초기에 작업했던 리모델링 건축물이 있는데, 그 구조를 보고 감응을 얻었다. 사무실 아뜰리에 11은 밖에서 보면 모던한 건물인데, 내부는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처음엔 르 꼬르뷔지에를 좋아했다가, 지금은 루이스 칸인가.

맞다. 꼬르뷔지에 건물은 시대별로 보고 있다. 후기 작품을 보면 낭만적이면서 유기적 형태미가 있다고 한다면, 루이스 칸은 깊은 생각을 통한 간결한 모습이 구조에 드러나고 강력한 힘이 있더라. 지금은 루이스 칸을 더 공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안도 다다오와도 겹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안도의 자서전을 추천할 책으로 선정을 했는데.

안도의 자서전이 나오기 전에 안도 다다오가 쓴 <연전연패>가 있었고, 이후에 자서전이 나왔다. 자서전은 대중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 안도 다다오가 갖는 정신적인 측면, 일을 할 때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을 배운다. 지금도 건축 현장에서 정신적으로 데미지를 입거나 나약해질 때 이 책을 다시 걷어본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정신적인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한다. 늘 책상 옆에 놓고 읽는다. (실제 건축가 박현모의 책상엔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이 놓여 있고, 얼마나 봤던지 헐어 있을 정도였다.)

 

안도가 오사카 지역 건축가여서 지역 건축가 역할 강조하려 책을 선정한 줄 알았다.

그보다는 앞서 말한 부분이 강하다. 안도가 책에서도 사무실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랑 규모가 겹치는 게 많다. 안도의 건물도 30평 되나마나한 크기에 지하 2층부터 5층까지 있다. 아뜰리에 11을 계획할 때 그 건물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들어가지는 못했다.

 

안도의 자서전 중에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나.

늘 읽을 때마다 달라진다. 초기엔 사무실을 운영하는 문구들이 많이 와 닿았다면, 요즘은 프로젝트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책을 찾는다. 현상설계 접수를 하면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내려놔야지라는 나약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때 안도의 태도를 보면서 도움을 얻는다.

 

책은 몇 번 읽은 것 같나.

많이 읽었다. 여행갈 때도 항상 들고 다닌다. 책에 날짜를 써둔다. 읽을 때마다 뭔가 가르쳐준다. 동반자이면서 선생님이다.

 

앞서 용수리 이야기를 해줬는데, 제주도 전체의 땅 이야기를 해봤으면 한다. 제주도가 가진 땅의 가치는 뭘까.

건축물의 형태나 공간적인 측면에서 지역을 어떻게 풀어갈까에 고민을 하면서 사옥 일부에 적용했던 게 있고, 건축재료에 대한 부분도 생각했으면 한다. 재료에 대한 생각은 1차원적으로 보이지만 요즘에 맞는 기술력으로 새롭게 해석해보고 있다.

제주도의 흙은 63가지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다르고, 그러기에 여러 작물도 분포한다. 제주의 흙을 돌이라는 재료와 엮었을 때 어떤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제주석은 많이 하고 있지만 제주흙을 다루는 건 보질 못했다.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의 건축 중에 돌과 나무로 실험했던 파빌리온이 있다. 그 미술관을 가본 적이 있는데, 그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역성에 대해 더 추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디자인을 논하기 전에 주변 크기와 맞추면서 갈 때 지역성으로 반영이 되지 않을까. 그에 대한 수법은 건축가마다 다르겠지만.

 

제주도는 큰 규모의 건축사사무소보다는 작은 규모가 많다. 대부분은 아뜰리에 개념이겠지만, 제주도내 건축사사무소 이름에 아뜰리에라고 표현을 한 건 아뜰리에11’을 처음 봤다. 다른 분들은 건축, 아키텍처를 강조하는데, 그보다 아뜰리에라고 한 이유는

제주건축사회가 오키나와랑 교류를 하며 그들의 작품을 제주에 전시한 적이 있다. 그들의 작품은 지역성이 드러나 있고, 오키나와는 일본 외진 동네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들의 디자인은 매우 우수했다. 그런데 사무실 이름을 보니, 이름 앞에 아뜰리에라고 되어 있더라. 그걸 보고선 나중에 사무실을 오픈하면 아뜰리에를 넣겠다고 마음먹었다. 큰 규모보다는 10명 이내의 강한 아뜰리에의 조직을.

 

사무실에 와보니 모형이 굉장히 많다.

한가지 프로젝트임에도 여러 버전의 모형이 있다. 스터디 모형도 있고, 일이 없을 땐 답사를 다녀와서 만들어 둔 모형도 있다. 모형을 만들어가면서 공간을 더 이해하려 한 경우도 있다. 학교 다닐 때 했던 모형도 있다.

 

(‘아뜰리에 11’은 옥상 뷰가 좋다. 한라산이 풍경이 되어 보는 이의 눈에 들어온다. 옥상 바로 밑의 공간은 박현모 대표의 공간이다. 거기엔 매킨토시 의자도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으며 그 의자에 앉아서 멍 때리고 싶다.)

 

건축가의 집이구나 느낌이 든다. (매킨토시 의자는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란다.)

의자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문의 손잡이, 의자 디자인 등 토털건축으로 모든 걸 하면 좋겠지만. 혹시 그런 디자인도 하나.

해보고 싶고, 하는 것도 있다. 사무실에 있는 책상이나 선반은 디자인을 했다. 최근에 테이블도 조합에 따라 변하는 디자인을 했다.

의자는 작은 건축이라고 한다. 해외에 가면 의자를 들고 오는 건 한계가 있기에, 피규어를 사오는 편이다. 핀란드의 알바 알토가 설계한 의자도 들고 오지 못하니 피규어로 가져왔다.

 

제주도내 건축가들의 수준은 높은데, 자기자신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건축가들의 나름 역할은 있을텐데.

최근에 제주대 출신들이 서울에 갔다가 많이 돌아오고, 제주에서 자생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육지에서도 유입된다. 모든 건축가들의 생각이 일관된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공공건축가로서 사회적 역할을 하는 분들도 있고, 건축자산 조사를 하는 이들도 있다.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많은 이들의 생각을 한데 모아서 크리틱이나 세미나 형태를 통해서 계속 축적해 간다면 제주건축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성장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제주도는 달라야 된다라는 말에 앞서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토양이나 풍토가 원래부터 다르다. 그러기에 건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은 서울 근교의 신도시에 보는 건축물이 많이 보인다. 그런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도시 지역과 도시 지역 외곽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도시 지역은 그런 영향이 더 크다. 지구단위 계획을 통해서 땅이 구획되는데, 지구단위 모범 사례 등을 신도시에서 가져와서 법규를 적용하고 지침서를 만들다 보니 비슷해진다. 도시 외곽은 가이드라인보다는 바다를 바라보는 뷰 등 그런 게 강조된다.

 

도시는 바뀌게 마련이다. 제주의 도시도 바뀔텐데 어떻게 바뀌고,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코로나19 영향으로 삶의 방식은 바뀌고 있다. 공유에 대한 개념도 생기리라 본다. 도시에 있는 건축물은 용도가 딱히 정해지기보다는 시간 등에 따라 변했으면 한다.

올해 초에 사무실에서 전시를 했다. 지하와 1층에서 이뤄졌다. 건물 파사드를 통해 실험을 해보곤 했는데, 건물이 시간대별로 다양하게 변화가 되길 기대한다.

건물이 미술관이 되기도 하고,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설계사무소의 공간은 설계사무소이기도 하지만 미술작가들의 전시가 있는 장소도 되고, 주말엔 일반인들이 와서 쓰는 등 사무실을 다른 사람이 쓰는 그런 형태의 변화는 곧 도시의 생동력이다.

 

사무실에 건축모형이 많은데, 그런 걸 전시해도 좋겠다.

요즘 매스컴에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소개한다. 어린이들도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고, 사무실 인근에 여학교가 많아서인지 여고생들이 사무실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들에게 건축은 어렵지 않고, 생각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면 건축가로도 갈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한다.

 

건축은 잘 모르지만 건축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갤러리가 있으면 좋겠다. 모형도 전시하고, 사진도 전시하고, 일반 도시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의 삶도 전시하고.

지하와 1층은 비어 있다. 올해초 전시를 하며 가능성을 봤다. 1층 정도는 개방을 해서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게 만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 제주의 젊은 건축가들이 기획을 하면 상설전시를 할 수도 있고, 많은 이들에게 건축을 접할 기회도 줄 수 있다.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 지음
 

안도 다다오만큼 우리나라에 알려진 외국 건축가가 있을까. 안도는 “그래야 한다”는 걸 파괴한 인물이다. 건축가라면 당연히 정규 과정을 거쳐야 될테지만, 안도 다다오는 “건축가는 그래야 한다”는 상식을 파괴했다. 그는 복서였고, 독학으로 건축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그의 길은 ‘탄탄대로’이거나 걸릴 게 없는 ‘고속도로’가 아니었다. 때론 길이 없는 길을 마주하고, 태풍으로 막힌 길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곤 했다.

그의 특별한 이력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눈길을 끌었을까. 그렇진 않다고 본다. 그의 작품은 사람을 끌게 만든다. 제주에도 그의 작품이 3개 있다.

그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를 안도는 ‘게릴라 집단’이라고 부른다. 게릴라에서 풍기는 어감은 뭔가 비장감이 비친다. 안도가 말하는 게릴라 집단은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개인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집단”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기성사회와 투쟁을 해온 체 게바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책에서 쓰고 있다.

그는 스스로 학습 능력이 뒤져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물론 넉넉지 않은 집안사정도 있었다. 어쩌면 독학은 그가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무기’였다. 르 꼬르뷔지에 작품집을 베끼듯 그렸고, 유럽 여행을 하며 자신을 단련시켰다. 수도 도쿄가 아닌, 지역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 정규 수업이 아닌, 독학으로 건축을 접한 안도. 기성세대와 결이 달랐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사무실을 열면서 던진 말이 있다. “건축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회의 불합리에 저항해 나가는 내 나름의 투쟁을 시작했다.” 사회와 투쟁이라니?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일개 건축가가 사회와 투쟁을 한다? 그 같은 의지와 강철같은 행동은 그를 세계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만일 건축주라면 안도의 작품에서 살 수 있을까. 그는 너무 투쟁적이다. 게릴라의 본색은 늘 그의 곁에 자리하고 있다. 그가 책에서 던진 말을 읊어보겠다.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 수가 있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 내겠다는 각오를 해주기 바란다.”

그의 말은 주택에 살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런 그의 완강함은 망가질 도시에 활력소가 되곤 한다. 우리의 원도심이 그렇듯, 일본도 유럽과 달리 재개발의 돌풍이 불곤 했다. 안도가 1977년에 완성한 ‘로즈 가든’은 고베시 기타노마치의 거리를 살려낸 계획이다. 로즈 가든을 계기로 기타노마치 거리 살리기는 전체로 확산됐고, 난폭한 재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 그는 콘크리트를 잘 다룬다. 거기에 빛을 쏘고 물을 들게 만든다. 우린 그저 감탄하지만 안도는 그걸 해내려 모험을 하고, 고난을 이겨왔다. 건축가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라는 사실도 안도는 일깨운다. 세계 곳곳의 현장을 그는 누볐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건축은 ‘현장’이어야 한다. 그는 건축의 재미를 건축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건물을 설계하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회 제도, 다양한 가치관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도는 포기하지 않는다. 링 위에 오른 복서는 상대를 뉘어야 살아난다. 포기하는 순간 링의주인은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 안도는 책에서 그의 인생관이나 다름없는 ‘빛과 그늘’을 다음처럼 서술했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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