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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 문화예술인 마을 답방 및 논의_미술관을 중심으로
저지 문화예술인 마을 답방 및 논의_미술관을 중심으로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11.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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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호] 연구위원회
김태성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연구위원회 위원/(주)티에스에이건축사사무소

올해초 협의된 연구위원회의 2020년 방향은 2가지로 결정했다. 하나는 제주건축의 정체성과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비도시지역 마을의 답방과 기술(description)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현대건축 현장의 답방과 논의(discussion)이다. 그 첫 시작은 무겁지 않았으면 했고, 그럼에도 제주자연과 제주건축의 조화를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그 장소를 논의하던 중 필자의 설계결과물(저지리 문화예술공공수장고)이 있고, 김종찬 위원의 설계당선안(저지 영상스튜디오)이 마무리되어지고 있으며, 강명숙 위원의 현상참여 스토리가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로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아졌다. 시작을 문화산책의 느낌으로 가볍게 출발 수 있었다. 이곳은 앞서 이야기한 현대건축 현장의 답방과 논의(discussion)이지만, 제주건축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자는 의미도 가진다.

답방의 시작

연구위원 5인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시작하여 저지리현대미술관, 김창열미술관, 저지리문화예술공공수장고 및 주변 문화예술인마을을 차례로 답방하였고, 문화예술인마을의 작은 카페에서 논의를 진행해 보았다.

제주도립미술관. 미디어제주
제주도립미술관. ⓒ미디어제주

제주도립미술관은 만남의 장소였지만, 저지리 미술관과 비교의 의미도 있었다. 이 건축물은 간삼건축에서 설계했는데, 수공간과 일렬로 늘어선 가벽과 건축물로 진입하는 부분 등에서 다니구치 요시오의 ‘도요타시미술관’을 모방했다는 논쟁이 있는 이 건축물은 당대 유행하던 다양한 건축 요소들을 적용한 수작으로 느껴졌지만, 대지와 만나는 태도, 건축형태에서의 느낌이 제주의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경계에서의 바람직한 자세인가에 대한 작은 논의가 있었다.

저지리에 도착하여 첫 만남은 제주현대미술관이었다. 제주건축사의 중요한 자산인 김석윤 건축사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건축물의 진입부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대지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려는 자세인데, 이 부분에서 제주의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가 도립미술관의 설계와 지역건축가와의 차이점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첫 느낌은 정리되지 않은 듯 낯설다. 시작부터 건축물의 형태미로 감탄을 유발하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동선을 따라 걷다보면 직선적이지 않으며 제주마을의 올래길처럼 꺾임이 나타나고, 건축의 분절된 틈을 통해 작은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다. 계속 느낄수록 제주의 대표 건축가로서 제주건축의 주요 요소들을 건축물에 담아내고 싶은 건축가의 고민이 드러난다.

특히 부러웠던 것은 건물 전체 외부마감으로 사용된 현무암의 디테일이다. 현무암이라는 제주돌을 사용하여 돌담을 형상화한 것인지, 비움을 표현한 것인지 궁금증을 불러오는 ‘절제’된 본인만의 디테일을 적용하였다. 이 디테일에는 자연스럽게 이끼가 껴있었고, 지어진지 10년이 지났지만 마치 오랜세월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주변에 묻혀있는 듯했다. 건축물 앞에서 제주건축과 이끼의 공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하다가 김창열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필자는 김창열 미술관의 작품성에 감탄하여 약20번 이상 방문하였다. 운이좋게 오늘은 비오는날의 답방이다. 필자에게 다가오는 이 건축물의 가장 큰 매력은 현상설계공모 제목인 ‘빛의로의 회귀’처럼 어둠과 빛을 이용해 내부공간의 깊이감, 건축적 감동을 만들어내는 정성어린 계획에 있다. 동행한 위원들의 의견도 유사하였다. 건축물의 내부에서 빛을 발견하고는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이 건물은 자연과 융화되는 방법으로 대지의 가장 낮은 곳에 낮은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러므로 건물 주진입동선은 제주돌담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무덤과도 같은 공간을 제안했다는 김창열 화백의 요구가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된다. 블랙콘크리트를 사용한 8개의 매스를 분절시켜 놓은 단순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매스의 분절은 작은마을의 스케일에 대한 존중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 매스가 분절된 곳으로 동선이 연결되고, 빛이 스며든다. 건물의 중심에는 중정이 있다. 이 중정에 물과 빛이 만나서 자연과 시간의 변화감을 보여준다.

이 변화감을 감상하면서 경사로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옥상정원으로 나오고 옥상정원에서 다시 외부정원으로 연결된다.

무엇이 이 건축물의 완성도를 이끌었을까? 건축가의 재능과 실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수준을 끌어올린 것은 작가의 삶과 철학과 이야기가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좋은 건축물의 완성에는 그 시작에서 방향성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저지 문화예술인 마을을 거닐며 건축을 이야기하기

현대미술관 입구의 고 신철주 북제주군수 동상을 바라보고, 예술인마을로 걸어나왔다. 마을길에 작은카페에서 답사 후 논의가 이어졌다.

첫 번째 논의는 현대미술관 내부 마감재료의 아쉬움과 김창열미술관의 내부 마감 디테일과 비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즉, 현상설계공모에 의한 건축물의 내부마감에 대한 이야기인데, 김창열미술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모당선된 건물은 항상 외부디자인에 비해 내부공사의 수준이 미약하다. 바람직한 방향은 당선된 건축사가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행정이 건축사들을 존중하고, 건축사의 주도로 공사가 진행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진다면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인테리어 전문가와 협의하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부분은 설계, 감리의 분리문제와 최근 건축물의 복잡화, 다양화 및 건축사의 역량문제가 같이 얽혀있는 어려운 문제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지속적인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어진 논의는 설계공모의 사업비와 규모에 대한 적정성에 관련된 논의다. 이 부분은 필자의 수장고 진행경험이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저지 문화예술공공수장고는 사업비는 30억(부가세 포함)이며, 건물규모는 500평으로 평당 600만원으로 공모되었다. 공모당선 후 각 심사위

원의 요구사항 및 발주처 요구사항,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거쳐 건축적, 기능적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하여 적정한 설계를 완성한 건축규모는 600평, 견적된 금액은 90억(평당 1,5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설계공모시 공사금액 산정표를 제출했으므로 이 모든 책임은 건축사가 진다?- 행정과 건축사 모두 이 부분에 명확한 답안이 없다 - 이후 공사금액에 맞추어 재설계를 했더니 건축규모가 300평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행정담당자의 노력으로 추가공사비를 확보하게 되었고, 최종 납품된 결과물은 건물규모 500평, 공사비 67억(평당 약1,300만원)이다. 설계변경 6회에 납품용 도서정리 및 견적서 제출까지가 3회인데, 행정담당자는 이 과정을 이해하고 추가비용을 지급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건축사는 추가설계비 조차 받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설계공모시 계획되었던 많은 건축요소들이 생략되거나 미반영된 것은 건축사의 건축적의지의 부족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결국 초기 사업규모 및 공사비 산정에 있어서 적절한 기획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이다. 이 부분은 최근 발족된 ‘공공건축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한다.

앞으로는 행정과 공공건축가가 잘 협의하여 바람직한 결과물을 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어서 문화예술인마을의 전체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 부분은 가장 최근 설계진행(저지 영상스튜디오)을 했던 김종찬 위원의 의견에 공감하며 그 내용은 이렇다.

저지 문화예술인마을의 전체 그림 안에서 각 시설물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이야기되었고, 전체 마을안에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서로 공유하는 언어 하나만들기가 있었더라면 즉, 공공환경디자인 등 전체마스터플랜에서 이러한 부분이 선 작업 되었더라면 이후 시설물들이 현상설계되거나 일반설계되었을 때 같이 공유되는 ‘건축어휘’가 있을 것이고 전체 마을을 연결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저지문화예술인 마을을 기획하고 현대미술관이 건립되는 등 고마운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러한 자연과 문화예술과 건축이 만나는 장소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감사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기획과정에서 건축가, 도시 전문가의 참여가 있었는가? 전문가 자문회의 등은 많았겠지만 행정의 책임자와 함께 공공건축가 또는 마을건축가 개념의 건축사가 참여했더라면 조금 더 느리더라도 조금 더 그 과정과 결과물들의 의미가 정리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을 전체의 흐름과 시설물간의 연계, 콘텐츠의 정리, 조경 및 공공환경디자인 등이 어떻게 논의되고 구성되고 홍보되고 있는지 행정과 건축계가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은 효율성과 속도가 중요했던 시절과 토론과 의견수렴이 중요해진 시절의 변화에서 오는 아쉬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공생(共生)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자연과 사람과 건축이 공생하는 제주의 이야기에 ‘문화’라는 시대의 요구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제주가 지향하는 공생의 상징적 지역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파급력은 기대에 못미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의 작은 논의들이 쌓여감에 따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에 제주의 지역 건축사들의 기여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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