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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지키려면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지키려면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한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11.12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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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10> 건축가 김병수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빌딩워크샵건축사사무소의 김병수 대표이다. 고향은 경남 거창이다.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줄곧 있다가 제주에 꽂혔다. 수십년간 바다를 보지 않고 살아온 이들에겐 그야말로 바다는 환상이다. 그는 바다에 대한 환상을 좇아서 수년 전 제주에 발을 디뎠다. 제주다운 건축물을 많이 설계한 이타미 준을 곁에서 지켜보며 방주교회 설계에도 참여했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공간은 제주마을이다. 옛 풍경이 가득한 마을을 좋아한다. 소개한 책은 지역성의 담론을 묶은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이다.

 

 

# 마을 풍경 - 어떻게 지켜야 할까

기억된다. 옛 마을풍경은 누구에게나 기억된다. 하지만 ‘기억되다’는 목적어를 가지지 않는다. 동사 자체가 자동사이기 때문이다. 옛 마을풍경이라면 ‘기억되다’는 동사보다는 ‘기억하다’라는 동사가 된다면 어떨까. ‘기억하다’는 목적어를 가진다. 순전히 개인적인 기억을 넘어서 세상 모두가 공유하는 목적어에 대한 기억이면 좋겠다. 그 목적어가 우리의 구체적인 옛 마을풍경이면 더 좋다. “제주사람들은 아름다운 올레의 풍경을 기억한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기억이라는 단어는 ‘추억’과 같은 낭만적인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기억은 사람마다 달라서다.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이라도 어떤 기억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기억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금 어른 세대들은 소를 끌고 촐(풀의 제주어)을 먹이러 오름으로 향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흔한 일상이었다. 당시 풍경은 ‘촐’이 말하듯, 세상 천지는 초가였다. 제주의 흔하디흔한 새(띠의 제주어)는 지붕의 재료였다. 낮고 어두운 초가에서 살던 사람들, 구불구불한 올레를 지나면 만나던 초가에서 살던 기억은 대체 어땠을까.

촐을 먹이던 소에 대한 기억이 좋은 이들이라면 목가적인 낭만을 떠올리며 옛 모습에 눈물이 흐를지 모른다. 그런 사람도 있을테지만, 초가에서 구렁이를 목격하고 온갖 벌레에 기겁하던 이들은 초가를 없앨 기억으로 치부한다. 조선시대에 제주도에 유배를 와서 못견뎌하던 10대 소년 이건처럼 말이다. 이건은 <제주풍토기>에서 ‘이무기’까지 언급하지 않았던가.

제주시에서 펴낸 '사진으로 보는 제주 옛 모습'에 실린 오현로 풍경. 옛 풍경은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가치를 일깨우는 게 중요하다.
제주시에서 펴낸 '사진으로 보는 제주 옛 모습'에 실린 오현로 풍경. 옛 풍경은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가치를 일깨우는 게 중요하다.

다행인지, 이젠 촐을 먹이던 풍경도 없고, 구렁이가 나오는 초가도 없다. 이건이 지금의 제주에 왔더라면 전혀 다른 <제주풍토기>를 지었을테다. 아주 낭만적이면서, 제주초가의 멋과 올레의 멋을 찬탄하는 글을 펴내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제주에 오라면서 손짓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제주를 바라보는 육지사람마냥. 제주도라는 큰 덩어리는 그대로인데, 왜 그럴까.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주의 마을 풍경은 육지사람들에겐 매혹적이다. 돌을 얹은 모습에 반한다. 빈집을 사서 고쳐쓰거나, 미래의 재산가치를 위해 돌집을 미리 사두는 경우도 많다. 제주의 마을 풍경은 재산적 가치를 지니는 건 분명하지만, 수십년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좀 더 편하고 싶다는 욕망은 큰 도로를 원하고, 돌집이 아닌 도심지에서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을 원한다. “어르신, 왜 그러시냐”고 탓할 일은 아니다. 수십년간 같은 건물에 살다 보면 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옛 마을풍경을 지키라고만 할 건 아니다. 가치를 먼저 일깨워줘야 한다. 가치를 인지하게 되는 순간 옛 풍경은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된다.

제주시 화북동은 제주의 여러 마을 가운데 억센 마을에 속한다. 특히 바닷가 마을은 공동체가 유독 강하다. 그런 마을에 가로세로 네모난 그리드를 긋고선, 길을 내려 했다. 오래전 계획된 길이었고, 행정은 당연히 먹힐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그리드를 긋고 길을 내면 옛길이 사라진다면서 주민들이 반발을 했다. 결국 행정은 손을 들고, 사업을 접었다. 극히 이례적인 사례이지만 옛 풍경을 간직하려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어떤 때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 제주. 어디나 길을 뚫고, 어디서나 건축물이 올라간다. 지키고 싶었던 건축물은 어느 순간 사라진다. 개발을 탓할 수는 없지만, 가치는 공유를 해야 의미를 지닌다. 목소리를 내는 건 더더욱 필요하다.

 

[대담] 건축가 김병수를 만나다

 

건축가 김병수는 지역에 고달파한다. 아니, 지역을 사랑한다. 제주도가 고향은 아니지만 제주의 가치를 탐색하는 일을 한다. 제주의 건축자산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제주사람보다 제주의 가치를 더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는 그가 찾아낸 건축자산을 즐겨보는 그런 날이 올지도.

 

 

추천한 책 이야기부터 해보자.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를 꼽은 이유는.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의 제주다운건축선정위원회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다운 건축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는데, 이론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했다.

 

지역성은 쉬운 듯하지만 어렵다. 시대에 따라 바뀐다. 옛날엔 초가를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에 초가가 대세였다.

과거엔 자연환경이나 기술적 제약 때문에 초가를 지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다르다. 산업화 이후 엄청난 기술발전이 이뤄지면서 자연을 극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제주의가 득세를 해서 건축은 전세계적으로 비슷해졌다.

 

때문에 국제주의에 대한 비판도 많은 것 아닌가.

그래서 제주다운 건축은 무엇인지, 한국다운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걸 정의하진 못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정도의 의견인 거지, 그게 사조로 만들어진 것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래의 제주다운 건축은 무엇일지, 미래의 제주다운 도시, 미래의 마을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논의해봐야 한다.

제주다운건축상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이게 답이라기보다는 이런 것도 제주다운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화두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근 들어 프리츠커상도 지역성을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받는다. 국제적이고, 보편적이고, 눈에 띄는 그런 것보다는 지역을 어떻게 잘 해석하느냐에 있다. 중국 건축가 왕슈의 경우처럼. 그런 게 인정을 받는 걸 보니까 제주도에서도 지역성을 잘 표현하면 세계적인 건축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제주에서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제주대를 졸업해서 활동하는 건축가도 많이 배출했다. 그들의 능력도 뛰어나다. 제주다움을 찾아갈 저변은 만들어졌다. 향후 10, 20년 사이에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제주에는 왜 내려왔나.

시골(그는 경남 거창이 고향이다)에서 20년 살고, 서울에서도 15년 살았다. 늘 바닷가에 살고 싶었다. 애월읍의 단독주택을 설계할 일이 있었는데, 나를 자극했다. (그는 현재 조천읍 신촌리에 살고 있다. 바닷가와는 100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이타미 준의 딸인 아이티엠건축사사무소 유이화 대표와도 일을 했던데, 이타미 준도 자주 만났나.

4년 정도 함께 일했다. 방주교회도 담당했다. 이타미 준 선생님을 자주 뵈었다. 내가 현장 담당자였기에 이타미 준 선생님이 한국에 올 때마다 보게 되었다. 이타미 준 선생님의 작품이 제주에 많이 진행될 때 직원들끼리 공유를 하면서 제주는 가끔 왔는데, 제주도를 알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제주공항에 내려서 핀크스로 오가고 했기 때문에 다른 마을을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제주다운, 제주를 잘 해석한 건축가로, 개인적으로는 이타미 준을 첫손에 꼽고 싶다. 특히 수풍석박물관 중 바람박물관이 마음에 든다.

바라보는 사람마다 틀리긴 한데, 이타미 준 건축의 정수로 풍미술관을 많이 꼽는다. 나무 벽에 지붕 하나여서 비건축가 입장에서는 별거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타미 선생의 건축적 방향을 제일 많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수미술관을 더 좋아한다.

 

건축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뎌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골 출신이라 문화적 접촉은 적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마당에 집을 짓는다면서 뚝딱 만들었다. 물론 슬레이트의 조악한 건물이었겠지만, “아 건축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다. 당시엔 주변을 바꾸는 경험이었다.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주변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봤다. 고등학교 때는 건축과를 간다고 했고, 만족감을 느낄 건 건축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건축가 김병수는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한다. 그래서 제주의 느낌이 강한 마을에 안착해서 살고 있다. 조진희
건축가 김병수는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한다. 그래서 제주의 느낌이 강한 마을에 안착해서 살고 있다. ⓒ조진희

제주에서 건축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주도는 육지와 땅이 다르다. 제주에서 건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제주도는 자연환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살아보니 비오는 날이 많고, 바람도 많이 분다. 그러기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외부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더라. 그래서 집안에만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준외부라고 불러야 할지, 비를 맞지 않고 바람도 피할 수 있는데 외부공간을 만들면 좀 더 제주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공간들이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해주리라 생각든다.

 

내가 사는 주변이 계속 개발된다. 중산간에 없던 건물이 들어서고, 조천읍 신촌리도 몇 년 사이에 내가 사는 동네보다 더 도시가 됐다. 지구단위 개발로 억제할 수도 있을텐데.

당연히 큰 건물이 들어서면 풍광은 훼손되지만 우리는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건축주의 상업성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극적으로 어떤 건물이 들어섰을 때 주변환경이랑 어떻게 어울릴까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주변에 조경이나 그런 걸 좀 확보해서 주변 풍광에 어울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구단위 계획을 얘기했는데, 전체적으로 제주도내 읍면에 대한 계획은 세워지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사는 화북(정확하게는 바닷가 마을)은 옛 풍광이 남아 있는데, 오히려 신촌리보다는 조천리가 더 예스런 풍경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아쉽다.

신촌초등학교 주변은 제주의 마을 느낌이 많이 없다. 과거의 마을은 모르지만, 조천만 가도 제주의 마을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리 동네만 발전이 안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옛 가치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건축도 유행이다. 현재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오랜 것에 대한 가치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우리가 잃었던 가치를 재조명하고, 오랜 건물과 오랜 마을에 대한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설득이 제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자본 논리에 따라 4층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마을이 망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큰 건물이 들어간다면 마을의 특징적인 풍경이랄까, 외부공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올레만을 보존하든지, 그것들이 지구단위 계획이나 건축물의 가이드라인으로 이야기되면 좋지 않을까. 쉽지 않겠지만.

결국은 상업성에 맞춰서 높은 용적의 건물이 들어가야 된다면 용적을 차지한 주변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10년이나 20년 흐르면 예스러운 풍경을 가진 마을이 뜰텐데, 어르신들이 그걸 참을 수 있을까.

올레가 예쁘다, 건물이 훌륭하다면 자산으로 지정해야 한다. 제주 건축자산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미약한 활동이지만 1945년 이전 건물을 포함해서 1988년까지 건물에 대한 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을 살리기 활동 등을 하게 된다면 기초가 되는 작업이다. 건축행정시스템인 세움터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준공연도 기준이며 공공시설은 1998년까지 대상이다.

 

매주 답사를 하나.?

요즘은 매일이다. 8명이 제주 건축자산 활동을 하는데, 1인당 3000개가 할당됐다. 항공사진을 보면서 고르고, 가서 사진을 찍고, 가치가 있는지를 보고 있다. 미래의 제주풍경을 위해서 살려야 할 것들을 고르는 작업이다.

 

굉장히 좋은 작품도 많겠는데, 사라진 것도 있지 않나.

있다. 작년만 해도 괜찮은 건물이었고, 실측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가봤는데 그 건물이 없더라. 사라진 그 건축물은 주택인데 돌로 담을 쌓고 테두리는 콘크리트였다. 장식적인 수직벽이 있는 건물이었다. 제주도 민가의 발전 단계에서 초기에 콘크리트를 들여와서 작업된 건축물이고, 모던한 평지붕을 얹은 돌담벽집이었다.

그런 경우는 왕왕 있다. 어쩔 수 없다. 강제할 수도 없다. 만일 가치가 있고 보존을 해야 하는 건축물이라면 건축주가 그 건물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형태로 진행이 돼야 하지 않을까.

 

제주 건축자산 작업이 마무리되면 그 중에서도 가치 있는 걸 고르고, 제주도만의 유산으로도 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조사를 하고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주 힘든 작업이다.

 

힘들어도 아주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고생은 하지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젠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자신이 제주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땅이나, 특정 포인트를 꼽는다면.

오랜 마을이 좋더라. 올레가 살아있는 마을, 돌담이 살아 있는 마을이 좋다. 고내리는 폭낭도 많이 살아 있다. 신촌리, 조천리, 온평리 등 이들 마을을 걸어 다니면서 빈집도 둘러보고, 올레도 보고, 너무 재밌다. 소중하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옛 마을과 옛길이 계속 남길 바란다.

 

- 1990년대 애월의 한 마을의 올레를 문화재로 지정을 하겠다고 했는데, 지역에서 반대를 했다. 나중에 그 마을을 가보니, 올레는 다 파괴돼 있었다. 문화재는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데, 왜 동네 사람들이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웠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더라. 최근 카페 트렌드가 오래된 건물, 구옥을 잘 다듬어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대부분은 육지 사람이거나 육지를 갔다와서 제주의 가치를 아는 제주출신들이다.

아직까지는 올레의 가치, 그런 제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문화활동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가치를 인식시키는 올레 사진전도 있을 수 있고, 관련된 건축이나 예술계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 건축자산 활동은 문화재 가치를 가진 걸 발굴하는 작업은 아니다. 문화재로 접근하면 거부감을 주곤 한다. “자산이니까 당신들이 잘 보존하면 우리가 인센티브를 줄게요라고 접근하면 살아날 가능성을 주지 않을까.

 

자기가 살고 있는 집앞의 가치를 인식하면 좋은데, 도로를 크게 내면 좋다는 인식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을 돌아보다 보면 결국은 차가 다니기 위해 길을 넓힌다. 그럼에도 올레의 풍경이 살아 있는 마을이 많다. 길을 넓히더라도 살릴 방법은 있다. 지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올레들은 1970~80년대 다시 쌓은 올레일 것이다. 아직도 올레 고유의 느낌이 살아 있으며, 제주다운 올레의 느낌이 읽힌다. 앞으로 삶이 바뀌더라도 지금의 올레와 마을풍경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오는지 고민을 해보자.

 

자기 주변에 대한 가치를 아는 게 우선이겠다.

건축문화의 가치에 대해서 건축주들이 모를 수도 있다. 당연하다. 그래도 조금씩 달라진다. 텔레비전을 켜면 집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드디어 건축문화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누릴 준비가 되는 단계에 왔다.

골목의 가치,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올레가 있고 폭낭 아래에 모일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못 알아봐서가 아니라, 그걸 알릴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때이다.

 

제주시는 차가 아니면 갈 수 없고, 주차장이 없으면 불편하다.

제주시가 사람다운 거리로 되려면 보행으로 가능하도록 묶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읍면에서 들어오는 차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광역주차장이 생기고, 제주시 내부에 트램을 도입하면 어떨까. 경제적으로 마이너스라고 하더라고 제주의 미래를 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차만 가득한 도시풍경을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도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제주도 사람은 잘 걷지 않는다.

걷지 않는 이유로 비바람도 들 수 있다. 비바람이 불 때 차에서 내려 건물로 가길 바라는데, 비를 피할 수 있는 구조환경 개선도 필요하겠다. 유럽처럼 비를 맞지 않고 걸어가도록 1층을 뒤로 밀릴 수도 있다.

 

건축가들은 도시의 중요 부분을 맡아야 하고, 건축물만 얘기하면 한정적이다. 건축가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각자마다 다를텐데, 제주도의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다. 원론적이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제주의 미래풍경, 미래주거, 미래근린생활시설,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아울러 제주다운 풍경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작업, 예를 들어 건축가사진동호회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알려주는 등 다양한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건축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존경하는 건축가를 얘기한다면.

한 명을 짚기는 그렇다. 이타미 준 등 모셨던 분들이 훌륭했고 많이 배웠다. 제주에 내려와서는 서울의 익명성과 다름을 알았다. 제주도는 연결된 사회이며, 건축가들간의 교류도 많고, 그들에게 배우는 게 엄청 많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변하는 이들도 있고, 제주도의 풍광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적인 헌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다들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 그런 분들이 고맙다.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기획

 

지역성. 단어는 쉽지만 풀이는 어렵다. 지역성은 대체 뭘까? 어느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인가? 그렇다면 전통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역성을 단순하게 전통성과 연결하는 건 맞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뭘까.

책은 지난 2012년 ‘김옥길 기념강좌 학술 세미나’의 주제를 책으로 엮었다. 책이 나온 건 2015년이다. 2012년 학술 세미나에서 제안된 내용과 건축가들의 글을 모아서 세상에 나왔다.

건축과 지역성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수많은 나라, 수많은 인종이 같은 집을 짓고 살지는 않는다. 나름의 건축양식이 있고, 나름의 건축기술이 있다. 그러나 국제주의가 틀을 잡으면서 세계 곳곳의 건축은 비슷해졌고, 그에 대한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름의 건축’에 대한 고민이 바로 지역주의였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는 ‘민족주의’인가. 그건 더더욱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이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지역은 또한 다르다. 지역이 전통과 동의어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

지역성은 ‘같지 않음’에 있다. 제주와 서울은 풍토가 다르다. 기온이 다르고, 바람의 세기가 다르다. 제주는 바다가 있고, 서울은 강이 있다. 서로 다른 지역임에도 비슷한 건축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지역성의 해석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실제 비슷한 건축물을 짓는 이들도 있지만,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건축물에 들어가면 지역성을 담고 있는 게 얼마든지 있다. 지역성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적 표현을 한다고 했으나, 박제화된 과거나 표피적 장식의 수준에 머물러 지역의 생동하는 속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역성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이승헌 글 ‘이중적 드러내기’)

책에는 많은 이들의 글이 담겼다. 이 중에 이승헌 동명대 교수는 지역성을 정체성의 확대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지역성은 옛것이 그대로 담겨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역은 ‘차이’를 드러내는데, 그 ‘차이’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서 발현하는 ‘지속’을 강조한다. 때문에 지역성은 이어온 가치만 고집할 것도 아니고, 전승적 가치를 팽개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역성에 매몰될 일은 아니다. 지역성은 건축을 행하는 기본적인 지향점이긴 하지만, 반드시 지역성을 담은 건축물을 만들어야 하는 결과물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책에서 유다은 이화여대 교수는 지역성의 관점을 세가지로 압축했다. 첫째는 지역의 땅과 지형, 도시적 맥락, 자연환경, 마을의 성격, 지역의 역사 등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담는 건축이어야 한다. 둘째는 문화적 배경, 사람들의 정서, 공동체적 의식 등이 건물을 설계하는 개인에게도 묻어나서 사유의 과정과 특수한 건축어휘, 축조방식 등으로 만들어질 때 발견하는 건축의 지역성이다. 셋째는 보편성의 큰 틀 안에 있는 다양성의 하나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여기서 물음을 던져본다. 지역성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아니면 미래인가.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는 과거의 건축을 할 수는 없다. 건축적 입장에서 지역성은 늘 현재여야 하고, 지역에 사는 이들의 현재의 삶을 잘 반영해서 미래의 해당지역 환경에도 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건축에 필요한 지역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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