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생존수형인 국가 상대 첫 손배소 ‘피해 입증·소멸시효’ 관건
제주4.3생존수형인 국가 상대 첫 손배소 ‘피해 입증·소멸시효’ 관건
  • 이정민 기자
  • 승인 2020.10.29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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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뒷받침 아닌 ‘기억 진술서’ 재판부 인정 여부 귀추
김세은 변호사 “객관적 증거 없다는 것 자체 국가 잘못”
재심 재판 ‘공소기각’ 확정일 기준으로 소멸시효 따져야
임재성 변호사 “과거 불법 피해 책임 국가가 대답할 때”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제주4.3수형생존인과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 29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이어질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피해 사실 입증과 소멸시효 여부가 가장 큰 관건이 될 전망이다.

1948년과 1949년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재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재심을 통해 인정받고 국가배상도 받았지만 손해배상 민사 소송은 또다른 문제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첫 재판에 참석한 4.3수형생존인 양근방(88) 할아버지의 경우 기자들과 만난자리에서 자신도 피해를 봤지만 아들이 ‘연좌제’를 겪었다고 말했다. 양 할아버지는 “내 아들이 1등으로 합격해서 제약회사에 들어갔는데 1년도 근무하지 못했다”며 “어느날 형사들이 아들에게 ‘너의 아버지가 4.3에 연관된 것을 아느냐’고 했다더라”고 이야기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4.3수형생존인 양근방 할아버지(왼쪽)가 29일 자신의 수형 생활로 인해 아들이 '연좌제'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운데가 4.3수형생존인 부원휴 할아버지, 오른쪽이 박동수 할아버지. © 미디어제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4.3수형생존인 양근방 할아버지(왼쪽)가 29일 자신의 수형 생활로 인해 아들이 '연좌제'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운데가 4.3수형생존인 부원휴 할아버지, 오른쪽이 박동수 할아버지. © 미디어제주

양 할아버지는 “나는 (4.3) 당시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운 기억이어서 형무소 생활을 한 것을 아들에게 말도 못했는데, 아들이 전화로 ‘회사에 못 다니게 됐다. 형무소 기록이 나왔다’며 펑펑 울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도 아들은 그 때의 고통과 후유증으로 직장도 못 다니고 거의 폐인이 됐다”고 토로했다.

부원휴(92) 할아버지는 1941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중학교를 다니다 군경에 끌려갔고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농업중학교에 갈 정도면 ‘엘리트’라고 불릴만한데 수형생활로 인해 삶이 망가졌다.

이 같은 피해는 대부분 진술 녹취로 재판부(제주지방법원 민사2부)에 제출됐다. 이들의 변호인은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 39명 중 20여명의 녹취 영상이 담긴 10기가바이트 분량의 파일도 제출하기로 했다. 서류로 뒷받침되는 증거가 아닌 예전 기억에 대한 진술에 대해 재판부가 피해를 입증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소멸시효 문제도 있다. 소멸시효는 일정기간 동안 권리를 행하하지 않으면 해당 권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국가채무의 소멸시효는 5년이고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는 3년이다. (과거사)진상규명사건은 진상규명결정으로부터 3년이다. 피고(국가) 측은 불법행위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주4.3수형생존인과 가(유)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첫 재판이 열린 29일 제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세은 변호사(왼쪽)와 임재성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제주4.3수형생존인과 가(유)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첫 재판이 열린 29일 제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세은 변호사(왼쪽)와 임재성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4.3수형생존인 등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해마루 김세은 변호사는 소멸시효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놨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언제부터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했느냐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유죄판결의 효력이 잘 못 됐다는 재심의 ‘공소기각’ 확정일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월 공소기각 판결이 나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며 확정됐기 때문에 아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충분히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오히려 이들의 피해를 입증할 기록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찾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국가의 잘못이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간첩조작사건이나 과거사 사건들에서 가족들의 피해를 진술서 등으로 제출했는데 인정된 바 있다”며 “이번처럼 오래된 사건에서도 충분히 피해 진술이 증거로 인정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함께 변호를 맡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도 “4.3수형생존인들이 얼마전(재심)까지만 해도 피고인석에 앉았는데 오늘은 피고인석에 대한민국을 앉힌 역사적인 날”이라며 “과거 벌어진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책임질지에 대해 국가가 대답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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