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9:15 (목)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은 언제인가?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은 언제인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10.29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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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관 개인전 ‘화양연화’에 부치는 글

가을이 깊어간다. 한여름 뜨거운 땡볕 아래 부지런히 광합성을 하느라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있던 나뭇잎들이 이제 초록을 벗고 있다. 자신의 색깔을 활활 드러내고 있다. 낙엽이 되기 전 나뭇잎이 자신의 색깔을 찬란하게 드러내는 계절, 어느 날 소식 하나를 받았다. 여고시절 미술 선생님의 전시회 소식이었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전시회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고시절 추억에 젖어들다가, 그러다가 우리는 마음을 모았다. 이참에 선생님 그림을 보러 제주도에 가기로 말이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춤을 출 만큼의 바람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오랜만에 맞는 고향의 바람도 좋고, 오랜만에 볼 선생님도 좋고, 선생님이 3년 동안 열심히 그리셨다는 그림을 만난다는 사실도 좋고. 그러나 전시장에 곧바로 갈 수 없었다. 저녁 시간인데다 날씨도 날씨인지라 택시 잡기가 어려웠다. 점점 전시장 폐관 시간은 다가오고, 택시는 잡히지 않고, 이러다 전시장에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가슴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고 전시장으로 갔다.

제주시 중앙로에 위치한 예술공간 <이아>에 들어선 순간 여전히 큰 키에 큰 손을 가지신 선생님이 큰 웃음을 지으시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열여섯 살 철부지 여고생들이 이제 나이 50이 넘은 중년의 모습으로 선생님 앞에 섰는데도 우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시는 선생님 덕에 순식간에 여고시절 미술시간으로 돌아갔다. 반가운 수다를 나중으로 미루고 우리는 서둘러 그림 앞으로 가 섰다.

<화양연화>란 부제가 붙은 그림들.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그림들에서 형형 색깔 찬란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동백, 능소화, 붉디 붉은 칸나꽃이 그림 곳곳에 흐드러져 있다.

선 굵은 선생님 그림의 특징은 여전히 그림 속에 살아있었다. 여고 때 선생님 그림을 보면서 신기하게 여겼던 검은 선. 선생님 그림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검은 선이었다. 꿈틀거리며 색을 가두기도, 흘러가게도 하는 것 같은 선이었다. 벽에 걸린 선생님의 그림들이 내게 물었다.

“당신에게 가장 찬란한 순간은 어느 때인가? 혹은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어느 때였는가?, 가장 찬란할 순간은 어느 때인가?”

그림들은 우리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 웃음 지으며 행복해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 앞에서 잠시 나도 웃음 지어 보았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행복하기도 하고 쩔쩔매기도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이 때가 나의 찬란했던 순간일까?

무언가에 몰두해 글을 쓰고 있는 듯한 한 여인, 선생님의 망중한. 그래, 이런 몰입의 순간도 좋지. 몰입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몰입하는 편인데. 그림책을 신나게 읽는다든가, 식구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할 때, 닥종이로 인형을 만들 때, 정리를 할 때...그렇게 몰입해서 무언가 하고 나면 뿌듯하다. 이걸로 인하여 내가 더 성장하고 빛날 수 있다. 선생님도 이런 느낌으로 몰입하는 모습들을 그리신걸까.

선생님의 그림들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았다. <퇴근길>, <새벽 인력시장>, <포스트 코로나>, <치열한 일상 속의 기쁨>, <삶의 뒷모습>. 우리가, 혹은 선생님이 마주하고 만난 여러 사람의 일상을 화폭에 담으시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생각이 무엇이든 그림을 통해 내가 보는 것은 따뜻한 시선이었다. 퇴근길 졸고 있는 사람들, 코로나 방역에 지쳐 잠시 쉬고 있는 모습들에게 선생님은 그림으로 위로를 건네고 계셨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다는 따뜻한 위로를.

'화양연화' 중 '삶의 뒷모습'
'화양연화' 중 '삶의 뒷모습'

<삶의 뒷모습>을 보면서 선 하나를 보았다. 앞에 펼쳐진 삶과 지나온 삶을 가르는 듯한 선이었다. 뒷짐 진 채 지팡이에 의존해 걸어가는 백발노인,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 못해 땅을 바라보며 삼선슬리퍼를 끌며 걸어가고 있는 이, 비닐봉지 두 개를 양손에 쥐고 걸어가는 한 중년사내. 당당히 어깨 펴고 가는 사람, 여러 사람이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림이다. 군상의 뒷모습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화려했던 때도 있었을 것이고 한 때 절망적인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온 삶은 과거. 우리는 항상 앞을 보며 걸어간다. 구부정히 걷든, 땅을 보며 걷든, 당당하게 어깨 펴고 걷든 우리는 앞으로 걸어간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치열한 일상 속의 기쁨>은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은 왜 찌푸리고 있는 거지?”

“돈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이 사람은 이제 무엇을 할까?”

치열하게 일을 한 후, 혹은 살고 난 후 성과가 있으면 기분이 좋지. 그게 돈이어도 좋고 정신적인 만족이 있다면 더 좋다.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내일은 분명 더 나은 성과가 있겠지 하는 희망이 있다. 그러니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보자는 선생님의 메시지가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것 같다.

한 남자가 잠들어있는 그림 <동백꽃이 떨어지던 날> 앞에 섰다. 빨간 동백이 툭툭 떨어져 있다. 사방이 동백꽃 천지다. 깊이 잠들어있는 이 남자를 이불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듯 동백꽃이 떨어져 있다.

<구운몽>의 성진이 떠올랐다. 성진은 꿈 속에서 양소유로 살며 인간으로서 누리고 싶은 걸 다 누리며 산다. 사랑, 명예, 돈 등 현실적 욕망을 누리던 성진이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이런 삶이 덧없음을 알게 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지만 꿈을 꾸기 전 성진과 꿈을 꾼 후의 성진은 다르다. 세속적 욕망으로 갈등하고 번민하던 성진이 꿈속에서 한바탕 그 욕망을 다 누린 후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나의 삶과 꿈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그림 속 잠들어있는 이 남자 또한 깨어나 생각할 것이다. 내가 꿈꾸는 삶은 진정 무엇이었던가 하고 말이다. 나도 그림을 보며 성진을 떠올리고 아이들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며 잊고 있었던, 혹은 내 속에 잠재워두고 있었던 꿈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봤다.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

<염원>이었다. 기도하는 여인네의 뒷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두 손 모으고 깊이 허리 숙여 기도하며 간절히 바라는 모습,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절하며 기도하는 모습에선 간절함과 경건함이 묻어난다. 무엇을 바라고 소원하는가. 무엇을 꿈꾸는가.

“앞으로의 10년이 나에겐 황금기란다. 직장 다닐 때는 즐거웠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아. 이제는 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가야지. 앞으로의 10년을 열심히 살아보려고. 화양연화란 주제가 내 그림 속에 담긴 건 그런 의미야. 이제까지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얻었고 나의 가족과 이웃들에게서 위로를 얻을 때도, 용기를 얻을 때도 있었단다. 지난 40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아름다운 10년을 만들어가길 꿈꾸어 본다. 여러 삶의 모습이 모여 꽃이 되는 그 순간. 그것이 ‘화양연화’가 아니겠니.”

빛이 꽃이 되는 그 순간. 삶이 꽃이 되는 순간. 이를 위해 간절히 바라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도 나이 50을 넘은 요즈음 선생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했던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온 지난 삶에서 나의 ‘화양연화’는 어느 때였을까. 사랑일 수도, 일일 수도 있다. 사랑으로 가족을 이루고 새로운 가족이 태어나고 가족 안에서 화려한 나의 삶을 꽃피웠을 수도 있다. 또는 열심히 일하면서 이루어낸 일의 성과가 화양연화가 될 수도 있다. 씨앗을 품었던 땅속에서 자라난 식물은 꽃을 피워낸 바로 그 순간이, 혹은 육신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가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 육신을 태우는 그 순간이 빛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화양연화의 순간일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깜짝 놀랐다. 수많은 스케치 작품들이 벽에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역시 그냥 그려지는 그림은 없구나.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반복해서 그린 스케치를 보면서 많은 노력이 모여야 하나가 완성될 수 있다는 삶의 법칙을 확인했다. 노력이 없는 성과는 없다. 바로 이 순간이 화양연화가 아닌가. 10년이 되었든, 20년이 되었든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지금 이순간.

그림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삶을 생각해보던 시간이었다. 여고 때 선생님과 제자로 만난 우리들이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겨 반백의 시점에서 만나 이야기와 그림으로 서로를 위로했던 시간들이었다.

잘, 열심히 살아온 지난 삶의 모습을 작품으로 그려내고 앞으로의 아름다운 삶을 새롭게 준비하시는 선생님의 화양연화를 응원하고 싶다. 더불어 나와 친구들의 화양연화도.

<글-제자 김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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