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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사람 냄새가 나는 건축을 해야 한다”
“건축가는 사람 냄새가 나는 건축을 해야 한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10.22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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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8> 건축가 오정헌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건축사사무소 의 오정헌 대표이다. 학업 때문에 제주를 떠났고, 서울에서 건축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고향에 내려왔고,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자신이 고교 때까지 살던 땅에 대한 애착이 많다. 바로 제주시 일도2동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고향이 있고, 고향이라는 땅은 늘 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소개해 준 책은 일본 건축 이야기을 담아낸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이다.

 


# 일도2동 – 그때 그 목수들은 다 어디로 갔나

사람들의 입에선 늘 고향 이야기가 나온다. 고향은 서로 다르기에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는 건 힘들다. 혹, 같은 고향이라도 내용은 다르다. 젊은이가 이야기하는 고향과, 어르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고향 이야기는 다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변한다. 유럽의 오랜 도심은 느릿느릿, 변화가 없는 듯 변하지만 우리나라의 삶은 정반대이다. 50년 전의 모습, 10년 전의 모습, 1년 전의 모습, 지금의 모습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기에 젊은이의 고향과 어르신의 고향은 중첩되지 않은 이야기를 낳는다.

제주시 일도2동 전경. 동지 '일도2동의 꿈'
제주시 일도2동 전경. ⓒ동지 '일도2동의 꿈'

오정헌 건축가가 꺼낸 제주시 일도2동은 과거와 현재의 접점이 이뤄진 행정구역이다. 그러나 오정헌 건축가에겐 과거보다는 현재에 대한 애착이 깊은 동네로 기억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도2동의 중심을 이루던 속칭 ‘인화동’으로 불리는 마을에서 살았기 때문일테다. 당시는 ‘구획정리’라고 불리던 토지개발이 이뤄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그 이전과는 뚜렷한 구분을 지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신·구’의 갈림길을 선택한 지점이 이 시기였다. 1960년대까지는 진짜 제주다운 모습이 가득했다면, 1970년대부터는 새로운 모습이 등장한다. 토지개발에 따른 갖가지 새로운 모습의 ‘양옥’이 등장하던 시점이다. 초가가 아닌, 양옥세대에겐 초가나 돌담의 기억이 새겨지진 않는다. 돌담 대신 블록이 등장하고, 지붕의 선도 달라졌다. 구불구불한 올레는 없고, 곧장 펴진 격자형의 그리드로 이뤄진 마을이 1970년대 이후의 모습이다.

일도2동 주택의 다양한 파라펫. 미디어제주
일도2동 주택의 다양한 파라펫. ⓒ미디어제주

특히 ‘파라펫’으로 불리는 옥상의 난간은 집마다 달랐다. 목수가 누구인가에 따라 파라펫이 결정된다. 이런 현상은 일도2동만의 특수함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등장한 건축엔 목수 자신만의 뿌리를 강조하는 파라펫이 널렸다. 다만 일도2동에 그런 모습이 많이 남은 건, 당대를 살던 이들이 여전히 그 땅을 지키고 있어서가 아닐까. 심지어 그런 파라펫의 풍경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오키나와에서도 목격된다. 제주도의 목수가 거기까지 갈리도 없었을텐데, 왜 비슷한 옥상의 난간이 존재할까. 그런 의문을 해보긴 하지만, 어쩌면 목수들은 세계 공통적으로 스스로를 예술가로 여기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그렸기에 비슷한 풍경의 파라펫이 나올 수 있었다.

변하는 걸 막진 못한다. 그러나 변화는 기억을 앗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억을 지닌 사물이 사라지면, 그 기억은 가슴에만 남다가 어느 순간 영원히 곁을 떠난다.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그런 기억의 집합체이다. 우린 기억을 계속 지워왔다. 늘 보고 지내던 근대건축물의 기억도 없애고, 이젠 1970년대와 80년대의 산물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남아 있는 건 기억에 없는 조선시대 건물과 최신식 유행을 담은 지금의 건축물 뿐이다. 헐어버리면 그만이지만 기억은 복원되지 못한다.

 

[대담] 건축가 오정헌을 만나다

 

건축사사무소 ’. 누군가가 부르거나, 혹은 감탄을 쏟아내는 느낌이다. 건축가 오정헌이라는 이름에 있는 가 아닌, 불러주길 바라거나 탄성을 뱉는 그런 !’인지도 모른다. 건축은 일상이며, 곁에 있어야 하기에 는 성씨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른 아침 그를 만났다. 그가 추천한 소설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들고서.
 

소설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재밌게 읽었다. 이틀 걸린 것 같다. 그만큼 재밌는 책이다.

처음엔 기대를 안하고 봤다. 서울에서 잠깐 일을 도와주러 온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줬다. “설계사무소를 다닌 사람이 쓴 게 아닐까생각이 들 정도로 디테일해서 깜짝 놀랐다. 설계경기 때 진짜 들었던 말이 나오고, 일본의 설계에 대해서도 디테일하게 묘사됐다.

 

책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과는 다르다. 집을 짓는데 건축가가 모든 걸 맡아서 한다. 건축가가 사후관리도 해주고 있다. 정말 일본은 그런지 궁금증이 들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건축도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그런 구조가 안되기 때문은 아닌가.

그런 면은 신선했다. (오정헌 건축가는 자신의 사례를 들면서 소설처럼은 아니지만 건축 이후에도 교감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건축주랑 밴드를 활용하곤 한다. 주택을 지은지 1~2년이 지나서도 밴드로 교감하곤 한다. 밴드는 건축주와 나, 시공자가 건축 시작부터 참여한다. 올해 태풍이 오고 나서 밴드로 소통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그렇게들 많이 한다.

 

제주에는 어떻게 내려오게 됐나.

제주 출신이고, 육지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렇지만 고향 제주는 명절에만 왔다. 서울에서 회사만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도착한 고향 제주도는 너무 바뀌었더라.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제주에서 오픈하면 기회가 빨리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울에서 열심히 했을 때와 제주에서 열심히 할 때가 다를 것 같더라.

 

서울 사무소엔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작품을 만들지 못할텐데. 내려와서는 건축가가 됐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지.

건축가라는 단어는 쑥쓰럽지만 주택을 설계할 때 그런 느낌을 받는다. 주택은 1년이 걸리는데, 1년의 과정이 다 남는다. 그래서 ~ 이 맛에 하는구나라고 느낀다.

 

왜 개인주택이 매력적일까.

주택은 가족이 평생 한 번 살 곳을 마련하는 공간이다. 현재와 미래, 자녀에게 과거가 될 수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맞추면서 산다. 설계를 하며 상대방의 기대에 찬 표정, 공사를 시작하고 진행되는 과정이 담긴다. 현장도 자주 가는데 내가 구현하는 걸 현장에서 많이 배운다. 컴퓨터에서 배우는 것이랑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40대에 자기 주택을 가지면 좋다고 본다. 집은 기억을 쌓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살던 기억들이 쌓인다. 집을 짓는데, 건축주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100점짜리 집이 아니라 70에서 80%만 우리 건축가가 채워주고 나머지는 생활하면서 바뀌고 그 안을 채워가게 된다. 관리하면서 집은 변형하게 마련이다. 당장 예산이 적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20대와 40대의 설계는 다르다. 40대는 아이와 같이할 공간을 많이 요구하고, 20대는 자신들이 만질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요구한다.

 

- 40대 때 건축주가 되어 봤는데, 부모님이 혼자 되었을 때를 고려해서 설계를 하게 되더라.

내겐 90대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다. 핸드레일을 계단에 만들어드렸는데, 연령을 고려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지 생각이 들더라. 어르신들에겐 한 단이 그렇게 높은 줄 몰랐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으며 잊고 있던 걸 찾았다. 바로 사람에 대한 고민이다. 책에는 별게 아닌데도 설계를 수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건축가 역량은 최고 수준이다. 예전은 제주에 대한 정체성 얘기도 단순했다. 요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집어넣더라. 제주다움은 뭘까?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이다. 일도2동에 살았는데, 제주를 잊고 지내왔다. 막상 내려와서 디자인을 하다 보니까 제주다움에 대해서는 솔직히 공부가 안되어 있었다. 아는 것이라곤 돌담이나 그런 것이었다. 제주를 배우려고 제주건축문화연구회를 시작했다. 제주다움은 뭘까?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적절한 표현을 찾진 못하겠지만 될 수 있는대로 가능한 범위내에서 뭔가를 만들어내 살아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제주사람들은 있는 것을 잘 활용했고, 환경이 거치면 거친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오정헌 건축가. 그는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제주사람들에게서 제주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오정헌 건축가. 그는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제주사람들에게서 제주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건축쪽으로 제주다움을 들여다본다면.

아직은 삶에서만 파악했다. 한라산이 주는, 그런 추상적인 것 같다. 집은 제주사람이 사는 방식에 맞게, 필요하면 넓히고 필요하면 줄인다. 집이 좁은 지역도 있고, 넓은 지역도 있다. 다들 환경에 맞춰서 그때 끄대 순응하면서 산다. 그게 제주다움이 아닐까. 제주는 허술하면서도 강인한 매력이 있다.

 

제주에도 지역이 서로 다르다. 제주시 연동이 다르고 건축이 있는 시민복지타운, 화북 바닷가가 다르다. 연동은 서울처럼 휘황찬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세련되게 만드는 지역도 필요하다. 제주도는 지역마다 다른 식의 접근방식이 있어야 한다.

 

바닷가는 필지도 적고 큰 건물을 짓기가 그렇다. 그런 곳은 땅을 존중해야 할텐데, 제주도라는 땅이 가진 의미와 가치는 뭘까.

제주도의 자연경관이야 너무 훌륭하고, 그림 같은 공간이다. 누구나 부러워한다. 여기서 프로젝트를 하는 게 평생 소원인 사람도 많다. 사이트가 깡패라는 말을 한다. 뭘 지어도 제주에 거스르지 않고 과하지만 않으면, 서울 청담동에 어울리는 것만 갖다 놓지 않으면 되고, 조금만 고려해도 훌륭한 건축이 된다.

건축을 할 때 건물은 여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건물이 여백이 되는 곳이다. 서울은 건물이 여백이 되어주지 않는다. 꽉 막혀 있다. 제주도는 사람도 여백이 있으며, 건물도 여백을 만들어준다. 건축가들에겐 너무나 꿈에 그리는 곳이다. 정말 행운이다.

 

특히 좋아하는 곳이 있다면.

제주도는 그런 스팟이 너무 많다. 동네가 좁은데도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준다. 그래서 너무 좋다. 그런 장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그건 건축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내 생활권은 구도심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도2동이다. 아주 매력적이다.

 

어떤 부분이 매력적인가.

동네의 작은 디테일, 동네 목수들이 너무 재밌는 걸 많이 했다. 제주의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돌담이나 그런 것일텐데, 내겐 그런 쪽에 시선이 가진 않는다. 1970년대와 80년대 지어진 구옥이랄까, 일도2동에 많다. 1층에 살짝 기와를 흉내낸 옥상이 있고, 파라펫(난간의 일종) 난간의 모양이 다 다르다. 그걸 구해보려 했는데 나오질 않는다. 유사한 것으로 디자인 블록이 있는데, 그 맛이 나오질 않는다. 일도2동은 파라펫을 구경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예전과 비교하면 동네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양쪽에 주차를 하고, 담장도 생기면서 전의 풍경들이 사라졌지만, 시간의 흐름만큼 그때그때 보수하면서 변경된 집의 변화들이 동네를 다채롭게 만든다. 다른 지역은 개발이 진행되면서 그런 색이 많이 사라졌지만, 일도2동은 주택이 많이 남아 있어서 너무 매력적이다.

 

잘 남아 있는 이유라도 있을까.

여기는 주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일도2동이 좋은 점은 자연사박물관이 있고, 문예회관, 신산공원. 안개 낀 사라봉, 학교도 많다. 지금도 매력적이다.

 

조금만 이동하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은 이점도 있는 지역이다. 굳이 다른 곳에서 살 필요가 없는 점도 작용했겠다.

이런 기억을 제주 사람들이 알고 있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젠 그 마저도 낡았다고 생각할텐데.

남기고 싶다.

 

한곳에 계속 살던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집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도 있다.

나는 싫은데 남들은 매력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앞으로 건축가의 역할을 어떻게 보나.

역할이 바뀔 것이다. 정보화 시대라서 뭐든 과잉 상태이다. 누구나 쉽게 플랫폼을 통해 집을 짓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이라는 본질에 접근을 해야 한다. 건축가는 삶에 대한 접근을 해서, 함께 방향을 잡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전엔 건축을 프라블럼이 있으면,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지금은 그게 아니고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의 기억을 만들고, 기억이 될 만한 걸 만든는 사람이다.

모던은 세련되고, 도회적이고, 도시적으로 느껴지지만 이제는 모던이 차갑다거나 정이 없다는 말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정이 넘치는 시대가 아니니까, 지금처럼 철저하게 물질화된 시대에는 오히려 사람 냄새나는 직업으로 가야 된다. 건축이라는 직업자체가 감정노동이 된 게 아닐까.

 

제주건축문화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도심을 많이 둘러봤을텐데, 도시재생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다.

내 위주로 해석한다면 키치하고, ‘스낵적인 접근을 해보이고 싶다. 젊음과 에너지가 넘치는 연령층이 와야 동네가 살아나리라 본다. 그게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키치하고 스낵적이고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고 올 수 있는 걸 만들어야 한다.

재생은 유휴지를 봐야 한다. 한국의 건물을 파스텔 시티라고 한다. 마감재를 정면만 붙이고 뒤에는 페인트칠만 한다. 그런데 그 색이 뒤에서 보면 너무나 각양각색이다.

 

파스텔 시티는 좋은 말일까. 나쁜 말일까.

가능성에 대한 얘기다. 앞에만 마감재를 붙이는 게 어디 있냐고 말을 하는데, 생각해보면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다. 유희적으로 파스텔 시티라고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구도심에 빈 땅이 많다는 뜻이다. 혹은 빈 시설, 지금은 없어진 우체통이 있던 자리, 현금인출기가 있는 점적인 요소, 스팟적인 요소들.

동문시장 호떡가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중앙로 코리아극장 자리, 이아 근처에 약간의 스팟들. “여기가 무슨 자리였어라며 표지석을 세우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도시의 여백을 칠하는 작업으로 도시재생을 접근하면 어떨까.

 

도시재생의 다양한 방법이랄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해외에서는 연속적이 아닌, 이벤트 형식의 행위가 이뤄진다. 그런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과한 얘기긴 한데 대지미술을 하는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있다.

(오정헌 건축가는 직접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렇게 베를린의사당에 천을 씌웠다. 은유적으로 존재하지만 천을 씌움으로써 존재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바체프는 프랑스 퐁네프 다리에도 작업을 하고, 대지에도 천을 씌워서 작업을 했다. 존재하는 곳을 비일상적인 곳으로 만드는 역발상적 랜드아트를 한다. 자바체프가 대지미술을 하는 그 순간 활성화가 확 된다. 예술작품이라고 영원할 필요는 없다. 잠깐의 기억이지만 동네에 다른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일상의 경험을 잠깐 바꾸는 것. 하나에만 집중하는 도시재생은 오래 걸린다. 그건 그렇게 하고, 키치한 것은 토치에 톡톡톡 불을 붙이듯이 점적으로 해보자. 점적으로 하면 연속성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연속성을 지닌 도시재생은 다른 분들이 하고 있으니까, 나는 쿡쿡 찌르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건축가 역할도 달라지고, 도시재생도 달라질테다. 한 스팟을 고치면서, 그걸 활용하는 쪽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그러면 사람들이 와서 즐기면서 고치고, 그걸 보고 주변에 또 누가 들어와서 고치고. 도심도 알아서 자연스레 바뀌지 않을까. 지금은 국가차원의 도시재생을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작게 작게 신호를 줘야 한다. “~” 하고 만들고 나서 와서 해보라가 아니라, 작은 단위의 신호를 줘서 꾸준하게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관심만 가지게 하지 말고, 소비를 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쁜 것 가져다 놓았다고 해서 한번 보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게 아니라, 생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주고 불씨를 살려주면 되지 않을까.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데, 아직도 깡그리 없애고 짓기만 원한다. 일부 도시재생 지역은 여전히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있다. 아직도 도시재생에 대한 인식은 더디다. 사람이 사는 개개인의 공간이 낡으면 쓸어내고 대규모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부동산적 접근이 너무 심하다. “도시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내 땅이니까 내 땅이 비쌌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 모두가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자기 땅에 대한 건축물도 중요하지만 주변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서귀포시 우회도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행정은 도로를 내려고 땅을 샀다. 땅을 샀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도로로 추진하지 말고, 녹지화를 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서귀포만의 녹지로 만들고,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든다면.

광장은 중요하다. 서울광장이 있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 사회적 의견을 표출하게 된다. 차도는 언젠가는 생명을 다한다. 지금 불편하니까 늘리자? 그건 아닌 것 같다. 제주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좀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몇 분 빨리 간다고 해서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일본 건축이 세계적으로 명망을 얻는 이유는 뭘까.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1979년부터 선정됐는데, 일본은 단게 겐조(1987년 수상함)를 시작으로, 지난해 수상자인 이소자키 아라타까지 모두 7명의 건축가가 이 상을 받았다. 프리츠커상은 우리에겐 너무나 먼 미래로만 보인다. 일본은 우리와 반대로 너무 쉽게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낸다.

프리츠커상이 세계 건축의 모든 걸 대변하진 않겠지만, 최소한의 가늠자임은 분명하다. 당대 건축의 흐름이 녹아있거나, 건축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이들에게 주는 상이 프리츠커상임엔 변함이 없다. 세상을 바꾼다는 건 완전한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를 주기보다는, ‘인간’ 냄새가 풍겨야 한다.

어쩌면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책은 여름철이면 별장으로 사무소를 옮기는 건축사사무소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인 마쓰이에 마사시는 건축사사무소에 오랜 기간 일을 한 사람마냥 집 이야기를 책에서 자세하게 풀어내니, 신기할 따름이다.

책의 주인공은 젊은 청년 건축가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무라이설계사무소’를 이끄는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이다. 건축가 무라이는 미국에서 주목을 받았던 요시무라 준조(1908~1997)라는 건축가를 모델로 하고 있다. 요시무라는 196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건축 전시를 했다고 하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록펠러 3세의 저택 설계를 의뢰받기도 했다. 요시무라의 반대되는 건축가로는 단게 겐조가 꼽힌다. 단게는 일본 첫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책에서는 후나야마 게이이치라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책은 두 건축 거장의 경쟁일까? 아니다. 단게 겐조로 묘사되는 인물은 아주 적게 나온다. 책은 요시무라 준조를 닮은 무라이 슌스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라이는 튀는 건축을 하지 않는다. 자기과시욕도 없다. 시대 흐름에 매몰되지도 않는다. 그의 건축 핵심은 사용하기 편리하고, 사람을 담는 건축에 있다. 여름에만 옮기는 별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섯 번의 증개축이 이뤄진다. 주택건축 스터디를 위한 모델하우스 개념이다. 그러고 보면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의 실험주택인 ‘무라찰로’를 닮았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건축가들은 갖가지 실험을 하며 건축주에게 집을 선물한다. 잘된 집은 뭘까. 무라이는 책에서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성공인 거지.”

책은 ‘나’로 표현되는 젊은 건축가 사카니시 도오루가 설계사무소를 찾아오고, 국립현대도서관 현상설계에 도전하는 과정, 설계경기에 앞서 무라이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무라이설계사무소는 국립도서관 현상설계에 실패한다. 이후 설계사무소는 해체되고, 여름별장은 무라이 동생에게 넘겨졌다가 ‘나’에게 온다.

소설은 아주 디테일하다. 여름별장이 그려질 정도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는 느낌도 든다. 여름별장을 인수한 사카니시는 거의 30년만에 별장을 들른다. 거기엔 아크릴에 감싼 국립도서관 모형이 있다. 건축의 생명은 뭘까. ‘나’는 다음처럼 읊조린다.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나는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은 이용객과 그 시대에 의해 숨결이 부여되고 살아난다. 지나간 세월은 이 모형에 사소한 숨결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플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선생님 플랜에 생명이 불어 넣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책은 근대건축의 거장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보다는 스웨덴 건축가인 군나르 아스플룬드(1885~1940)에 더 끌리게 만든다. 책은 아스플룬드의 작품인 ‘숲의 묘지’를 자주 등장시킨다. ‘숲의 묘지’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인간의 건축을 강조하지만 단순한 기능이상의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그게 뭘까. 인간 영혼의 동반자?

건축은 준공 이후에 생명을 얻고 난 뒤에 기억이 중첩된다. 건축이 인간 영혼의 동반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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