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바다는 하늘보다 넓을지 몰라"
"제주의 바다는 하늘보다 넓을지 몰라"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10.17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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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시민강좌 - 제주시 원도심, 영화로 말 걸다 제5~6강

제주가 특별한 이유, 영화 '계춘할망'으로 느껴보기
"바다가 내 우주처럼 느껴지는 순간, 제주의 특별함 알 수 있어"
제주의 바다.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제주는 특별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는 쉽다. 누구나 쉽게 “그렇다”고 답할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이어지는 질문. “제주는 왜 특별할까”.

“제주는 땅이 특별하고요, 그로 인해 만들어진 삶의 문화가 특별합니다. 또 오름과 돌에 깃든 문화도 제주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제주대학교 김태일 교수

10월 17일 오후 2시 열린 ‘2020 제주시 원도심 시민강좌 – 제주시 원도심, 영화로 말 걸다’ 5~6회차 강연을 맡은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김태일 교수의 말이다.

이날 강연의 주제는 아주 명료하다. ‘제주가 특별한 이유’를 저마다 찾아보자는 것이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바다. 아마도. 게다가 모든 것을 물들이는 녹청의 색조.
제주에는 좀 더 강한 감정이 스며 있다.
세계의 끝. 기지의 것이 끝나는 쪽의 문, 태평양의 무한함과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가장 넓게 뻗은 대륙의 받침 그사이에 서 있다.”

-르 클레지오의 ‘제주 찬가’ 중 발췌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ézio)’는 4개월 동안 제주에 거주하며 ‘제주 찬가’라는 글을 집필한다. 그 또한 제주에 살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주에 깃든 특별함을 느꼈으리라.

“르 클레지오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로, 제주 방문은 상을 받기 전,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에 1년 동안 거주하면서, 그중 4개월을 제주에서 보냈는데요. 특히 제주 사람들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를 ‘제주 찬가’에 담았습니다.” /제주대 김태일 교수

“제주 사람은 늘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고기를 제공하고 뗏목을 제공한다. 외부의 침략이 시작되고, 파괴적인 태풍이 오는 것도 역시 바다로부터다.
바다와 죽음의 이상한 근접. 여행자를 감싸는 우수의 감정이 태어나는 곳이 여기다. 진실하고 충실하고 환상적인 제주, 모든 계절에 그렇다.”

-르 클레지오의 ‘제주 찬가’ 중 발췌

제주에 오면, 여행자들은 공통된 경험을 하나 한다. 왠지 모를 우수에 젖는 것이다. 아름답지만 황량한 바다를 보며 외로움을 느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느 중산간 숲속을 걸으며 자연의 따스함에 푹 빠지는 이도 있다.

“제주는 지리적 요건에 의한, 물리적인 특별함도 있지만요. 제주 안에 깃든 정情, 한恨… 이런 감정들을 적절하게 조절해오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특별한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께, 제주도가 가진 특별함의 원천을 이해할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태일 교수

이어 김 교수는 제주의 특별함을 망각한 사람들이 저지른 만행(?)이 있다며, 사진 한 장을 보였다.

세화리 용천수가 나오는 노천탕을 헐고 있는 공사 현장.

위 사진은 김 교수가 직접 찍은 것으로, 세화리에 있는 용천수 노천탕을 헐고 있는 공사 현장이다. 그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남탕을 즐겨 찾았다고 했다.

“몇 년 전, 답사를 가보니 이곳 용천수 노천탕(남탕과 여탕)을 철거하고 있더군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나중에 다시 가서 보니 새것을 만들어 놨더군요.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옛것을 철거하고, 잘 가공한 새것을 세우는 것만이 좋은 것이냐. 이건 아니라는 거죠.” /김태일 교수

‘옛 노천탕’ 자리에 새로 만들어진 ‘새 노천탕’. 그런데 이들 노천탕의 바로 옆, 옛것임에도 새것으로 교체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할망당’이다.

“할망당을 허물기는 겁나니까. 훼손하면 혹시나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해 그대로 둔 것이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같은 돌로 만든 것인데. 같은 돌이라도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 있고, 가벼운 존재로 다뤄지는 것들이 있는 거죠.” /김태일 교수

김태일 교수가 직접 헬기에서 찍은 제주의 밭담 풍경.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 하나라도, 의미를 심고, 소중히 가꾼다면. 그 돌멩이는 더는 가벼운 존재가 아니게 된다.

우리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쉽게 부수고, 허무는 것들도 그렇다. 돌, 담, 나무, 건물, 길… 남은 제주의 옛것을 소중한 추억이 깃든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허물어 없앨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렸다.

“땅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 많이 개발하는 것보다는 적게 개발하는 것. 땅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존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제주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들이죠. 우리는 이를 잘 알고, 제주가 계속해서 특별한 곳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김태일 교수

강연을 찾은 가수 이성원 씨가 영화 상연 전, 깜짝 공연을 선보였다.

강연이 끝난 뒤 이어진 영화 상영. 이날의 영화는 ‘계춘할망’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할망(조여정)은 손녀(김고은)에게 질문을 하나 한다.

“바다가 넓으냐, 하늘이 넓으냐.”

손녀는 말한다. “당연히 하늘이 넓죠.”

이어지는 할망의 말.

“이제 네가 다 큰 모양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고, 낫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라. 할망이 모든 거 다 해줄 거야.“

바다보다 하늘, 우주가 넓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때론 머리로 답을 내린 ‘정답’이 아닌, 마음으로 답을 찾게 될 때가 있다.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제주의 바다.

영화의 끝에서, 손녀는 할망의 바다같은 사랑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한다.

"바다가 더 넓죠. 바다가 하늘을 품고 있잖아요."

모든 것을 품어주는 바다가 내 우주처럼 느껴지는 순간. 하늘보다 바다가 넓게 느껴지는 순간. 그 순간을 느끼게 해 주는 제주는, 그래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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