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가 말한다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
팽나무가 말한다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9.28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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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 사진집 ‘폭낭’ 펴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팽나무. 열매는 ‘폭’이다. 마을 어귀엔 늘 팽나무가 있었다. ‘폭’이라는 열매가 달리기에 제주 사람들은 팽나무를 ‘폭낭’이라 불렀다.

팽나무는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쉬기도 하는, 그런 장소를 제공했다. 팽나무는 마을 어귀에도 있지만, 신당을 점유하는 신목의 역할도 했다. 그러고 보니 팽나무는 마을을 지켜주고, 제주 사람들의 마음도 지켜준 나무였다.

안타깝게도 그 많던 팽나무는 하나 둘 사라졌다. 숱한 개발에 하나 둘 스러졌다. 그렇게 스러진 나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백 년 이상, 아니 수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을 곁을 지키던 나무를 만나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우리 세대엔 마을을 지키고, 신당을 지키던 팽나무를 다시 만날 수 없다.

기억은 ‘실존’할 때라야 힘을 얻는다. 모든 게 사라진 상태에서, 마음의 한 구석에 남는 기억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다. 다행히도 팽나무에 대한 수많은 기억을 지니라며 누군가가 책을 선사했다. 바로 강정효 사진집 <폭낭>(글·사진 강정효, 한그루에서 펴냄)이다.

<폭낭>은 ‘제주의 마을 지킴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폭낭>은 ‘신목’의 기능을 지닌 폭낭, ‘4·3의 기억’을 담은 폭낭, 팽나무 아래 쉼터를 준 ‘댓돌’로서의 폭낭을 이야기한다.

책의 작가노트를 보면 팽나무의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는 내용이 있다. 작가는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라면서 ‘폭’이 열리기 때문에 ‘폭낭’이 맞지 않느냐는 주장을 한다.

그나저나 팽나무는 사라진다. 아니 폭낭은 사라지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바로 개발이다. 작가는 사라지는 나무를 보며 다음처럼 얘기한다.

“마을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신당들도 최근의 개발바람 앞에 속절없이 훼손되고 있다. 도로개설 또는 주택건설 등의 이유로 신당이 사라지고, 신의 형체라 할 수 있는 신목은 노쇠화에 따른 고사 등으로 원형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탐욕에 신들도 쫓겨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들의 정체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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