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도 참여설계 등의 방법을 들여와야”
“공공건축도 참여설계 등의 방법을 들여와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9.03 15: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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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5> 건축가 권정우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의 권정우 대표이다. 서귀포 출신이지만, 제주시 원도심에 꽂혀 활동하고 있다. 애착 있는 땅을 물었더니 어느 땅을 지목하진 않았다. 그가 소개한 책은 다소 난해한 <인간과 풍토>이다.


# 땅을 바라보는 관점

건축가 권정우를 좀 안다. 만난 햇수로 따지만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육지부로 도서관 탐방을 함께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그날은 제주도서관이 주최한 ‘길 위의 인문학’ 공동 강사로 참여한 날이었다. 권정우 건축가를 향해 제주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땅을 물었더니, 땅이 아닌 사람 이야기가 먼저였다. 난감하다. 땅 이야기를 해줘야 편한데 말이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게 직업이니, 땅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사람은 건축가 김재관이다. 내가 익히 아는 인물이다. 20년 전 두세 번 만났다. 그 이후로 서로 연락은 없지만. 건축가 김재관은 강정교회를 설계했고, 지금은 집수리 건축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내놓고, 지난해는 <수리수리 집수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하여튼 그는 괴짜에 속하는 인물이다.

왜 땅이 아닌, 김재관을 얘기했을까. 건축가 권정우는 김재관 밑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찾아간 적이 있다. 받아주진 않았다고 한다. 김재관 건축가가 소장으로 있던 ‘무회건축’에서 일을 하진 않았지만,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땅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고민 상담을 하러 김재관 소장을 찾아갔다. 평탄한 땅이 아닌, 경사도가 있는 땅에 건축을 하는 작업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털어놨다. 평탄하게 밀 것인지, 아니면 지형을 살릴 것인지. 다른 사람이 건축작업을 하면 평탄하게 밀어버릴 것 아닌가라는 고민도 함께.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지만, 우선은 땅에 들어선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건축물은 땅의 주인처럼 행세한다. 애초의 주인은 땅이었지만, 그 땅을 밟고 선 건축물이 주인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땅은 망가진다.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건 집이 아니라 땅, 곧 자연이어야 할텐데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다. 김재관 소장을 찾아간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자칫 땅이 주인이 되지 않고, 건축물이 주인이 된다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땅은 스스로 변화를 해왔다.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조금씩 변한다. 풍화나 침식 등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 배웠던 그런 활동으로 자연은 변한다. 더 큰 변화는 지진이나 화산폭발이 있겠지만, 우리 생애엔 그와 같은 지형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살짝 기대를 해본다.

자연은 드러나지 않게 변해왔지만, 인간은 자연을 눈에 띄게 변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마음대로 건축물을 얹히고, 마음대로 산야를 깎고, 길을 낸다. 녹지는 사라지고, 콘크리트만 남는다. 기술문명이 가져다 준 혜택이면서, 자연에겐 아픔으로 작용한다. 인간의 그런 활동은 지구를 멍들게 하고 있다. 친환경을 외치지만 소리를 들릴 듯 말 듯 하다. 애써 본체만체하는 게 인간이다.

땅은 아파도 뭐라고 하질 못한다. 대신 더 커다란 자연재해로 맞설 뿐이다. 땅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주인 행세를 할 날은 과연 올 수 있을까.

 

[대담] 건축가 권정우를 만나다

건축가 권정우의 건축사사무소. 그가 설계한 봉원빌딩 7층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만나자마자 <음예예찬>이라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음예예찬>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글이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보이지 않는, 가려진, 어두컴컴한, 그런 공간이어도 어딘가에 빛은 떨어지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로 보인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지만, 우린 그걸 받아들이고 승화시켰다. ‘을 달고 산 게 우리 인간 아니었던가. 그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옮긴다.

 

시작해보자.

<음예예찬>이라는 책이 있다. 제주 민가, 할머니가 살던 집이 그런 느낌이다. 어둠에서 빛이 하나 떨어지는 그런 초가의 느낌을 알거다. 어릴 때 그런 경험은 다 있지 않은가. 제주 초가는 덧문을 닫으면 캄캄하다.

제주 건축은 현대에 와서는 형태로만 말한다. 재료적인 것이거나. 그런 담론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어떤 게 제주적인 것일까라는 고민이 든다.

 

제주북초 김영수도서관. 건축가 권정우 작품이다. 미디어제주
제주북초 김영수도서관. 건축가 권정우 작품이다. 미디어제주

- (그가 정해준 책 이야기로 옮겨갔다.) 와쓰지 데쓰로의 <인간과 풍토>를 추천했는데, 이유라도 있나.

기사를 하나 봤는데 서울 강남 재건축이 난리 아닌가. 저항하는 집을 지었다는 글을 봤다.(소설가 김훈이 얼마 전에 쓴 기사가 있다.)

 

저항이라니?

집은 뭔가 보호하려고 지었다. 동물이나, 기후나. 그런 저항인가 생각했는데 김훈은 그게 아니었다. 김훈이 말한 저항은 물리적 저항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기 위한, 그러니까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힘? 그걸 저항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 저항이 어떤 측면을 보면 자기를 위한 게 아니고 남을 위한 게 될 수도 있다. 집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유현준 교수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중산층에서 더 위로 가려는 욕망이 가득하다. 이건 인간의 본능이다. 역사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다.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국가나 종교가 제어할 수 있지 않다. 유현준은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참고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럼 제주는 과연 어떤 집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전에는 형태적인 것이나 재료적인 것을 제주적인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타미 준이 그런 면에서 잘 된 건축물을 만들어내서 인정받고 있다. 과연 우리 풍토에 어울리는 집은 뭘까.

 

건축가들이 그런 고민을 했겠지만 현실적으로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까 제주 풍토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접은 건 아니었을까.

최근 10년 사이에 부동산이 급상승했다. 그런 류의 고민을 할 좋은 기회였는데, 역설적으로 우리는 뭘 했는가를 질문을 해보면 더 안좋은 시대의 건축을 만들어버렸다.

 

풍토와 땅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권정우 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 대표. 미디어제주
풍토와 땅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권정우 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 대표. 미디어제주

물량이 늘어나니까 돈을 버는 것에만 집중했나? 지금은 몇 년 전 광풍은 사그라들고 일거리도 줄고 있다.

지금은 공공건축물 현상설계를 하는데 엄청 과열돼 있다. 얼마전 30팀이 접수한 현상설계도 있다. 우리가 공공성을 위한다는데, 더 안좋은 케이스를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30팀이 접수를 했으면 직원 둘 셋을 데리고 한달간 뭔가를 해야 한다. 그건 다 비용이다. 한팀만 따져도 한달이면 돈 천만원이다. 30팀이면 3억이라는 돈이 없어진다. 2억의 공공재를 소득하기 위해 엄청난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 경우이다. 이게 올바른 선택인가? 다른 방법은 없나? 다른 방법은 또 이야기를 안한다.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 것 같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설계한 건축가가 감리도 못하고, 설계의도구현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지어지는 공공건축물 가운데 멀쩡한 땅을 없애고 건축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권정우 소장은 지하주차장 때문이란다.) 사람이 먼저지 왜 차가 먼저인가. 오히려 정책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제주도가 사람 위주의 도시를 선언하면 좋겠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린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 자동차가 먼저이다. 작은 올렛길도 없애려 한다.

 

정책 하는 사람들이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도로 가운데 봉을 세운다. 사람이 건너가지 못하게. 어쨌든 사람들의 무단횡단이 문제이긴 한데, 굳이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통제한다는 느낌이다. 차가 다니는데 왜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느냐, 그런 관점에서 봉을 세우는 건 아닌가. 사실 도로 중앙을 차지한 차단봉은 도시경관을 해친다.

사람이 다니기에 좋은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내가 저쪽으로 가야하는데 가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가 된다. 중앙로엔 횡단보도도 없다.

 

중앙로 횡단보도는 계속 얘기는 나오지만 그렇게 하면 지하상가가 망한다고 한다.

지금은 2020년이다. 인권에 대한 문제이다. 사람이 걸어가는데 최소한 횡단보도 등의 장치는 있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한다는 건 제주도 현재 의식 수준의 모습이다.

 

길은 가변적이다. 전방에 가면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돼 있다. 그건 위험해서이다. 인간은 여기도 가고, 저기고 가고, 풀밭을 가면 길이 생긴다. 여기만 길이니까 가라는 건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어떻게 좋은 도시를 만들지 고민이 필요하다. 요즘 풍토라는 단어에 꽂혔는데, 우리는 얼마만큼 제주 풍토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본다. 어영 해안도로에 전망대가 있는데, 가보니 화장실이었다. 공공성을 위해서 공공성을 해치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든다. 거기에 올라가는 사람만 바다의 전망을 보게 된다. 만일 그게 없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전망을 활용할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이다.

 

그건 풍토에 배격되는 행위인가.

풍토를 존중하지 못한 것이다. 이해를 못한 게 아닐까.

(대화는 유휴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유휴공간을 발굴하자며 마을회관, 경로당을 조사했다. 잘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노인인구가 느는 추세이고, 그걸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활용이 안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건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누군가의 관계로 인해 만들어져서 그렇다.

 

마을마다 다 있는데.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예산을 따와서 설치하곤 잠가둔다. 그게 현실이다. 유지비 때문이다. 세를 주는 곳도 있고, 펜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걸 어떻게 해볼까 고민을 해본다. 마을 깊숙이 들어간 공공시설인데, 예전엔 마을금고도 있었고, 지금은 작은도서관도 있다. 이걸 결합시키면 좋겠다. 지금부터 그런 애기를 해야 한다.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래야 우리 때는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서 당구도 치고, 피티니스도 할 것 아닌가. 작은도서관도 책만 꽂힌 게 아니라 동네 사랑방 역할 하는 공간으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꼽는다면 김영수도서관이 될 건가?

이것도 저항이다. 건축주가 두셋이었다. 교육청, 도시재생센터, 도시재생과. 그 사람들이랑 학부모랑 부딪히면서 설득하고 투쟁을 하니까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다. 시키는대로 했으면 집은 지었겠지만 감응이 있었을까? ‘음예예찬얘기를 했는데, 김영수도서관 분위기는 할머니집 분위기가 있다. 나 혼자 상상하며 그런 디자인을 했다. 어떤 사람이 와서는 눈물이 울컥했다는 분을 만났다. 자기 할머니집 생각이 난다며.

오늘 답사(인터뷰에 앞서 길 위의 인문학프로그램을 하며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강운봉 초가를 들렀다)를 하면서도 누가 옛날 할머니집 얘기를 꺼냈다. 추억은 소리로도 남고, 냄새로도 남는다. 어떻게 보면 풍토가 아닐까.

 

오키나와도 같이 갔다 왔는데, 오키나와 건축가들이 존경스러웠다.(권정우 건축가랑 오키나와 건축답사를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풍토를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여름에도 시원했다.

 

더운 여름철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도 시원했다. 제주도는 가능할까.

가능하리라 본다. 한옥엔 다 있다.

 

조상이 했던 방식들. 바람을 이용하고, 어떻게 하면 바람이 통하게 하는지, 그런 방식을 따와야 맞는 것 같다.

이제는 식생활도 그렇고, 기후변화에 대한 화두들이 세지면서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그걸 못하고 있다. 전환점이 필요하다. 소고기를 키우고 방목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모든 게 에너지를 쓴다. 50~60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게 살진 않았을 건 아닌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깜깜한 시대였으니까.

 

그런 면에서 음의 시대였네.

음의 시대 맞다. 어두컴컴하고 칙칙한 게 아니라, 에너지를 덜 쓰며 사는 게 음의 시대였고, 앞으로는 그런 풍토를 이해하는 건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서귀포 출신인데, 왜 제주시 원도심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나.

사무실을 제주시에 차리고 싶었다. 제주시 원도심을 다른 사람들은 낡고 허름하다면서 빠져나간다. 내 입장에선 다 보물이더라. 처음에 와서 자리를 잡은 사무소는 관덕정이 보이는 곳이다. 거기 잡은 이유는 있다. 그 땅의 위치가 중요하다. 194731, 물리적인 4.3의 시작점이 되는 장소이다.(지금은 사라진 제주경찰서 자리를 이야기했다.) 공부를 하니까 그게 보였고, 소중함이 느껴졌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목관아만 보인다. 공부를 안 한 사람들은 제주시에서 194731일에 일어난 일을 모를거다. 건축물이 있고 없고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만일 경찰서가 그 자리에 지금 남아 있더라면 사람들은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아, 여기가 4731일 현장이구나, 지나가면서도 알 수 있었을 건데. 그런 의미에서 목관아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관덕정을 개방하자는 모임이 시작됐다. 담장을 동서남북으로 열고, 시민공원화 한다면 7개 건물에 프로그램을 넣고. 카페를 넣고, 도서관과 찜질방을 넣자. 거기에 타워팰리스급 피트니스도 넣으면 샤워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을텐데. 의지가 중요하다. 지금은 문화재 심의대상이어서 아무도 하지 못한다. 지금 목관아는 섬이다. 아파트 단지가 하나 들어와서 우리 단지에 들어오면 안돼라는 식이다.

도시 안에서 뭔가 이벤트들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온다. 회랑을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데 쇼윈도처럼 만들자. 앞뒤로 트고 숍을 빌려주고, 청년들 일자리 부스로 활용하면 어떨까.

 

학교공간도 얘기해볼까.

우리 때랑 지금이나 학교의 공간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테리어 필름 색깔만 다를 뿐이다. 복도와 교실이 있고, 화장실이 있고. 아무런 감응이 없다. 그런 환경에 있는 애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라?

 

제주에 맞는 건축은 뭘까.

이젠 물어보는 건축을 해야 한다. 학교공간 혁신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본질적으로 중요한 게 참여설계이다. 애들이랑 워크숍하고 그림도 그리고 건축수업도 하면서 이 학교에 필요한 게 뭔지 묻는다. 그걸 반영을 해서 공간을 변화시킨다. 이런 식의 사업과 방법이 공공건축에 들어와야 한다.

동사무소를 설계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은 어떤지. 일본은 이미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해서 동네사람 모아놓고 근린공원 설계를 한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용을 줄이고, 만족도도 높다. 자기가 낸 아이디어로 지어졌기에 자기 것이라는 인식이 있고, 자기가 관리를 한다. 예전처럼 건축가가 엘리트적 위주의 사고로 집을 제공하는 포맷의 방식은 이젠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고, 바뀌어야 한다.

 

좋아하는 포인트와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땅이 아닌 사람 이야기로 풀어가기 시작했다.) 김재관 소장 그 사람에게 건축을 배워야지 하며 서울서 돌아다녔는데 못 찾았고, 2년 뒤에 만나서 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를 만나가 김재관 소장이 도솔천을 떠다니는 귀신같구나그런 얘기를 했다. 뭔 소리인가 했더니 꽉 채울 줄 알아야 비울 줄 안다고 하더라. 허가방 가서 5년만 썩고 오라고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알았다.

어린 마음에 설계를 맡았다. 땅을 밀어서 하는 방식은 쉬운데, 고민이 많아졌고 김재관 소장에게 질문을 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질문했다. 김재관 소장은 그럴수록 하라고 하더라. 어쨌거나 누군가 하게 돼 있는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했다. 땅을 아끼는 마음이 있으니까, 나보고 하라고 한 것이다.

 

<인간과 풍토>, 와쓰지 데쓰로 지음

1920년대에 해외여행을 한 사람들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해외여행을 단순하게 꿈만 꾸는데, 100년 전에 과감히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있다. 물론 부럽다. 일반인들은 정말 꿈만 꿀 일이다.

일본인 철학자 와쓰지 데쓰로는 1920년대 일본 밖을 돌아다녔고, 각 나라를 비교하는 글을 남겼다. 해외여행을 하며 글을 쓴 와쓰지가 부럽지만, 비슷한 시점에 우리나라 첫 여성 서양화가로 불리는 나혜석도 세계일주를 했던 인물이다. 그걸로 위안을 삼겠다.

우선 이 책을 읽을 땐, 일본의 시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가 해외여행을 하던 때는 일본이 식민지 경영에 한창 매달릴 때였고, <인간과 풍토>라는 책으로 엮어서 낸 시점은 식민지 경영이 극에 달한 시점이다. 그러지 않고 무턱대고 읽으면 일본 위주의, 서양 위주의 관점만 바라보게 된다. 그래도 그가 말하는 풍토는 매우 가치 있고, 지금 시점에 들여다봐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풍토는 풍경과는 다르다. 풍경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다. 풍토는 풍경이 인간에 체화되는 방식을 말한다. 쉽게 풀면 어떤 땅의 기후나 기상, 지질, 토질, 지형, 경관 등을 바라보는 인간이 그걸 자기 것으로 발견하는 방식이다.

그는 책에서 풍토를 몬순, 사막, 목장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습기 가득한 몬순, 습기와는 딴판인 사막, 초록의 초원이 뒤덮인 목장이 있다. 세 유형은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이 있고, 자연을 극복하려 애쓰는 곳이 있다.

그는 몬순을 수용적이라고 봤다. 몬순의 특징은 태풍 등 잦은 비바람, 강한 추위 등이 몰아친다. 그런 풍토는 인간으로 하여금 저항을 단념시키게 만들고, 풍토에 젖은 사람들은 수용적이 된다. 일본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듯이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빠르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깨끗하게 체념을 하고, 가옥에도 그런 게 반영됐다고 한다. 일본 가옥은 각각의 방의 구별은 없고 미닫이문이나 장지문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지만, 그건 단순히 ‘가림’일 뿐이다. 일본의 국가는 ‘가족의 가족’이며, 생명까지도 담담하게 버릴 수 있는 ‘자애의 실행’이 실천의 목표라고 읊고 있다.

유럽은 다르다. 목가적 풍토는 동아시아와 같을 수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잡초와의 싸움을 해야 하지만 유럽은 그런 풍경이 아니다. 유럽의 여름은 건조해서 습기를 제공하지 않고, 따라서 잡초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농업노동이 곧 투쟁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그처럼 힘든 자연과의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아시아는 사람이 자연에 순종하지만, 유럽은 자연이 인간에게 순종한다. 와쓰지는 다음처럼 말했다.

“자연에 대한 삶의 체험으로부터 창작되는 과정에서 풍토는 각각 다르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구별이 귀착되는 곳은 바람의 강약이다. 폭풍이 적은 곳에서는 나무의 형태가 합리적이 된다. 즉 자연이 폭위를 떨치지 않는 곳에서 자연은 합리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유럽은 자연과 인간이 사이좋게 지낸 곳으로, 자연 안에서 합리적인 규칙을 보면서 그들의 특성이 발현됐다고 한다. 합리적인 이론을 배출한 유럽사람들은 그런 풍토가 바탕이 됐음을 역설한다.

사막은? 거긴 자연의 위협에 맞서 싸우면서 살아남아야 한다. 목숨을 건 투쟁만이 있다. 사막이라는 풍토에서는 어떤 것도 발견하기 힘들다. 그래서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 탄생한다.

각각의 풍토는 구성 단위도 차이를 드러낸다. 유럽 가족은 부부의 관점, 사막의 유목생활 단위는 부족, 몬순은 가족생활 공동체이다. 집도 거기에 맞춰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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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권정우에 기대면 2020-09-03 16:37:47
제주가 제주다워질 것을 단연코 맹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