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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촌이 되고 있지만 감귤 꽃향기 담긴 풍경은 여전”
“빌라촌이 되고 있지만 감귤 꽃향기 담긴 풍경은 여전”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8.20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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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4> 건축가 양현준

 

기획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이번에 소개할 건축가는 소헌건축의 양현준 대표이다. 그는 제주시 아라동 출신이다. 그에게 애착을 지닌 땅을 대해 물었더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콕 집었다. 책으로는 에인 랜드가 쓴 소설 <파운틴헤드>를 추천했다. <파운틴헤드> 한국어판은 모두 두 권이다. 쪽수가 좀 많다. 두 권을 합친 페이지는 1500쪽을 넘는다.

 


# 제주시 아라동_급격하게 달라지는 풍경

좋아하는 풍경은 사람마다 다르다. 시골의 한적함에 파묻히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늘을 찔러대는 마천루가 가득한 도심에 환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것이 낫다고 판정하기는 어렵다. 풍경의 선택은 집을 고르는 일이랑 닮아서다. 단독주택을 좋아하는 이가 있고, 아파트가 세상 편하다는 사람이 있다. 무얼 고르든, 사람 마음이다.

같은 풍경은 없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풍경은 다른 모습으로 잡힌다. 그러나 단 한가지만은 알고 있어야 한다. 풍경의 근원은 땅에 있다. 땅을 얼마나 존중하느냐에 따라 좀 더 나은 풍경이 생기고, 그렇지 않은 풍경이 등장한다.

제주시 아라동은 언제부터인가 외지인이 많이 들어오는 그런 마을이 되었다. 신제주로 불리는 연동과 노형동의 부동산 광풍이 어느새 아라동으로 쏠리고 있다. 아라동의 풍경은 시시각각 바뀐다. 풍경이 달라지면서 기존에 알던 건축물을 찾는데 애를 먹은 기억도 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기억에 의존하며 건축물을 찾는 게 어려울 때도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 아라동이다.

소헌건축 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감귤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빌라들이 들어서 있다. 미디어제주
소헌건축 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감귤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빌라들이 들어서 있다. 미디어제주

아라동 지경은 한라산 꼭대기에까지 이른다. 자연마을도 많다. ‘아라주는 딸기’로 기억되는 아라동은 이젠 밭의 풍경보다는 건축물의 풍경이 먼저 맞는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가려면 아라동을 꼭 거치는데, 좁은 2차선의 5.16도로에 대한 기억은 아득할 뿐이다. 6차선의 도로가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5세기에 제주에 온 목민관 이약동 목사. 그는 한라산에서 지내던 산신제 때문에 얼어죽는 사람들이 생기자 지금의 산천단(제주시 아라일동 375-4)으로 옮기도록 했는데, 이약동이 지금의 아라동을 만난다면 뭐라고 할까. 제를 잘 지내도록 했더니 이렇게 발전했다고 말할까, 아니면 내가 제주도민을 살린 건 이게 아니다고 할까.

아라동은 예전으로 말하면 중산간에 해당한다. 중산간은 바다와는 거리를 두는 반면, 한라산과는 좀 더 친하다. 때문에 아라동에 사는 사람들은 바닷가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과도 다르다. 그들이 매일 보는 풍경은 성난 파도도 아득하게 들릴 뿐이며, 한라산의 풍경은 어떤 때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오는 곳이다.

아라동이 고향인 양현준 건축가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하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풍경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풍경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사람 위주보다는 차량 위주로 변하는 주변 환경이 못내 아쉽다.

“언젠가 택지개발이 된다면 바둑판 도로가 나고, 자연적으로 발생한 마을 형태가 아예 없어져버리겠죠. 전에는 구슬치기도 하고, 자치기도 하고, 그런 마을이었는데….”

그의 말을 들어보면 기억 속엔 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개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을 어떻게 가치있게 변화시키면 좋을까. 가장 좋은 건 기억이 남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려면 무계획적인 도시개발보다는 옛 풍경을 어떻게 하면 지켜내면서 개발을 이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따라야 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고향에서 건축 작업을 하는 건축가 양현준. 과수원 터에 건물을 올렸더니 새로운 게 보인다고 했다. 노동의 현장이던 과수원의 감귤꽃과 열매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눈에 들어오는 감귤꽃은 감응의 대상이 되고, 꽃향기에도 취할 수 있는 낭만이 생겼다. 그게 자신의 고향인 아라동이 주는 풍경이다.

 

대담 [건축가 양현준을 만나다]

소헌건축 양현준 대표는 올해 자신의 집을 갖게 되었다. ‘사옥이라는 말은 좀 낯설고, ‘직장인의 집이랄까. 사옥이라는 이름보다는 그냥 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건 사무실이다. 올해 5월 준공된, 그러니까 갓 태어난 집안에서 건축가 양현준과 만남을 가졌다. 예전 제주도건축사회장을 지낸 김한진 건축가의 공간도 이 집에 있다.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기획을 통해 건축가들이 말하는 땅도 싣고 있는데, 양현준 건축가가 꼽은 땅은 제주시 아라동이다.


아라동이라는 땅을 택해주었다.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태어나서 자랐던 곳이다. 잘 알고 편하다. 살면서 몸으로 느낀다고 할까, 그런 곳이다. 요즘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예전엔 중산간 마을로 읍면이나 다를 바 없는 동네였는데, 지금은 급변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라동은 1동과 2, 월평, 영평, 오등동으로 크게 나누는데 아라2동에서 태어나고 살았다. 간드락과 원두앗, 걸머리가 아라2동이다. 태어나서 자란 곳은 원두앗이라는 월두마을이고, 3 때 간드락으로 이사를 왔다. 예전엔 대부분 딸기밭과 감귤밭 등 과수원이었다. 부모 세대는 소를 키웠고, 나는 소먹이인 촐을 하러 다니곤 했다.(가축의 먹이가 되는 풀을 이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이라고 불렀다. 양현준 건축가는 19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다.)

 

소헌건축 양현준 대표. 그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한다. 미디어제주
소헌건축 양현준 대표. 그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한다. 미디어제주

여긴(소헌건축이 자리를 잡은 곳, 간드락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어떻게 오게 됐나.

과수원이었다. 고등학교 때 여기로 이사를 왔고, 사무실을 짓기 직전까지도 귤밭이었다.(지금도 귤밭이다.) 부모님은 지금도 농사를 짓는다. 사무실이 신제주에 있었는데, 연간 임대료를 따져보니, 땅을 가지고 있으니까 여기에 건물을 짓는 거나 임대료를 매년 내는 거나 비슷하겠더라. 올해 5월 준공을 해서 들어왔다.

 

건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텐데.

대부분 농부들은 자기 창고도 스스로 짓고, 마당도 가꾼다. 예전엔 다 그랬다. 아버지도 창고를 직접 짓고, 쇠막이나 차고지도 직접 지었다. 옆에서 도운 그런 경험들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었다. 꼭 건축을 해야겠다, 건축가가 되어야겠다고 특별하게 생각한 건 아니었고, 몸에 밴 경험이 가깝게 느껴진 셈이다.

건축을 하면서 현실로 지어졌을 때, 그때의 쾌락은 정말 찌릿찌릿하다. 물론 계획대로 나오지 않기도 하지만, 내가 디자인한 그대로 느낌대로 나왔을 때 이맛에 하는구나느낀다.

 

언제부터 건축사사무소에서 일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고 싶다.

2002년 대학 4학년 졸업 2학기 때부터 실습을 했는데, 시작은 김한진건축사사무소다. 그러다 육짓물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에 들어갔고, 대학원 졸업 후에 그냥 내려오기가 그랬다. 한국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철도역사 설계를 하다가, 건축사사무소 이로재에서 경력직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길래 지원했다. 운이 좋았다. 신입으로 이로재에 들어가는 건 만만치 않은데, 경력이 있어서 운좋게 면접을 보고 가게 됐다.

 

승효상 건축가랑 자주 대화를 했는지 궁금하다.

이로재 모든 일은 승효상 선생을 통해서 이뤄진다. 프로젝트 맡으면 협의하고, 스케치를 해주면 작업해서 체크받고. 실무자들은 엄청 일이 많다. 승효상 선생은 열정이 대단하다. 흔히 그 정도의 대표라면 대외활동을 하고 대충 스케치할텐데, 승효상 선생은 피드백을 하고, 또 피드백을 하곤 했다.

 

제주라는 땅을 두고 사람들은 보물이라고 하면서 제주도에 가치를 입힌다. 어떤 경우는 그런 말들이 선언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제주라는 땅은 어떤 의미가 있고. 왜 중요할까.

섬은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다. 독특한 문화가 생기고 가장 늦게 변한다. 제주는 고유 문화를 지녔고, 신당 등의 무속신앙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다. 다른데 의지를 할 데도 없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하니 그런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자연환경에 맞섰고 초가라든지, 올렛길, 돌담 등이 모두 그런 이유 때문에 생겼다.

그런 독특한 문화가 잘 보존되고 지켜져야 하는데 관광이라든가, 교통수단 발달, 자동차 급증 등으로 훼손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70년대와 80년대는 지켜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외자 유치 등에 급급했다. 2000년대 들면서 지켜야 된다는 의식을 가진 이들이 생겨나고, 활동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바뀔텐데, 내가 사는 화북 바닷가는 아주 느리게 변한다. 그와 달리 아라동은 눈에 띄게 계속 바뀐다. 그런 변화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테고, 긍정적인 측면도 물론 있을 것이다. 어떻게 바라보면 될까.

아라동은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 간드락과 걸머리를 잇는 길이 정비되면서 빌라촌이 되어버렸다. 이도지구와 아라지구 사이에 택지개발이 되지 않은 아라2동이 있다. 아라2동의 간드락, 걸머리, 원두앗, 기자촌 등은 제주시에서 중산간마을이라고 했을 때 그나마 형태를 유지를 하고 있는 곳이다. 언젠가 택지개발이 된다면 바둑판 도로가 나고, 자연적으로 발생한 마을 형태가 아예 없어지게 된다.

자연 취락 마을에 빌라가 들어서면서 마을 풍경은 빌라촌처럼 변하고 있다. 인구도 늘고 차고 많아지고 있다. 걸머리로 올라가는 길이 정비되면서 차 중심의 도로가 되어버렸다. 사람 중심의 녹지가 없다. 그게 가장 부정적 현상이다. 인간 중심의 도로라든가 외부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인구 늘고 도시 발전하면 어쩔 수 없다. 긍정적인 건 문화시설과 편의시설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서울은 도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더라. 사람중심 도로를 만들곤 한다. 제주도는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할 것 아닌가.

빌라가 들어서고 차가 많아지다 보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건물이 세워지고 자연이 훼손된다고 했을 때, 발리단지도 지하주차장을 만들자. 차는 지하로 넣고, 지상은 인간중심의 녹지공간 조성을 조성해보자. 걷다보면 모두 아스팔트고 시멘트고, 차량이 주차돼 있다. 그러다보니 삭막하게 보인다. 외부공간이 차량중심고 사람들의 공간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이런 문제는 도정이 의지를 가지고 밀고 추진을 해야 가능하겠다. 제주도는 가로수도 많지 않고, 도로도 확장하다 보니 있는 가로수마저 없애고 도로를 만든다. 제주시 원도심을 활성화시킨다면 나무를 심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벤치를 가져다 놓으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그런 건 도정이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 개인 한 사람의 의지로 될 건 아니다. 제한적인 제도가 있어야 한다. 제주여고 입구에 있던 조밤나무도 그런 사례이다. 조밤나무가 잘려나갈 때 중앙차로를 만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큰 나무를 키우려면 몇십년이 걸리는데.

 

제주도가 사람 위주 아니라 차량 위주의 정책을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버스 중앙차로제를 시행하면서 사람을 위한 듯한 행정인 듯하지만 결국은 차량 중심이다.

 

국내와 해외를 통틀어서 존경하는 건축가는 누구인가. 그 이유는.

안도 다다오. 그는 가장 인상 깊고 닮고 싶은 건축가이다. 기하학적 형태를, 자연에 정말 어떻게 이렇게 잘 어울리게 하는지, 콘크리트임에도 자연이랑 잘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든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자연의 일부가 되게 만든다. 누가 봐도 기하학적 형태이며, 콘크리트 덩어리임에도 자연을 거슬리지 않는다. 자연을 잘 이해하고, 인공구조물을 자연의 일부가 만드는 사람이다.

 

제주에 그의 작품 중에 지니어스 로사이(지금은 유민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있는데, 어떤가.

절제의 미.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그렇게 잘 다룰 건축가가 얼마나 나올까.

 

섭지코지에 안도의 또다른 작품인 글라스하우스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만의 성산일출봉을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작품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본다면.

모든 건물을 다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에겐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양현준 건축가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 이야기를 하다가 국내 건축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건축가 김찬중의 울릉도 코스모스리조트를 보면 조각작품 같다. 자연과 어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건축가는 예술가가 맞구나, 부러우면서도 존경스럽다. 그런 작품을 보면 같은 건축가라는 타이듵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더 공부를 해야 하고, 노력하고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작품을 통해 건축가라는 명칭을 가진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다.

건축가 승효상도 마찬가지이다. 승효상은 자연을 먼저 둔다. 땅을 생각하고 건물을 얹힌다. 이로재에 있을 때 대전대30주년 기념관작업을 했다. 동산처럼 작은 산이 있는데 거기에 기념관을 얹혔는데 덩어리르 크게 넣지 않고, 낮게 분절하면서 층층 지형에 맞게 올렸다. 자연에 최대한 거스리지 않게 했다. 그런 건축가들을 닮으려 노력한다.

 

건축가는 무척 중요한 직업군이다. 그들이 사회에서 할 역할도 무척 많다.

건축가들은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도시를 설계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그런 걸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종합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건축가는 자연도 생각하고 도시도 생각하고 그런 정책에 맞서서 싸울 수도 있고, 조언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건축가들도 그렇지만 학계에서도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학문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목소리를 내줘야 할텐데.

교수끼리 힘을 모아서 발전적 모습 보여주고, 그렇게 해서 정책에 반영시키면 좋다. 우리나라는 실무를 하는 건축가가 제안을 하는 것이랑, 학자가 하는 것이랑 다르다. 교수들이 (도시정책과 관련된) 안을 내주면 좋겠다.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제주에 맞는 건축은 어떤 것일까.

제주에 어울리는 건축? 맞는 건축? 추상적이다. 제주에 맞는, 어울리는 건축을 생각했을 때 돌담도 있고, 올레도 있다. 모두 자연이 만들어낸 건축이다. 그러고 보면 가장 제주다운 건축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 밀접하게 접촉하면서도 자연에 묻힌 건축이 제주다운 건축이 아닐까.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에인 랜드의 소설인 <파운틴헤드>를 꼽은 이유는.

건축을 한지 10년차에 그 책을 만났다. 건축의 본질에 대한 의지가 역해질 때 만난 책이다. 책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건축가의 길이 여기에 있구나 느꼈다. 건축에 대한 의지를 재정립해준 책이다.

사무실 이름이 소헌(素軒)’이다. 사물의 본질이라든지, 삶의 본질이라든지 그게 기본 바탕이 되어야 모든 게 된다.

 

에인 랜드의 <파운틴헤드>

건축가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는 근대건축의 3대 거장 중 한명으로 꼽힌다.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이라면 알려나. 그가 설계를 했다. 놀랄만한 작품은 더 많다. 우리와 억지로 엮는다면 20세기 초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온돌방식에 매료된 점도 하나가 아닐까.

간혹 천재들은 광적인 경향을 보인다. 라이트는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지닌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는 ‘나르시시즘’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때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부른다. 그의 말을 잠시 옮겨볼까.

“어렸을 때 나는 정직한 오만과 위선적인 겸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전자를 선택했고, 그것을 바꿔야 할 이유를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정직한 오만’. 라이트의 특성을 보여준다. 소설 <파운틴헤드>는 라이트를 모델로 삼아서 썼다고 한다. <파운틴헤드>는 라이트 생전에 출판됐고, 라이트는 에인 랜드가 자신을 모델로 소설을 썼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파운틴헤드>는 건축학도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다. 건축계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도 이 책의 영향이 무척 컸다고 한다. 이 소설을 쓴 에인 랜드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건축사사무소에 들어가 무보수로 타이피스트로 일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 건축 전문가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파운틴헤드>는 대비되는 두 인물이 있다. 하워드 로크라는 인물과 피터 키팅이다. 에인 랜드가 라이트를 모델로 했다는 인물은 하워드 로크이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파운틴헤드>를 읽고 로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라이트라는 인물에 빙의되고자 하는 건축가들의 욕망이 읽힌다.

소설의 주인공인 로크는 남에게 보여주려고만 하는 건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로크는 현대건축이 나가야 할 지향점보다는 팔라디오양식 등 겉모습만 화려하게 보이는 그런 건축에 반기를 든 인물이다. 로크가 소설 속에서 말한 장면을 살짝 옮겨본다.

“당신의 집은 그 자체의 필요에 따라 지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집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어지고 있고요. 당신의 집의 결정적 모티브는 집에 있고, 다른 집들의 결정적 모티브는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있죠.”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다. 건축물을 보면 건축주가 보이고, 건축가가 보인다. 그 집을 설계한 사람의 사상과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떠한지를 가늠하게 된다. 때문에 남을 위해서 집을 지을 이유는 없다. 남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게 집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속 건축가들은 고전의 양식에 매몰된 인물들이다. 기존 양식을 잘 모방하는 걸 우선으로 한다. 그들은 건축에 새로움을 부여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그려내고 증명만 하는 인물들로 나온다. 다만 하워드 로크만 다르다. 기존의 양식을 거부한 로크는 어떠한 양식도 아닌,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소설 속 주인공 로크는 이렇게 말했다.

“건축물은 인간처럼 살아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체기관을 다른데서 빌려오지 않듯 건축물도 영혼의 구성 요소들을 빌려오지 않습니다. 건축가가 건축물에 영혼을 부여하고 모든 벽과 창문, 계단이 그 영혼을 표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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