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놀이터 디자이너 이연재 와이플레이랩 대표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한다. 어른들은 그걸 잘 알지만 제대로 실천을 하고 있을까. 교육당국은 ‘어린이 놀이헌장’을 만들고, 아이들의 ‘놀 권리’를 강조하지만 그걸 체감하는 비율은 높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놀이를 진지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유치원 실외 놀이터 설비기준을 바꾸고, 유아체험교육원 조성도 준비중이다. <미디어제주>는 그동안 놀이에 대한 관심을 퍼뜨리는데 중점을 둬왔다. 올해도 관련 기획물을 통해 놀이를 다시 생각하고, 어떤 놀이환경이 아이들에게 바람직한지 살펴볼 계획이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함께 ‘아이들에게 놀 권리를’이라는 주제로 놀이를 진지하게 탐구, 제주에 맞는 놀이환경을 구축하려 한다. [편집자 주]
“제주유아체험교육원은 총괄자 둬서 추진해야”
“내가 놀 수 있는 환경이면 그게 바로 놀이터”
놀이터에 작은 위험 요소를 만들 것도 주문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넘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주가 좋아서다. 간혹 떠나는 이들도 있지만 정착한 이들을 위협할 숫자는 아니다. 놀이터 디자이너인 이연재 와이플레이랩 대표도 제주가 좋아서 정착한 경우이다. 그가 제주에 정착하려고 하자, 그러지 말라고 잡는 이들이 더 많았다. ‘놀이’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그에겐 제주라는 땅보다는, 훨씬 더 넓은 육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좋은 제주를 버릴 순 없었다. 7년 전에 제주에 정착했고, 독일에서도 3년간 놀이터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파랑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고 싶었던 그는 독일로 향했다. 파랑새처럼 희망을 품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받아들일 마음으로 갔다. 독일에 간 이유는 하나로 설명할 순 없다. 아이(지금은 열 살)랑 매일 놀이터를 탐했다.
“독일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놀이터가 동네마다 2, 3개씩 있어요. 매일 놀이터를 가는데, 대체 이런 놀이터는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했어요. 놀이터 안에 아주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는 걸 발견했죠.”
그러다 세계적 놀이터 디자이너인 귄터 벨치히를 만난다. 이연재 대표는 귄터가 진짜 자신을 발견해 꺼내어 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열심히 노력했고, 그는 독일 공인 놀이터 전문가가 되었다. 놀이공간을 자문하고, 디자인하고, 놀이기구를 제작, 놀이터 시공 및 감리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연재 대표는 귄터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제주를 늘 이야기했고, 귄터와 함께 제주만의 놀이터를 만들자고 했다.
독일에서 파랑새를 찾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는 새로운 자신을 확인하고, ‘놀이 전문가’라는 그만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놀이에 대한 인식 개선이 문제였다.
“놀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제주에서 놀이터 이야기를 하면, 밖에 나가면 흙이고 나무가 있는데 뭐가 필요하냐고 말해요. 아직까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 제주에 맞는 놀이터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인식개선 캠페인도 진행되어야 합니다. 서울엔 놀이터재구성위원회가 있는데, 그런 종합적인 기구가 있다면 제주도 놀이터 계획수립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놀이터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천분교에 들어설 유아체험교육원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다.
“우선은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조화롭게 이끌어갈 총괄자가 중요합니다. 제주도는 바람도 많고 습하기에 어떤 소재를 쓸지에 대한 연구도 있어야 합니다.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는 노골적으로 담지 말고, 은연중에 느끼도록 해줘야 하죠. 노골적으로 담으면 아이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축미도 있어야 하고, 실용미도 있어야 하고, 조화미도 물론 있어야죠. 제주에 계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고 계획한다면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요?”
이연재 대표는 현재 전남 순천지역 초등학교의 기적의 학교 놀이터 촉진자로도 활동중이다. 아이들이랑 참여형 설계를 하고 있다.
“학교 놀이터를 만드는데 참여형 설계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부담을 덜 주고 싶어요. 아이들이랑 재미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니 과정 또한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꺼낸 디자인을 보면 상상력이 무척 풍부해요. 왜 우리 교육은 그걸 꺼낼 기회를 주지 못했을까, 늘 아쉬워요. 아이들에게 또다른 교육과정의 모습이 될 참여형 설계 프로젝트 기회가 제주 아이들에게도 많이 주어지길 바랍니다.”
그는 놀이에 대한 풍부한 아이디어를 지녔다. 그걸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도에서도 마음껏 펼치고 싶다. 물론 거기엔 학부모 인식개선과 지자체의 움직임이 있으면 더 좋다.
“제주엔 예술가들이 많잖아요. 예술가들이랑 프로그램을 만들면 학부모들의 인식개선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제주도는 다양한 특수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해수욕장, 바닷가에도 그에 어울리는 놀이터를 만들면 제주만의 놀이기구, 놀이공간을 갖춰가게 될 거예요.”
이연재 대표가 말하는 ‘놀이기구’는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는 그런 정형화된 놀이기구를 말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놀이기구가 없는 놀이터를 지향해요.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기능을 파악해서 디자인을 뽑아내고 다양한 요소를 적절히 조화롭게 구성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놀이는 무엇이고, 놀이터는 무엇일까.
“내 마음대로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고, 내려가고 싶으면 내려가고, 숨고 싶으면 숨고,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선택하는 게 진짜 놀이죠. 놀이터는 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환경이죠. 그래서 어디든 놀이터가 될 수 있어요. 특히 좋은 놀이터는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곳, 돌아서면 또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 그런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요.”
이연재 대표는 잘 놀아본 세대는 아니다. 도시에서 자랐고, 흙에서 놀아본 기억이 없는 세대이다. 고작해야 딱지치기나 비석치기, 달리기가 놀이였다. 그는 자연에서 더 많이, 자주적으로 놀 것을 주문한다.
“작은 마을에서 자라면서 뒷산에서 놀고,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잡고 했던 아이들은 커서도 바르고 건강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많더군요. 본능적으로 자연을 만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길에서 벌레를 만지면 더랍다며 만지지 말라는 부모도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은 그걸 만지는 게 이상하고, 나쁜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자연이 왜 좋은지를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흙이나 모래엔 좋은 균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요. 여러 가지 세균에 가볍게 자주 노출되다 보면 강한 바이러스가 왔을 때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이 생기죠.”
그나저나 부모들은 아이들이 다치는 걸 꺼린다. 작은 상처라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 이걸 잘 풀어야, 바깥놀이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놀이터에선 작은 사고가 있을 수 있어요. 살짝 까지고 다치고 하죠. 이런 걸 경험하면 다음엔 어떻게 해야할지 스스로 조심하게 되고, 계획하게 되죠. 하지만 그걸 모르는 아이들은 크게 다칩니다. 그래서 놀이터엔 작은 위험요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놀이터에 나무를 넣을 땐 일부러 가시를 남기는 회사도 있어요. 나무란 긁힐 수도 있다는 걸 놀면서 알게 해주는 거죠. 아이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위험요소를 부모가, 어른이 대신 제거해 줄수는 없잖아요.”
그는 독일에 살 때 아이랑 귄터 벨치히의 집에 자주 들렀다. 오래되고 거친 마룻바닥이어서 종종 아이의 발바닥엔 가시가 박히곤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생기자 가지 않겠다던 아이는, 어느 순간 박힌 가시를 빼달라며 바늘을 찾아오는 아이로 바뀌어 있었다.
이연재 대표는 표선리에 있는 한 카페의 주차장을 작은 놀이터로 만들었다. 한라산 백록담과 오름을 테마로 했다. 거기엔 언덕이 있고, 모래가 있다. 작은 언덕도 있고, 큰 언덕도 있다.그늘이 되는 큰 나무와 쉴 수 있는 오두막도 있다. 큰 아이도 놀 수 있고, 작은 아이도 놀 수 있다. 자신의 신체능력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도전하며 건너가는 놀이대도 만들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놀이시설은 없다. 놀이는 뭘까. 놀이터는 뭘까.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만들어진 틀을 주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라고 하는데, 그건 어른들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들이 만드는 것, 그게 진짜 놀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