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축 답사 - 베트남
해외 건축 답사 - 베트남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08.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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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3월호]이슈
김종찬 제이투 건축사사무소

2019년 한참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다. 멀리 인도차이나반도의 동부에 있는 따뜻한 나라, 베트남 남부의 중심인 호찌민시로 연수를 다녀왔다.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행사이지만 호찌민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라, 여행이라는 낯섦에 대한 호기심과 휴양 그리고 건축사로서의 직업의식으로 발현되는 베트남 건축에 대한 호기심이 이번 연수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에 대한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오던 터라 현장이 궁금하기도 했다.

11월 말 아침 9시경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 호찌민으로 출발하여 12월 초 아침 새벽에 귀국하는 3박 5일 일정이다. 일반적인 여행과 달리 건축물 답사 중심으로 짜여 있으며, 여유 있는 일정이라 진지하게 건축물을 볼 기회가 되었다. 거리에서 본 건물들은 베트남의 전형적인 도시 주거 형식으로 전면 폭이 좁은 ‘튜브 하우스’이다. 튜브 하우스는 프랑스 식민 지배 당시 집 입구의 너비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여, 세금을 줄이기 위해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건물이 들어서고, 토지 구획 역시 따라가게 되었다. 초기 2층에서 지금은 3~5층 이상으로 높은 주상복합 건물들이 주가 되었다. 호찌민시의 많은 오토바이와 함께 도시의 정체성을 이루는 대표적인 풍경이다. 처음 시작한 일정은 베트남의 정통 쌀국수를 먹어보는 것이었다. 쌀국수는 국내에서도 많이 먹어보았던 터라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현지에서 먹는 쌀국수는 향신료의 향이 훨씬 더 강하여 사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찌는 더위를 잠깐이나마 식혀주는 역할과 함께 어찌 보면 “아! 베트남에 왔구나”를 실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베트남은 근대 제국주의 시대였던 1859년 프랑스에 점령당해 지배를 받았던 지역으로, 예전 우리가 많이 들었던 사이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호찌민시는 현재에도 프랑스의 문화와 언어 등 점령지로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어 “동양의 파리”로 불리고 있다. 1953년 디엔비엔푸 전쟁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 남베트남(1954년~1976년)의 수도가 되었고,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치러진 베트남 전쟁을 끝으로 통일이 될 때까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다. 베트남은 1979년 있었던 베트남-중국전쟁에서의 승리로 초강대국인 프랑스, 미국,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승리를 거둔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또한, 전쟁

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 현재는 전체 평균 연령이 가장 젊은 나라로 미래에 대한 발전과 희망이 가득한 국가이다.

처음 둘러본 건물은 베트남 전쟁이 종결된 곳 ‘통일궁’이다. 통일궁은 1966년 남베트남의 건축사 ‘응오 비엣 투’에 의해 재건된 건물로 베트남 기후에 맞게 빛을 조절하고 습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베트남에서 많이 사용되는 건축자재인 대나무를 모티브로 해서 루버를 설계하고, 중정을 배치하고, 전체적으로 근대적인 형태의 건축물이다. 통일궁은 건축적인 면보다는, 베트남 전쟁의 산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 대통령 관저이다. 1975년 해방군의 탱크가 관저로 진입하여 베트남 전쟁이 종결된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높은 장소이다.

통일궁 견학 후 사이공 ‘노트르담 대성당’을 둘러 보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붉은 벽돌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 위로 40m 높이의 두 개의 첨탑이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다. 대성당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중앙우체국’은 파리의 오르세 박물관을 모델로 1886년부터 1891년까지 5년에 걸쳐 지어졌다. 내부 대공간을 이루는 철골 설계는 파리의 에펠탑 설계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건축사 귀스타브 에펠이 했다. 내부 대공간에서 귀스타브 에펠의 철골 장식 등과 정돈된 스케일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현재는 우편 및 통신 관련 업무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국제우편을 보낼 수 있으니 기념으로 엽서를 사서 보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필자 역시 이곳 중앙우체국에서 엽서를 사서 제주도에 있는 집으로 국제우편을 보냈는데 약 1달 정도 후에 집에 도착하였다. 베트남 여행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엽서가 도착하여 베트남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둘째 날은 호찌민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과일 농장 방문 후 ‘빈뜨랑(VinhTrang)사원’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19세기에 지어진 사원으로 메콩강 지역에 위치하여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의 앙코르 양식이 적절히 조합되어 있는 대단히 화려해 보이는 불교사원이다.

사흘째 되는 날 방문한 ‘꾸찌 터널’은 남베트남 내 사이공 인근에서 베트콩들이 활동하던 장소로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전의 흔적 및 베트콩들이 어떤 방식으로 미군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꾸찌터널 방문 후 둘러 본 ‘전쟁박물관’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베트남 전쟁을 거쳐 중국과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대한 모든 역사와 비극을 간직한 곳이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잔악한 행위를 생생하게 전시해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고엽제로 인해 태어난 기형아의 모습들과 사체 및 무고한 희생자들의 사진 등 전쟁의 참상을 전시해 놓았다.

우리에게 미국은 우방 국가이지만 베트남 전쟁박물관에서 보여주는 내용은, 미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된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은 연수를 떠난 모든 건축사가 같이 어울리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연수라는 게 건축물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회원 상호 간에 서로 친목을 다지는 것 또한 필요하다. 베트남의 환율 및 물가는 근사한 저녁 식사에 우리나라 금액으로 1~2만원 이면 맛있는 식사와 훌륭한 술자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부담이 적다.

인민위원회 청사.
인민위원회 청사.

마지막 날인 나흘째 되는 날은 호찌민의 중심지인 ‘인민위원회 청사’와 주변 건축물 및 그 앞으로 쭉 뻗은 광장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호찌민시의 주요 관광지로 청사 앞에 세워진 베트남의 국부인 호찌민 동상이 광장의 시작점이며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가 풍부한 공공공간으로 도시광장이 왜 필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1908년 지어진 호찌민 인민위원회 청사는 콜로니얼 건축 양식으로 19세기 건축물의 백미로 불린다. 과거 프랑스 식민통치자들의 공화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외관이 매우 아름답고 특히 야간에는 경관조명과 잘 어우러져 깊은 인상은 남기기에 충분하다. 중심 거리를 산책하면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중요 건물로서 1900년에 건축된 고딕 양식의 ‘호찌민 오페라하우스’를 둘러보았다. 시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유럽풍 건축물로 건물중앙의 아치형 돔은 프랑스 시립 미술관을 모티브로 삼았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현재 호찌민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52층 높이의 ‘비텍스코 타워 전망대’를 둘러보았다. 전망대에서 보는 호찌민시는 예전 도시 가로의 모습과 잘 구획된 신도시의 높은 빌딩 및 초고층 아파트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베트남 호찌민 연수회는 사실 휴양을 목적으로 출발하였지만, 회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회원 간의 친목 도모와 원활한 소통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베트남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식민지 기간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호찌민의 중요 건축물로 자리 잡고 있고, 중요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베트남의 전통적인 문화와 건축물들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고민과 함께 최근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베트남을 보며 우리나라의 성장기를 보는 듯하고 다음 베트남을 방문할 때 더욱 성장한 베트남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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