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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풍경은 ‘제주’와 ‘외부’의 공존이 만들어”
“제주 풍경은 ‘제주’와 ‘외부’의 공존이 만들어”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7.30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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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건축가다] <2> 건축가 김태성

 

'나는 제주건축가다'라는 주제. 무겁기도 하다. 그렇다고 글을 무겁게 쓸 계획은 아니다. 쉽게 다가서고, 쉽게 건축을 이해하는 그런 기획물이었으면 한다. 건축은 늘 만나는 존재인데, 그런 존재를 어렵게 다가서면 되겠는가.

나는 제주건축가다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제주라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기획은 모두 3개로 나눠진다. 건축가가 꼽은 땅에 대한 이야기, 건축가와 나누는 대담, 자신을 이끌어 준 건축 관련 책을 담는다. 대담은 문답식으로 싣는다. 처음으로 소개할 건축가는 티에스에이건축의 김태성 대표이다. 그는 선인장마을인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를 꼽았다. 책은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이다.

 

# 월령 _ 선인장이 만든 또다른 풍경

제주도 어딜 가든 변화의 물결이 넘친다. 요즘은 제주답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실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고, 내 자신마저 그렇다. 그런데 ‘제주답지 않다’는 말엔, “제주다운 게 무엇인가”라는 의문도 남긴다. 정말 제주다운 건 뭘까. 정말 뭐지?

한림읍 월령리. 거기엔 선인장이 있다. 선인장은 원래 월령의 것이 아니었다. 월령이라는 마을 이름도 그렇다. 월령이 아니었고, ‘감은질’이었다. ‘감은질’은 ‘검은 길’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자를 입은 ‘월령(月令)’이 되어버렸다. 웬 달인가 싶은데, 월령이라는 마을이 상형문자인 ‘달 월’의 모양을 닮았나? 지도를 보면 그렇게도 보인다. 월령포구를 중심으로 ‘달 월’의 휘어지는 모양새가 느껴지긴 한다. 어쨌거나 감은질은 사라지고, 월령만 남았다.

한림읍 월령리 마을의 선인장. 외부에서 온 선인장은 돌담을 만나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미디어제주
한림읍 월령리 마을의 선인장. 외부에서 온 선인장은 돌담을 만나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미디어제주

모든 건 변한다. 찰나라는 순간은 같을 수 없다. 정지 상태가 아닌 이상 같음은 없다. 시간은 늘 흐르기에 변하는 건 당연하다. 김태성 건축가가 월령을 지목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원래 있던 것과 새로운 것의 만남이다. 서로 다른 것은 결국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제주는 현무암의 땅이었고, 그걸로 돌담을 만들었다. 선인장은 떠내려와 제주에 머물게 되었다. 돌은 원래부터 존재했고, 선인장은 이주해 온 산물이다. 서로 다른 두 개체가 만나 어우러지며 지금의 월령을 이루고 있다. 그걸 통해 건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선인장은 왜 하필이면 월령리에 많을까. 제주지역 다른 곳에서도 듬성듬성 선인장을 만날 수 있으나, 월령리처럼 군락을 이룬 곳을 찾기는 힘들다. 어디서 흘러왔을까. 해류를 따라 선인장 씨앗이 떠돌다 월령 바닷가에 안착했을 터이고, 친구가 없던 선인장은 제주 돌을 친구로 삼았다. 제주 돌도 거부하지 않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이동을 하다가 정착을 하고, 정착을 하다가 다시 이동을 한다.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은 목숨을 겨우 건져서 고향 제주로 돌아오지만, 그가 표착한 섬 청산도에서 20대 여성과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다. 이동과 정착, 만남과 떠남. 사람이 사는 건 다 그렇다. <표해록>에 등장하는 그 여성은 5년 기한으로 장한철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둘의 관계가 나중에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둘이 다시 만났다면 월령마을의 선인장처럼 뿌리를 내리는 격이 된다.

누군가를 향해 “예전 모습 그대로 있어라”고 얘기할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지 않는이상 불가능하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성도 ‘예전 것’만을 고집하진 못한다. 김태성 건축가가 월령을 꼽은 이유를 더 깊게 들어보자.

“제주도는 섬이다. 섬은 개방과 확장성이 없으면 도태된다. 바다 저 멀리 어디서 날라온지 모르는 선인장 씨앗이 흘러와서 월령리에 들어왔다. 제주엔 돌담이 있고, 선인장 씨앗이 제주돌담 사이에 올라와 멋있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결국 이 풍경은 제주의 것과 외부에서 들어온 것의 공존이다.”

 

대담 [건축가 김태성을 만나다]


- 건축가 승효상의 저서 <빈자의 미학>을 가져왔다. 이 책이 김태성 대표에게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승효상은 건축계 아이돌처럼 되어버렸다. 건축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이 책이 나왔다. 책을 들고 여기서 나오는 단어나 어휘를 가지고 건축쟁이인 척했다. <빈자의 미학><수학의 정석>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건축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정의를 내리려 애썼고, 자신의 작가정신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만들었다.(김태성 대표는 학창시절 이 책에 꽂혀 자신을 느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하고 명함을 만들어서 다니곤 했다.)

 

요즘은 어떤 책에 꽂혀 있나.

니시자와 류에의 <열린 건축>이다. 내부와 외부가 혼재된, 그런 설계를 하고 싶다.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갔는데 다시 외부로 나오는, 그런 열린 건축이었으면 한다.(니시자와 류에는 프리츠커상수상자이다. 기자랑 김태성 건축가는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스위르 로잔 공대 러닝센터를 함께 보기도 했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축가 김태성. 조진희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축가 김태성. ⓒ조진희

- 열린건축이 빛을 봤으면 좋겠고, 본인이 자랑하고 싶은 건축물은 있는지.

창피하다. 아직은 없다. 설계안은 하나 있다. 애월읍 상가리 마을 코너에 있다. 건축의 기본은 작가정신도 있어야 하지만 맥락으로서의 건축이 필요하다. 주변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주변은 슬레이트 건물이 모여 있다. 주변과 조화를 위해 지붕을 골강판으로 해보았다. 추사 김정희의 글을 승효상은 절제로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엔 투박함이 추가되면서 추사체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렇듯 예쁜 건물을 설계하기보다는 제주가 가진 투박함을 담아보았다. 자랑하고 싶지 않은, 잘난 척을 낮추고, 어울리면서 기능을 잘하도록 해볼 계획이다. 기대만큼 건물이 나온다면 이 건축물을 자랑할 건축물로 삼겠다.

 

- 건축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기 시작했나.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5학년 때인가, 방학 때 그림을 그려서 학교에 제출했다.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인지 선생님이 스스로 해야 한다며 뭐라고 하기도 했다. 정말 내가 그렸는데. 아버지를 따라서 김석윤 소장의 건축사사무소에 자주 갔다. 거기 냄새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미대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해야 하는 게 많았다. 가장 미대에 가까운 게 건축이었다.

 

건축가 김태성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가리 주택. 미디어제주
건축가 김태성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가리 주택. ⓒ미디어제주

개인적으로 건축 활동 영향 많이 끼친 건축가가 있을 것 같다.

유학을 포기하고 방황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보다 출발이 늦었다. 건축가를 들라면 이종호 선생이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바른손센터를 설계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받은 스타 건축가였다. 그는 서울건축학교도 출강하고 명지대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너무 열정적인 분이었다. FM2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게 건축가라는 말을 듣고,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팔고 그가 말한 카메라를 살 정도였다. 그는 건축인의 자세를 내게 말했다. 진지하게 접근하라고 했다. 건물을 예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이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구조를 가진지 아는 걸 말했다. 잡지책만 보고, 해외에 잘된 것만 따라하는, 표피만 건드는게 건축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사회를 향해 봉사를 하는 것도 건축가의 몫이다.

 

- 건축가에게 봉사라는 건 물질적인 것인가, 정신적인 것인가.

건축가 이종호는 여기저기 출강을 나가곤 했다. 그걸 봉사로 여겼던 것 같다.

 

- 제주에 어울리는 건축은 뭘까.

정말 어렵다. 예전 걸 고집하는 게 제주다운 건축은 아니다. 예전이라는 시점도 흘러가는 과정의 하나이고, 포인트일 뿐이다. 지금의 모습도 미래에 봤을 때 옛날 제주의 모습이 된다. 과거에만 집착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현재의 모습도 제주의 지역성이 될텐데 이걸 어떻게 방향성을 가지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월령을 얘기하는 건 그 때문이다. 제주도는 섬이다. 개방과 확장성이 없으면 도태된다.

 

예전에 제주 건축의 전통성을 말하는 걸 보면 껍데기만 가져오더라. 안거리와 밖거리. 지붕의 재료 등. 그걸 제주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키나와 건축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 건축은 외형이 아니다. 오키나와는 더운데, 거기 있는 건축가들은 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연구를 하더라. 실제 그들이 설계한 집에 들어갔더니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않았는데 시원했다. 우리는 왜 안하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2018년 일본 큐슈를 간 적이 있다. 거기 건축은 우리와 비슷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달랐다. 뾰족한 산이 바람을 막아줬고, 그들 건축의 고민은 비를 피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물길이 바로 땅으로 스며들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지 않은가. 결국 건축은 환경과의 싸움이었다. 지역환경과의 싸움으로 탄생하는 게 지역건축임을 알았다. 지금은 누구랑 싸우나? 결국은 사람이며, 감성이다. 사람이 원하는 것과의 싸움이다. 현대건축에 시급한 것은 사람의 변화에 맞추는 일이다. 표피가 아니라 공간에서 느낀 감성을 끌고 와야 한다.

 

- 제주 도내에서 마음에 드는 건축은 있나.

생각해보지 않았다.(그때 기자가 제주건축과 맞지 않은 건축물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되물었고, 서로 웃었다.) 김석윤 소장의 작품인 탐라도서관이 좋다. 학생 때 거기서 가끔 짧은 시간 공부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품안에 드는 기분.

 

- 제주와 맞지 않은 건물에 대한 평가를 해준다면.

주황색 기와 지붕으로 덮으면 잘 통과된다. 주황색이 제주색은 아닐텐데, 오히려 회색이 제주와는 잘 맞는 색이다.(자신의 할아버지가 고향에 집을 지으면서 회색 기와를 강조했다고 한다.) 주황색 기와는 유럽, 즉 지중해에 있는 스페니시 기와인데, 제주와 맞는걸까라는 고민은 있다. 하지만 차츰 스페니시 기와가 늘면서 제주풍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은 있다. 그게 군집을 이루고, 정리가 되면 좋아 보이기도 한다.

 

- 우리나라에도 좋은 건축물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꼽는다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건물을 좋아한다. 김수근을 따라 작품을 만든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그게 하나의 풍경이다. 이종호 선생이 마로니에 공원 앞에 유리로 된 새로운 건물을 몇 개 설계했다. 새로 만들어졌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주변에 묻혀 있다. 그 건물은 튀지 않는다. 처음엔 뭘한 거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고민 흔적을 알게 되었다. 기존에 있는 풍경을 존중하다 보니 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 신제주 제원아파트에 살았다는 걸로 안다. 개인적으로 제원아파트 생활이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을까.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 제원아파트는 지금의 아파트와는 달리 게이트 커뮤니티개념이 별로 없다. 단지 한 가운데로 길이 뚫려 있고, 덕분에 동네놀이터가 됐던 곳이다.

 

- 요즘 아파트는 그들만의 공간인가.

대부분의 아파트는 가운데 중앙광장을 놓고, 앞에 커다란 문주가 있다. 그 문주를 지나면 단지가 나오고, 단지에 들어가면 중앙광장이 등장하는데 단지내에서만 즐긴다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예전 제원아파트는 벽을 향해 볼을 차곤 했다. 요즘 아파트 단지도 열린 단지가 되면 좋겠다.

 

- 건축가의 사명에 대해서 평소에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난 엘리트 건축가는 아니다.

 

- 엘리트 건축가가 뭔가.

시대를 끌고 가는 사람이다.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면서 표본이 되려는 사람이며, 시대정신을 주장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엘리트 건축을 너무 지향한다. 그러다 보니 엘리트 건축이 아닌, 나머지는 집장사로 치부되기도 한다. 엘리트 건축가보다는 지역 건축가로 남고 싶다.

 

- 지역 건축가를 설명해달라.

제주풍경은 누가 만들까. 수많은 주택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할 일이다. 지역 건축가의 몫이다. 지역 건축가들의 작품이 모여서 제주풍경의 품격이나 기준을 만든다. 지역 건축가가 무너지면 지역의 미학이나, 형태에 대한 품질도 무너진다. 우리가 지역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질 낮은 건축은 도태되지 않을까. 전체적인 품질이 올라가면 그런 건축은 자연스레 도태된다.

 

- 제주 건축에 대한 고민을 좀 해보자.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가 내려왔다. 애월 해안도로에 설계를 하나 했다.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좋다. 그런데 계속 심의에서 떨어졌다. 완성형 경사지붕으로 하라는 주문만 있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걸 깨우치는데 4년이 걸렸다. 나는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만 집착했다. 심의에서 계속 떨어진 이유는 제주의 자연적인 풍광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제주도라는 땅을 더 존중하라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었다. 내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풍경에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자세를 낮춰야 했는데, 그렇게 바뀌는데 4년 걸렸다.

 

- 제주도는 두가지의 풍경이 있다. 한라산과 바다에 대한 경외감이 없으면, 풍경을 훼손하게 된다. 자기만 한라산을 보려는 건축, 어떤 때는 바다가 보이는 곳이어야 하는데 자신들만 바다를 보려고 한다. 한라산과 바다에 대한 경외감이 없으면 풍경 훼손인데.

사실 공무원도 심의가 떨어진 것에 대한 설명을 잘 하지 못했다. 왜 완성형 지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이왕이면 공무원도 그런 부분을 잘 말해 줄 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 하고 싶은 얘기는 없는가.

건축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건축가가 질 낮은 건축을 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건축을 문화라고 하는데, 나라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 작품이 잘 나오려면 설계단가가 올라야 한다. 만일 돈은 없는 사람이 집을 지을 때는 얼마 이하의 주택인 경우엔 나라의 돈을 받는 건축가가 설계를 해주는 방식으로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승효상 저 <빈자의 미학>

 

승효상. 그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축가이다. 그에겐 늘 따라다니는 게 ‘빈자의 미학’이다. 빈자(貧者)는 가난한 사람을 일컫는데, 승효상은 가난한 사람에게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려고 ‘빈자의 미학’이라고 하진 않았다. 어찌 보면 한자어 ‘빈자’를 씀으로써 뭔가 달라 보이려 했던 그만의 건축관이 느껴진다.

승효상이 말한 ‘빈자’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비워내는 행위를 스스로 폼나게(?) 표현했다. ‘가난할 빈(貧)’이라는 한자엔 가난하다는 뜻만 있지 않고, ‘적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으니 말이다. 가득함이 아니라 나누는 행위, 기능이 아니라 기능에 반하는 ‘반(反)기능’이 그의 책에 담겨 있다.

건축행위는 어디서든 이뤄진다. 매번 눈에 보인다. 상승하려는 욕구, 위만 바라보는 행위에 대한 물음도 ‘빈자의 미학’이라고 풀어쓴다.

<빈자의 미학>은 1996년에 나왔다. 책은 절판됐다가 2016년에 다시 나온다. 책은 그때 나왔지만 ‘빈자의 미학’이라는 선언은 그 전이었다. 승효상은 1992년 4.3그룹 건축전시회에서 ‘빈자의 미학’을 처음 썼다. 마흔이라는 젊은 건축가의 선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책 <빈자의 미학>은 1996년 초 AA스쿨의 초청강연을 앞두고 내놓았다. 책은 4.3전시회의 책자에 실렸던 글과 1993년에 발간한 에세이집에 수록된 ‘현대의 유적’을 바탕으로 묶어서 냈다.

승효상은 책에서 새마을운동으로 대변되는 ‘잘 살아보세’를 비판한다. ‘잘 살아보세’는 왜 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분별력 없는 구호였고,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오늘날의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긴 하다. ‘잘 살아보세’라고 외치던 순간 우리의 기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지 않은가. 더구나 그런 ‘잘 살아보세’는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

<빈자의 미학>을 들여다보면 자코메티의 조각이 나온다. 승효상은 그 조각상에서 힘을 느낀다고 했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참으로 가늘고 길며 유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가슴 조이는 긴장과 엄청난 힘을 느끼게 한다. 그 빈곤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조상(彫像)은 어덯게 그러한 힘을 느끼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나에겐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나는 이와 유사한 아름다움을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서도 느낀다.”

침묵과 절제. 자코메티의 조각에도 있고 추사체에도 있다. 아울러 승효상은 김환기의 작품을 통해 한계의 극복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선언한 게 ‘빈자의 미학’이다.

“나는 김환기의 그림에서 현대건축이 봉착한 한계-미로를 빠져나갈 탈출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를 ‘빈자의 미학’이라 부르기로 했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또한 ‘반기능’을 책에서 말한다.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집은 편리만을 쫓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건축물이 기능적이지 않고, 반기능적이면 어떻게 될까. 적당히 불편해야만 한다. 비가 올 때 비를 맞고, 눈이 올 때는 눈을 반기기도 해야 한다. 그건 적당히 불편해야 가능한 일이다. 승효상은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그런 집이 더욱 건강한 집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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