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늘 그리웠던 사람, 건축으로 표현하다”
“제주가 늘 그리웠던 사람, 건축으로 표현하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7.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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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책가방] <11> 이타미 준

제주도는 언제부터인가 ‘건축의 섬’이 됐다. ‘건축의 섬’이라는 지위를 얻으려면 제주도민 모두가 예술가여야 할텐데, 그런 의미에서 ‘건축의 섬’은 아니다. 제주도라는 땅이 워낙 인기를 끌고,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유명 건축가를 제주로 끌어들여 작품을 남긴다는 그런 의미가 ‘건축의 섬’에 담겨 있다. 때문에 건축 아닌 건축이 제주에 등장하기도 하고, 세계적 건축가의 이름만 있는 그런 건축물도 있다. 건축가는 제주도라는 땅을 마구 유린하는 도구로서 이용당하기도 한다.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을 가져왔으니 건축심의를 통과시켜달라는 협박아닌 협박도 있다.

제주도는 소중한 땅인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는 건축가는 얼마나 될까. 세계적 건축가들이라는 사람들은 한두 번 얼굴을 내밀고, 드로잉을 하면 끝이다. 그건 제주라는 땅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유동룡(庾東龍)이라는 이름의 건축가.

유동룡은 고려 개국공신인 유금필 장군의 후예이다. 우리나라에서 희귀 본관에 해당하는 ‘무송 유씨’ 34대손이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무송 유씨는 2015년 기준으로 1만3868명에 불과한 희귀 성씨이다. 더더욱 그는 일본에서 살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자를 많이 쓴다지만 무송 유씨의 ‘곳집 유(庾)’라는 한자를 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사람인 유동룡은 예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이타미 준(1937~2011)이다. 본명보다 예명이 더 알려진 건축가.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존재를 해온 건축가가 이타미 준이다.

그의 건축 이야기는 그가 쓴 <돌과 바람의 소리>라는 책과 그의 딸이 엮은 <손의 흔적>이라는 책에 잘 드러난다. 그는 이방인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을 잘 알고, 제주의 자연도 누구보다 잘 이해를 하고 있다.

<돌과 바람의 소리>는 이타미 준이 1973년 3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일본 건축잡지인 <신건축과> <실내> 등에 실린 글을 손보고, 몇 가지 글을 덧붙여서 낸 책이다. <손의 흔적>은 이타미 준이 쓴 글과 평소에 했던 말을 그의 딸이면서 제자이기도 한 건축가 유이화씨가 엮어낸 책이다.

건축물은 그저 짓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주체로 삼아 건축물을 매체나 중간질로 인식할 때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 어떤 여백이 생겨나는가, 어떻게 조화되는가, 반대로 어떤 대립과 복합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유이화 엮음, ‘손의 흔적’ 중에서)

우리는 관계에 사로잡혀 산다. 혼자만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가 아닌 이상, 사람은 ‘관계맺음’으로 산다. 코로나19라는 광풍이 몰아치기에 더더욱 공동체가 중요해졌고, 특별한 이들과의 관계가 있어야 생존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관계는 건축이라는 세계에서는 더 중요하다. 관계는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건축은 건축가 혼자 하지 않는다. 땅과의 관계,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 만들어진 이후까지의 관계도 건축에 해당한다. 그의 건축 데뷔 이야기부터 해보자.

이타미 준의 작품인 방주교회. 미디어제주
이타미 준의 작품인 방주교회. ⓒ미디어제주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 기억에 남는 일이다. 때문에 ‘데뷔’는 가슴 떨리는 일이다. 건축가도 마찬가지이다. 이타미 준의 데뷔작은 ‘시미즈의 집’이다. 시미즈는 기억이 담긴 공간이다. 시미즈는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다. 거기엔 후지 강이 흐르고, 코이케라는 다리가 있었다. 이타미 준은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를 위해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은 시미즈로 옮긴 것이었다. 이타미 준은 그 작은 도시에서 양철지붕에 판자 벽을 세운 집에 살았다. 그야말로 간이주택인데, 밤엔 집 안에서도 하늘의 별도 보였다. 데뷔작 ‘시미즈의 집’은 바로 어머니의 집이다.

시미즈의 집은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설계 경험이 풍부하지 않아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일거리가 없던 내게 그야말로 구원의 손길이었다.” (이타미 준 씀, ‘돌과 바람의 소리’ 중에서)

집은 지어졌다고 완성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타미 준이 어머니를 위해 설계한 ‘시미즈의 집’은 거기에 사는 사람이 완성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비록 건축가라고 하더라도 그 집을 만드는 건 절반은 주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생활공간을 꾸미는 일은 건축주의 몫이 아니던가. 관계로서 말이다. 하지만 이타미 준의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의 데뷔작은 건드려서는 안되는 작품으로 여겼나 보다. 가구를 움직이거나 공간을 바꾸지 않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타미 준은 책에서 “제발 어머님!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공간을 바꿔 사용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타미 준을 바라보면 그의 건축세계는 일본과 다름을 알 수 있다. 그의 건축세계를 관통하는 건 우리의 전통이다. 이타미 준은 우리나라 곳곳을 탐색하면서 공부했고, 일본에까지 알렸다. 우리의 전통건축과 조선민화를 담은 책을 내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조선의 건축과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의 ‘우리 사랑’은 남달랐다.

지금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기(磁器)는 뭐니뭐니해도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다. 백자 항아리를 무심히 바라볼수록 두 눈이 빨려들고, 푸르고 생생한 온기와 새로운 각성에 빠져든다. 또한 바라볼수록 막연한 그 모습에 마음이 들떠서 좀처럼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타미 준 씀, ‘돌과 바람의 소리’ 중에서)

백자 항아리. 흔히 ‘달 항아리’로 불린다. 하얗다. 둥글다. 보름달을 닮아서 ‘달 항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달 항아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형미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좌우대칭이 아니라 어딘가 틀어진, 부정형이다. 그러니 완벽한 원 형태가 아닌 살짝 찌그러진 달 모양이 된다. 완전 이지러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자연스럽지도 않은 미를 지닌 백자 항아리가 바로 ‘달 항아리’이다. 그걸 본 사람들은 미친 듯이 환장한다. 보면 볼수록 빨려들게 만든다. 달 항아리만의 매력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국립박물관의 한국관에도 달 항아리는 으뜸 자리를 차지한다. ‘moon jar’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타미 준도 그런 달 항아리에 매료되었다. 이타미 준의 표현을 더 들어볼까.

눈길을 거부하는 경질의 하얀색이 아니라,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맑은 우윳빛의 부드러운 하얀색이다. 멀고도 오랜 세월을 품고서 표면에 나 있는 무수한 잔금과 얼룩, 그것은 만들어진 것의 부피가 빚어내는 실재감과는 전혀 무관하게 오히려 허공에서 거침없이 호흡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타미 준 씀, ‘돌과 바람의 소리’ 중에서)

이타미 준의 작품은 참 좋다. 그래서 거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타미 준은 또다른 거장을 존경한다. 바로 김중업이다. 그의 김중업에 대한 사랑은 두 편이나 되는 글을 남겼다는 점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그는 김중업을 향해 “한국에서 건축과 자연을 아우른 최초의 건축가였다”고 찬사를 보낸다. 이타미 준은 그에게서 ‘부정형의 선’을 확인한다. 마치 달 항아리가 드러낸 부정형이 김중업의 작품에서도 보였던가 보다. 김중업의 부정형은 조형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타미 준은 말한다.

이타미 준은 김중업에 대한 두 편의 이야기에 모두 제주대 본관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제주에 와서 사라지기 전의 제주대 본관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제주대학 본관 역시 그의 조형 감각과 개성에서 우러나온 훌륭한 작품이며 건축의 명품이나, 구조적 결함에다 증축으로 사라지는 운명이 되었으니 통한스럽기 짝이 없다. 1996년에 내가 이 건물을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간신히 원형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현관 주위에 용의 이미지를 추상화한 그의 조형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사라져간 이 건축은 한국 건축사에, 아니 세계 건축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작품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타미 준 씀, ‘돌과 바람의 소리’ 중에서)

이타미 준은 일본 건축계에 덜 알려진 김중업을 알리고자 글을 썼다. 이타미 준은 ‘전위(前衛)의 운명’이라며 김중업을 평가했다. 전위는 ‘아방가르드’로도 표현되는데,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먼저 해나간 예술가에나 붙일 수 있다. 이타미 준이 김중업을 그렇게 표현했는데, 제주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타미 준 역시 제주 건축의 아방가르드 아니었을까.

이타미 준은 제주에 기억될 건축물을 남겼다. 그런데 2004년에 출간된 <돌과 바람의 소리>엔 제주와 관련된 건축 이야기가 없다. 10년 후에 다시 나온 <손의 흔적>을 봐야 제주 건축에 대한 이타미 준의 기억을 만나게 된다. 두 책의 10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이타미 준의 건축도 시간 흐름을 느끼게 만든다. <손의 흔적>은 방주교회를 표지로 삼는다.

이타미 준은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쉽다. 위안을 삼는다면 그의 딸인 유이화 건축가를 안다는 점일까. 내가 이타미 준에 대한 글을 쓴 건 20년 전이다. 이타미 준은 그때부터 제주에서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핀크스골프장의 주요 건축물의 그의 작품으로, 제주라는 땅에 그의 작품이 하나 둘 둥지를 틀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타미 준의 글 가운데 ‘바람의 노래’를 한번 들어봐야 한다. <손의 흔적>에 담긴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 나라의 문화, 전통, 정신문화, 그리고 풍토를 되돌아보고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의 맥락 속에서 조용히 탐구한다면 필연적으로 지역적이고 보편적인 건축의 뿌리 또는 핵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유이화 엮음, ‘손의 흔적’ 중에서)

그는 획일화에 반대한다. 이타미 준은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균질화되고, 똑같은 틀을 지닌 건축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건축답지 않을 때라야 진짜 건축답다고 여긴다. 건축은 어떤 중심축을 따라 움직이지만, 그는 조선시대 건축물처럼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양새를 진정한 건축으로 본다. 그러면서 조선의, 아니 우리나라 전통건축을 ‘반(反) 건축’이라 지칭한다. 건축인데, 건축이 아니다? 다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을테지만, 건축이란 자고로 지어지는 땅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안다면, 이타미 준이 말한 ‘반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타미 준이 제주에 준 건축작품 가운데 ‘수풍석 미술관’이 있다. 이타미 준은 “예술품은 자연을 보완하는데 불구하다”고 말했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자연을 배격하지 않는 ‘반건축’이 그의 말에 드러난다.

이타미 준을 책으로 만나려는 이들에겐 그의 드로잉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드로잉은 건축의 시작이다. 이타미 준에겐 드로잉은 건축의 시작이면서, 건축 이상의 것이다. 드로잉은 단순한 그림작업으로 보면 오산이다. 그에게 드로잉은 건축 도면이 완성되기 전의 사유가 담겨 있고, 드로잉으로 표현되는 풍경에 자신이 직접 몸을 담그며 건축을 느끼는 세계였다. 이제 그는 가고 없다. 그가 표현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기엔 <손의 흔적>이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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