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문화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이 크게 제약 받는 상황을 바라보며, <미디어제주>는 고민을 했습니다.
“침체된 제주의 문화예술시장 상황에, 언론이 도움될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준비한 기획입니다.
'당신이 알고 싶다'. 제주에서 활동 중인 예술인, 혹은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와 인연이 있는 예술인을 소개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묵묵히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를 바랐던 김구 선생님의 바람처럼.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향하는 과정에, ‘문화예술’이 함께하기를 바라봅니다. 이를 위한 긴 여정에, <미디어제주>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주]
*기사 하단에 있는 '랜브리즈'의 음악을 재생한 뒤, 기사를 읽으면 더 좋아요!
육지에서 불어온 아름다운 바람, '랜브리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좋아하는 한 가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해야만 하는 또다른 일을 견뎌야 한다.
“돈 벌려고 하는 거였으면, 이렇게 못하죠. 이걸로 먹고살 거 아니니까, 가볍게 의미 부여하지 말고 계속하려고 해요.” /랜브리즈 이승훈
제주를 주 무대로 활동 중인 4인조 밴드 ‘랜브리즈’. 이들은 모두 밴드 활동 외에 생계수단을 가진 ‘직장인 밴드’다.
일하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직장에 다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 하고 싶은 취미만 하며 사는 한량 같은 삶을 꿈꾸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어른이기에. 오늘도 일터로 나선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 있잖아요. 제가 그렇습니다.” /랜브리즈 여성혁
성혁 씨는 두 쌍둥이를 둔, 새내기 초보 아빠다. 멤버들이 두 아이의 동영상을 보며, “귀엽다”를 연발하는 모습에 성혁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성혁 씨의 돌발 발언에 빵 터진 멤버들. 랜브리즈의 합주실을 찾으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랜브리즈는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온 멤버가 많아요. 밴드 이름도 여기에서 착안해 랜브리즈(Land Breeze)라고 지었어요. ‘Land(육지)’와 ‘Breeze(미풍, 불어오는 바람)’ 두 단어를 섞어,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 뭍바람’의 뜻을 가진 이름이에요.” /랜브리즈 정소진
랜브리즈에서 베이스를 치는 소진 씨는 제주로 이주한 지 4년 차로, 직장 생활과 음악을 병행하고 있다.
드럼을 치는 여성혁 씨는 제주 생활 6년 차, 데이터 분석 일을 한다.
랜브리즈의 곡 대부분을 도맡아 만드는 보컬 이시우 씨는 제주에 온 지 9년 차.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랜브리즈에서 유일한 제주 출신, 기타리스트 이승훈 씨는 육지에서 음악 활동을 하다 3년 전 제주로 ‘돌아온 연어’다.
승훈 씨는 스스로를 ‘연어’라 칭한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삶의 터전을 벗어나 육지의 음악인으로 활동하다, 다시 고향 제주를 찾았기 떄문이다.
“육지에 있을 때도, 직업적으로 음악을 꾸준히 해왔어요. 지금도 랜브리즈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요. 학원 강사, 개인 레슨 다 해요. 그런데 최근에 좀 힘들어요. 코로나19 이후 직격탄을 맞았죠.” /승훈
코로나19가 미친 여파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에게도 상당히 컸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원사업이나 공연들이 많이 없어지는 추세라. 저희 곡을 소개하거나 발표하기 위한 무대, 뮤지션들이 설 무대가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방법이 없을 듯해요.” /소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우리의 노래’를 들려줄 무대가 없다는 사실은 뮤지션의 힘을 빠지게 한다. 이것이 장기화되면, 언젠가 노래할 원동력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이처럼 모두가 힘든 상황 속. 승훈 씨는 자신보다 더 힘든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저희는 그나마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으니 상황이 좀 낫다고 할 수 있어요. 반면, 코로나19 여파로 생계 자체가 힘들어진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되었음 해요.” /승훈
'음악할 때 즐겁다' 말하는 사람들, 이들의 순간은 찬란하다
“저는 시우를 알게 된 지 4년 정도 됐는데. 계속해서 밴드를 만들려고 둘이 시도를 했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랜브리즈’ 활동이 참 좋아요. 무조건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려고 해요. 재미있고, 신나게.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어요.” /성혁
랜브리즈에서 유난히 시우 씨에게 장난을 많이 치는 성혁 씨. 그는 음악할 때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가장 다른 멤버다.
드럼을 칠 땐 ‘엄.진.근(엄격, 진지, 근엄)’한 얼굴이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이다.
“요새 시우 씨가 좀 늙는 것 같애.” /성혁
시우 씨를 가만히 바라보던 성혁 씨의 돌발 발언.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의 맞장구가 시작된다.
“응, 좀 티 나는 것 같아.” /승훈
“예전엔 좀 더 발랄했는데. 얼굴이 예전 같지 않아.” /소진
승훈 씨와 소진 씨의 동조와 함께 하나 된 멤버들의 시우 씨 놀리기.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반응이 없다.
인터뷰 내내 말수가 적었던 시우 씨. 랜브리즈에서 작사, 작곡을 맡은 만큼, 밴드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많은 명곡이 있음에도, 우리가 ‘랜브리즈’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여기에서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저는 누가 꼭 저희 음악을 ‘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들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곡을 만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혼자 작업을 하고, 되는대로 만들어 보고. 그냥 그러고 있어요. 저희 곡이 좋다면, (많은 분들이 알아서 찾아) 듣겠지. 그렇게 생각해요.” /시우
자신이 만든 음악을 "굳이 대중이 듣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시우 씨. 이 세상 쿨함이 아니다. 대중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기에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이번에는 소진 씨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다.
“많은 명곡이 있음에도, 우리가 ‘랜브리즈’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희 음악은 ‘정도’에서 벗어난 음악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게 ‘굉장히 독특한 무언가’라는 의미는 아니고요. 무언가 살짝 길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음악. 사람들이 늘 걸어가는 정해진 방향에서 약간 벗어난 것 같은 음악을 하고 있는데. 막상 들어보면 편하고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아,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는 것을 많은 분들이 듣고 함께 공감해주신다면 좋겠어요.” /소진
소진 씨의 예쁜(?) 마무리로 포장한 채,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성혁 씨의 2차 돌발 발언이 훅, 하고 들어온다.
“시우 씨의 작사가 굉장히 시적이라는 말이 많은데. 대필 의혹을 제기합니다.” /성혁
뜬금없이 대필 의혹이라니. 무슨 말인가 하니, 소진 씨가 웃으며 덧붙인다.
“곡을 만들고 나서 합주로 완성할 때까지만, 그 곡을 좋아하더라고요. 한 곡을 완성하고 나면 ‘자, 다음 곡’ 하면서, 연습하던 곡에 미련을 두지 않아요. 하하.” /소진
멤버들의 계속되는 놀림에 별다른 해명 없이 피식 웃기만 하던 시우 씨. 그런 그가 '곡에 대한 애정'을 의심받자 처음으로 반박에 나섰다.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만든 곡이면 다 좋아하죠. 자식 같고.” /시우
'랜브리즈'와의 인터뷰에서, 4명의 구성원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 “음악을 할 때, 행복하다”라는 고백이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수많은 매체에서, 작품에서 쉽게 소비된 만큼. 그 의미가 퇴색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들이 말하는 '행복'은 빛바랜 과거의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찬란한 순간이다.
이들은 아마 오래도록 음악을 할 것 같다. 혹여 언젠가 ‘모두 함께’가 아니게 될지라도. ‘음악을 할 때 행복’을 알아버린 이들은, 음악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랜브리즈가 곧, 공연을 합니다>
언제?
7월 18일 토요일 오후 8시
어디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동광로 21 '낮과밤'
어떻게?
랜브리즈의 창작곡을 감상하며,
시원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으로 꾸며집니다.
* 랜브리즈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스트리밍 사이트 혹은 유튜브 검색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미디어제주>를 통해 스스로를 소개하고 싶은 예술인 분들은 이메일(jejugroove@gmail.com)로 간단한 소개와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장르 제한 없음, 예술 관련 종사자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