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 무효확인, 법률로 명문화돼야”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 무효확인, 법률로 명문화돼야”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0.07.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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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교수 “재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불성립‧부존재 의미에서 국회가 해줘야”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주지역 토론회 … 배‧보상 명문화 등 개정시안 설명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주지역 토론회가 8일 오후 제주도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주지역 토론회가 8일 오후 제주도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 본격 시작된 가운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시행령이 아닌 법률안에 보상기준을 명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일 오후 제주도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주지역 토론회’에서 ‘제주4.3특별법의 개정 방향’ 발제를 통해 피해 구제조치와 관련, 특별법 개정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4.3당시 이뤄진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무효확인 조치가 법률로 명문화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이 교수가 마련한 개정시안 제15조(재판과 명예회복조치) 내용을 보면 제1항에 ‘1948년 12월 29일에 작성된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20호와 1949년 7월 3일부터 7월 9일 사이에 작성된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1-18호 및 각각의 명령서에 첨부된 별지상에 기재된 사람에 대한 각 군사재판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조항을 신설해놓고 있다.

또 2항에서는 ‘법무부장관은 군사재판의 무효에 관한 사항을 관보에 게재하고 유죄판결을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의2에 따라 수사경력자료에서 해당사항을 삭제하고, 희생자와 유족에게 그 사실을 즉시 통보한다’고 적시했다.

이와 함께 3항에서는 ‘제주4·3사건의 희생자로 인정된 사람의 제주4.3사건과 관련된 일반재판은 전과기록에서 말소한다’는 규정도 마련해놓고 있다.

이같은 내용을 개정법률안에 명시함으로써 4·3희생자로 인정된 사람에 대한 일반재판의 경우 전과기록이 말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 2007년 4.3특별법 개정으로 ‘수형인(受刑人)’은 희생자로 인정됐지만, 수형인이 희생자라면 재판 자체의 적법‧위법성 또는 유‧무효, 전과기록 말소 등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면서 “현재로서는 수형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그는 “입법적으로 판결을 무효화는 방식은 대다수 법률가들에게는 충격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면서도 “우리 군사재판보다 훨씬 양질의 재판을 진행한 독일도 일괄해서 무효화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이 ‘나치불법판결청산법(Unrechtsurteilsaufhebungsgesetz)’을 제정해 나치독일의 허다한 정치 재판을 무효화한 사례, 2000년대 이후 독일이 59개 악법이나 법 조항에 입각한 유죄 판결을 모두 무효화한 사례, 동시에 악명높은 정치재판소(친위대즉결처형재판소 및 인민재판소)의 판결을 모두 무효화한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한 마디로 독일은 우리보다 훨씬 법리적으로 잘 만들어진 일반재판도 다수를 무효화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4.3군사재판은 재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성립, 부존재에 준하는 의미에서 무효 확인을 국회가 해줘야 한다. 군사재판의 무효 확인이야말로 품위있는 해결방식”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보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20대 국회 때 개정안에서는 시행령에 맡겼으나, 이번 개정시안은 법률안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개정시안은 한국전쟁 중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보상 관행과 동일한 수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 예비검속 희생자와 문경민간인희생사건, 울산보도연맹 사건들을 고려해 보상금을 정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따라 그는 “대체로 사망 희생자에 대해서는 1억3000만원 정도의 보상금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정부 쪽에서는 국가보상금 총액을 5~6조원 정도로 추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대체로 희생자를 3만5000명 정도(한국전쟁 희생 민간인 포함)로 추산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그는 “국가 배상에서는 개별적인 소송의 특성상 사망자 본인의 피해,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의 위자료 등을 각각 고려할 수 있지만, 4.3특별법에서 이러한 개별적인 산정방식을 가동하기에는 곤란한 문제들이 적지 않게 발생할 것”이라면서 “유족의 수에 좌우되지 않는 일률적인 보상금 정책이 가장 편의적이고, 희생자간의 평등을 고양시킬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그는 “개정시안은 민간인 희생사건에서 법원이 사망자 본인,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비속 등에 따라 배상액(위자료)을 개별적으로 일률적으로 확정했던 고려의 배경을 그대로 제도화한 것”이라며 “결국 가족관계에 따라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이 유동적인 상황도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보상금은 사망자의 생명 침해에 대한 유족을 위한 특별위자료로 부르는 것이 실상에 부합한다”며 “따라서 유족의 수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확정된 특별위자료는 이제 상속법에 따라 배정하면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보상 대상자는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 후유장애인, 수형인으로 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보상금은 수령 자격이 있는 희생자(본인)가 부재하는 경우 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면서 사실상의 배우자도 법률상의 배우자로 간주하는 특칙을 두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 그는 “당시 시대상황에서 호적 정리의 어려움을 감안했다”면서 “동순위 상속인 중에서 제사 봉행자나 묘지 관리자는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도록 했고, 70여년 간의 봉사와 제주도의 관습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또 희생자에게 보상금이 지급된다면 생활지원금제도를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생활지원금은 삭제하고, 의료지원금은 현행대로 유지하도록 하는 조항 내용을 설명했다.

다만 그는 최근 지급방식과 관련해 거론되고 있는 분할식 지급이나 연급 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5~6조원의 보상금을 지금 당장 집행하려고 해도 4~5년이 걸릴 것”이라며 “특히 4.3희생자 뿐만 아니라 전국의 민간인 희생자 명부를 확정하는 데에도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또 그는 “4.3 희생자는 현재 1만5000명 정도로 확정됐기 때문에 한국전쟁 중 민간인 히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보다 더욱 수월하게 조기에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분할 지급 방식이나 순차적 지급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최근에 연금 형식으로 지급하자는 제안이 나온 데 대해서도 그는 “정부가 장기간의 보상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면, 연금식(분할식) 지급보다는 순차적 지급방식(분산적 지급방식)을 택하기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한국은 70년이 지난 후에야 보상을 시행하기 때문에 상속인은 2대를 넘어 3대나 4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이 경우 대부분의 보상금 지급 건에서 다수의 상속인들이 존재하게 되는데, 결국 다수의 상속인들에게 보상금을 월정액으로 분할해 지급하는 방식은 국가의 편익만 있을 뿐 희생자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주지역 토론회가 8일 오후 제주도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주지역 토론회가 8일 오후 제주도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이에 앞서 그는 현행 4.3특별법의 제2조(정의)에 명문화돼 있는 ‘제주4.3사건’의 정의에 대한 내용에 대해 “현행법은 소요사태와 무력 충돌, 진압과정이라는 용어를 배치함으로써 독해 방식에 따라 4.3사건의 책임을 무장대와 봉기자들에게 전가하고 국가 폭력을 본질적으로 무해화하는 사고를 전제한다는 부적절한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제주도민의 항거와 4.3본기에 대한 공권력의 진압 과정, 주민의 희생을 전반적으로 명시함으로써 항쟁의 측면과 희생(집단학살)을 동시에 반영하는 내용의 개정시안을 제시했다.

다음은 현행 4.3특별법과 개정시안에서 ‘제주4.3사건’에 대한 정의를 내린 부분을 비교한 내용이다.

현행법 : ‘제주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개정시안 : ‘제주4.3사건’이란 미군정기인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제주도민의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가 전면 해제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규배 제주국제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토론 순서에서는 김성도 제주4.3희생자 유족회 법개정특위위원장, 김종민 국무총리실 소속 4.3위원회 전 전문위원,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송시우 제주고 교사,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공동대표, 강성민 제주도의원이 패널로 참여해 특별법 개정방향에 대한 의견이 제시됐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제시된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은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와 실무위원회 설치, 피해신고 및 진상조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 공동체 회복 지원 등 모두 7장‧40개 조문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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