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지사의 '문화예술분야 특별명령' 지침을 바라보며
원희룡 지사의 '문화예술분야 특별명령' 지침을 바라보며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06.1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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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18일 오후 발표한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 분야에 관한 도지사 특별명령’ 지침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속 빈 강정같은, 지금의 문제와 거리가 먼, 보여주기 식 지침일 뿐이라고.

제주도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행이 불가능한 예산을 최대한 삭감하기로 밝히며, ‘대면 접촉 문화 행사 사업, 전면 취소’라는 지침을 내세운 바 있다. 이에 제주도의 각 부서와 서귀포시, 제주시 등 행정은 ‘예산편성 지출구조화’ 과정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문화예술사업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제주 지역 행사대행업체가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와 제주예총, 서귀포문인협회 등 도내 문화예술단체는 줄줄이 성명을 발표하며 제주도정의 문화예술행사 취소 지침을 비판했다. 제주도의회는 ‘제주도가 살림을 제대로 못해 구멍난 예산을 문화예술 예산으로 대신하려 한다’는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원희룡 지사의 ‘특별명령’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결정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 분야에 관한 도지사 특별명령

1. 현장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속하고 가감없이 수렴할 수 있는 기구를 구성할 것

2. 문화예술인의 실질적인 복지 증진을 위한 가칭 ‘문화복지기금’ 설치를 추진할 것

3. 제주형 문화 뉴노멀 프로젝트 추진 방안 마련 (디지털을 통한 문화예술 활동 지원)

가만 보면 그럴 듯 하다.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예술인 복지 증진에 힘쓰며, 디지털 창작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 지금 논란이 되는 ‘문화예술 관련 사업 예산 삭감’과 관련된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

보도자료 마지막 부분에 “비대면 영역 등을 활용하여 문화예술을 접목, 활성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는 문장이 나오기는 하지만, 삭감 예정인 문화예술 관련 예산안을 재조정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고 있다. 예술인들과 예술 단체, 유관 업체가 원하는 것은 올해 행사 진행에 필요한 예산인데 말이다.

결국 원 지사가 발표한 ‘특별명령’은 이름만 거창할 뿐, 현재 논란이 되는 '대면 행사 예산 삭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작은 민간단체의 문화예술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 위기에 놓인 반면, 전액 도비로 진행되는 '2020제주국제관악제'의 경우 '국제' 부문을 제외하고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적하고 싶은 것이 또 있다. 제주도의 '예측 불가능한', '알 수 없는' 예산 삭감 지침에 차별받는 단체가 분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세계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사람들이 모이는 문화예술 행사를 축소하거나, 취소하겠다는 결정은 제주만이 내린 것이 아닌, 전국의 공통된 상황이다.

이에 제주도가 대면 형식의 문화예술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 하더라도, 이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는 도민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문화예술이 모두의 안전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행사를 취소하고, 예산을 삭감하는 사례를 만들겠다면, 제주도는 적어도 명확한 지침을 세우고 이를 시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대면 형식의 공연을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 공연으로 전환할 경우. 이 행사가 과연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 방식에 적합한 성격을 갖고 있는가를 판단해 예산 교부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일부 행사는 특혜를 받는 모양이다. ‘2020제주국제관악제’가 그렇다.

2020제주국제관악제는 8월 11일부터 16일 예정된 행사로, 행사 개최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하지만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국제’부문을 제외한 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18일 오후 <미디어제주>와의 통화에서 현재 제주도와 예산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행사 취소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은 바 없다고도 덧붙였다.

제주국제관악제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공연소개 화면 갈무리. 제주국제관악제의 주 행사는 공연으로 이뤄진다.
제주국제관악제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공연소개 화면 갈무리. 제주국제관악제의 주 행사는 공연으로 이뤄진다.

당초 ‘2020제주국제관악제’ 행사에 14억5600만원 예산이 책정되어 있던 점을 본다면, 예산을 삭감해 진행하더라도 이 행사에만 수 억원 수준의 도비가 교부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온라인 중계’ 방식으로 '2020제주국제관악제'를 진행하겠다면, 반드시 행사를 진행해야만 하는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관악’, 그러니까 오케스트라 공연은 실제로 ‘대면’하는 공연이어야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귀로 듣고, 몸이 울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은 직접 보았을 때 감동이 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온라인을 통해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을 찾아 감상하는 법을 안다. 따라서 수억원 세금을 들여 ‘국제팀’도 없는 ‘2020제주국제관악제’를 개최해 온라인으로 관람할 필요가 없다.

반면, 2020제주국제관악제와는 달리 취소 위기에 처한 행사도 있다.

단적인 예로 서귀포문인협회는 사전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서귀포시로부터 '문학세미나를 위해 교부 받은 1150만원의 보조금을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안정업 서귀포문인협회장에 따르면, 그는 16일경 서귀포시 문화정책과 측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보조금 반환과 관련해 대화를 나눴고, 당시 서귀포시 관계자는 “도의 방침”에 따라 대면 행사 지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서귀포문인협회(이하 ‘협회’)는 18일 성명을 통해 “이것이 문화의 가치를 키우겠다는 원 도정의 최소한의 성의인 것이냐”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서귀포시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며 사업 시행 과정에서 (보조금 반환이 결정돼 사업이) 중단되면, 서로 어려우니까 염두해두고 사업을 진행하라"고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면행사는 자제하라는 분위기여서, 이런 분위기라는 것을 알고 계시라는" 의미에서 보조금 반환 이야기를 꺼낸 것이지,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처럼 보조금 반환 문제 때문에 초조한 민간단체(서귀포문인협회)와는 달리, 전액 도비로 진행되는 '2020제주국제관악제'는 '온라인 중계 공연'을 준비 중인 상황. 

이처럼 현장 중심의 대면 행사로 기획된 사업 중에서도, '온라인 중계'로 형식을 바꿔 준비 중인 행사가 있는 한편, 이마저 불가능해보이는 행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원 지사의 '병주고 약주고' 식의 특별명령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화예술 사업과 관련해 예산 삭감을 결정했다면, 어떤 기준으로 삭감 수준을 책정하는 것인지 문화예술인은 물론 도민 모두에게 명확히 밝혀야 그의 결정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도민 모두에게 지급할 '제2차 제주형 긴급재난지원금'이 일부 도민의 살을 깎아 만들어진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주에 살며, 제주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도민이기에. 문화예술인은 소상공인 등 다른 산업 분야 종사자와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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