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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그 본질에 대한 단상
개발, 그 본질에 대한 단상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06.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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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20년 1월호] 칼럼
-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우리 세대는 참 많은 ‘개발’을 겪으며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개발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우리가 학교나 사회에서 배운 ‘개발’은 풍요로운 미래로 가는 길이고 당연히 다양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개발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일종의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세대로 한 시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개발은 과연 무엇일까? 개발이라는 행위, 또는 정책에 대해서 우리는 다 같은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까?

국어사전에서 개발이라는 단어는 ‘토지나 천연자원 따위를 유용하게 만듦’, ‘지식이나 재능 따위를 발달하게 함’,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새로운 생각을 내어 놓음’, ‘산업이나 경제 따위를 발전하게 함’이라고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유용하게 만들고 쓸모 있거나 향상시키는 행위’, ‘지식과 재능을 발달시키는 것’, ‘새로운 물건이나 생각 따위를 만들어 내는 것’ 등 개발의 주체는 사람이고 이 행위들의 주어는 바로 사람이다. 그러나 ‘산업,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의미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재화(財貨)를 축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라고도 풀이 할 수 있다. 사람이 빠지고 ‘축적(蓄積)’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주객이 전도된 개발의 문제를 우리는 간과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자.

20세기 이전, 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계급이 존재했고 남녀 차별을 비롯한 각종 차별에 의해 경제구조 또한 일부 상위계급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국가간에도 식민지 확보를 위한 전쟁을 당연시 여겨왔다. 그 이후 제국주의 시대의 큰 전쟁을 거치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체제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계로 나뉘어 공존해 왔다.

사실상 2차대전 이후 산업적으로 나타난 개발은 각 세력의 확대를 위한 방편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집단적 주거의 형태를 수용하기 위해 도시가 개발되었고 많은 새로운 물건들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발명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다. 그리고 이 발명품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거나 편리하도록 유도하는 문명의 이기가 되기도 했고 더 큰 전쟁을 대비한 더 위협적인 무기체계를 갖추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20세기에 진행된 다양한 산업, 경제개발의 근본에는 함께 사는 공동체의 차별없는 풍요로움이 깔려 있었다. 편리한 생활을 위한 사회 인프라 개발이 주된 사업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소규모 산업들이 규모를 키우며 다시 유·무형의 상품을 개발하여 국가를 초월하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런 기업들은 ‘의식주’라는 인간 기본 생활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소재를 개발하고 약품을 개발하고 기구와 기계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상품이 되면서 화폐가치에 의해 균일한 평가 제도 안에 놓이게 되면서 개발의 본질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활동의 최종 목표는 ‘돈’이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철학이나 사상이 권력이었고 오랜시간동안 무력이 권력이었으나 지금은 자본이 권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권력을 잡기위해 자본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노력이 경제활동의 목적이 되어 버렸고 그 과정을 다시 ‘개발’이라 부르고 있다. 자본의 집중은 결국 자본의 소외계층을 만들어 내고 부의 편중은 공동체의 균열을 불러오고 있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자본의 집중을 위한 개발의 남발이다.

개발의 본질 가운데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개발의 형식은 토지나 천연자원 따위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토목과 건설로 이미지화 되어 있는 개발행위를 말한다. ‘토지’나 ‘천연자원’을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가치를 높여 돈을 거둬들이기 위함이다.

2~30여 년 전까지는 토건사업이 개발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구환경의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새로운 질병의 출현, 생태계 교란 등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원인이 바로 각종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토건사업임이 드러나고 있다.

당장은 사람에게 유용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결국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바로 토건 개발 사업이다. 토건사업 외에도 에너지 관련 산업과 심지어 농수산업까지도 자연순환을 거부하고 기업들의 수익만을 위해 결국 개발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모든 사업들에 개발이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는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개발 행위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파괴를 일삼는 토건 사업이 아니고 환경을 되살리는 토건 사업을 개발이라 칭해야 한다.

뜬금없는 소리라고 비웃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미래 학자들은 이미 예견하고 있다. 그들은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들이라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는 몽상가들이 꾸는 꿈을 하나씩 실현하면서 발전해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독일 등 서유럽의 강소국들은 개발 산업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플라스틱을 비롯한 화학적 소재를 거부하며 자연에서 디자인 요소를 찾아내고 토종, 혹은 재래 생물을 복원하고 생태계에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 고민하고 있다. 대형 기계장비를 앞세워 순식간에 도시를 만들던 토건 강국들의 대기업들이 이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토건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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