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 오르려면 고전(古典) 오름나그네는 알아야죠”
“오름에 오르려면 고전(古典) 오름나그네는 알아야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6.02 09: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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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책가방] <5> 김종철의 ‘오름나그네’

단순한 오름 이야기 아닌 제주 역사 오롯이 담겨
절판됐다가 2019년 새로 옷을 갈아입고 빛을 봐

“제주는 바다에 가도 산에 가도 다른 지방의 그것과 차별되는,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그런데 산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정말 제주만의 것이 있다. 바로 오름이다. 산이나 바다는 뭍사람들 곁에 존재하는 것일지 몰라도 오름은 오직 제주사람 곁에만 머물러 있다. 제주를 진정 느끼려면 오름에 올라야 한다. 한라산이 주지 못한, 아니 한라산이 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제주 민중들의 삶이다. 오름, 그것은 한 마을의 구심점이기도 하며, 신앙의식의 터이기도 했다. 제주인들은 그런 오름 자락에서 살을 붙여왔다.”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중에서)

기자가 지난 2016년에 펴낸 책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오랜만에 그 책 냄새를 맡았다. 이유는 단 한가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참고할만한 뭔가가 있을까 싶어서다. 글을 쓴다는 일은 즐거우면서 괴롭다. 아울러 쉬우면서 어렵다. 취미 삼아 글을 쓸 땐 즐겁지만 ‘마감’이라는 압박을 받을 때는 괴롭다. 마구 긁적일 때는 쉽지만 뭔가 작품처럼 내놓으려면 갉고 닦아야 하는 일이 따르기에 어렵다. 그래도 글을 쓴다는 직업을 지녔으니 얼마나 좋은가. 오름은 민중들의 삶이라는 말, 맞다. 민중들의 삶을 말하려면 어머니를 빼놓아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름은 어머니의 품이다. 오름을 향해 그 이상 더 형용할 단어는 없다.

어머니의 품을 닮은 오름. 사진은 용눈이오름이다. 김형훈
어머니의 품을 닮은 오름. 사진은 용눈이오름이다. ⓒ미디어제주

오름은 수많은 사람이 오른다. 예전 제주에 왔던 이들도 오름은 올랐으리라.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밟고 밟히고 생채기가 난다. 그럼에도 오름은 뭐라고 하진 않는다. 옛날 사람들도 우리처럼 ‘오름’이라는 말을 썼을텐데, 정확하게 뭐라고 말했을까. 1601년(선조 34) 안무어사로 제주에 내려온 김상헌은 <남사록>에 “산을 오노음(오름)이라고 한다(以岳爲吾老音)”고 했다. 그로부터 100년 뒤인 1702년 제주목사로 왔던 이형상은 자신의 저서 <남환박물>에 오름을 ‘올음(兀音)’이라고 쓰고 있다. 제주사람들이 ‘오노음’이나 ‘올음’이라고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그걸 발음대로 옮기려니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남환박물>의 ‘올음’은 ‘오름’과 소리가 비슷하다. ‘올(兀)’이라는 한자도 ‘우뚝 솟아 높은 모양’이나 ‘산에 나무가 없는 모양’을 나타내기에, 뜻과 소리가 잘 맞아떨어진다. 18세기 중순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도 “제주 사투리로 산을 ‘올음(兀音)’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오름은 제주사람들의 입말이다. 선비들이 ‘오름’이라고 말하는 제주어를 귀담아듣고 한자로 쓴답시고 표기한 게 그나마 ‘올음(兀音)’이다. 하지만 ‘올음(兀音)’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없었다. 오름은 오름이지, ‘올음’도 아니고 ‘오노음’도 아니다. 제주 건너 뭍에 산다는 육지사람들에게 오름은 단지 산을 뜻하는 ‘악(岳)’이었을 뿐이다. 그 사람들은 제주사람의 입말을 절대 표기해주지 않았다.

제주사람의 입말인 오름. 그래서일까 오름은 무척 친근하다. 손짓에 응대할 정도로 가깝기에 더 그렇다. 설문대할망이 오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오름에 대한 이야기는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너도나도 오름을 꺼낸다. 너도나도 오름 동호회 이야기를 한다. 너도나도 오름 책 이야기를 한다. 이쯤에서 알아야 할 게 있다. 우리가 오름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하는 데는 단 한 사람만 등장한다. 오름나그네 김종철 선생이다. 기자 출신인 그는 오래 전 안녕을 고했다. 산을 좋아했고, 산에 마음을 다 준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제주도 기생화산 답사기’인 <오름나그네>를 펴냈다. <오름나그네>는 고전(古典)이다. 고전은 그냥 오래된 책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책이라야 ‘고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오름나그네>가 바로 그런 격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오름에 대한 이야기의 고전이 바로 <오름나그네>이다. <오름나그네>가 익숙지 않은 이들도 있을테지만, 오름 열풍의 시작은 <오름나그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걷는 열풍이 제주에 불어닥치기 이전부터 오름을 향해 걷는 사람이 있었고, 그걸 일깨운 사람이 바로 김종철 선생이다.

절판된 '오름나그네'. 모두 세 권이며, 1권엔 글을 쓴 김종철 선생의 실루엣이 담겨 있다.
절판된 '오름나그네'. 모두 세 권이며, 1권엔 글을 쓴 김종철 선생의 실루엣이 담겨 있다.

기자는 김종철 선생을 기억한다. 그의 말씀이나 몸가짐을 제대로 기억하는 건 아니다. 기자가 기억하는 건 그의 글이다. <오름나그네>는 책으로 나오기 이전, 제민일보에 연재된 기획물이다. 기자는 제민일보에 입사, 그의 글을 접했다. 당시는 갓 입사한 기자들에게 교정을 보는 일을 시켰다. 200자 원고지에 써온 그의 글은 고칠 게 거의 없었다. 글씨도 깨끗했다. 다른 선배들의 기사를 교정볼 때는 ‘해독’ 수준의 글도 많았지만, 김종철 선생의 글은 그야말로 최상의 상품이었다.

그 즈음 오름에 올랐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당시 제민일보엔 오름동호회도 구성돼 활동중이었다. 그 동호회에 든 건 아니었고, 주말마다 연대와 봉수를 취재하는 선배를 따라다니는 역할이었다. 덕분에 봉수대 흔적이 있던 오름 25개는 다 오를 수 있었다.

오름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을 하나 더 소환해본다. 1997년인 듯싶다. 한국전력이 당시 북제주군 구좌읍 일대를 지나는 송전탑을 오름에 설치하려 했다. 구좌읍은 제주 도내 다른 곳보다 오름이 더 눈에 띈다. 구좌읍은 ‘오름의 왕국’인데, 거대한 철탑이 지나가면 어떻게 되나. 거대한 철탑 밑에 있어 본 사람은 안다. 철탑이 내는 으스스한 소리를. 기자는 반대운동에 불을 붙였다. 아쉽게도 철탑 설치를 막지는 못했다. 위안을 삼는다면 거대한 철답 대신 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탑으로 대체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랄까. 구좌읍 일대 오름에 오를 때면 철탑을 보며 혼자 웃음을 짓곤 한다. 혼자만 아는 이야기니까.

기자에겐 오름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알고 보니 즐거움을 위해 오른 일이 극히 드물었다. 일찌감치 오름나그네를 알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김종철 선생은 <오름나그네> 저자이지만 자신이 곧 오름나그네였다. 그는 늑골암을 앓았다. 제민일보에 ‘오름나그네’ 연재를 끝냈으나, 몸은 회복 불능이라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병중이던 1995년 1월 어렵사리 <오름나그네>는 빛을 본다. 기자도 그 책을 가지고 있으나 이후 절판된다. 시대가 애타게 오름나그네를 부르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제주를 짝사랑하는 열풍이 몰아쳤다.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섬, 누구나 오르고 싶은 오름이 있는 곳이 제주도였다. 수많은 오름 책이 나왔지만 고전인 <오름나그네>에 견줄 책은 없었다.

<오름나그네>는 그냥 책이 아니다. 거기엔 눈에 보이는 오름만 있지 않다. 오름에 대한 모든 게 있다. 개개 오름의 이름, 오름에 있는 야생화, 오름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절판된 <오름나그네>가 다시 빛을 본 건 2019년이다. 양장본으로 거듭났다. 오름나그네 김종철과 오름의 고전인 <오름나그네>를 이해하려면 고인이 된 김종철 선생의 부인인 김순이 시인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재출간에 부치면서 김순이 시인이 쓴 글을 살짝 옮겨본다.

2019년 양장본으로 재출간된 '오름나그네'(왼쪽)와 절판된 '오름나그네'. 미디어제주
2019년 양장본으로 재출간된 '오름나그네'(왼쪽)와 절판된 '오름나그네'. ⓒ미디어제주

“김종철에게 오름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었습니다. 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순정을 바치게 하는 매혹덩어리였습니다. 설렘은 답사할 오름을 선정해 놓고 자료를 준비하면서부터 발동이 걸렸죠. 우선 지도를 조사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들의 복사본을 비롯,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지도, 미군이 제작한 지도 등을 면밀히 살폈습니다. 오름의 위치와 명칭을 파악하고, 등고선을 읽으며 절벽이 있는 곳, 습지, 샘, 물통 등을 확인했습니다. 지명에 관한 문헌들과 오름이 위치한 마을에 대한 조사보고서도 빼놓지 않았죠. 그밖에도 신화·전설집과 각 성씨의 족보까지도 구할 수 있는 한 구해서 섭렵했습니다. 오름에 다녀와서는 수첩에 메모해 온 비문(碑文)에 담긴 정보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확인했습니다. 비닐봉지에 담아 온 꽃잎과 나뭇잎, 풀잎은 식물도감, 약초도감을 뒤적이며 하나하나의 이름과 쓰임새를 찾아냈습니다.”

김순의 시인의 말을 빌리면, 김종철 선생은 글을 쓰기 위해 고3 학생처럼 밤을 샜다고 한다. 오름이 있는 마을의 어르신을 찾아서 오름 이름의 원형을 듣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오름을 오르며 미끄러지고 옷이 찢어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지금처럼 진입로를 만들어 둔 것도 아니고, 깔끔한 산책로의 모습도 없던 때였다. 가시덤불이 눈앞을 가로막곤 했다. <오름나그네>는 그런 열정의 산물이다. 발로 뛰고, 자료를 찾고, 자료가 부족하면 직접 인터뷰를 하며 단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오름나그네>이다.

원고지에 담긴 오름나그네를 읽으며 배운 게 있다. ‘표고(標高)’와 ‘비고(比高)’의 차이점이다. 표고는 해발고도에 해당하며, 비고는 땅에서의 실제 높이를 말한다. <오름나그네>는 오름의 높이를 나타내는 표고와 비고를 아주 자세하게 기록해 둔 점이 눈에 띈다. 우리는 책에 나온대로 눈으로 읽고 습득하면 되지만, 거기엔 김종철 선생의 노고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종철 선생과 김순이 시인의 결혼기념일은 음력 1월 6일이다. 그날은 김종철 선생의 생일이기도 했다. 김순이 시인은 1993년 그날, 김종철 선생에게 국립지리원에서 나온 5000분의 1 제주도 지도를 선물했다. 가장 정밀한 지도였고, <오름나그네>에 등장하는 ‘비고’는 그 지도를 보고 김종철 선생이 계산해냈다. 단순한 숫자일테지만, <오름나그네>를 읽는 이들이라면 김종철 선생의 수고에 고마움을 표했으면 좋겠다. 글을 쓰며 알맞은 우리 말을 찾으려고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을 닳을 정도로 봤다. 오름 지형에 맞는 우리말을 찾아내려는 노력이었고, 그래서인지 <오름나그네>는 시를 쓰듯 이야기한다.

그는 1995년 2월, 우리 곁을 떠났다. 절판된 <오름나그네>를 내놓고 한달 후였다. 그의 유해는 그가 자주 찾던 한라산 선작지왓에 뿌려졌다. 그날, 눈물처럼 비가 뿌렸다. 김순이 시인이 쓴 시 ‘선작지왓’을 음미하며 그를 만나러 가보자.

가장 쓸쓸한 바람이 살고 있는
이 고원에
한 가지 소원을 묻어두었다
산 넘어 가는 구름
걸터앉아 쉬는 바위틈마다
봄눈 속에 피어난 산진달래
꿈에도 보인다
그 팍팍한 슬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이름 없는 것들이
열심히 피고 지는 까닭에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다는데
가장 소중한 것
가슴에 묻어도
슬며시 빠져나와 깊은 잠 흔드는
더 이상 쓸쓸할 수도 없는
이곳에서
또 한 세상 살리라
그리움의 발길 헤매리라

(김순이 작 선작지왓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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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진 2020-06-09 09:15:45
제주의 오름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제주오름의 bible과 같은 책

제주사랑 2020-06-08 12:32:46
유일한 오름의 내용을 담은 책, 제주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