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19 13:32 (화)
“제주음식은 단순함의 극치, 제주사람은 다 안다”
“제주음식은 단순함의 극치, 제주사람은 다 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5.26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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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책가방] <4> 양용진의 ‘제주식탁’

일상에서 맛보기 어려운 제주 음식 골고루 소개
“조리법 단순…신선한 재료로 맛을 내는 게 특징”

“아, 그 구수한 냄새! 명절 전날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추렴해서, 돼지 한 마리를 그슬릴 때, 털 타는 그 구수한 누린내가 지금도 코 끝에 맡아지는 것 같다. 맛뿐만 아니라 냄새도 이렇게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지난날의 사물·사건들 중에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 허다한데, 배곯던 시절의 그 냄새는 내 후각에 아주 뚜렷하게 남아 있다.”(‘지상의 숟가락 하나’ 중에서)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지상의 숟가락 하나>. 작가의 고향이나 지금 글을 쓰는 기자의 고향은 ‘제주’라는 틀을 공유한다. 소설에 나오는 돼지의 이미지도 마찬가지이다. 기자에겐 몇 가지 또렷한 돼지의 기억이 남아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돼지는 아주 근거리에 있는 동물이다. 개를 키우는 집을 뺀다면, 가장 자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동물은 돼지였다. 다만 돼지는 ‘통시’(변소)라는 공간에서만 마주한다. 예전 통시는 별다른 가림막이 없었다. 디딤돌에 다리를 놓고 볼일을 보곤 했다. 비라도 오면 낭패였다. 더 곤란한 일도 생기곤 한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나, 아마 그 이전이었던 같다. 디딤돌에 앉아 볼일을 보다가 후다닥 일어난 일이 있다. 통시를 차지한 돼지와 인간의 공간인 디딤돌과의 거리는 너무 가깝다. 사람이 볼일을 보면 돼지는 디딤돌 밑에서 먹잇감을 먹는다. 그런데 기자는 먹잇감을 기다리던 돼지의 입장을 생각지 못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먹잇감이 내려오지 않자 돼지가 갑자기 머리를 들어 올렸고, 꼬마는 기겁하며 튀어 올랐다. 그 장면은 지금도 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현기영 작가랑 충분히 공유 가능한 내용이지 않을까.

돼지 추렴은 육지부와 제주가 달랐다. 이 장면은 한 생명의 죽음과 관련이 있기에 글쓰기가 꺼려지긴 하지만 돼지를 먹거리 측면에서 봐줬으면 한다. 육지부는 목을 따야 한다. 제주는 그러지 않고, 교수형을 시켰다. 기자에게 ‘어디서 교수형을 시켰냐’고 물어본다면 고향 바닷가의 그 지점을 말해줄 수 있다. 그곳에 목을 맨 채 걸려 있던 돼지에 대한 기억이 선해서다. 교수형 시킨 돼지는 현기영 작가의 글에서처럼 그슬린다. 육지는 털을 뽑는데, 제주도는 짚불로 그슬리고, 칼로 털을 벗겨낸다. 털을 벗길 때는 ‘삭삭’ 소리가 난다. 이때 또 다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슬림을 당하던 돼지가 뜨거운 짚풀 때문인지 되살아나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 장면 역시 뇌에 남아 있다.

제주의 돼지는 예전엔 진짜 ‘똥돼지’였다. 집에서 기르고, 잔치라도 하게 되면 사람을 위해 희생을 했다. 마을 공동체를 제대로 운영하게 만드는 최정점의 동물이 돼지였다. 잔치는 며칠 이어진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나서 수눌음을 한다. 한 집안의 잔치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움직이는 잔치였다. 잔치에서 빼놓지 못하는 음식은 몸국이다. 잔치에서나 맛보는 몸국의 그토록 진한 맛을 내는 음식점은 제주에 몇 없다. 잔치 때 먹던 몸국의 맛은 바로 어머니가 해준 몸국의 맛이다. 어머니는 마을의 셰프였으니. 간혹 어머니는 “몸국 먹을탸?”라고 묻는다. 누님이 요리사로 있는 식당에 줄 몸국을 만들 때 늘 그렇게 묻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제주 음식을 꼽는다면 고등어죽이다. 고등어죽은 먹기 어려우니 그런가? 고등어죽은 어머니가 해준 것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다. 제주 도내 음식점 가운데 고등어죽을 하는 곳이 있을텐데, 아직 맛을 보지 못했다. 아울러 고등어국도 좋아한다. 고등어국은 음식점에서 먹어본 적이 있다. 꽤 알려진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고등어 품질이 문제였다. 기자의 눈을 속이지는 못한다. 항상 신선한 생선만 먹어왔던 기자였기에 그릇에 담긴 고등어에 눈길이 쏠렸다. 그런데 음식점 직원은 ‘당일바리’라며 박박 우겼다. 그렇게 우기는데 어찌하랴. 그냥 맛을 보는 거지. 갈치국도 마찬가지이다. 제주의 대표적인 음식점이라고 가보면, ‘당일바리’가 아닌 곳이 꽤 된다. 음식점에 가서는 대부분 속아주며 먹는다. 생선의 신선도를 따져봐야 뭐하리. 그럼에도 제주 음식을 선별하는 기준은 ‘신선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등어죽은 싱싱한 고등어여야 한다. 고등어국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부류의 각재기국에 들어가는 각재기보다 고등어는 더 신선해야 제맛이 난다. 비리다? 그렇지 않다. 먹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제주 음식은 단순하다. 단순하지만 육지부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음식들이다. 단순하다는 건 작업 과정에 힘을 덜 들이는 걸 의미하며, 재료가 신선하지 않을 때는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진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은 비릿함을 풍긴다. 제주의 ‘생선국’이 비릿하지 않은 건 싱싱한 생선을 써서 그렇다. 덜 싱싱하면 비릿해지고, 그걸 없애기 위해 갖은 양념이 들어가야 한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 이야기는 해봐도 끝이 없다. 병 중에 가장 큰 병은 어머니 음식을 찾는 병이다. 어릴 때의 손맛을 사람들은 기억한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어머니나, 음식 솜씨가 그렇지 못한 어머니나 다 손맛을 지닌다. 어른이 되면 다들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해내고, 어릴 때 음식을 찾는다. 기자처럼 옛 맛을 찾는, 아니 옛 맛을 아는 이들에겐 늘 어머니의 음식이 그리울 뿐이다.

제주문화원이 펴낸 <제주생활문화 100년>을 들여다보면 손맛을 잊지 못하는 인식이 엿보인다. 1980년대 조사 당시 20대는 제주음식을 좋아한다는 비율이 채 70%가 되지 못했다. 30년이 지나고 조사를 다시 해봤다. 20대에서 50대로 변한 이들의 90%가 제주음식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어릴 때 어머니의 손맛을 찾는 이유를 그 설문이 이야기하고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이다. 점점 더 옛 맛이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손맛만 그리워하다가는 글이 너무 길어지겠다. 다 하지 못한 어머니의 손맛은 다른 기회가 주어지면 사설을 읊는 걸로 하고, 얼마전 나온 따뜻한 책 한 권을 펼쳐본다. 양용진 작가의 <제주식탁>이다. <제주식탁>은 ‘그 섬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았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이 반가운 이유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옛 맛이 살아난다는 점이다.

제주 로컬푸드 요리 연구가 양용진 셰프. 콘텐츠그룹 제주상회
제주 로컬푸드 요리 연구가 양용진 셰프.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양용진 작가는 제주의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제주사람으로서 제주음식을 탐하기에 남다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음식을 먹어본 기억을 지닌 이들이 제주음식을 이야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제주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더욱이 양용진 작가는 제주음식을 직접 만드는 요리사이다. 그에겐 제주향토음식 명인 1호가 곁에 있다. 양용진 작가의 어머니가 바로 김지순 명인이다. 양용진 작가는 어머니의 맛을 잇고 있다. 그 스스로 ‘제주 로컬푸드 요리 연구가’로 칭한다. 향토 음식점인 ‘낭푼밥상’을 제주시 연동에서 운영하는 오너 셰프이며, ‘김지순요리제과직업전문학원’ 원장직도 맡고 있다. 제주 음식을 말하려면 그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제주식탁>(콘텐츠그룹 재주상회, 1만5000원)은 그런 그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제주 음식 이야기를 하려고 내놓은 작품이다.

셰프이면서 글쟁이로 변신한 작가 양용진은 제대로 된 제주음식을 이야기하려고 <제주식탁>을 선보였다. 그동안 제주음식을 숱하게 이야기하고, 책으로도 내놓긴 했으나 비매품 한정판으로 끝나곤 했다. 그런 한계를 이 책은 집어던지고 있다. 대중을 만나는 책이기에 그렇다.

책을 보면 제주음식이 보인다. 왜 제주음식은 남다르고, 단순한지를 이야기한다. 그 단순함은 맛이 없는 단순함이 아니다. 단순함은 ‘깔끔’이고 ‘정갈’이다. ‘복잡’이 아닌 ‘정돈’이다. 제주의 맛도 그렇다. ‘복잡 미묘함’은 제주 음식에 없다. 책을 넘길 때마다 “그렇지”라는 추임새가 따라붙는다. 꿩마농도 나오고, 양애도 나온다. 꿩마농과 양애가 궁금하다면 책을 보면 된다. 기억이 솔솔 떠오른다. 개역(미숫가루)에 밥을 비벼 먹던 이야기도 있다. 어릴 때 정말 그랬다. 밥에 미숫가루를 비벼 먹던 그 맛. 아는 사람만 안다. 어쩌면 양용진 작가와 기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책장을 넘기니 우미냉국도 나온다. 어머니는 직접 우뭇가사리로 우무를 쑤셨다. 식초 한 방울과 어우러지는 그 새콤함. 잊을 수 없다.

바다에서 제주 맛과 향을 찾고 있는 양용진 셰프.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바다에서 제주 맛과 향을 찾고 있는 양용진 셰프.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제주식탁>은 다양한 제주음식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게 꾸몄다. 64가지 요리를 만드는 법도 소개했다. 만드는 법은 복잡하지 않다. 쉽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요리는 2가지 과정만 있으면 되고, 많아야 5가지 과정이다. 요리 과정이 단순하게 보이지만, 그 단순함의 결과물은 ‘어머니 손맛’이다.

고은 시인은 제주와 인연이 있다. 3년간 제주시 화북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3년 내내 화북에서만 산 건 아니었고, 다른 마을에서도 잠깐 지내기도 했다. 구좌읍 김녕에서도 1개월간 머물기도 했는데, 그는 “깡보리밥이나 조밥으로 살 때의 고통은 내가 다른 화전촌에서 고구마만 먹고 산 고통과 다를 바 없었다”며 <제주도-그 전체상의 발견>에서 말한다. 고은 시인은 그게 고통이었나보다. 제주 토박이인 기자는 그렇지 않다. 육지사람에겐 고통이지만, 제주사람에겐 생활이었다. 고은 시인에겐 미안하지만 누님(진짜 누님이다) 식당에 가서 마른멜조림을 먹고 싶다. 깡보리밥이랑 먹으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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