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불법체류 혐의 인지하고도 성실 의무 위반”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제주자치경찰이 적발한 무면허운전자가 불법체류 외국인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도주했더라도 그 책임은 현장에 함께 있던 국가경찰에게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다.
문재인정부가 제주자치경찰 모델의 전국 확대를 추진 중이어서, 확대 시 이번 사례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이 요구된다.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현룡)는 제주동부경찰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김모 경위의 견책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김 경위는 2018년 12월 9일 오후 제주자치경찰이 신호 위반으로 적발한 운전자 A씨가 무면허 중국인으로 추정되자 지원 요청을 받고 동료 B 경사와 현장에 출동했다.
자치경찰은 국가경찰로부터 일부 사무를 이양받았지만 무면허운전자와 불법체류자에 대한 수사는 이양된 사무에 해당하지 않아 국가경찰에게 조사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진술서 작성을 마친 뒤 자치경찰이 진술서를 살피는 사이 현장에도 도주했다.
김 경위는 당시 순찰차 조수석에 있다가 A씨가 사라진 것을 알고 주변을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고, 경찰은 직무태만을 이유로 징계(견책 처분)했다.
A씨가 불법체류자로 의심되는 상황으로 국가경찰이 피혐의자(A씨)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하거나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등 적극 개입해 조치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를 소홀히해 도주에 이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B 경사는 의무위반행위에 대해 불문경고를 받았다.
김 경위는 소청심사위원회에 처분 취소를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김 경위는 재판에서 A씨가 불법체류자임이 확인되지 않았고 국가경찰인 자신에게 자치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나 업무감독권이 없어 자치경찰의 조사를 중단시켜 임의동행 또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A씨에 대해 적극 조치할 수 없었던 것은 동부경찰서장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업무분장 및 조치요령을 하달하지 않은데 근본 원인이 있어 징계가 위법하다고 피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 경위가 A씨의 무면허운전 및 불법체류 혐의를 인지하고도 성실 의무를 위반, 주의를 소홀히 함으로써 피혐의자인 A씨가 현장에서 도주할 수 있도록 보는 것이 상당해 징계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이 사건의 처분도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김 경위의 청구 기각했다.
한편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출범한 제주자치경찰단은 2018년 4월부터 단계적으로 사무를 이양 받으며 지난 2월 기준 12종의 사무가 이양됐고 국가경찰 268명이 파견돼 총 인력이 419명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자치경찰제의 전국 확대를 위한 관련 법률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