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품격
아버지의 품격
  • 홍기확
  • 승인 2020.05.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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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28>

성철스님의 말이다.

“부모 된 사람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 된 사람들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자신들의 삶이 자식들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큰 결심이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화로 물어볼 것 같지만, 그런 방법이 아니다. 상상으로 물어본다. 이런 결정의 순간에 내 나이 때의 아버지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그렇게 내 스스로에게,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할 때, 나는 42살이었을 때 아버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당시 17살의 나와 만난다. 그리고는 묻는다. 나는 그 때 뭘 하고 있었지? 그리고 아버지라면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요즘 잔소리가 늘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아이의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잔소리가 심해진 것 같다. 더 멀리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경영학과를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경영대학원에서 금융학을 공부하며 증상이 심해진 듯하다. 숫자, 통계, 확률, 분석. 이런 것들만 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니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기에는 속마음이 지나치게 미세해진 탓이다. 한참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잔소리의 원인은 숫자였다.

침팬지를 평생 연구한 제인 구달은 동물연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과거에는 동물연구 시 개체마다 ‘숫자’를 부여했다. 관리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인 구달은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 불러줬다. 이렇게 제인 구달은 침팬지 연구학자가 아닌, 침팬지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의 컴퓨터 옆에 수생식물을 놓아주었다. 아이가 묻는다.

“얘는 이름이 뭐야?”

헉! 이건 뭐지?

아내는 복잡한 심정으로 머뭇거렸다. 그러자 아이는 말한다.

“얘 이름은 새싹이라고 할래.”

사서삼경 중 논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시대적 사고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자의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 때문이다. 해석하면, ‘나보다 못한 이를 벗하지 말라.’ 하지만 누구나 나보다 못한 이와 친구를 하지 않고, 나은 이만을 친구삼자고 한다면 도대체 어느 누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다들 이기적으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친구삼자 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항상 독재자다. 아버지는 자식보다 못나더라도 가정교육이란 미명하에 잔소리를 늘어놓고, 불필요한 규칙을 만들어 강요한다. 아버지를 따르라 하고, 효도를 강요하고, 품격을 유지한다. 어쩌면 나는 내 기준으로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내 삶이 자식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려는 노력은 부족하면서 말이다.

어제는 거의 1년 만에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애인도 아닌데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9분 12초 동안 통화하며(이놈의 숫자란 녀석!) 아버지는 바쁘냐고 2번 묻고, 전화해서 미안하다며 3번을 말했다. 통화의 주된 내용은 우리와 주변의 역동적인 삶이었다.

9분의 가벼움을 1년의 무게로 바꾸는 품격.

아버지의 품격과 무게를 느낀다.

참을 수 없는 나의 가벼움과 함께.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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