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고 놔둔 책이 있다면 한 번쯤 펼쳐보자
읽지 않고 놔둔 책이 있다면 한 번쯤 펼쳐보자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4.28 09: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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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책가방] <1> 글을 시작하며

책이 곧 권력이던 시대가 있었다. 문자의 권력이기도 했다. 당연히 문자로 표기된 책을 읽는 이들은 지배층일 수밖에 없었다. 문자를 독점하며 그걸 책으로 만들어내던 지배층은 그들이 지닌 걸 나누려 하지 않았다. 계급사회가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민중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얻은 역사를 들라면 오래지 않다.

새로운 기획 하나를 마련했다. 다소 쑥스럽지만 ‘김형훈의 책가방(冊架房)’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책과 말을 해보자며 내건 기획이다. 우리는 문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던 과거에 사는 이들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문자의 홍수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예전처럼 문자를 지배하려 드는 이들도 없다. 그러기에 책을 더 가까이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대에 산다. 아쉽다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은 책과 너무 멀다. 문자의 권력을 향유하기보다는 벗어나고자 애쓰는 이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강요당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만 책을 읽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책은 더 멀어진다.

그래도 책을 읽어보자. 혹자는 스마트폰으로 읽지 않느냐며 항변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눈으로 책을 읽으며 받아들이는 뇌와,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뇌는 엄연히 다르다. 스마트폰으로 읽을 경우엔 개략적인 내용을 재빨리 알아챌지는 몰라도, 글을 이해하는 정확도는 책이 훨씬 높은 게 사실이다. 더구나 책은 ‘넘김의 감성’이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김형훈의 책가방’을 하려니, 당장 책을 고르는 게 일이다. 책은 누구보다 ‘사서’로 불리는 이들이 잘 안다. ‘김형훈’이라는 개인이 책을 고른다면 개인 취향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기에, 기획에 담길 책은 도서 전문가인 ‘사서’의 도움을 받았음을 알린다. 책은 ‘사서’들이 고르고, 글은 ‘김형훈’이 쓰는 방식이다. 책을 정성스레 골라준 사서들은 제주도서관에 있는 분들이다.

1970년대 교복 세대들에게 익숙한 책가방. 제주교육박물관
1970년대 교복 세대들에게 익숙한 책가방. ⓒ제주교육박물관

‘김형훈의 책가방’. 하필이면 이 제목일까. 제목을 이렇게 고른 이야기부터 하겠다. ‘책가방’은 두 가지의 뜻을 담았다. 말 그대로 들고 다니는 책가방이며, 다른 하나는 ‘책장이 있는 방’이라는 뜻으로 한자어 ‘책가방(冊架房)’을 억지로 만들어봤다. ‘김형훈의 책가방’이라는 제목도 제주도서관 사서들이랑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다는 점도 여기서 밝힌다.

글을 쓰는데 문득 ‘가방’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썼는지 궁금증이 촉발됐다. ‘가방’은 일본에서 왔다는 건 다들 알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여다보니 ‘가방’의 어원은 네덜란드어 ‘카바스(kabas)’에서 나왔고, 그게 일본으로 전해져서 ‘가방’이 됐다고 한다. 또 궁금했다. 일본은 대체 언제부터 ‘가방’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일본의 대표적인 포털사이트인 ‘일본 야후’를 검색해보니, 일본에서 넘어온 ‘가방’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더욱이 ‘가방’은 네덜란드가 어원이라는 우리의 상식을 깨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말하는 ‘가방’의 유래는 중국어 ‘협판(夾板, 일본어로 읽게 되면 ‘캿반’이라고 발음됨)’에서 나왔고, 일본은 ‘협판’ 대신에 ‘포(鞄)’라는 한자를 빌려 쓰면서 그걸 ‘가방(かばん)’이라고 발음해왔다. 여기에 일본 메이지 일왕 이야기도 있다. 책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엉뚱한 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해버렸다. 이쯤에서 일본어 ‘가방’ 이야기는 끊어야겠다. 얘기가 너무 길어질 듯하다. 어쨌든 일본에서 ‘가방’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된 건 19세기 중반 이후였다.

책가방 이야기를 이어간다. ‘책가방’은 입말로 우리 입에 뱄으나 책가방 이전에 사용된 게 있다. 우린 그걸 ‘책보’로 부른다. 보자기에 책을 넣고 싸서 들고 다니는 ‘책보’가 책을 담는 가방이었고, 손에 들거나 다른 도구를 사용해 어깨에 메기도 했다. 한글학자 최현배가 잡지 <신천지>에 그의 스승인 주시경을 조명한 글이 있다. 글의 내용 중에 책보가 있다.

“스승이 공사립 각 중등학교에 국어 과목의 교수를 담당하여, 커다란 책보를 끼고서 서울 거리를 동분서주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주보따리’라 별명 지었다.” <신천지(新天地)> 제9권 제6호.

책보는 보자기와 책의 만남이었기에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된 책가방이었을 테다. 그러다 책보보다 훨씬 편하게 손에 들고 다니는 책가방으로 대체된다. 지금은 다들 등에 지고 다닌다. 책보에서 책가방으로, 책가방에서 ‘백팩’으로.

손에 드는 책가방. 어른 세대들이 학창시절 땐 그랬다. 지금을 사는 아이들에게 그러라고 했으면 아마도 아이들의 어깨는 탈골되지 않았을까. 당시에도 책가방이 무거워 등골이 휘는 현상이 많았는데, 지금은 무거워도 너무 무거워서 손에 드는 책가방은 꿈도 꾸지 못한다. 책가방에서 백팩으로 변한 이유는 세상의 무거움에다, 전쟁처럼 입시를 벌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이 녹아있다.

예전 이야기를 더 하면, 급식이 없던 시절이어서 책가방은 책과 음식 냄새로 뒤범벅되기도 했다. 김칫국물이 흘러서 책에 젖고, 그 젖은 책을 가방은 함께 있자며 용납하던 시대였다.

책가방은 어떤 이들에겐 멋의 상징이었다. 교복세대들은 안다. 책가방은 손으로 드는 물건이면서도, 어깨 밑에 끼고 다니는 존재였다는 걸. 책가방을 끼고 모자도 살짝 비틀어 쓰던 시대가 물론 있었다. 1970년대 학창시절을 경험한 이들만 알테지만. 이렇듯 책가방은 책도 담고, 낭만도 담았다.

책가도병풍. 10폭 병풍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그린 작품으로 전해진다. '책가'라는 단어는 조선시대 정조 때부터 쓰였으며, 책을 쌓기도 하지만 문방구 등 다른 기물도 올려두었다. 책가는 학문과 배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책가도병풍. 10폭 병풍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그린 작품으로 전해진다. '책가'라는 단어는 조선시대 정조 때부터 쓰였으며, 책을 쌓기도 하지만 문방구 등 다른 기물도 올려두었다. 책가는 학문과 배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요즘은 책이 넘치는데, 책이 없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책과의 교감을 했을까. 조선시대엔 걸어다니는 책방인 ‘책쾌’가 있었고, 근대에 와서는 전집을 팔러 다니는 외판원이 존재했다. 책쾌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단골을 확보했고, 외판원도 마찬가지였다. 전집인 경우는 책장에 꽂아두는 멋은 있지만, 장식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책은 꽂아두고 읽지 않더라도 책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품격을 올려주는데 다소 기여를 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유행한 ‘책가도(冊架圖)’도 그런 느낌이다. 자신의 품격을 자랑삼아 내세우려고 그렸던 그림은 아닌지.

중요한 건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은 넘쳐나는데 책에 대한 고마움은 예전보다 덜하다. 언젠가는 읽겠다면 책가(서가)에 꽂혀 있는 책. 수십 년이 지나도 펼쳐보지 못한 책. 그런 책이 있다면 한번쯤 손을 대보자. ‘김형훈의 책가방’은 책가에 그냥 꽂혀 있는 책도 한 번쯤 펼쳐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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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2020-06-28 12:38:14
파이팅입니당!!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