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 이상 집단학살 제주 전역에서 26건 있었다”
“50명 이상 집단학살 제주 전역에서 26건 있었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0.03.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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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재단, 165곳 마을별 피해실태 규명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 발간

확인된 미신고 희생자 1200여명 … 행방불명 희생자 4255명으로 늘어
희생자 피해거주지 중심으로 재분류, ‘4.3희생자 분포지도’ 새롭게 작성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 당시 한꺼번에 50명 이상 희생된 집단학살 사건이 제주 전역에서 26건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16일 마을별 피해실태와 집단학살 사건,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 실태, 예비검속 피해 실태,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 교육계 피해 실태, 군인‧경찰‧우익단체 피해 실태 등을 다룬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제1권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된 후 17년만에 추가 진상조사의 첫 결실인 셈이다.

1947년 3.1절발포사건과 3.10총파업 등에 대해 그해 4월 28일 제주경찰감찰청장이 미군정 경무부장, 사법부장 대검찰청장 등에 대외비로 보고한 문서. 경찰은 무모한 발포사건을 '3.1폭동습격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1947년 3.1절발포사건과 3.10총파업 등에 대해 그해 4월 28일 제주경찰감찰청장이 미군정 경무부장, 사법부장 대검찰청장 등에 대외비로 보고한 문서. 경찰은 무모한 발포사건을 '3.1폭동습격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이번 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는 4‧3 당시 12개 읍면 165개 마을(리)의 피해 상황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가 담겼다. 2019년 12월 기준 희생자로 확정된 1만4442명에 대해 가해자 구분, 피해 형태, 재판 유형, 유해수습 여부 등에 따라 모두 18개 유형으로 분류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추가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미신고 희생자도 12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마을별 피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장소에서 50명 이상 피해를 당한 ‘집단학살 사건’이 전도에서 26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집단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신원을 일일이 밝혀냈으며, 단일사건 피해자가 50명 미만인 경우에도 동일한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학살극이 벌어진 경우 이 범주에 포함시켜놓고 있다.

행방불명 희생자 피해 조사결과 4‧3 행불 희생자는 현재 4‧3위원회가 확정한 3610명보다 645명이 많은 4255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추가진상보고서는 이에 대해 “다수의 유해수습을 하지 못한 희생자가 사망 희생자로 신고돼 처리된 사례가 많았다”고 기술했다.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는 2261명에 이르는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 실태도 중점적으로 규명됐다. 특히 경인지역과 호남지역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수형인 행방불명 희생자들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발생된 예비검속 피해 조사에서 희생자 566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이 가운데 유해발굴 과정에서 40명, 구금 중이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희생된 13명 등 모두 53명의 행적이 확인됐지만 513명의 신원과 행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교육계의 4·3 피해는 교원 271명, 학생 429명 등 총 700명의 인적 피해와 93개 학교의 교육시설 및 학교운영 손실 등의 물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군·경·우익단체의 4·3 피해는 군인 162명, 경찰 289명, 우익단체원 640명 등 모두 1091명으로 파악됐다. 지난 2003년의 보고서에서 밝힌 1051명(군인 180명, 경찰 232명, 우익단체 639명)에 비해 군인은 줄어든 반면 경찰 피해자는 다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추가진상보고서에서는 피해 유형을 세밀하게 분석한 198개에 이르는 많은 도표가 함께 실렸다. 또 집단학살 사건을 포함한 5550명의 피해자 실명을 일일이 싣고 있는데, 책 말미에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찾아보기’(색인)를 새겨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4‧3위원회가 현재까지 확정한 4‧3희생자 1만4442명의 통계는 본적지 중심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과 달리, 이번 전수조사에서는 사건 당시 거주지 중심으로 재분류해 놓고 있다. 본적지로 분류할 경우 피해지역과 사건 희생자가 서로 갈리는 등 피해실태를 파악하는 데 오류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4.3 당시 가장 많은 인명 피해(538명)가 발생했던 제주읍 노형리가 1950년대 재건된 모습. /사진=제주4.3평화재단
4.3 당시 가장 많은 인명 피해(538명)가 발생했던 제주읍 노형리가 1950년대 재건된 모습. /사진=제주4.3평화재단

이에 따라 가장 피해가 많았던 노형리 희생자는 종전 544명에서 538명으로, 북촌리는 419명에서 446명으로, 가시리는 407명에서 421명으로 재분류됐다.

그동안 본적지 별로 만들어졌던 ‘제주도 마을별 4‧3희생자 분포지도’도 추가진상보고서에서는 거주지 중심으로 새롭게 작성, 수록됐다.

아울러 4‧3시기 사진과 정부의 진상보고서 발간 이후 진행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관련 사진을 중심으로 화보를 엮었다.

4.3평화재단 관계자는 “2003년 발간된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총론적 성격의 보고서라면, 이번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각론적 성격으로 구체적 피해실태 파악을 통해 4·3의 진상규명을 심화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보고서가 뼈대라면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라는 얘기다.

제주4‧3평화재단은 4‧3특별법에 근거해 추가진상조사의 업무를 맡게 되자 2012년 추가진상조사단(단장 박찬식 박사)을 꾸려 2016년까지 마을별 피해실태와 분야별 피해실태 조사 활동을 벌였다.

이어서 2018년 10월 재단 내 조사연구실이 신설된 후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집필팀(팀장 양정심 박사)을 구성, 기존의 조사내용에 대한 보완 작업을 거쳐 이번에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제1권을 발간하게 됐다. 이번 보고서는 현대사 전문학자인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명예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재단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에 다루지 못했던 미국의 역할과 책임 문제, 중부권과 영남권 형무소의 수형인 문제, 재외동포와 종교계 피해실태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진상조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이런 문제를 담아낼 제2권, 제3권의 보고서를 계속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격려사를 통해 “4‧3평화기념관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뜻을 담은 비문 없는 비석이 있다”면서 “이번 추가진상보고서가 그 백비를 채워가는 중요한 과정이 되리라 믿고 싶다”고 밝혔다.

원희룡 지사도 격려사에서 “이번 추가진상보고서는 4‧3의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며, 희생자‧유족의 명예 회복에도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는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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