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앞마당이던 잔디밭이 사라지는 건 상상 못할 일”
“앞마당이던 잔디밭이 사라지는 건 상상 못할 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2.27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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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록을 원해요]
② 서귀포 10년 살이 시민 김주은씨

소나무 숲과 잔디밭을 보고 살 곳 계약

맞벌이 엄마들의 돌봄을 대신해주는 곳

녹지를 곁에 둔 숲세권의 중요성 강조

걷던 곳을 걷지 못하게만드니 안타까워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2010년은 제주살이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김주은씨는 그해 따뜻한 남쪽, 서귀포시를 택했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24개월 아이도 함께였다. 그렇게 해서 서귀포시민이 됐다. 정착할 곳을 둘러보던 그는 한곳에 눈이 꽂혔다.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의 잔디밭과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의 눈에 든 잔디밭과 소나무 숲은 서귀포시 도시 우회도로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이사를 오게 됐는데, 잔디밭을 보곤 두말없이 계약했어요. 소나무 숲도 있는 녹지공간이었거든요.”

그는 서귀포학생문화원이 보이는 4층 빌라, 맨 위층에 살았다. 7년을 그 빌라에 살면서 잔디밭과 소나무 숲은 알게 모르게 친구가 됐다.

27일 서귀포에서 만난 김주은씨. 서귀포학생문화원 일대 소나무 숲과 잔디밭은 그에겐 친구와 같다. 기자가 만난 날은 한창 코로나 19가 기승이이서 마스크를 쓴채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디어제주
27일 서귀포에서 만난 김주은씨. 서귀포학생문화원 일대 소나무 숲과 잔디밭은 그에겐 친구와 같다. 기자가 만난 날은 한창 코로나 19가 기승이이서 마스크를 쓴채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디어제주

시간이 흐르면서 24개월 아이는 올해로 초등학교 6학년생이 된다. 세월은 빨리도 변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도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이 변했어요. 그렇게 주변이 변하면 삶이 나아진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진 않아요. 개발로 이익을 얻은 사람들만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죠.”

김주은씨 가족들은 7년간 서귀포학생문화원 인근 빌라에 살면서도 잔디밭이 사라지거나, 소나무 숲이 사라지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도로가 난다는 얘기는 흘러나왔지만 잔디밭을 깡그리 없애는 도로라는 얘기는 최근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도로가 난다는 얘기는 5~6년 전에야 알았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 계획중인 6차선 도로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빌라 주변에 좁은 도로가 있기에 서귀포학생문화원 담장과 붙은 곳 주변으로 도로가 넓혀지리라 생각했죠.”

그가 늘 보던 잔디밭, 아이랑 솔방울을 주우며 즐기곤 했던 소나무 숲이 몽땅 도로계획에 들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질 못했다고 한다.

“어디에 도로가 난다는 걸 사전에 얘기라도 해줬으면 알았겠죠. 소나무 숲과 잔디밭이 도로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일찍이 반대를 했겠죠. 일일이 행정을 접하지 않고서는 (일반 시민들은) 모르잖아요. 행정은 50년 전에 만들어진 계획이라지만 그때 요구랑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어쩌면 도시 우회도로와 관련된 제대로 된 공론화 절차가 미흡했다. 1965년에 도로계획을 냈으니, 어차피 도로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면 그게 더 낡은 생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주은씨에겐 빌라에 살았던 기억은 잔디밭과 소나무 밭으로 통칭된다. 그건 아이의 기억이기도 하다.

“빌라에 살 때 우리 애는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에 있는 잔디밭을 앞마당으로 생각했어요.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중학생들이 잔디밭에서 연날리기를 한창 하는데, 우리 애가 뭐라는 줄 아세요? 엄마, 왜 내 마당에서 오리연을 날려? 이러더라고요.”

김주은씨가 아이랑 즐기던 소나무 숲이다. 100그루가 넘지만 도로가 개발되면 모두 사라진다. 미디어제주
김주은씨가 아이랑 즐기던 소나무 숲이다. 100그루가 넘지만 도로가 개발되면 모두 사라진다. ⓒ미디어제주

서귀포학생문화원 일대는 그랬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겐 안전이 담보된 놀이터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학교에서 돌봄이 되지만, 3학년부터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학원 뺑뺑이’는 돌봄의 차선책이다. 하지만 김주은씨 주변의 학부모는 서귀포학생문화원 일대가 돌봄 기능을 해줬다.

“서귀포도서관에 가서 놀라고 했어요. 책을 읽어도 되고, 잔디밭이나 소나무 밭에서 놀기도 해요. 여기는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랍니다. 열린공간이어서 누구나 올 수 있거든요. 특히 자동차로부터 안전을 위협당하지 않는 공간이거든요.”

맞벌이 엄마들에겐 이만한 공간이 없다. 차량 이동이 없는 공간이기에 맘 놓고 풀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6차선 도로공사를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6차선요? 아이들 접근이 쉽지 않겠죠. 길이 생기면 당연히 ‘마음의 거리’가 생기잖아요. 예전엔 서울 광화문 앞은 그냥 스쳐가는 공간이었어요. 넓은 도로가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 됐고, 덕분에 상권도 활발해졌잖아요.”

김주은씨는 3년 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지만 종종 여기를 들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일대는 서귀포시의 ‘교육벨트’이기 때문이다. 서귀포학생문화원을 중심으로 서귀포도서관, 외국어학습센터, 제주유아교육진흥원 등이 한꺼번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다. 여기가 ‘교육벨트’로 인정받는 이유는 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교육 인프라는 시설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주변 여건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때문에 여기에 도로가 나는 게 안타깝기만 해요. 올레길이 제주관광을 바꾸어놓았잖아요. 걸어서 느끼는 제주관광을 만들었고, 제주의 매력을 어필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도로를 만듦으로써) 걷지 못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에 있는 잔디밭. 가운데는 멀구슬나무가 있고, 그 아래 쉼터는 이야기를 나누기엔 최적의 공간이었다. 미디어제주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에 있는 잔디밭. 가운데는 멀구슬나무가 있고, 그 아래 쉼터는 이야기를 나누기엔 최적의 공간이었다. ⓒ미디어제주

가까운 곳에 숲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주은씨는 요즘 뜨고 있는 ‘숲세권’을 강조했다. 숲을 비롯한 녹지공간은 멀리 차를 타고 가서 즐기는 게 아니라, 바로 곁에 두고 걸으며 즐기는 곳이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눈을 뜨면 바로 보이는 숲이랑 시간을 두고 가서 보는 숲은 다르잖아요.”

김주은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귀포시가 초록 가득한 푸른 공간이기를 꿈꾼다. 그와 그의 아이가 사랑하는 공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기자와 김주은씨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귀포 토박이라는 어르신이 말을 건다. “사람들은 편리만 찾으려고 해요. 생각 부족이고, 무지다. 이런 조건을 지닌 도서관이 우리나라 어디에 있나요. 전세계적으로도 이런 여건을 가진 도서관은 없어요. 어리석은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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