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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건축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02.0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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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8월호] 이슈
- 현군택 바이브 230 대표

* 이 글의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라톤에 관한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차용했다. 하루키 역시 레이먼드 카버<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빌려 썼다.

건축을 전혀 모르는 내가 전문 매체에서 건축물을 말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다만 음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평소에 생각했던 건축과 음악의 관계를 피력한 것이니 업계의 현실과 다른 점이 있더라도 이를 감안하시고 읽어주면 더없이 고맙겠다.

상품을 기획하고 만들어 파는 ‘마케팅 활동’에는 다양한 방법론이 응용된다. 그 중에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라는 기법이 있는데, 상품을 보거나 듣고 연상되는 이미지를 탐색하는데 사용된다(이렇게 물어본다. “당신은 ○○○하면 무엇이 연상 되십니까?” △△△이라고 응답을 하면 “그렇다면 △△△이 연상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라고 하면서 Reason-Why 방식으로 계속 주고 받는다).

예를 들면 ‘제네시스’ 자동차를 두고 ‘벤틀리’ 심벌이 연상된다는 빈도수가 많고 그 이유가 설득력이 있다면 ‘제네시스’의 로고 변경까지는 아니지만 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차치하고, 여기서 마케팅 전략을 논하고자 ‘연상 작용’을 꺼낸 건 아니다.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건축물에서도 ‘어소시에이션’이 일어난다. 음악 애호가인 나의 경우는 건물을 볼 때 음악에 관련된 연상이 먼저 떠오르는데 ‘예술의 전당’하면 하얀 도포를 입은 조선 시대의 소리꾼이 연상되면서 우리 고유의 판소리가 떠올려진다. 전통 의관인 갓을 씌운 듯한 건물 형상이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나 ‘세종문화회관’의 늘어선 기둥을 보면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 : 1932년~1982년)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떠올려진다. 한 곡의 아리아를 30여 번의 변주 후에 첫 번째 아리아로 되돌아가는 곡인데, 피아노 연주가 마치 연달아 넘어지는 도미노처럼 느껴진다. 길게 늘어선 기둥이 도미노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유심히 들여다보면 건축은 음악과 상관관계가 높다. 건축은 설계도의 도면에 의해 건물이 지어지고 음악은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에 의해 음악이 연주된다. 설계도의 지시대로 제모습을 갖춘 건물은 의뢰자를 만족시킨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거기다 주목할 만한 형태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공공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곡가의 감성을 담은 악보는 연주자와 동화되면서 대중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설계도의 규격을 벗어난 건물이나 악보의 음표를 무시한 연주는 건축주나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어찌 보면 건축과 음악의 공통분모일 수도 있다.

교보빌딩(왼쪽)과 MOPOP의 기타 조형물.
교보빌딩(왼쪽)과 MOPOP의 기타 조형물.

광화문 사거리에 버티고 서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을 쳐다보면 악보의 음표를 한 개라도 틀리면 안 되는 질서 정연한 클래식 음악처럼 느껴진다. 단편적인 해석일지 모르지만 조가비를 포개 놓은 듯한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는 조개의 입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의 벌린 입이 연상된다. 그리고 수많은 기타를 기둥처럼 뭉쳐 올린 시애틀의 문화 박물관인 ‘MOPOP(Museum Of Pop Of Culture)’의 ‘기타’(Guitar) 조형물은 이 건물이 음악과 관련 있다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데, 시애틀 태생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 : 1942년~1970년)를 떠오르게 한다. (‘90년대의 아이콘 ’너바나‘(Nirvana)의 리더였던 ‘커트 코베인’(Kurt Cobain : 1967년~1994년)도 시애틀 출신). 이처럼 건물이 주된 기능에 충실하면서 별도로 어떤 시그널을 함축하고 있다면 건물을 쳐다보는 우리는 새로운 흥미 거리를 더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흥미가 어느 한 개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그 건물은 핫 플레이스로 인정받게 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조형물은 그 자체 의미를 넘어 시대의 상징물이 된 경우도 있다.

건축물은 아니지만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하는 희망의 상징물이었다. 또 단순히 ‘세계만국박람회’의 기념물로 과소평가 받았던 파리의 ‘에펠탑’은 시간이 흘러 프랑스와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에펠탑.
에펠탑.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독일어 ‘놀이’(Spiel)와 ’공간’(Raum)을 합쳐 ‘슈필라움’(Spielraum)이라고 명하면서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라고 했다. 공간은 사람이 들어가 있는 장소이면서 먹고 마시고 놀고 듣고 보고 읽고 활동하는 곳이다. 그래서 건축은 좋건 싫건 심리적 여유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라고 하면 너무 앞서 나가는 건가). 건축이 심리적 여유를 가지려면 건물이 직접적인 물리적 쓰임새만 맞추는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다른 것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변과의 조화 등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음악 요소가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수(常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은 살아가면서 필요할 수도 있지만 굳이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인체에 필요한 직접적인 영양소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음악을 통해 영양소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형의 에너지를 섭취한다.

건축사가 음악적인 기법을 건물에 도입했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건물도 클래식처럼 지시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클래식은 곡의 성격을 말해주는 지시어에 따라 연주한다. 예를 들어 아다지오(Adagio)는 ‘아주 느리게’, 모데라토(Moderato)는 ‘보통 빠르기’, 알레그로(Allegro)는 ‘빠르게’ 연주하라는 작곡가와 연주자와의 약속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시어가 있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 1악장의 경우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는 ‘힘차게 빨리’ 연주하라는 지시어다. 2악장 알레그로 콘 모토(Allegro con moto)는 ‘활기차게 빨리’라는 의미다. 건물도 이처럼 시그널을 통해 표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건물에 리듬감 있는 설계기법을 적용하여 재즈의 스윙을 연상시킨다든지 혹은 여러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배치하여 클래식컬한 하모니를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도의 건축 기법을 이렇게 쉽게 표현해도 되나 싶다).

나는 마케팅 일을 하다 은퇴하여 펍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매장에 들어서면 벽면에 부착된 100여 장의 음반이 곧바로 눈에 띈다. 일부 손님들은 실내에 흐르는 음악이 벽면에 부착된 CD의 음악 중 한 곡이라고 인식하기도 하고 다른 손님들은 부착된 CD를 선택해 리퀘스트 할 수 있는 장치로 오해하는 경우를 본다(원래는 내방객들로 하여금 이 매장이 음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카페나 펍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시그널이다). 경우야 어쨌듯 매장이 뮤직 프랜들리한 공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역시 음악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요소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건축물이 음악과 관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 옛날 노동요, 블루스, 재즈를 거쳐 록큰롤에 정점을 찍은 주류 음악은 다양한 장르로 나눠지면서 소멸되고 또는 크로스오버로 혼합되면서 계보를 잇고 있다. 심지어는 ‘가구 음악’(Furniture Music), ‘앰비언트 뮤직’(Ambient Music)처럼 어떤 활동을 위해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음악도 존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음악은 디지털 음원의 탄생과 디바이스의 진화로 음반 산업의 몰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맞물려서 음악의 지형도는 기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돌(Idol) 문화’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지향적인 음악은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지만 클래식은 정체의 길에 서 있고 재즈는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1,500년 르네상스 중·후기부터 시작된 클래식 음악은 아직까지도 극히 소수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위 정통 재즈로 명명되어진 1940년~1950년대의 ‘모던 재즈’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아직도 그 당시 음원이 들려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건축은 음악 장르상 클래식이나 재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장르가 무한한 것처럼 건축물도 한 번 지어지면 영원히 그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군택.
현군택.

그래서 나의 바람은 이처럼 한 쪽으로 깊게 파인 음악 생태계의 주름을 건축이 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이제는 건축물도 음악과 상관관계를 갖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건물은 건축주의 사유재이면서 사회의 구성물로서 공공재이기도 하다. 건물 내부에 음악을 흘리는 것은 건축주의 재량이지만 의뢰자를 설득하고 음악적인 요소가 내재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은 건축사이다. 건물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어 사람들이 건물 내에 흐르는 음악처럼 이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은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세상을 위해 건축사가 이바지 한다면 건축사는 단지 건물만을 짓는 ‘전문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따뜻한 ‘감성인’이기도 하지 않을까!

끝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축사 여러분들게 힘내시라고 응원을 보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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