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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턱, 제주해녀들의 모둠 집터
불턱, 제주해녀들의 모둠 집터
  • 미디어제주
  • 승인 2020.02.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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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8월호] 칼럼
- 한림화(작가, 전통문화연구전문가)

기능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여성 집단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제주 섬의 제주해녀 집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제주해녀가 물질을 하는 제주 섬 바닷가 양지뜸에는 화톳불자리, 즉 화덕이 반드시 있다. 이를 ‘불턱’이라 하는데, 전통적인 노천탈의장(露天脫衣場)을 일컫는다. 바닷가의 안온한 공간에 놓인 제주해녀 사회의 ‘불턱’은 단순한 화톳불자리를 넘어선다. 그 자리는 한 직업공동체가 대물림하여 공유해온 모둠 집터였다. 동시에 그 장소를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체계를 갖춘 제주해녀 사회만의 가시화(可視化)된 온전한 현장이기도 했다.

왜 ‘불턱’을 놨는지는 그리 궁금한 사안이 아닐 터, 바다 속에서 장시간 물질을 해야 하는 작업환경의 특성상 작업장 가까이에 화톳불을 피우는 화덕의 설치는 필수적이었다고 누구나 짐작가능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공간이 지닌 뜻은 기능 면에서, 보다 심오하고 합리적이며 대중적이었다.

제주해녀 공동체 혹은 제주해녀의 세계가 형성됨은 바로 그 화톳불자리인 ‘불턱’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해녀 공동체의 집합장소(集合場所)일 뿐더러 공동체의 세계를 상징하는 심벌인 까닭에서다.

‘불턱’의 기능은 넓은 의미로는 실질적인 제주해녀 공동체가 형성되는 공간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제주해녀의 집합 장소이며 후대를 잇는 제주해녀에 대한 학습(學習)이 이뤄지고 직업(職業)이 전승(傳承)되는 학교인 동시에 작업장의 시작이며 끝이다.

역할

탁 트인 바다를 앞에 두고 화톳불 한 자리 피우는 터가 ‘불턱’이라고 그저 보고 흘려버리기 쉬운 그 ‘불자리’는 제주해녀의 한 생(生)이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었다. 제주여성이 물질도구를 갖추어 ‘불턱’에 내려가는 순간 해녀가 되었다가 늙어 더는 거기 가지 못하면 물질은 끝나고 그 사회의 구성원에서도 제외되었다.

전통 ‘불턱’은 문턱도 없고 문도 없고 지붕을 잇지 않는 그냥 보기에는 여럿이 둘러앉을 마당과 비슷한 자리로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옛 제주전통 가옥이 안거리, 밖거리, 모커리(목거리), 마당으로 구성되었듯 ‘불턱’의 공간구조도 그와 몹시 닮아 있다. 엉덕(바위그늘)에 자리 잡았든 아니면 돌덩이로 에두른 돌담으로 조성하였든 공통점은 남향한 양지뜸에 놓였다는 것이다.

제주 전통가옥 입구인 ‘올레’는 사방팔방으로 트인 위치에 열어놓았듯 ‘불턱’도 ‘도’(입구)는 막힌 데가 없도록 배치했다. 갯가로 내리면 바로 보이는 거기, 바다에서 뭍으로 오르기 쉬운 장애물이 없는 데에 열어놨었다.

일단 그 안으로 들어서면 저마다 앉을 자리는 확연하게 ‘곱갈라’진다. 화톳불을 가운데 두고 바람 부는 방향을 등진 양지바른 자리가 ‘상잠수’(물질 기량이 뛰어날뿐더러 덕이 있어 그 해녀사회가 우러르는 그룹)들의 자리이며 그 양옆에 중잠수(기능과 역할이 중간지대에 속하는 그룹으로 구성원이 가장 많다)가 포진한다. 하잠수(제주해녀 사회에 갓 입문한 이들로 아직은 물질 기량이 미숙하여 배울 것이 많은 초짜그룹으로 인원이 소수)들 자리는 바람을 정면으로 받는 위치이며 입구 쪽이다.

그 자리 배치로만 보면 하잠수는 바람에 날아다니는 불티에 대이고 연기는 덤으로 뒤집어쓰는 자리를 배정받은 거나 다름없다. 그게 그리 단순하게 예단하고 말 자리가 아니었다. 남향한 양지뜸에서 햇볕을 등으로 담뿍 받는 자리가 하잠수 자리이다. 반면에 상잠수 자리는 햇살을 정면으로 직통 받아 여간 길들여지지 않으면 눈이나마 제대로 뜨기 어렵고 바람이라도 내리 불면 화톳불의 온기도 하잠수들 자리로만 내려가기 십상이다. 중잠수들 자리도 별찮은 것이, 화톳불꽃은 바람 따라 흔들려 그 따스함이 온전히 보존되지 않을뿐더러 양지뜸의 특성상 반그늘 자리이다.

그러니까 불턱 구조는 예전 제주 전통가옥의 안거리에 그 집안 어른들 모셔두고 밖거리에서 살림살이가 돌아가도록 부모세대가 거주하며 젊은이가 모커리에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젊은이는 천방지축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에 매사에 어른들로부터 배울게 많아 집 안팎을 휘젓고 다니기 마련이지만 늘 웃어른의 눈길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어린 세대가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저들 나름으로 생활하도록 배려한 면이 없지 않다.

이제는 제주해녀들의 모둠 집터인 전통 ‘불턱’이 현대식 탈의장에 밀려 옛 유물로나 존재하니 그 사회 또한 예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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