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찾아줘 감사하다"라는 말뿐, 원망의 말은 없었다
"가족을 찾아줘 감사하다"라는 말뿐, 원망의 말은 없었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01.22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3희생자 유해 14인 최종 신원 확인, 가족 품으로
70여년 기다림 끝에 행방불명 가족 찾은 4.3유족들
"4.3희생자 유해, 신원 감식 위해선 유족 도움 필요"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 자리한 4.3희생자 유골함.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형님이 행방불명이 된 지 70여 년이 흘렀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그리워만 하던 형, 비록 유해로 돌아왔지만. 정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형님 생각에 애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없어야 저희 형님처럼 나라에 의해, 4.3으로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이 편히 영면할 것입니다. 형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온 세월이 70년이 넘었는데, 행방불명인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려 많은 분이 애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0년 1월 22일 진행된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유족 대표로 나선 김영우 어르신이 한 말이다.

김영우 어르신이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유족을 대표해 추도사를 발표하고 있다.

부슬비가 내리던 아침, 70여년 전 가족을 잃은 4.3 유족 수십여 명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 모였다.

이들의 표정을 뭐라 형언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보고회가 시작되기 전,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유족들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하지만 애타는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자그마한 유골함을 품에 안은 상주(喪主)가 보고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고, 목소리 한번 듣지 못했지만, 늘 그리던 각자의 가족을 품에 안고 들어선 상주들. 모두 4.3 유족이었다.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유가족도 있어, 이를 대신해 4.3유족청년회에서 운구를 도왔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4.3희생자의 유족들이 가족의 유골이 담긴 함을 들고, 입장 중이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4.3희생자의 유족들이 가족의 유골이 담긴 함을 들고, 입장 중이다. 

유골함을 앞에 두고, 보고회는 시작됐다.

먼저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 이승덕 교수가 그간 진행한 4.3희생자 발굴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 결과를 발표했다.

이승덕 교수에 따르면, 2019년 추가 유전자 감식 조사로 희생자 12명의 신원이 새롭게 확인되어 가족을 찾게 됐다. 또 형제로 추정했지만 누가 형인지 알 수 없었던 2명의 희생자는 추가 유전자 감식으로 형과 동생의 신원이 구분됐다.

약 10여 분 간의 결과 발표 후, 유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다. 70여 년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는 영결식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족들은 각자 가족의 유골함을 찾아 앞에 섰다.

울음은 함께 터졌다. 유골함을 쓰다듬던 한 어르신의 흐느낌이 눈물의 시작이었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70여년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가족을 이제야 만났다. 

원망의 말은 없었다. 가족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분노하는 이도 없었다. 이제라도 가족을 찾게 해줘 감사하다는 말뿐이었다.

70여년 전, 어린 소녀는 어르신이 되어서야 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은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은 언제, 어디서 사랑하는 부모형제에게 돌아올 것인지 몰라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유족들이 많습니다. 좀 더 많이 희생자 유해가 발굴되고, 신원 확인이 하루바삐 이뤄져서 유족들의 맺힌 한을 달래 주시길 간절히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형님, 오늘의 유족 영신(靈神)들이여. 극락세계에서 편히 쉬십시오. 다시 한번 저희 형님과 14인 행방불명인(의 신원)을 찾아주신 노고에 감사드리며, 말씀을 갈음하겠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 고맙습니다. 70년 동안 억울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라도 해소가 되고, 여러분들의 공덕이야말로 너무나 크시고. 이 공덕으로 인해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에 평안이 오시기를 기원합니다.”

유족 대표로 추도사를 발표한 김영우 어르신의 맺음말이다.

비약적인 유전자 감식 기술의 발전으로, 14명의 4.3희생자의 신원이 특정됐다. 이로써 2020년 1월 22일 현재, 총 405구의 4.3희생자 발굴유해 중 133명의 신원이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272구의 유해는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신원 감식을 위해서는 더 많은 4.3 유족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많은 DNA 정보를 확보할수록, 유해에 대한 신원 감식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4.3희생자 발굴유해 유전자 감식을 맡아 진행한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 이승덕 교수. 

이와 관련, 이승덕 교수는 “새롭게 신원이 확인된 12명 희생자의 경우, (유전자 감식을 위한 채혈에) 참여한 가족 수가 꽤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혈액으로 친자를 확인하는 유전자 감식의 경우, 참여 가족 수가 많을수록 결과를 특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또 그는 “이후 사업(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4.3희생자에 대한 추가 유전자 감식)을 위해 가족(4.3희생자 유족)께서 다양한 분들의 참여를 이끌어주시면, 신원을 찾지 못한 분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분의 헌신이 가장 중요하다.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유전자 감식을 위한 채혈 등 유가족의 협조 신청은 4.3평화재단에 문의하면 된다.

제주4.3평화공원의 중심에는 4.3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그리고 위령탑으로부터 걸어서 한참을 올라가면 공원의 끝에 ‘4.3행방불명 희생자 표석’이 한데 모여 있다.
사진은 4.3행방불명 희생자 표석들의 모습.

4월 3일의 비극. 그로부터 7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4.3은 정명(正明)을 찾지 못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 희생자도 4000명에 가깝다. 가족 모두가 희생되는 등 피치못할 사유로 신고가 안 된 희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도 4월 3일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김영우 유족 대표의 말처럼, 좀 더 많은 희생자 유해가 발굴되고, 신원 확인이 하루바삐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때다.

70여년 동안 쌓인 유족들의 한. 그 한을 뒤로한 채 '감사하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마음.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가족의 유골함 앞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던 유족 어르신.
유골함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서 계셨던 유족 어르신.
봉인관에 유골을 들고 입장하는 4.3 유족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