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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시민은 도시우회도로 아닌, 녹지공간 원해요”
“서귀포 시민은 도시우회도로 아닌, 녹지공간 원해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20.01.21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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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서귀포시 우회도로 예정지를 도심녹지로 만들려는 시민토론회' 개최
"학생 안전 위협하는 6차로 도로 말고, 도시숲 만들면 어떨까?" 서귀포 시민 제안
미세먼지와 폭염 문제, 제주도 예외 아니야... "녹지공간 조성으로 해결 가능할 것"
1월 21일 오후 2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귀포시 우회도로 예정지를 도심녹지로 만들려는 시민토론회' 자리 모습.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상상해보자. 당신에게 있어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주거지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겠지만, 분명한 것은 살기 좋은 도시를 상상할 때 ‘차로가 넓어 운전하기 좋은 도시’, ‘개발 붐이 일어나는 도시’ 등을 말하는 이는 없으리란 사실이다.

서귀포 시민들은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1월 21일 화요일 오후 2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서귀포 지역을 비롯한 제주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날 행사의 이름은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예정지를 도심녹지로 만들려는 시민토론회’. 고은실 의원이 주최하고, 서귀포시도시우회도로녹지공원화를바라는시민들이 주관한 자리다.

'서귀포시도시우회도로녹지공원화를바라는시민들'은 총 8개 단체가 연대해 탄생한 조직이다. 한살림서귀포마을모임, 제주녹색당서귀포지역모임, 비자림로를지키려고뭐라도하려는시민모임, 전교조제주지부, 서귀포시민연대, 정의당서귀포위원회, 서귀포의미래를생각하는시민모임, 민중당서귀포위원회 이상 8개 단체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를 백지화하고, 녹지공원을 조성할 것을 행정에 제안한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건설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고, ‘살기 좋은 서귀포시’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낸 시민토론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9월 6일 오후 7시, 서귀포시 일주동로에 위치한 ‘참여와통일로가는서귀포시민연대’에서 1차 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1차 토론회 때의 주제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가 과연 필요한가’였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추진 중인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의 당위성을 논해보는 자리였다.

이번에 열린 2차 토론회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을 대신할 새 방안, ‘녹지공간 조성사업’을 제안해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본격적인 토론회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이 무엇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이란, 1965년 구상된 사업이다. 토평동에서 호근동까지 4.2km 구간에 폭 35m, 왕복 6차로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 구간. 토평동에서 동홍동을 지나 호근로까지 약 4.2km 구간에 왕복 6차로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 구간. 토평동에서 동홍동을 지나 호근로까지 약 4.2km 구간에 왕복 6차로 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결정된 지 수십 년이 넘은 사업이지만, 진행은 더뎠다. 거의 방치되어 있던 사업은 50여년이 흐른 2017년이 되어서야 실시설계에 들어갔다. 이후 제주도는 본격적인 사업 추진 행보를 보이게 되는데, 4.2km의 구간은 3개로 나뉘어 추진될 예정이다.

이중 논란이 되는 구간이 바로 1차 토론회 때 논의된 1구간이다. 1구간은 토지 매입이 대부분(91% 이상) 완료되어 삽을 뜰 일만 남은 곳이지만, 주민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지 않고 사업에 대한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어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1구간이 논란의 중심에 선 까닭. 서귀포학생문화원, 서귀포도서관, 제주유아교육진흥원을 바로 통과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1구간은 서귀포 지역의 일명 ‘교육문화벨트’를 관통하는 구간으로, 6차로 도로가 생기게 되면 아이들은 차량 통행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50년 동안 형성된 거대한 소나무 숲은 통째로 사라질 위기다.

이와 관련, 2차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살림제주 우렁각시 모임지기 김난영 씨는 “서귀포시 우회도로 예정지 주변에 통학하는 학생이 약 46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면서 서귀포학생문화원 등 교육문화시설 이용객은 연간 27만명이고, 이중 유아는 8000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이곳에 폭 35m, 6차로 도로가 들어선다면 아이들이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자동차를 늘리기 위한 도로 개발 사업이 아닌,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살림제주 우렁각시 모임지기 김난영 씨.

이어 김씨는 행정에 해결책 하나를 제시했다. ‘도로 다이어트’ 정책과 함께, 현재 매입한 1구간 토지를 녹지공간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는 놀이 공간을, 시민들에게는 ‘숲세권’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숲세권’이란, ‘숲’과 ‘역세권’의 합성어다. 숲이나 산이 인접해 있어 자연 친화적이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주거 지역을 의미하는데, 집과 인접한 녹지공간이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미치며 만들어진 말이다. 따라서 같은 도심에 있더라도 숲과 가까운 거주지일수록 부동산 시세가 비싼 경우가 많다.

김씨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며, 도로를 만들거나 넓히는 사업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꼬집었다.

미세먼지와 폭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김씨는 “폭염과 미세먼지의 해결책은 ‘도심 속 녹지공간’”이라면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2009년부터 2018년, 10년 동안 제주의 평균 폭염 일수는 7.5일, 열대야는 34.8일로 증가 추세”라며 “제주의 미세먼지 농도 연간 최대치는 해마다 200㎍/㎥를 훌쩍 넘겼고, 지난해 3월 5일에는 제주 사상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지기도 했음”을 밝혔다. 2019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관련 경보가 내려지지 않은 달은 6월부터 9월, 넉 달 뿐이어서 ‘청정 제주’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씨는 미세먼지 절감을 위한 방안으로, ‘도심 속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김씨는 하나의 사례를 들었는데,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반월특수지역 사회지구’의 도시숲 사례다.

해당 지역은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된 곳으로, 인근 주민들은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은 ‘도시숲 조성’ 사업을 시행하게 되는데, 산업단지와 주거단지 사이에 녹지공간을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반월특수지역 사회지구’의 도시숲 조성 계획도.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산업단지 지역, 파란색 부분이 주거지역이다. 이들 지역 사이에 녹지공간을 길게 조성하는 것이 도시숲 조성사업의 핵심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도시숲이 조성되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미세먼지 농도가 12%, 미세먼지 나쁨 일수가 약 31%가량 낮아진 것이다.

김씨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며, 제주의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나무를 베고,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닌, ‘도시숲’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김씨는 박정훈 PD의 저서 ‘환경의 역습’ 내용의 일부를 읽으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우리 아이의 생명을 자동차가 위협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될 어불성설이다.
이것이 용인되는 이유는 우리에겐 자동차가 하나의 사회 권력으로 인식되는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것은 시민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하도록 정책을 만든 사람들의 잘못이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안재홍 제주 녹색당 정책위원장이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표와 함께 장태욱 서귀포신문 편집국장, 엄문희 다큐멘터리 사진가, 고은실 제주도의회의원의 지정 토론도 진행됐다.

고은실 의원은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사업으로 야기될 문제점을 제기하며, 작년 의회에서 5분 발언을 하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표출한 바 있다.

고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사업에 대한 도교육청의 입장을 가져와 공유했다.

고 의원의 질의에 도교육청이 공식적으로 답한 문서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50년 된 사업을 그대로 현실에 반영해 진행한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한다”라는 입장으로, “서귀포시의 녹지공간과 휴식공간이 없어짐으로 인해 시민들의 교육환경권 침해가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또 고 의원은 도교육청이 “서귀포 시민들과 학생, 유아의 교통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매입한 토지는) 행정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교육행정기관의 책무다. 국유지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사업 백지화'를 확답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도교육청은 도시우회도로사업에 친화적이지는 않다'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고은실 의원.

강정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지속하며, 제2공항 등 제주의 난개발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엄문희 작가는 “모든 이해관계를 지우고 보면, 숲과 걸을 수 있는 안전한 길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공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씨는 “이미 사업 예정지에 대한 부지 매입이 완료됐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서 도심 속 녹지공간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어떤가”라며 “이는 생태정치에 대한 강력한 (시대의) 요구이면서, (서귀포시가) 생태도시로 가는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엄문희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토론회의 쉬는 시간. <미디어제주>는 토론회 자리에 참석한 시민 몇몇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살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요?”

여러 답변이 나왔다.

한 젊은 기자는 ‘대중교통 이용이 편한 도시’라고 답했고, 어린 자녀가 있는 학부모는 ‘안전한 도시’라고 말했다. 제2공항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안전하게, 시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 도시’라 했다.

서귀포시는 어떨까. 숲을 없애고, 6차로 도로를 만드는 도시우회도로 사업이 과연 이곳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사업이 될 수 있을까.

토론회 자리에서 시민들이 제안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의 대안. 거대한 도로 대신, 도심 속 녹지공간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이제는 행정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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