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만큼 탁월하군요”
“당신은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만큼 탁월하군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1.07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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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호 전 민속자연사박물관장 <제주도 곤충총서> 펴내

곤충 5천여종의 자세한 정보를 3450쪽의 기록으로 남겨

연구직 직원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책으로 말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한사람이 평생 공들여서 만든 책을 우린 어떻게 부를까. ‘역작’이라고 부르기도, 아니면 그 사람의 인생을 담은 ‘결정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와 같은 책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바로 제주도 곤충의 모든 걸 담아낸 <제주도 곤충총서>이다.

곤충 이야기를 담은 책은 일반인들에겐 다소 낯설다. 특히 ‘총서’는 대중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총서는 곤충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고 맛깔나게 담기보다는 곤충에 대한 시시콜콜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러기에 총서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지 않고, 정보를 일깨우는데 매우 충실하다. <제주도 곤충총서>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역작’임을 알게 된다.

정세호 전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이 쓴 '제주도 곤충총서'. 미디어제주
정세호 전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이 쓴 '제주도 곤충총서'. ⓒ미디어제주

<제주도 곤충총서>는 모두 5권이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 펴낸 책으로,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을 지낸 정세호씨가 모든 내용을 기술했다. 그는 공직에 있는 연구관으로서, 녹을 먹는 연구직 직원들이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지를 총서로 말하고 있다.

<제주도 곤충총서>는 무려 3450쪽에 달한다. 한권을 들기에도 버거운데 모두 5권이나 된다. 이 총서를 들여다보면 제주도가 좁은 섬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아울러 왜 석주명 선생이 나비에 매달렸고, 왜 제주에 탐닉을 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겠다.

<제주도 곤충총서>에 등장한 곤충 종류는 5000종을 뛰어넘는다. 곤충에 대한 기본적인 분류는 물론이고, 관련 곤충이 어디에 분포를 하고 있는지, 그들의 생태는 어떤지를 꼼꼼히 기록했다.

정세호 전 관장이 쓴 <제주도 곤충총서>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총서 속의 곤충 한 마리를 호출해본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호랑나비’는 <제주도 곤충총서>에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 호랑나비는 정세호 전 관장이 펴낸 총서의 제4권에 등장한다.

정세호 전 관장은 호랑나비에 대한 학명을 우선 밝히고 있다. 언제 어디서 조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총서에 자세하게 담았다. 호랑나비에 대한 학명이 있고, 표본을 조사한 지역도 자세하게 쓰여 있다. 날개 길이는 몇 cm이며, 출현시기와 먹이, 형태에 대한 정보가 있다. 또한 호랑나비는 한라산 1100m까지 분포하고 첫 기록된 연도까지 알 수 있다. 총서를 보면 호랑나비는 1883년 버틀러에 의해 처음 기록됐고, ‘호랑나비’라는 이름은 1947년 석주명에 의해 붙여진 사실을 총서에서 다루고 있다.

정세호 전 관장은 3450쪽에 달하는 총서를 내기 위해 30년 가까이 매달렸다. 그가 총서를 준비한 건 지난 1995년이다.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다가 자료를 몽땅 날려 먹기도 했다.

그는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역시 총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판단, 1년여전부터는 매일 12시간 이 일에 매달렸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이름으로 발간된 '제주도 곤충총서'. 박물관장을 지냈던 정세호씨가 직접 기술했으며, 석주명 선생의 식견만큼이나 탁월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이름으로 발간된 '제주도 곤충총서'.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던 정세호씨가 직접 기술했으며, 석주명 선생의 식견만큼이나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디어제주

그렇게 총서에 매달린 이유는 뭘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찮게 여기는 벌레로 학위를 받았고, 그걸로 인해 관장까지 했잖습니까.” 그는 국가의 녹을 먹었기에 일에 매달렸고, 연구하는 연구관이 되기를 바랐다. 연구관으로 전직 시험을 볼 때도 ‘국가에 불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학위를 받고도 직장에 다니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직장이 있고 월급도 받고, 그 월급으로 아이들도 키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늘 연구하는 자세가 돼 있었기에 3450쪽에 달하는 총서도 발간이 되지 않았을까.

총서는 ‘동종이명’과 ‘동종국명’ 등을 정리해두고 있다. ‘동종이명’은 동일분류이면서도 학명이 다른 경우를 말하며, 정세호 전 관장이 쓴 총서를 보면 서로 다른 학명이 담겨 있다. ‘동종국명’은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곤충의 또다른 이름으로, 총서엔 북한에서 불리는 이름도 함께 표기를 해두고 있다.

<제주도 곤충총서>가 발간되자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한국 곤충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석주명 선생의 식견만큼이나 탁월하다. 논문 자료 등을 통해 곤충의 기록 연대와 분포를 모두 정리했다는 점은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생물 서식처의 이동이나 특정 생물의 멸종 또는 분포지 확대 등을 살피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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