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는 어린이들이 뛰노는 공간을 만들기에 열심이다. 우리나라인 경우 다소 늦었다. 2015년에야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해 모든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선언했다. 어린이들의 놀 권리는 아무래도 선진국이 앞서 있다. <미디어제주>는 독일과 일본 사례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엔 영국을 찾았다. 영국은 어떻게 놀이를 접근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현장도 몇차례 둘러본다.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왕립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그라운드’
<피터팬> 이야기 요소를 곳곳에 잘 심어놔
매년 100만명 이상 찾는 세계 12대 놀이터
“보호자를 반드시 데리고 와야 놀 수 있어”
영국 찰스 황태자의 첫 부인은 잘 알다시피 다이애나이다. 다이애나와 찰스의 결혼은 마치 동화처럼 들린다. 아주 평범한 집안의 소녀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난 그런 이야기처럼 꾸며졌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이애나 집안은 그야말로 금수저였다. 평범한 영국 시민이 아닌, 백작 집안의 딸이었다. 다이애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할 때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객이었으니 그 집안의 위세를 알만하다.
그건 그렇고, 다이애나는 1997년 자동차 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스무살에 찰스와 결혼, 서른다섯에 이혼, 그 이듬해 세상과 결별했다. 사람들은 다이애나를 늘 가까운 존재로 여겨왔기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낮은 사람들에게 늘 상냥했던 그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맨 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맨 밑에 있는 사람들과 훨씬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다이애나는 영국 사람들에겐 잊지 못할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그는 비극적 죽음의 주인공이었지만 영국 사람들은 그를 살려냈다.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라는 이름이 그를 잊지 못할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다이애나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놀이터는 왕립공원인 켄싱턴가든스 서북쪽 끝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놀이터는 왕립공원관리청 주도로 만들어졌다. 왕립공원관리청은 1999년 환경분야 컨설팅을 주로 해오는 ‘랜드 유즈 컨설턴트(LUC)’에 의뢰를 했고, 2000년 오픈을 하게 된다. 투입된 예산은 120만파운드였다.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는 특별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피터팬>이다. 피터팬은 네버랜드의 주인공이다. 특히 <피터팬>을 탄생시킨 작가인 제임스 베리(1860~1937)는 켄싱턴가든스를 자주 들었다. 베리가 자주 드나들던 그곳에 환상적인 놀이터가 만들어지고, 다이애나 세자비의 기억까지 가지게 됐다.

이곳은 아이들이 즐기기에 그만이다. 놀이터의 중심엔 커다란 해적선이 있다. 아이들은 해적선에도 오르고, 모래에 반쯤 파묻힌 악어(돌로 만들어짐)도 만날 수 있다. 실컷 돌아다니다 보면 보물상자도 등장하고, 멀리 관측가능한 망원경도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피터팬인지, 후크 선장인지 모를 정도이다. 이 놀이터는 판타지가 가득한 <피터팬>의 여러 요소를 품고 있다.
<피터팬>을 품은 이곳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만점 방문지역이다. 한해 이곳을 찾는 이들은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작은 놀이터에 매주 평균 2만명이 찾는 수준이다. 그런 인기 때문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 12대 놀이터 목록에 포함돼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팩은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파크’에 대해 “놀이터 한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해적선부터 원뿔 텐트, 나무숲에 이르기까지 열린 탐사와 자유로운 상상력을 끌어올린다”고 평가했다.
이곳 놀이터는 아무나 들어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열림과 닫힘이 있다. 겨울철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45분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어른들은 출입이 통제되며, 12세 이하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어른만 닫힌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어린이도 마찬가지이다. 보호자가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기자가 찾은 켄싱턴가든스는 ‘개들의 왕국’처럼 보였다. 개를 끌고 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다이애나 메모리얼 놀이터는 개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듯 등록된 보조견 외에는 애완견도 출입을 아예 차단한다.
안전 문제는 어떨까. 안전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보호자 책임이다. 어른 보호자 없이는 아이들 혼자 놀이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게 바로 그런 이유이다. 물론 다쳤을 때 응급처리를 해주는 직원도 상주를 한다.
놀이터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답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틀에 박힌’ 놀이터는 걷어낼 때가 됐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다이애나 메모리얼 플레이 그라운드’는 우리에게 낯익은 동화나 소설 속의 요소를 놀이터에 충분히 심고도 남는다는 걸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