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온기
건축의 온기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2.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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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축 [2019년 4월호] 건축에세이
강명숙 / 건축사사무소 시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오면 아스팔트 거리에도, 자동차 본넷트 위에도, 징크지붕위에도 떨어지는 벚꽃잎으로 눈이 부시다. 봄이 눈이 부신 이유는 새털처럼 가벼운 벚꽃날림뿐만 아니라 아마도 녹록지 않은 겨울을 힘들게 보냈을 우리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의 겨우살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내 콘크리트 거푸집을 벗겨내고 그 위에 새로 미장을 하고 따뜻한 질감의 벽돌로 콘크리트 얼굴면을 감싼다. 그렇게 건축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하면 어느새 봄과 함께 준공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다. 여기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그릇이 될 건축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 그리고 건축의 온기를 찾는 쏠쏠한 재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건축주가 봄에 찾아온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얼른 건축허가를 받고 장마가 오기 전에 골조공사라도 끝낼 요량으로 찾아오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봄을 지나 여름을 지나 그나마 공사 시작하기 좋은 가을을 맞이한다. 초조한 마음으로 겨울에 골조를 완성하고 길고 긴 겨울 터널 한 가운데에 서서 갈고 닦고 외부정리하고 그렇게 1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벚꽃 흐드러지는 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고 6년째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자 업이기도 하다. 과연 한 프로젝트가 4계절을 맞아 그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내 작업의 정의는 무얼까? 간단히 말하자면 건축주의 땅에 최대한의 효율성을 갖춰주고 나름 독특하고 새로운 외관을 지향하는 디자인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나조차도 그 모습이 궁금해 자주 현장을 기웃거리며 드러낼 모습을 고대한다. 비계를 털어내고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속으로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기대에 미치고, 못 미치고를 떠나 완성된 모습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그렇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의 마음속 온기가 조금이라도 그 건물에 불어넣어졌기를…. 그런 고대의 연속이 내 작업의 정의가 아닐까.

기억의 온기-기존 돌담집의 일부를 보존하여 건축주의 유년의 기억을 담은 집.
기억의 온기 - 기존 돌담집의 일부를 보존하여 건축주의 유년의 기억을 담은 집.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새 나의 손을 떠난 건축물들은 건축주 또는 사용자의 손에 의해 숙성되어 간다. 여기서 뜻하지 않는 제2의 온기를 느끼곤 한다. 제1의 온기란 나름 건축물에 온기를 불어넣었다고 자부하는 설계자의 온기이며, 제2의 온기는 사용자가 불어넣은 건축의 온기이다.

뜻하지 않음은 의도치 않음이라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설계과정에서 간과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내가 설계하고 계획하고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공간을 찾는 여정은 설계할 때의 즐거움과는 또 다른 재미로 배가되어 돌아온다.

작은 공간의 온기 - 비양도가 보이는 바닷가 민박주택의 마당에 조그마한 카페를 증축한 곳이다. 알코브공간을 2인이 오붓하게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설계할 때 전혀 의도치 않았던 공간이다.
작은 공간의 온기 - 비양도가 보이는 바닷가 민박주택의 마당에 조그마한 카페를 증축한 곳이다. 알코브공간을 2인이 오붓하게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설계할 때 전혀 의도치 않았던 공간이다.

이런 뜻밖의 의미를 건축가 패터 춤토르는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뜻밖의 진실 : 시는 뜻밖의 진실이다. 시는 고요함 속에 산다. 건축의 예술적 사명은 이 고요함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건물 자체는 전혀 시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게 하는 묘한 특성을 가진다.” 라고 표현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닫는 묘한 특성은 아마도 건축을 사용하는 자의 온기에서도 비롯될 것이다. 역으로 그런 묘함을 사용자가 설계자에게 선사하는 셈이 된다.

뜻밖의 진실을 일깨워 주는 건축의 온기는 단연 르 꼬르뷔제의 작은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르 꼬르뷔제의 ‘작은집’은 르 꼬르뷔제가 어머니를 위해 계획했던 18평 남짓의 말 그대로 작은 집을 서술한 책이다.

맞이하는 공간의 온기 - 붉은색 벽돌타일과 골드간판 유칼립투스와 로즈마리가 어우러진 맞이하는 공간.
맞이하는 공간의 온기 - 붉은색 벽돌타일과 골드간판 유칼립투스와 로즈마리가 어우러진 맞이하는 공간.
중정의 온기 - 중정은 그 건축의 핵심이자 시각적 휴식처이다.
중정의 온기 - 중정은 그 건축의 핵심이자 시각적 휴식처이다.
재료의 온기 - 돌과 나무.
재료의 온기 - 돌과 나무.

책 곳곳마다 어머니를 위해 고민했던 흔적들의 스케치를 볼 수 있다. 그야말로 건축대가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본인이 흥미롭게 보는 것은 작은집 앞 레만호수를 향해 열려 있는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 고양이가 거닐 수 있는 ‘cat walk’를 둔 점이다.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자적 길고양이가 그곳을 거닌다. 뜻하였건 뜻하지 않았건,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물론 주변의 생명조차도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한 대가의 건축적 장치에 감탄이 절로 난다.

의도한 장치와 의도치 않은 장치를 건축이 설계되는 과정, 그리고 그 모습을 드러내 이용되는 과정에서 찾아보는 재미를 봄을 맞이한 이 시점에 권해 본다. 그로 인해 느끼는 온기를 가족들과 연인들과 친구들과 함께 누려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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