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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도를 하면서 달라진 나..손끝에서 성장을 느꼈다
아이키도를 하면서 달라진 나..손끝에서 성장을 느꼈다
  • 문영찬
  • 승인 2019.12.16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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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61>
<2편>_제주 김영우

효도르도 걸릴까? 합기올리기에 대한 체험

합기도(아이키도)를 하면서 이 무도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합기올리기’이다. 서로 앉은 자세에서 한쪽은 자신의 몸무게와 팔 힘을 실어 상대방 팔을 움직일 수 없게 억누르고 다른 한쪽의 사람은 그런 상대 팔을 들어 휙휙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았다면 그것이 바로 합기올리기다.

이 기술은 단순히 근력을 증가시키거나 상대방 신체의 특정 지점과 각도를 노리고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숙달이 되면 백발의 노인이나 체구가 작은 여성들조차 건장한 성인 남성을 던질 수 있다.

합기올리기는 ‘전신의 힘을 집중해서, 어떤 의념과 자세’로써 구현되는데 나는 이 합기올리기를 체험한 후 진정으로 합기도(아이키도)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합기도(아이키도)를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합기올리기를 제대로 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내 몸이 나보다 강한 상대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대단한 자유를 선사한다.

많은 이들이 합기올리기의 실체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기도 하는데 창시자의 수제자였던 시오다 고조는 신장 154cm에 몸무게 46kg인 작은 체구로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방일하였을 당시 그의 경호원(secret service)들을 대상으로 합기올리기를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영상 속 왜소한 체구의 인물이 시오다 고조다.
영상 속 왜소한 체구의 인물이 시오다 고조다.

 

나는 왜 다시 운동하고 있는 걸까? - 나이도 적지 않고 먹고 살기 바쁘지 않아?

합기도(아이키도)를 수련한 뒤 첫 심사도 통과하고 수련일수도 100일에 들어간다. 스스로 여러 번 되묻는다. 나는 왜 운동을 하는 걸까? 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합기도(아이키도) 기술이 도장 밖에서 필요한 상황이 올거라 생각지 않는다. 승단을 허락받아 유단자가 되면 기쁘겠지만 그것은 단기적인 목표일뿐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순 없다.

그러면 승단하는 순간 운동을 하는 동기가 사라질 테니깐 또 만에 하나 내가 승단하지 못한다면 운동했던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데 나는 그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고작 하루에 1,2시간뿐일지라도 그 시간동안 자유로움과 내 성장을 느낀다. 나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지도자와 같이 운동해 주는 이들이 있어 좋다. 그래서 운동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우리 도장의 미녀 수련생들! 아테미 제대로 안막으면 싸대기 때린다.
우리 도장의 미녀 수련생들! 아테미 제대로 안막으면 싸대기 때린다.

 

체게바라 자신의 한계 속에서 자신과 싸워보았는가?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는 ‘게릴라’나 ‘혁명’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렸을 때부터 평생 심한 천식을 앓던 ‘약골’이었다. 그의 가족은 체게바라가 천식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장소로 여러 번 이사를 다닐 정도였다. 그런 체게바라는 성장하자 격투기와 비견될 정도로 거친 ‘럭비’라는 운동을 배운다. 물론 주위에서는 그런 체게바라를 극구 만류하였지만 그는 굴하지 않는다.

천식을 심하게 앓던 체게바라에게 럭비를 한다는 것은 생명을 건 도전이었을지 모른다. 그때 그는 무엇을 배웠을까? 그의 아버지는 “럭비는 자신(체게바라)에게 가장 힘든 순간, 혹독한 싸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한 체게바라는 의사라는 안정적이고 직업을 포기하고 쿠바혁명군에 뛰어든다. 혁명을 성공한 후에도 장관이 보장되었지만 제3세계의 혁명전선으로 다시 나간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바라보면 체게바라는 무엇을 통해서든 ‘좌절에 맞서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체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게바라는 “해방자란 존재하지 않는단다. 민중을 해방시키는 것은 그들 자신이란다”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말을 한참을 두고 음미했다.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한 것과 함께 럭비는 체게바라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

쿠바 3패소에는 체게바라가 그려져 있다. 체게바라는 이미지는 유명해서 흔히들 보았을 것이다.
쿠바 3패소에는 체게바라가 그려져 있다. 체게바라는 이미지는 유명해서 흔히들 보았을 것이다.

 

갈지()자 나의 인생, 가련한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대학에서 토목(건설)공학을 전공했다. 흥미나 적성은 무시하고 그저 취업만을 바라보고 결정한 일이었다. 졸업 후 집과 가까운 건설현장을 다니다 계속 근무할거면 지방생활을 해야 한다고 해서, 또 그쪽 분야의 군대 같은 분위기에 질려 그만두었다.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운데 전공을 살리지도 못한 20대는 본격적인 ‘청년실업시대’와 맞물려 암울했다. 50,60통에 가까운 이력서를 써서 보내야 겨우 2,3곳 면접기회를 얻었다. 면접날에는 합격통보만을 기대하며 종일 안절부절했다. 며칠간의 무응답은 ‘탈락’으로 간주됐고 허탈감은 쌓여갔다.

어머니는 집안이 좀 더 유복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셨다. 계속 그렇게 있을 수 없었다.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최저임금에 계약직 일들만 즐비했다. 며칠 일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내일부턴 나오지 않아도 돼요”라는 말도 들었다.

사회생활을 이어갈수록 세상 사람들이 학벌과 나이, 외모, 직업과 경제적 수입 등으로 나를 평가하고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 자신도 타인들이 존중하지 않는 나 스스로를 너그럽게 보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 삶은 시들어 갔다. 강자들 주변에서 쭈뼛쭈뼛 눈치를 보는 가련한 내 모습이 보였다. 한 때는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했다. 해외에서 겪을 외로움이나 어학공부의 부담보다 지난날의 상처와 회의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계속 성장하려는 삶의 자세와 내 자신의 고유함(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도장으로..’

‘내 인생은 나아지고 있는가?’에 대한 어떤 지표도 찾지 못해 지쳐가고 있을 때 내 몸은 ‘운동’을 부르짖었다. 자신을 가다듬고 다시 세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운동하는 것은 나에게는 기쁜 일이다. 놀이터 가는 마음으로 도장에 간다.

운동에는 정신과 육체가 만나는 짜릿한 일체감, 몰입감이 있다. 못하던 동작을 해낼 때마다 “내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이 조금 필요했던 것”이라는 다른 수련생의 말을 듣고 전율했다.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반복될 때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자기통제감이 생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이어진다. 어려운 일을 대할 때 나는 예전보다 덜 긴장하고 실수도 줄어들었다. 내가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면 자신감과 함께 긍정적인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운동이 일상을 성공의 물결로 만들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다시 느껴보는 성장의 감정이었다. 나는 사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실패에 집착하기보단 이를 보완하여 재도전하는 것이었다. 바다를 포기하지 않은 강물처럼 이리저리 돌기는 하였지만 나는 분명 나아갔다.

꾸준히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그토록 원했던 성장의 고양감을, 자신 없던 운동에서 찾은 것은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처럼 스스로 운동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정신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일수록, 체력을 기르고 자신의 몸에 진정한 주인이 되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경험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신에너지를 강화시키는데 운동을 빠트릴 수 없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합기도(아이키도)에서 즐거움과 생활의 활력을 얻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단언하건데 당신의 인생에서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아름다운 제주. 우도에서 관광객이었을 때.
아름다운 제주. 우도에서 관광객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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