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유배 온 광해군의 이야기, 알고 있나요"
"제주로 유배 온 광해군의 이야기, 알고 있나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12.07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씨주택, 원도심의 아이콘이다] <7>

‘도시재생, 고씨주택에 말을 걸다’ 일곱 번째 강좌
양진건 제주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강연자로 나서
"제주 원도심에 유배 온 광해군의 이야기 알아봐요"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미디어제주>와 함께하는 원도심 이야기. 12월 6일 고씨주택에서 열린 ‘도시재생, 고씨주택에 말을 걸다’ 행사의 마지막 시간. 양진건 제주대학교 교육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이번 주제는 제주 원도심의 떠오르는 콘텐츠 ‘광해군’.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광해군의 이야기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양진건 교수가 전하는 광해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광해군은 참으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과 4대 비극처럼, 악인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그래서인지 광해군은 영화, 드라마, 웹툰, 최근들어 웹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주요 콘텐츠로 다뤄지고 있다.

그런 광해군이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광해군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 갖춘 왕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적당히 섞여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오죠. 그러네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광해군이 유배생활을 했던 제주에서의 삶이 다뤄진 콘텐츠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양진건 교수.

양진건 교수는 광해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모 매체에서 광해군을 소재로 한 웹소설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400여명의 제주도 유배인 가운데 유일한 임금입니다. 광해군은 대단히 매력적인 문화적 자산이죠. 따라서 제주도에서는 적극적으로 ‘광해군을 활용한 킬러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광해군을 조명하며,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한 광해 특별전과 광해 밥상전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저는 2013년부터 광해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광해 유배길을 만들고, 안내서를 발간하며 광해군에 대해 알리는 작업을 했죠. ‘광해, 빛으로 가다’라는 뮤지컬을 만드는 시도도 해봤고요. 올해 자연사박물관에서 가진 광해 특별전의 연장으로, 앞으로는 광해 유물관 건립을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토록 사랑하는 인물. 광해군은 어떤 인물일까.

광해군은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서차남)로 1575년 음력 4월 26일 태어나 1608년 음력2월 2일, 34살의 나이로 조선 제15대 임금에 오른다.

광해군의 대표적인 업적은 역시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소득에 따라 세금을 내는 조세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궁궐 재건과 인경궁 건설 등으로 파탄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광해군의 묘책이었다.

양진건 교수.

이외에도 광해군은 전쟁으로 소실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책자를 다시 간행하고, 허준의 ‘동의보감’도 편찬하는 업적을 남긴다.

“하지만 광해군은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는 등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데요. 이는 결국 인조반정의 결정적인 명분을 제공하게 됩니다.”

광해군의 폭군과도 같은 면모에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인조반정은 성공하게 되고, 광해군은 혼란무도(昏亂無道), 실정백출(失政百出) 등 36가지 죄목으로 강화도 유배길에 오른다.

“강화도 유배 중 광해군의 아들과 며느리는 탈출을 시도하는데요, 결국 실패 후 자결하게 됩니다. 광해군의 부인 역시 화병으로 사망함으로써 광해군은 제주도로 이배되죠.”

광해군은 1637년 6월 16일, 어승포(행원리)에서 1박을 한 뒤, 다음날 제주성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의 안치소는 망경루 서쪽이었다.

“1640년 9월,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시방이 광해를 잘 돌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1641년 음력 7월 1일 제주목 내의 유배지에서 사망하게 되죠.”

양 교수는 광해군의 일대기를 전하며, “심리학자들이 선조와 광해군, 부자지간에 대해 분석을 한 결과가 있다”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광해군은 선조와의 갈등이 어느 부자관계보다 심했습니다. 그런데 광해군 본인의 능력은 굉장히 출중했죠. 광해군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많이 하는데, 이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와의 갈등’을 이유로 해석하곤 합니다. 제대로 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랐다면 성군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에도 여러 갈래로 갈린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광해군의 삶의 끝은 제주에서였다는 사실이다. 

기구한 광해군의 일생, 그리고 제주에서의 유배생활. 새롭게 공개될 그의 이야기를 기대해보자.

고씨주택에서 열린 마지막 강좌 시간, 양진건 교수가 광해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