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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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제주
  • 승인 2019.11.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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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24>

#1. 과잉보호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어느 아이엄마의 말에 화들짝 놀라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다. 5살가량 된 아이가 별로 유난스럽지도 않게 종종 걸음으로 판매대를 왔다갔다하다 엄마한테 혼이 나는 장면이었다. 엄마는 앙칼진 소리, 훈육의 어조로 아이의 어깨를 잡고 외쳤다.

“뛰지 마! 넘어져! 저번에 뛰다가 넘어졌어, 안 넘어졌어!”

저번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번에 뛰다가 넘어진 걸 한 달이라고 가정하자. 한 달간 걸은 약 300,000번의 걸음(= 1일 10,000보 X 30일) 중 한번 넘어진 것뿐이다. 백번 양보해서 걸음 중 5%를 뛰었다고 가정한다면 15,000번의 뜀박질 중 1번 실수한 것이다. 아이엄마가 말하는 뛰다가 넘어질 확률은 0.00007%에 불과하다.

명백한 과잉보호다. 아이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훈육이고, 아이에 대한 치열한 채찍질이다.

#2. 최소보호

나는 아이가 넘어졌을 때 단 한 번도 일으켜주지 않았다. 아장아장 걸음마부터 지금부터 말이다. 넘어졌을 땐 씩씩하게 일어나라 격려했고, 크게 넘어져서 울 때면 울어도 변하는 건 없다고 우선 일어나라고 힘을 북돋았다.

하루는 아이가 오늘 하루에만 두 번이나 넘어졌다고 재수가 진짜 없는 날이라며 나에게 투덜댔다. 나는 희한하다. 평범하게 대꾸하는 법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 네가 초등학교 입학해서 6년간 하루에 2번 넘어진 적 있어? 그 확률은 잠깐만…. 계산기 좀 두드리고…. 아! 대략 2,000일이라 치면 2번 넘어질 확률은 0.001%밖에 안 돼.

하지만 이건 단순한 확률이고, 하루에 한번만 넘어진 날이 며칠될까? 가령 1년에 5번 넘어질까 말까니까 확률은 0.014%(=365÷5)야. 그런데 이 확률이 2번 연속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수학에 확률, 통계, 팩토리얼, 순열, 수열이라는 게 있는데 아무튼 하루에 2번 연속으로 넘어지려면 0.014%를 제곱해야 해. 그러면 0.000196%로 확률이 확 줄어드네.

결국 오늘 너는 재수가 없는 게 아니라 엄청 운이 좋았던 거야. 노력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 확률을 뚫은 거잖아? 오히려 대박이다!”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수긍한 듯 보인다. 대꾸도 없이 싱겁게 하던 일을 계속 한다. 이 녀석의 매력이다.

#3. 특별대우

머리카락을 잘랐다. 살면서 몇 번을 잘랐는지 모르겠다. 머리카락이 사각사각 잘리는 장면을 거울로 보며 생각했다. 개만도 못한 게 인간이구나.

개나 다른 동물들은 털을 깎지 않는다. 어느 정도 길어져 불편하면 털갈이를 하면 그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불필요하게 털이 계속 자란다. 자르고 다듬고 깎고 별짓을 다한다.

신이 유독 인간을 과잉보호하고 있다. 내가 성직자라면 신이 특별히 인간을 사랑한다는 논리를, 단연코 인간만 털이 계속 무한정 자란다는 이유로 들겠다. 신이 인간을 특별대우한 것이니까. 물론 인용의 품격은 다소 떨어질지라도 말이다.

#4. 과다한 적(敵)들

왜 현대사회는 모든 게 넘쳐날까?

과잉보호. 과소비, 과대광고, 과식, 고도비만, 과체중, 과대망상.

불필요하거나 넘치는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류동민의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에 나오는 과소비를 예로 들며, 글을 마치고 생각을 남긴다.

“과시적 소비는 부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지 않기 위해 먹는’ 최소한의 소비를 넘어서는 모든 소비 행위는 본질적으로 과시적 성격을 지닌다.”

과잉사회에 유일하게 줄어드는 건 소중한 사람과 아끼는 물건뿐이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운영담당
현 서귀포시 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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