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부, 시간이 아니라 세월
출석부, 시간이 아니라 세월
  • 김형훈
  • 승인 2019.11.2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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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의 무술 이야기] <58>

2019년 11월 18일 점심. 지부장님께서
“출석부는 정말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갑자기 출석부에 대해 묵혀뒀던 생각이 떠올랐다.

선배들은 때때로 출석부를 보고 후배들에게
“벌써 100일이네. 100일 치고는 잘하네.”
“아직 100일이네. 좀 더하면 돼.”라며
칭찬도, 독려도 한다.

운동이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잘 안되면 안 되는대로, 출석부는 이렇게 나와 내 출석일수와 함께 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출석부를 보고 기록하며 드는 생각은 ‘이걸 언제 채우나. 한참 남았구나. 잘 나온거 같은데 겨우 50일이 넘었나?’
선배님들의 500일, 1000일을 넘는 출석 일수를 보면 한숨도 나왔다.

심지어, ‘왜 출석 기록을 일수로 할까. 도장에서 운동한 시간이 2시간인 회원보다 6시간인 회원은 출석 기록이 3배가 돼야 맞는거 아닐까? 같은 날이어도 오전 수련 오후 수련 모두 나오면 2일치로 기록하면 안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까지 하게 되었다.

출석부의 빈칸을 ‘제대로’ 채우는 게 아니라, ‘빨리’ 채우고 싶은 욕심에...
운동은 재밌는데, 뭔가 재미를 느끼는 것과 별개로 출석 일수만 보면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나는 앞으로 막 가고 있는 거 같은데, 출석부는 저만치 뒤에서 본인만의 페이스로 오는 느낌.
‘야! 출석부! 너 왜 아직도 거기 있어! 출석부 너, 내가 운동 좋아하고 열심히 하려는 거 안보여? 좀 따라와줘야할 거 아냐. 그래야 힘도 나고 신이나서 하지~~’
이렇게 속으로 출석부를 보며 많이 섭섭해 했던 것 같다.

출석부에게 그토록 얘기했지만, 수많은 선배님들과 도우들을 경험한 백전노장같은 출석부가 나의 푸념 따윈 뭐...
어쩌면 출석부는 본인을 보면서 그토록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던 나에게 그때마다 이렇게 얘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운동하다 가는 건, 니가 원해서 한 거잖아. 나와 약속한 게 아닌 것을 나한테 따지지마. 그냥 도장에 나오기로 한 그 약속이나 잘 지켜. 난 출석부잖아. 그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 지켜보고 체크할 뿐이야.’라고.

그렇게 한두달, 반년, 일년이 지나면서 출석부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무뎌졌는데, 엊그제 점심때 출석부에 대한 지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도장에서 운동한 기록을 시간이 아니라 일수로 남기는 것은, 아이키도와 함께한 ‘세월’이 표현되는 것 아닐까.

몇 시간 더했다고 이틀로 기록할 수 없는 것. 며칠을 한꺼번에 얻을 수 없는, 하루에 하루씩만 쌓이는 세월과 아이키도 출석부는 닮았다.

지부장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선배들과 비교하지 말고, 선배들과 즐길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를 생각해라.”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비교하고 괜히 혼자 상처받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겠구나.
세월을 함께하며 굳이 무슨 비교가 필요할까. 그냥 그 세월을 함께 하고 즐기는 도우들이 있으니 좋은 것을.
출석부에, 내 이름과 함께 이름이 적혀 있는 그 소중한 분들과 오늘도 약속을 지키러 갑니다.
출석부. 네가 옳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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